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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일본 게이머도 ‘노 재팬’을 하게 만든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체리폭탄 (박성현 기자) | 2020-12-01 19: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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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이머가 자발적 ‘노 재팬’을 택했다. 황당한 검열에 일본판을 절대 사지 말라는 조언마저도 등장한다. 

 

11월 10일 유비소프트에서 발매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가 그 대상이다. 게임은 바이킹의 유혈낭자하고 폭력적인 전투를 특징으로 내세웠다. 신체 훼손 및 유혈 묘사가 삭제되어 게임이 내세운 특징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 PS 버전은 검열이 엄격한 일본판을 기반으로 발매됐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유저들은 난데없는 검열에 불만이 많다. 한국에서는 일본 검열이 적용되는 PS판은 무조건 피하라는 조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북미판을 구매해도 일본어 자막이 적용되니, 일본판을 피하자는 분위기다.

 

광고는 유혈, 게임은 무혈


 

# '청불' 등급 만큼은 피해라!

논란이 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일본 CERO(컴퓨터 오락 등급 기구)에서 심의를 받았다. 일본 사회 정서와 CERO 성향이 심의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CERO는 게임에 대한 ‘사회 압력’이 거세지는 걸 막기 위해 탄생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 압력’은 주로 학부모의 항의다. 과거 일본 게임업계는 청소년을 반사회적 게임에 노출했다며 여론으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에 업계는 비영리 심의기관 CERO를 2002년 설립했다. 심의를 통해 사건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고, 비 심의 게임에 대해서 선을 긋기 위해서다. 

심의 성향은 “이 게임이 우리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괜찮을까?” 정도로 요약된다. 폭력, 범죄, 반사회성, 선정성 등은 일본 사회의 보편적인 정서를 기준으로 엄격히 검열된다. 부정적 여론 형성을 검열로도 막기 어려워 보일 경우에는 심의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일본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 올라온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CERO Z등급에 폭력성과 범죄 항목에 해당한다.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총 5개 등급 중, 가장 엄격한 Z등급을 받았다. Z등급은 처음부터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이상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이다. 홍보와 판촉에도 많은 제약이 가해지며 게임 구매도 번거로워진다. 소매점 구매 시 신분증 검사가 의무며, 다운로드 구매는 신용카드로만 결제 가능하다. 일본은 흡연자와 운전자가 아니면 신분증을 휴대할 일이 없다시피 하다. 신용카드 발급 역시 복잡하고 까다로운 편이다. 

CERO는 민간심의기구이기에 강제력은 없다. 그러나 유통업체와 소매점에서 CERO 미심의 게임을 취급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 게임 시장이 오프라인 소매점 중심으로 이뤄졌음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불이익인 셈이다. 

개발사들은 Z등급만큼은 피하려 노력한다. Z등급에도 표현 한계선이 존재한다. 엄격한 검열도 맞추고 판매와 홍보에도 제약이 생긴다. 그럴 바에야 게임 경험을 해치더라도 Z등급을 피하는 쪽이 기업으로서 현명하고 안전한 선택이다.


# 일본 게이머: (일본판) 사지 않습니다.

일본 게이머들조차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검열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 전작 <오리진>과 <오딧세이>에는 최소한의 유혈묘사라도 존재했는데, 이번작에는 최소한의 묘사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게이머들은 검열을 피하고자 북미판 구매에 나서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북미판을 판매 중인 아마존 재팬에는 “언어만 바꿔서 즐겨라.”는 구매자 평이 대다수다. 반면 일본판에는 “중고 매입도 헐값이다. 일본판으로 사지 마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셋 중 유독 평점이 낮은 쪽이 일본판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다.


유비소프트 재팬은 여론 진화에 나섰다. 회사는 11월 18일 공식 홈페이지 ‘유비블로그’를 통해 원래 예상하던 수정 사안으로는 일본 발매가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또한 수정은 CERO와 협의를 통해 이뤄졌으며, 유혈 묘사 제거 역시 이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CERO는 반박에 나섰다. 11월 19일 CERO 홈페이지에 “유비소프트사의 11월 18일 자 발표문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성명이 발표됐다. 내용에 따르면,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검열은 유비소프트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일이며, 이에 대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게 CERO의 주장이다. 

일본 게임언론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특정 게임과 개발사를 언급해 관계에 척을 져봐야 CERO에게만 독이 될 뿐이다. CERO는 게임업계가 함께 창설한 민간심의기구라 심의 강제성이 없다. 척을 진 개발사가 새로운 심의기구를 발족할 가능성 자체가 CERO에겐 위협이다. 

CERO가 강하게 나서자 유비소프트 재팬은 CERO 주장을 인정하며 사과에 나섰다. 또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과도한 검열은 유비소프트 잘못임을 시인하며, 유혈 묘사를 수정하겠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일본 게이머들은 CERO 탓이라 생각한 검열 문제가 유비소프트에 책임이 있음을 알게 되자 더욱 분노했다. CERO 검열이 강하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협의도 안 하고 유혈 묘사를 배제한 선택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다. 또한 Z등급임에도 유혈과 폭력 묘사에 수정이 없이 발매된 <둠: 이터널>과 <울펜슈타인: 더 뉴 콜로서스>를 예시로 들며 유비소프트의 어설픈 심의 심사에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에서 CERO Z등급으로 무삭제 발매한 <울펜슈타인: 더 뉴 콜로서스>


사건은 유비소프트의 안일한 아시아 시장 관리로 벌어진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11월 30일 CERO가 또 다른 문제 제기에 나섰다. CERO는 유비소프트가 PC판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 심사 자료에 없는 내용을 추가했다고 주장했다.

CERO는 심의 위반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으나, 일본 커뮤니티에서는 유비소프트 실수로 판매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글로벌 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정이 사실이라면 CERO 입장에서도 쉽게 간과하기 어려운 사건이 된다. 유비소프트 실수라 하더라도, 이는 심의기관의 검열과 심사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사상 초유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CERO에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전 플랫폼에 재심사 요청을 내리거나 판매 중단을 결정해도 무방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PS 유저들도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PS 버전이 일본판으로 발매된 이상, 유비소프트와 CERO가 펼치는 해프닝 결과가 한국판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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