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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이번에는 다르다? 스팀 덱을 통해 돌아보는 밸브의 하드웨어 역사

4랑해요 (김승주 기자) | 2021-07-20 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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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밸브가 휴대용 게이밍 하드웨어 '스팀 덱'을 발표했다. 오는 12월 미국과 캐나다, 영국과 EU 국가들을 대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밸브는 이전부터 꾸준히 하드웨어 시장에 노력을 쏟아 왔다. 정확히 말하면 밸브만의 하드웨어를 만들기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이를 위해 다수의 하드웨어 개발자를 자사에 영입한 후 '스팀 머신', '스팀 링크' 등 자체 생산한 하드웨어를 꾸준히 출시했다. 

 

다만 ESD 시장에서의 굳건한 입지와 다르게 하드웨어 시장에서는 끝없는 실패를 반복해 왔다. 이번에 발표한 스팀 덱은 밸브의 꿈을 이뤄줄 기기가 될까? 밸브의 하드웨어 역사를 돌아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스팀 머신'부터 '스팀 컨트롤러'까지... 밸브의 하드웨어 사업 수난

밸브의 하드웨어 시장을 향한 첫 도전은 2012년 시작됐다.

2012년 9월 4일 밸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컴퓨터 하드웨어 시장에는 혁신이 결여돼 있다"라며 도전을 천명했다. 밸브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몇 년 동안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한 입력 방식은 의미 있는 변화를 찾지 못했다. 시장엔 공허함만이 쌓였고, 획기적인 유저 경험이 간과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하드웨어 전문가를 대거 채용했음을 공개했다. 

그로부터 3년뒤, 베일을 벗은 밸브의 첫 하드웨어는 2015년 공식 출시된 '스팀 머신' 이었다. 스팀 OS가 설치된 하드웨어 기기로 해당 기기를 통해 스팀 게임을 즐길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다. 

게이브 뉴웰은 2014 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한 달 만에 300만대를 판매한 Xbox One과 경쟁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스팀 머신에게는 6,500만 명의 스팀 유저가 있다"고 답변했다. PC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하드웨어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

하지만, 2021년 기준 스팀 머신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스팀 머신은 엄밀하게 말하면 콘솔이 아니었다. 일종의 브랜드 PC다. 밸브가 직접 기기를 제조해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카드처럼 여러 하드웨어 업체가 스팀 OS를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기들을 제조하는 방식. 덕분에 생산 업체마다 사양, 가격, 성능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기가바이트와 조텍에서 제조한 스팀 머신. 각 업체마다 성능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저렴한 제품은 50만 원 정도였지만, 100만 원이 넘는 기기도 있었다

콘솔도 아니고, 조립 PC도 아닌 애매함이 스팀 머신의 발목을 잡았다. 콘솔만큼 가성비가 좋지도 않고, 조립 PC만큼 성능이 좋지도 않았다. 굳이 스팀 머신을 구매하느니 형편에 맞게 PC를 구매하는 편이 나았다. 콘솔에 익숙한 사람들은 소니나 MS가 구축한 익숙한 환경에서 떠나 비싼 스팀 머신을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 

스팀 머신에 설치된 스팀 OS가 리눅스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리눅스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은 스팀 머신에서 플레이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물론 다른 PC가 있는 경우에는 스트리밍 형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이미 다른 PC가 있는데 스팀 머신을 추가로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

에일리언웨어의 스팀 머신

여기에 2015년 같이 발매된 스팀 링크의 팀킬도 문제였다. 

스팀 머신의 장점이라 한다면, 거실에 있는 TV에 연결한 후 소파에 편하게 앉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싼 스팀 머신을 구매할 필요 없이 스팀 링크를 구매하면 됐다. 

스팀 링크는 스트리밍 형식으로 거실의 TV에서 PC에 설치된 스팀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기다. 가격도 약 50달러 수준으로 스팀 머신보다 훨씬 값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팀 링크 또한 스트리밍형 게임 플레이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2018년 단종되었다.

스팀 링크

첫 도전 당시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한 입력 방식에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라는 포부를 밝힌 만큼, 모든 스팀 게임과 연계되도록 설정된 '스팀 컨트롤러'도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 스팀 컨트롤러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트랙패드와 자유로운 키 매핑에 있었다. 

기존 컨트롤러가 가진 두 아날로그 스틱 대신 햅틱 패드를 통해 섬세한 조작감을 선보이려 했다. 또한 6개의 트리거 버튼을 통해 자유로운 키 매핑을 지원했다. 또한 유저가 각 게임에 키 매핑을 할당하고, 이를 스팀을 통해 공유해 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스팀 컨트롤러 베타 버전. 상세한 키 매핑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가운데 존재하는 터치 패드는 정식 출시 때 삭제됐다

하지만 '스팀 컨트롤러'조차도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단종됐다. 일반 유저에게 키 매핑 시스템은 너무나 복잡하게 여겨졌다. 트랙패드가 자랑하는 세세한 컨트롤도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하며 감도를 조절해야 했다. 기본적인 마감이 엉망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패드의 강점 중 하나인 '진동'이 기존 패드의 느낌과 달랐으며, 이마저도 게임마다 개별 설정해야 했다.
 
결국 밸브도 실패를 인정하고 2019년 단돈 5달러에 남은 재고를 판매한 후 스팀 컨트롤러를 단종시켰지만, 실패로 인한 손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게이밍 하드웨어 업체 'SCUF'에서 스팀 컨트롤러가 특허를 침해했다며 밸브에 소송을 건 것. 핵심은 후면에 위치한 버튼이었다. 스팀 컨트롤러 후면에 위치한 버튼이 SCUF의 자회사 '아이론버그 이노베이션'이 소유한 컨트롤러 후면 버튼 특허를 도용했다는 주장이었다.

판결은 2021년 2월에 나왔고, 밸브는 패소했다. 미국 워싱턴 지부 서부 지방 법원의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밸브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법원은 밸브에 400만 달러(한화 44억 원)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문제는 컨트롤러 뒤에 위치한 후면 버튼이었다

밸브 측 변호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를 요청했지만, 2021년 5월 법원은 "피고의 불만족이 법의 문제나 새로운 재판이 될 수 있는 판단 근거가 되지 않는다"라며 밸브 측 요청을 기각했다. 

다만 밸브가 실패만 반복한 것은 아니다. 2019년 독자 설계를 통해 출시한 VR 기기 '밸브 인덱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현할 수 있는 컨트롤러가 큰 호평을 받았다. 밸브 인덱스는 <하프 라이프: 알릭스>를 번들 게임으로 제공하는데, "<알릭스>를 플레이하기 가장 적절한 기기"라는 평가를 받고 일시적인 품귀 현상을 겪기도 했다.

 

밸브 인덱스 (출처 : 아마존)

 

 

# 앞선 SMACH Z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스팀을 기반으로 한 휴대용 게임 기기는 '스팀 덱'이 최초가 아니다. 

 

2015년부터 펀딩을 통해 개발되어 온 'SMACH Z'가 이미 있었다. 밸브와는 관련이 없는 독자 개발 기기이기에 '스팀 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선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디자인도 트랙패드를 사용한 스팀 컨트롤러와 유사하다.

 

 

'SMACH Z'는 스팀 계정과 연동해 라이브러리에 있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기기다. 네트워크와 연결된 상태에서 게임을 스트리밍 받아 실행할 수 있다. 개발사 측에서도 E3 등 다수의 게임쇼에서 SMACH Z를 꾸준하게 시연하며, AAA 게임을 휴대용 기기로 원활히 구동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2021년 현재도 SMACH Z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개발 기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AAA 게임의 사양이 계속해서 올라갔기 때문이다. 신작 게임을 원할히 구동하기 위해서는 기기 스펙을 높여야 했는데 그러면 또다시 출시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도 큰 영향을 미쳤다. SMACH 프로젝트를 시작한 다니엘 페르난데즈는 "코로나 19가 모든 원인이라고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프로젝트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에 있던 생산 라인을 스페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투자자들도 계속되는 지연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악영향을 받은 것.

 

2021년 현재 다수의 하드웨어 매체는 SMACH Z 프로젝트에 비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베이퍼웨어'(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가상의 제품을 지칭하는 말) 취급하고 있다. 펀딩에 성공했을 때 받았던 기대감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결과다.

 

 

# 그렇다면 스팀 덱은 무조건 실패할까? 답은 "아니"다.

 

다만 스팀 덱이 SMACH Z와 이전 스팀 하드웨어의 실패를 반복하리라 추측하긴 이르다. 

먼저 소수의 인원이 펀딩을 받아 시작한 SMACH Z와는 다르게, 스팀 덱은 밸브에 영입된 하드웨어 전문가들이 모여 추진한 프로젝트다. 적어도 '스팀 컨트롤러'와 '밸브 인덱스'등 밸브의 하드웨어 제품이 유통 문제로 큰 지연을 겪은 예는 없었다.

그리고 밸브는 앞서 발매된 휴대용 기기를 참고해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가령 밸브는 ‘스팀 덱’은 악명 높은 ‘쏠림 현상’이 없도록 내구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쏠림 현상’(drift)은 아날로그 스틱을 중립 상태로 두었을 때 특정 방향으로 조작 신호가 입력되는 기기 고장을 말한다. 조이스틱을 사용하는 휴대용 기기나 컨트롤러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문제다.

특히 휴대용 기기에서 자주 발생한다. 사진은 PSP 1000번대 기종

스팀 머신의 실패도 고려했다. 스팀 덱은 리눅스 기반 별도의 스팀 OS 3.0을 탑재하고 있다. 그리고 해당 OS에 탑재된 기술 중 하나인 Proton을 통해 추가적인 포팅 없이 PC 환경과 비슷한 플레이를 가능하게 할 예정이다. 밸브 또한 "공급업체와 협력해 Proton의 게임 호환성과 치트 방지 솔루션 지원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덕분에 스팀 덱은 꼭 AAA 게임만이 아니더라도 기존 스팀에 발매된 인디 게임들을 즐길 수 있을 예정이다.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실제로 AAA 게임을 휴대 기기로 즐길 수 있다는 것보다, 사양이 낮은 인디 게임이나 고전 게임을 간편하게 즐긴다는 것에 집중하는 소비자도 많다.​

2012년 도전을 천명한 후, 밸브의 하드웨어 사업은 VR 외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과연 밸브는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스팀 덱을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을까? 다수의 게임 매체와 하드웨어 마니아들이 스팀 덱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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