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원더포션 "조선과 사이버펑크 섞은 산나비, 돌이켜 보면 무모했다"

텐더 (이형철) | 2020-11-09 10: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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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개발자가 저마다의 꿈을 꾸며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 오늘 소개할 '원더포션' 역시 이러한 목표를 갖고 뭉친 조그마한 게임 개발사다. 하지만 그들의 결과물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2020 부산 인디게임 커넥트 페스티벌(이하 BIC)를 통해 선보인 <산나비>가 많은 이의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나비>를 플레이한 기자 역시, 이 '기묘한' 게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로프 하나로 모든 액션이 진행되는 게임 콘셉트는 둘째치고, '조선'과 '사이버펑크'라는 극단적인 요소를 한데 버무린 사연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원더포션 유승현 팀장을 만났다. 규모는 작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원더포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사진은 넣지 않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원더포션 사무실 한켠에 부착되어있는 '산나비' 이미지

 
# '조선 사이버펑크', 경험 있었다면 결코 시도하지 못했을 것

 

BIC로 <산나비>를 알리긴 했지만, 아직 '원더포션'을 낯설어하는 분도 많습니다. 간단히 회사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유승현 팀장: 거창하게 말씀드릴 건 없는 것 같은데... (웃음) 원더포션은 '겜덕' 대학생 다섯 명이 모인 게임 개발팀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스마일게이트 게임잼, BIC 게임잼에서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팀원 모두가 원더포션, <산나비>를 통해 게임 산업에 뛰어든 건가요? 스마일게이트 게임잼에서 만났다는 말도 있던데요.

 

유승현 팀장: 팀원들 모두 게임 개발 동아리 같은 건 해봤지만, 공식 출시를 목적으로 게임을 개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야말로 '신인'입니다. 

 

 

현 멤버들과 스마일게이트 게임잼에서 만든 게임은 뭐였나요?

 

유승현 팀장: 체스 규칙을 도입한 '탑 다운 슈터'였습니다. 설명만 하면 뭔가 그럴싸한데, 결과물은 좀 아쉬웠어요. (웃음)

 

 

게임 플레이와 개발은 완전히 다른 부분인데, 본격적으로 개발 분야에 뛰어들게 한 게임이 있을까요?

 

유승현 팀장: <역전재판> 시리즈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엔딩을 본 뒤에도 여운이 남아서 밖을 돌아다닐 때도 <역전재판> BGM을 듣곤 했죠. '나도 언젠가 이런 게임을 만들어야지'하는 각오도 생겼고요.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던 역전재판 시리즈 (출처: 스팀)

 

 

혹시 원더포션도 자체적인 '슬로건' 같은 게 있나요? 개발 철학이라던가.

 

유승현 팀장: 거창한 슬로건은 없지만, 팀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은 있어요. '재미있는 게임도 좋고 잘 팔리는 게임도 좋지만, 기억에 남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입니다.

 


<산나비>는 BIC에서 꽤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습니다.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또 BIC에 대해 자체적으로 어떤 평가를 내리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유승현 팀장: 사실 내부 테스트만 하다 보니까, 저희 스스로 <산나비>에 대한 객관성이 결여되더라고요.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일단 열심히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출품했는데, 예상외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와서 감격스러웠습니다. 내부적으로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다만, 전투 시스템을 너무 급하게 만들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졌고 콘텐츠도 부족해서 다소 지루한 플레이가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공식 데모에서는 이런 부분을 확실히 보완하고자 합니다.

 

2020 BIC 어워드 루키부문 '최고의 아트상'을 수상한 산나비 (출처: 산나비 트위터)

 

<산나비>는 '도트 그래픽'에 '로프 액션'을 얹고 '사이버펑크'와 '조선'이라는 극단적인 테마까지 버무렸어요. 일부러 어려운 코스를 고른 듯한 느낌도 있는데, 주제와 테마를 선정하는 과정이 궁금하네요.

 

유승현 팀장: 개인적으로 <웜즈>를 좋아해서 '로프 액션'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로프 액션'과 플랫포머가 결합되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로프를 활용한 게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로프 액션의 모든 걸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후 원더포션 아트 담당자분이 '조선이 발전해서 사이버펑크화됐다면 이쁘지 않겠냐'라고 하신 걸 듣고, '로프액션'에 '조선'과 '사이버펑크'를 섞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막연한' 결정이죠. 

 

그땐 터무니없는 요소들을 섞더라도 잘될 줄 알았어요. 경험이 없으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알지 못했던 거죠. 결국 저희는 아트와 콘셉트를 수없이 갈아엎어야 했고, 그 과정 끝에 지금의 <산나비>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만약 저희가 조금이라도 게임 개발 경험이 있었다면, 절대 시도하지 못했을 거예요.

 

산나비의 배경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막연한 결정이었다고 하기엔, 조선과 사이버펑크가 참 잘 어울리던데요. 다만, 데모 버전에서는 조선하면 떠오르는 예스러운 느낌보다 21세기 서울의 향이 더 많이 났습니다. 의도한 부분인가요?

 

유승현 팀장: 앞서 말씀드렸듯 지금 <산나비> 콘셉트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과물입니다. 처음엔 고궁에 네온사인만 입히면 이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튀었고, 그걸 이쁘게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고심 끝에 조선과 사이버펑크를 직접적으로 연결하기보다, 다른 매개체를 활용해서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신, 스테이지 진행 상황에 따라 조선의 고급스러움도 적절히 드러내고자 했어요.

 

 

'산나비'라는 명칭도 굉장히 이색적입니다. 대명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 우리가 아는 나비(Butterfly)와 연관이 있나요?

 

유승현 팀장: <산나비>에 등장하는 '무언가'를 지칭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 게임의 초기 콘셉트는 '조선 사이버펑크 로프액션'에 '무속신앙'을 섞은 형태였어요. '산나비'는 그때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등장한 단어입니다.

 

'산나비'는 게임 내내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 "카타나 제로와의 유사성,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비판"

 

문득 생각난 건데 <산나비>의 극악무도한 난이도는 누가 설계한 건가요? 손목이 아작날 뻔했습니다.

 

유승현 팀장: 사실 내부적으로는 <산나비>가 너무 쉽다는 의견이 팽배했어요. 개발자들끼리 플레이하다 보니까 객관성이 결여된 거죠. 심지어 난이도가 너무 쉬워서 플레이타임이 안 나올 것 같다는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 기준으로 중간보다 조금 쉽게 난이도를 설계했는데, 그게 유저분들께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저희 의도와는 달리 게임이 너무 어려워진 겁니다. 게다가 레벨 디자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더 까다롭게 느끼셨을 겁니다. 정식 버전에서는 튜토리얼 부분을 조금 더 강화하고자 해요.

 

 

<산나비>의 핵심은 단연 '로프 액션'인데요. 어렵긴 하지만, 굉장히 스타일리시해서 자꾸만 도전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과정으로 이 콘셉트를 결정했고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유승현 팀장: 시작은 <웜즈>의 '로프전'이었습니다. 캐릭터들이 로프를 통해 날아다니면서 전투하는 게 너무 멋있었거든요. 다만 그 과정에서도 로프는 결국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는 게 아쉬웠어요. 그래서 로프를 기반으로 하드코어 한 게임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의 구간을 너무나도 손쉽게 통과한 유승현 팀장

 

 

<산나비>는 퇴역 군인과 딸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루는 한편, 중간중간 많은 떡밥을 흘려놨었잖아요. 팀 내에 스토리 담당자가 별도로 있는 건가요? 정식 버전에서는 어디까지 스토리를 전개할 예정인가요?

 

유승현 팀장: 일단 <산나비> 스토리는 제가 담당하고 있어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신랄한 혹평을 받고 갈아엎어지지만요. (웃음) 이번 BIC에서 보여드린 것도 '프로토타입'의 일환입니다.

 

<산나비>는 도시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이를 파악하기 위해 주인공과 히로인이 도시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어요. 거기에 산나비에 대한 미스터리를 얹고 주인공과 산나비의 과거에 관한 내용도 추가됩니다.

 

 

게임 분량이나 챕터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유승현 팀장: 총 다섯 개 챕터로 구성할 예정이고, 평균 5~6시간 정도면 클리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데모 버전에서는 '로프' 하나로 게임이 진행됐는데, 정식 버전에서 다른 요소를 추가할 계획이 있나요?

 

유승현 팀장: 다양한 기믹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이를테면 점프할 수 있는 '지지대'나 가속 가능한 오브젝트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대쉬' 등 다양한 기능을 선보일 예정이지만, 게임의 핵심이 '로프 액션'이라는 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조금 민감한 질문을 해보죠. <산나비> 기사나 플레이 후기를 보면 꽤 많은 이가 '특정 게임'을 언급하고 있어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유승현 팀장: 네. <카타나 제로>를 많이 언급하시더라고요. 사실 개발 초기에 아트 부분에 관한 고민을 꽤 많이 했어요. 그때 주변에서 먼저 레퍼런스를 잡은 뒤 차차 바꿔나가는 편이 개발하는 데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그렇게 선택한 게 바로 <카타나 제로>였습니다.

 

저희가 꽤 오랫동안 <카타나 제로>의 색깔을 덜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유저분들이 보시기엔 여전히 그 느낌이 남아있는 듯해요. 아무래도 전체적인 인상 자체가 <카타나 제로>와 유사해서 그런 지적을 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항인 만큼, 수용 가능한 비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따라서 정식 출시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최대한 <카타나 제로>의 느낌을 탈피할 예정입니다. 게임의 핵심 시스템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산나비>는 두 번째 스테이지부터 분위기가 많이 바뀌거든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만 플레이해보시면, 분명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유저가 산나비를 보며 '카타나 제로'를 떠올렸다 (출처: 카타나제로 스팀페이지)

 

 

현재 <산나비> 개발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유승현 팀장: 게임 메커니즘이나 맵 생성에 관한 파이프라인 등 개발에 관한 부분은 거의 완성된 상황이에요. 다만 스토리 진행과 맵 찍기, 레벨 디자인 부분은 아직 진척도가 낮은 상황입니다. 전반적인 개발 상황을 숫자로 표현하자면 약 30%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스토리 모드 외에 다른 콘텐츠도 고려하고 있나요? 이를테면 타임어택이라던가, 주인공의 뒤를 이어 장비를 착용한 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유승현 팀장: <산나비>는 어드벤쳐 게임이 아니라 액션 플랫포머인 만큼, 속도감이 중요합니다. 자칫 스토리를 길게 풀었다간 지루해질 수도 있죠. 그래서 저희는 숨겨진 길에 세계관이나 사이드 스토리를 읽을 수 있는 기록 등을 배치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주인공과 함께할 수수께끼의 소녀, '금마리' (출처: 원더포션)

 

 

# 펀딩, 얼리 억세스, 그리고 정식 출시... '산나비'에게 주어진 1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개발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아무래도 '돈'일 텐데요. 개발비는 물론이고 사무실 임대료나 식비에 대한 걱정도 클 것 같습니다.

 

유승현 팀장: 올해까지는 경기 게임 오디션이나 국가지원사업에서 받은 돈으로 생활비를 때울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거든요. 일단 팀원들끼리는 열정 하나로 버텨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웃음)

 

 

목표로 하는 '출시 타임라인'이 있나요? 

 

유승현 팀장: 내부적으로는 내년 6월에 얼리 억세스를 선보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마 전체 분량의 6~70%를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유저분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게임을 수정해서 최종적으로 내년 12월에 <산나비>를 정식 출시하고자 합니다.

 

 

<산나비> 펀딩에 대한 이야기도 있던데요.

 

유승현 팀장: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지만, 올해 12월에 텀블벅 펀딩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굿즈도 준비하고 있는데요. <산나비> 오프닝 부분에 나오는 '흉장'을 금속 형태로 가공해서 후원해주신 분들께 제공하려고 합니다. 흉장은 벌써 제작에 들어간 상황이에요. 그 외에도 비즈아트로 여주인공을 만들 수 있는 DIY 키트나 도시에 대한 리플렛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어요.

 

산나비 오프닝 부분에 등장한 '흉장'

 

 

혹시 <산나비>에 관심을 가진 퍼블리셔가 있었나요?

 

유승현 팀장: 감사히도 몇몇 회사에서 연락을 주셔서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산나비>를 기다리고 있을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유승현 팀장: 저희가 처음으로 만든 게임을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대답해드리진 못하지만, 유저분들의 피드백을 통해 많은 힘을 얻고 있어요. 빨리 출시하겠다는 말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미있는 게임으로 찾아뵙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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