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을 안 만들 생각이었는데, IGF 최종후보에 선정돼버렸다"

홀리스 (정혁진) | 2021-05-27 1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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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개발사 비트겐의 배상현 대표는 다른 예술 매체와 달리 수행(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해 순도 높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게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체이싱 라이트>를 통해 '게임이 위대한 예술임을 증명하고 싶다'라고 소개했다. 

 

<체이싱 라이트>는 일반적인 게임들이 지키는 것을 역행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방향에서 출발했다. 수용자(유저)는 여러 과정을 겪으며 각자가 자신의 빛에 도달할 수 있다. 직접적인 메시지는 철저히 배제됐다. 답은 오로지 수용자의 몫이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게임에 대해 되짚어보기 바란다는 뜻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는 <체이싱 라이트>를 통해 유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는 <체이싱 라이트>의 수익이 저조해 더 이상 게임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고 영화 시나리오, 소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세계 최대 인디게임 행사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로부터 혁신적인 게임에 주는 누오보(Nuovo) 부문에 게임이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달 받았다. 해당 부분 후보 선정은 한국 게임으로서 최초다.

 

향후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안타깝게도, 배 대표는 당장 게임을 만들 계획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생존의 문제가 달렸기 때문이다. 그는 장편 영화 시나리오, 그리고 게임에 적합한 소재 소설을 쓰고 있다. 최종 후보에 선정된 것을 늦게나마 축하하며,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배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비트겐 배상현 대표.

 

# 누오보 최종 후보, "혼란스럽지만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위해 분투한 결과라 생각"

Q. 만나서 반갑다. 먼저 비트겐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설립년도나 구성원, 개발 중인 게임 등)

 

A. 배상현 대표: 디하(디스이즈게임 하이라는 뜻). 비트겐은 배상현이 지휘하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한 콘텐츠 제작사다. 2015년 12월 1일 창업했고, 1인 기업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제작사처럼 필요에 따라 팀원들이 프로젝트 단위로 뭉쳤다 흩어지는 제작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데뷔작으로 <체이싱 라이트>를 만들었고, 지금은 혼자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Q. 작년 5월 5일 출시 이후 1년이 조금 넘었다. 개발사 근황을 알려준다면.

 

A. 다음 작품에 몰두하고 싶은데 이제 좀 정리가 되었다 싶으면 수상이나 각종 행사가 계속 생긴다. <체이싱 라이트>라는 늪에 빠져 익사하기 직전인 상태다(웃음). 농담이고, 새 프로젝트의 시나리오를 열심히 작업 중이다. 확실한 고정 수입원이 없는 상태의 작가는 이렇게 답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Q. 출시 이후 지금까지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소감을 듣고 싶다. 게임의 인기 요인을 어떻게 보는지.

 

A. 진심으로 악을 쓰며 벼려냈고, 그게 수용자들에게 잘 닿은 결과라고 본다. 감사하다는 말씀 드린다.

 


 

Q. IGF Nuovo Award 8개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됐다. 우선 축하한다. 한국 최초로 노미네이트 됐다고 들었는데, 소감이 어떤지. 어떤 이유로 선정됐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이건 정말 진심인데, '많이 난감하다'. 사실 더 이상 게임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체이싱 라이트>를 통한 수익이 낮아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투자자들이 연락해 오는 것도 아니라 게임에 대해서는 완전히 마음을 접고 혼자 평화롭게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IGF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체이싱 라이트>가 너무 좋았다고, 차기작이 정말 기대된다는 메세지를 보내더니 얼마 뒤 파이널 리스트 지명 메일이 날아오더라. 이렇게 큰 시상식에 지명이 되니 게임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는 하는데, 마음 속 한 켠에서 누군가가 '멈춰!' 라고 연신 외치기도 하는 것 같다.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선정 자체에 대해선 파칭코나 칠교, 펀치 머신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체 자체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위해 분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다.

 


 

# "게임을 해체하고 혁명하려는 게임이며, 게임이 위대한 예술임을 증명하려는 작품"

Q. <체이싱 라이트> 소개를 봤는데, '게임을 해체하고 혁명하려는 게임이며, 게임이 위대한 예술임을 증명하려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A. 일반적으로 '게임'이라고 받아들여지는 프로덕트들이 기를 쓰고 지키고 있는 것들에 적극적으로 역행하며 그것들을 해체하고, 원소들을 나열했다.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랄까?

 

0부터 다시 시작하고, 이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들을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이 <체이싱 라이트>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서부터 시작되었든, 부정적인 반응에서부터 시작되었든 수용자들 스스로가 '그들 자신의 게임'에 대해 반추해볼 수 있기를 바랐다.

 

단적으로 <체이싱 라이트>를 하고선 '이건 게임이 아니야!' 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겐 자신만의 게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적극적인 분들은 더 나아가 '그렇다면 게임은 무엇인가? 게임은 어때야 하는가? 나의 게임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까지도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질문과 답의 산파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여러 부분을 설계했다.

 


 

Q. 혹시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줄 수 있나.

 

A. 위대한 예술임을 증명하려고 한다는 워딩은, 다른 예술 매체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이런 작업이 불가능하고, 오직 게임만이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쓴 것이다. 드러나 있는 코드, 그리고 png와 anim이라는 날것의 형태로 드러난 앙상한 뼈대와 노골적인 드라마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은 이런 것이었나?’라고 생각하게끔 찬물을 끼얹으며, 심지어 그 찬물을 끼얹는 작업을 유저 스스로가 수행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이런 게임이, 아니, 이런 예술 장르가 있었나? 문학도, 연극도, 영화도 그 태생의 한계 때문에 해내지 못했다. 각종 내장들이 등장해서 자신들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다가 갑자기 취조실에 데려가서는 "사람이 뭘까?" 하고 묻는 작품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 잠깐,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건 나중에 시도해봐야겠다(웃음).

 

<체이싱 라이트>에는 실제 사진과 같은 독특한 장면도 들어가 있다.

 

어쨌든, 현존했던 예술들의 형태에서 수용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서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수용할 뿐인 입장에 불과했고, 그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존재하더라도 대개 예술가들 스스로가 전시하는 것을 감상하는 형태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예술 수용자 자신이 예술을 해체하며 쌓아 올림과 동시에 정서적으로 고조되고, 그 궤도의 끝으로 향하게 만드는 일은 내가 아는 한 인류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순도 높은 체험의 예술인 게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렇기에 이것이 위대한 예술임을, 제10의 예술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게임, '배상현의 게임'이다.

 

 

Q. 게임을 어떤 이유, 목적을 가지고 개발하게 됐나. 유저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A. 각자가 자신의 빛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메시지, 빛의 의미 등과 관련된 내 발언은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하는 노이즈다. 그에 대한 생각과 답은 오롯이 작품 수용자의 몫이다.

 



Q. 개발 기간은 어떻게 되나? 혹 개발 과정에서 겪은 인상 깊은 에피소드나, 일화가 있다면.

 

A. 3달? 4달? 매일매일이 다이내믹했던지라 인상 깊은 일화를 하나만 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며 만신창이인 상태였다. 게임 같은 거 만들면 안 된다. 해롭다. 질병이다.

 

심의비 충당하려고 크라우드 펀딩 시작했을 때 홍보메일을 돌렸는데 피드백이 없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디스이즈게임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저한테 왜 그러셨는가? 밉다.

  

 

Q. 보통 인디 게임의 특징으로 '독창성'을 꼽는다. <체이싱 라이트>는 어떤 포인트가 독창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하나?

 

A. 말로 할 필요가 있나? 트레일러만 봐도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는데.

 

 

Q.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패치나 콘텐츠 추가 등 게임에 변화가 있었나?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었나.

 

A. 세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버그 수정이 있었다. 기술을 담당했던 팀원이 전문 개발자가 아니었던지라 굉장히 창의적인 버그들을 많이 껴안은 채로 출시했다. 지금은 대부분 수정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 상태고, 콘텐츠는 따로 추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딱 필요한 만큼만 만들었다. 이 이상은 덧붙이면 사족이고, 덜어내면 미완이다. 게임 외적으로 있었던 변화는, 공식 유튜브와 트위치 채널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트리밍을 통해 팬분들과 직접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힘을 얻고 있다는 것. 팬 여러분 사랑해요.

 


 

Q. 투자자를 만나는 것부터 게임 제작에 여러 충돌 과정을 겪는 것이 게임 제작에서 자주 겪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며 게임 제작을 해 나가야 하는데. 꽤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설계하게 된 이유나, 이로 인해 유저가 어떤 경험을 하기 바랐나?

 

A.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해체에 대해 답하며 설명했던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은데,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게임에 대해 파고드는 제대로 된 게임이 존재하지 않아왔다'는 사실이 제작을 결정하게 된 계기 중 하나다.

 

야망 있는 예술가라면 누구든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점을 찍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욕망에 굉장히 충실한 편이고. 수용자들이 처절하게 바닥까지 치달으며 다른 것들을 비워버리고, '지금 여기'에 대한 생각, 그리고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내길 바랬다. 그리고 '빛'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랐다.

 

 

Q. 게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유저가 신경 써서 바라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A. 결국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진지하게 마주했으면 한다. 자신의 빛에 대한 것이든, 게임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자신이 이해한 제 3의 질문이 되었든. 나는 끊임없이 수용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던진 것은 결국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 자신의 이야기가 울려 퍼지길 바랬기 때문이고.

 

모니터의 사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씬에서 종종 완전히 검은 화면으로 암전되어 버리는 것은 모니터의 액정에 수용자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고, 자기 자신을 응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서 이기도 하다. 거울처럼.

 

근데 요즘 PC 모니터들이 거울처럼 깔끔하게 비춰지는 모니터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나는 디스플레이 엔지니어들에게 유린당한 셈이다. Oh! Tragic thing!

 


 

Q. 스토리나 적재적소의 연출, 더빙 등이 꽤 인상적이더라.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출했는지.

 

A. 연출을 하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둔다거나 했던 건 없었던 것 같다. 작업을 치열하게 응시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여러가지 방법 중 최고의,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선택해나갈 뿐이다.

 

최고의 작품,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을 만들겠다는 광인같은 신념만을 남겨두고 작품의 큰 뼈대와 시나리오를 부여잡은 채 짐승처럼 작업했다. '빛을 쫓는 여정을 만든다, 0에서부터 시작하는 게임을 만든다.' 라는 메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최선의 방법을 계속 떠올리며 적용해나간 것이다.

 

그 최선의 방법에 선택된, 그리고 선택되지 못한 방법들의 집합은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접하며 학습한 결과들의 나열일 테고.

 


 

# '독특한' 소설 준비... 게임 관련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

Q. 유저에게 게임의 정의, 구성 요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비트겐은 그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내리고 있나.

 

A. 1인 기업이니 결국 비트겐의 답이 아니라 나의 답이겠지? 뭐, 어찌 되었든 그건 당연히 기업 기밀이므로 인터뷰에서 말하고 다닐 순 없는 법이다.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Q. <체이싱 라이트>외 개발 중인 신작이 있다면.

 

A. 게임을 만들고 있진 않고, 만들 계획도 현재는 없다. 처음에 말했듯 차기작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수익도 없었고 투자도 없기에 게임에 대해선 마음을 거의 접은 상태다.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장편 영화의 시나리오고.

 

그와 별개로 게임에 적합한 소재로 소설을 조금씩 쓰고 있긴 한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컨텐츠 비즈니스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새 작품 또한 사람들이 흔히 접하지 못했던 소재들과 테마, 등장인물들이 이끌어나가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새 프로젝트의 후원은 6월 30일까지 진행한다. 비트겐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오시면 확인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함께 제작 중이니 기대해주길 바란다.

 

 

Q. 소개 중, 우리의 삶을 망망대해라 표현하며 유저가 어디를 향해 나갈지 질문을 던졌다. 비트겐의 향후 행보는?

 

A. 지금까지 그랬듯 계속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것, 하지만 보고 싶어할 것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할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자 안식이다.

 

벽 너머엔 항상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들이 존재했다. 뼈가 가루가 될 때 까지 그 벽에 돌진하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풍경을 선사하는 것이 내 작가적 소명이고, 그 소명 외에 다른 것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산다. 그렇게 태어나버렸다.

 

결국 그렇게 제대로 된 연애도 한 번 못 해보고 일찍 급사하게 될 것 같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작품들 많이 만들테니 쭉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나보다는 내 작품들이 이 세상에서 오래도록 살아가기를 꿈꾸고, 그 꿈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간절하게 꿈꾸는 유일한 꿈은, 성취하기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꿈은 그 꿈 하나다.  

 

 

Q. 끝으로 유저들에게 한 마디.

 

A. 제발 게임 좀 사주시고, 돈 많으신 분들은 투자 좀 해주시라. 배(배상현)트코인은 고수익을 보장하는 우량주다. 다른 게임들에 과금 좀 덜 하시고 배상현에게 써주시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말씀드리는 바이다.

 

아, 분리수거도 잘 하시고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인간의 깊이는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인가 아닌가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쓰레기에는 민트 초코 뿐만이 아니라 생각 없이 달고 다니는 악플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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