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김승수 의원 메타버스 정책제안 "새로운 분류체계 필요"… '큰 그림'은 누락

톤톤 (방승언) | 2021-10-25 14: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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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열풍이다. 정확히는 지속적이고 본격적인 성장을 꿈꾸고 있지만 누구도 메타버스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정부는 2025년까지 '초연결 신산업' 육성을 위해​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등 유망 분야에 총 예산 약 2조 6,000억 원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메타버스의 정의와 범주를 정하는 사회적 합의는 국내는 물론 어디에서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에 앞서 ‘용어 정리’부터 선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된다.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이 문제를 들고나왔다. 14일 게임물관리위원회 국감 중 김 의원은 현재 서비스 중인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등 이 게임과 메타버스 중 어느 쪽인지 물었다.

이에 김규철 게임물관리위원장은 ‘메타버스는 게임보다는 플랫폼에 가깝다’는 국회 입법조사처 판단을 인용하면서도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는 게임으로, <제페토>는 엔터테인먼트 앱으로 분류되고 있는 현황도 함께 전했다.

21일 김승수 의원은 국감장에서 한국VRAR콘텐츠진흥협회(KOVACA) 연구용역으로 진행된 ‘메타버스로 촉발된 미래 시대 준비를 위한 콘텐츠 분야 정책제안 보고서’를 통해 메타버스 사업 활성화 및 안정화를 위한 법제화를 제안했다.

실감콘텐츠(AR·VR·MR·XR 등)전문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등 관련 전문가들과의 FGI를 통해 작성된 보고서는 파편화된 메타버스 정의의 ‘재분류’ 방안 제시와 함께 정책 제언을 내놓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봤다.

네이버 <제페토>


# 기존의 메타버스 분류

보고서는 먼저 메타버스의 범주와 정의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미국 미래학단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의 분류 방식에 관해 설명하고, 이것이 정책 대응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류법이라고 지적한다.

ASF는 메타버스를 ‘구현 공간’(증강↔시뮬레이션)과 ‘정보 형태’(비개인적↔개인적)라는 두 축으로 나누어 4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시청각적으로 현실의 모습 위에 디지털 정보를 덧씌워 보여주는 증강현실(AR 게임, 구글 글래스 등) ▲개인의 현실적 정보를 가상에 기록하는 라이프로깅(블로그, SNS 등) ▲현실 정보를 사실적으로 시뮬레이트 한 미러월드(지도 앱 ‘거리보기’ 기능, 박물관 VR 관람 등) ▲현실 모방적 세계, 혹은 대안적 세계를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가상세계(<제페토>, <로블록스> 등 서비스)로 구분된다.

서로 달라 보이는 서비스 및 기술들을 메타버스로 아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ASF는 이들 유형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융복합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언급된 4분야 모두 메타버스를 완성하는 각각의 ‘구성요소’인 셈.

(출처: 김승수 의원실 '메타버스로 촉발된 미래시대 준비를 위한 콘텐츠분야 정책제안보고서')


# 메타버스 국내 정책 현황 - '지원은 하지만 애매모호'

국내에서 메타버스는 입법 대상에 포함되지 않지만, 정부 정책으로 지원이 시작되는 단계다. 지원 이슈를 찾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관련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메타버스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기술동향 공유, 법제도 정비방안 검토, 기업간 협업을 통한 메타버스 플랫폼 발굴·기획을 담당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통신기술 문화융합센터’를 메타버스 기업·개발자 육성공간으로 변용한 ‘메타버스 허브’도 운영한다. ‘메타버스 적용 효과가 높은 전략분야’를 선정해 서비스 제작·테스트·실증을 지원하고 예비창업·창업·성장기업을 선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관계부처 협력으로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한다는 다소 모호한 계획도 세워져 있다. 기술, 사회 측면에서는 2020년 수립된 ‘가상융합경제 발전 전략’을 바탕으로 XR 활용, 고도화, 경쟁력 확보에 힘쓴다. 문화 측면에서는 문체부가 실감형 콘텐츠 육성 예산을 2019년 261억 원에서 2021년 1,355억 원까지 확대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메타버스 허브(출처: 메타버스 허브 공식 홈페이지)


# 관리할 별도 법령 없어… 게임법이 특히 문제?

이처럼 다양한 지원, 육성 계획을 세워뒀지만, 문제는 산적해있다.

일단 그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고, 산업 전반을 일관되게 규제, 관리할 법령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타버스는 현재로서 ‘전문 기업’이 존재하지 않고, 여러 산업과 융합된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때문에 현재 각 산업의 관련 법령이 적용되고 있어 일관된 법 규제가 힘들다.

보고서에서는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게임법)로 메타버스를 규제할 경우 메타버스의 ‘시장주도 연령층’인 MZ세대의 진입 저해가 우려된다고 적었다. 유튜브 등 신흥 플랫폼의 응용, 활성화는 젊은 세대로부터 시작돼 다른 세대로 확산할 때가 많으며 메타버스도 게임을 통해 MZ세대에 먼저 전파돼 자연스럽게 확산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견해다.

메타버스를 게임으로 볼 경우 서비스 허가 절차가 한층 엄격해질 수 있다. 국내법상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 혹은 자체등급분류 사업자에 의해 이용등급분류가 이뤄지지 않은 ‘게임’은 원천적으로 서비스할 수 없다. 특히, 거래기능을 포함한 게임이면 게임위 직권으로 분류를 받아야 하며 19세 이상 이용가로 분류돼 이용 대상이 한정된다.

이렇듯 게임법을 비롯, 복수 법령의 파편적 규제를 받는 현 상태에서는 융복합산업 성격인 메타버스산업 특성상 법 적용에 혼란이 가중할 수 있으며, 따라서 새로운 법률 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논지다.

KOVACA는 “관련 학계 전문가, 산업, 국민, 행정․법률가 등 가상세계산업의 진흥과 국민의 건전 한 가상세계 이용문화의 확립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논의가 요구되며, 이를 통해 향후 개선방안 도출을 위한 별도의 연구가 요구된다”고 적었다.

<로블록스>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인 구글에 의해 '전체이용가' 등급을 받고 서비스 중이다.


# 메타버스 ‘재분류’로 정책대응 - 핵심은 공공 분야

KOVACA는 익명 전문가 4인이 참여한 FGI를 통해 ▲메타버스 등 융·복합콘텐츠와 관련된 법제도 검토 및 제언 ▲메타버스 정책을 위한 메타버스 개념의 재분류 ▲메타버스가 가진 속성을 중심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사용자 수평적인 정책방안 ▲메타버스 서비스와 플랫폼 확산을 위한 정책지원 방안 등 주제를 탐구했다.

'메타버스 개념 재분류' 제안은 눈길을 끈다. 전문가들은 기존 ASF의 메타버스 분류를 정책적 대응에 참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기술 중심의 분류이기 때문에 합리적 결과를 수행할 기준을 마련하는 정책 수립 과정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분류 체계를 제안했다. 메타버스 기술을 유형별로 구분함에 있어 상호작용성, 몰입성 등 그 콘텐츠적·서비스적 형태를 나누는 기준 외에 ‘공공성’을 가늠하는 제3의 기준을 더해 세분화했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 영역’의 메타버스 서비스란, 정부의 인위적 개입(육성)이 이뤄지지 않으면 성장이 어려운 영역을 말한다. 민간과 기업에선 수익을 기대할 수 없지만 공공적 가치 함양을 위해 인위적 발전이 이뤄져야 할 이러한 부분이야말로 관련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특히 공공 인프라 및 서비스에 메타버스를 접목해 민원관리, 공공서비스 이용 등에서 사용자들이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용자 수평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재분류 방안(출처: 김승수 의원실 '메타버스로 촉발된 미래시대 준비를 위한 콘텐츠분야 정책제안보고서')


# 기타 제언과 한계점

전문가들은 아마존 전략책임자 출신 벤처캐피탈리스트 매튜 볼이 제시한 메타버스의 7가지 특성 중 ▲지속성 ▲접근성 ▲경험 확장성의 세 가지가 정책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메타버스를 활용한 공공·사회혁신 방안을 검토하고, 다가올 메타버스 시대의 위험 요소를 점검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현실과 가상의 연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짚었다. 가상세계에서의 활동이 현실적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계해 개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또한 신체적 한계를 지닌 이용자의 가상세계 활동이 현실에서의 지원으로 이어지도록 하면,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고할 수 있다. 지리·경제적 한계로 활동이 제약되는 계층에게 교육·예술·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보편적 기회 제공의 장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처럼 보고서는 메타버스에 속하는 여러 산업을 폭넓게 아울러 다루면서, 각 분야에서 구체성, 실용성, 공공성을 지닌 서비스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방법론을 제안했다. 다만 메타버스를 ‘융·복합적’ 산업으로 규정하면서도 각 메타버스 분야가 최종적으로 ‘융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정 방안은 탐구하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ASF는 현재 '메타버스의 일종'으로 느슨하게 포섭되고 있는 사업 분야들이 종국에는 하나의 융합된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매튜 볼이 제시한 ‘메타버스의 7가지 조건’ 역시 각 기업, 기관, 개인의 서비스 및 상품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제2의 인터넷’으로서의 메타버스를 그리고 있다. 즉 메타버스는 소수의 주체가 단기간에 완성하는 기술이 아닌, 여러 주체의 참여로 완성되는 장기적 지향점에 가깝다.

향후 메타버스 사업 전개 방향을 소개한 페이스북 (출처: 페이스북 공식 홈페이지)

 

최근 메타버스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천명한 페이스북도 지난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향후의 메타버스 진출 전략을 밝히면서 동일한 관점을 피력했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는 한 기업이 만드는 단일 상품이 아니다. 마치 인터넷처럼, 페이스북의 참여와 상관 없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각계 협력의 중요성을 전했다.

페이스북은 현재 자사에서 개발 중인 메타버스 관련 상품들이 '메타버스 구축'이라는 궁극적 용도에 걸맞은 형태로 완성될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며, ‘책임감 있는'(responsibly) 개발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그 예시로 자사 서비스와 타사 서비스 사이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구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매튜 볼 역시 메타버스의 필수 조건 중 하나로 꼽은 ‘상호운용성’이란, 특정 기업 서비스에서 이용하는 디지털 자산을 그대로 다른 기업 서비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호환성’을 말한다. 본 보고서에서는 "<포트나이트>의 스킨을 <로블록스>에서 사용하는 등 플랫폼 간 마찰 없이 넘나드는 역량"이라고 부연설명하고 있다.

이런 상호운용성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참여하는 기업들이 함께 '메타버스 구축'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해야만 한다. 이는 물론 정부의 관련 정책 수립과 직·간접적 개입 없이는 요원한 일이다. 

이외에도 '궁극적 메타버스' 실현을 위해서 '중앙 통제'가 필요한 영역은 여럿 존재한다. 정부가 정말로 메타버스의 미래 가치에 관심이 있다면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지만 현재의 정책 상으로는 이러한 '큰 그림'을 확인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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