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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아무도 안 만나줘요" 법잘알 엄친딸의 제로부터 시작하는 게임업계 생활

백장미 (백장미 기자) | 2020-07-30 13: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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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를 만나주지 않아요"

 

멜봇 스튜디오 백장미 대표는 기자를 만나 하소연했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녀는 한국 게임업계에서 완벽한 뉴비였습니다. 어렵사리 미팅을 잡아도 "또 연락 주겠다"라는 답변을 들었고, 기다려도 연락이 오는 일은 많지 않았다고 하네요.

 

백장미 대표는 법잘알 엄친딸입니다. 20대에 아르헨티나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30대 때는 해외 투자, 진출 컨설팅을 했습니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녀는 40대 들어 옆길로 샜습니다. 게임 스타트업을 시작한 거죠.

 

팔고 싶은 게임이 재밌어보여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녀 앞에 놓인 길은 잘 닦인 고속도로가 아니라 벼랑에 낸 좁고 위험한 잔도(棧道)였습니다. 기자는 "일단 당신이 누군지 아무도 모르니 소개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식견과 경험을 나누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백장미 대표가 스페인 게임업계를 소개합니다. 뉴비가 어떻게 게임업계를 소개하냐고요? 읽어보면 압니다.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프롤로그] "아무도 나를 만나주지 않아요"

 

 

#1

 

한국에서 경제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때 지스타를 참관했다. 2015년 11월, 내 생애 첫 게임쇼였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스프레를 한 언니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게임 덕후들은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체험을 하고 있었다.

 

B2C 메인 홀에 발을 디뎠을 때 움찔한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열기와 열정이 느껴졌다. 마치 바르셀로나 캄 노우(Camp Nou)에서 열리는 라 리가(La liga) 결승전 같았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나라에서 여러 분야의 일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생소한 분위기였지만 나도 덩달아 흥분이 됐다. 여러 분야와 문화의 경험자라고 자칭하는 나를 흥분시킨 게임 시장이 궁금했고 또 탐이 났다. 

 

 

#2

 

우선 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페인 게임 업체들과 미팅했다. 많이 배웠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스페인 게임 사절단을 한국에 데리고 왔다. 그동안 100곳이 넘는 스페인, 한국 게임 업체와 접촉했다. 

 

이 산업은 내가 그동안 다루던 분야와 많이 달랐다. 알면 알수록 궁금증이 늘어났다. 더 알고 싶었고 그 무리에 나도 끼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내 게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장미 대표는 당시 카탈루냐 무역투자청 한국 소장으로 지스타에 카탈루냐 게임 업체들을 초대했다.

 

2019년, 외교관 직책을 내려놓고 게임 스타트업 멜봇 스튜디오(Melbot Studios)의 파트너로 참가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어렵지도 않았다. 그동안 여러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외교관 뿐 아니라 변호사, 전략 컨설턴트, 투자 컨설턴트가 나의 직업이었다.

 

할 줄 아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게임 업계로 풍덩 뛰어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란듯이 묘기를 선보이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마 한 가운데 '초보'라는 낙인이 찍혔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듯 우왕좌왕했다.

 

 

#3

 

멜봇 스튜디오는 디지털 콘텐츠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회사다. 본사는 스페인에 있고 내가 한국에서 사업 개발(BD)과 투자 유치를 한다...고 썼지만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다.

 

내 파트너들은 2017년 여름에 처음 만났다. 만났던 회사들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정이 들었다. 크루는 12명인데 나 빼고 모두 남자고, 대부분 게임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로케이션에서 업무를 본다. 이반과 데이비드는 공동 창립자다. 이반은 발렌시아에서 디바이스 디자인과 개발을 하고 데이비드는 바르셀로나에서 게임을 개발한다. 헐리웃 단편 영화감독 출신의 호세마(Josema)가 LA와 발렌시아를 오가며 콘텐츠 디자인을 한다.

 

음악을 제외한 콘텐츠 전부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든다. 콘솔 게임 경험이 많은 멤버들이 있어 퀄리티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 

 

 

#4

 

멜봇 스튜디오는 2018년 크리스마스에 PS4로 <멜빗 월드>를 출시했다. 캐주얼 3D 퍼즐 게임으로 협동을 중심으로 한다. 플레이어들끼리 경쟁하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은 게임이다. 가족들이랑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만들었다.

 

실제로 게임은 잘 만들었다. 소니로부터 탈렌트 베스트 플레이(Talent Best Play) 상도 받았다. 스페인 출신의 레전드 농구선수 마르크 가솔(Marc Gasol)과 함께 프로모션 비디오도 찍었으니 많이 팔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크리스마스에는 다른 PS4 게임이 쏟아져나왔고, 파티 게임의 선호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큰 맘 먹고 게임을 구매한 사람들도 "막상 가족들과 게임을 즐길 기회가 없다"라면서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지 못했다. 

 

소니는 1년 만에 <멜빗 월드>의 독점을 놔줬다. 돈이 안 되니 굳이 잡아놓을 이유가 없었겠지. 

 


 

 

#5

 

그래서 올해 초 닌텐도 스위치에 게임을 냈다. 시기가 맞물렸다. 코로나19로 집에 갇힌 사람들이 우리 게임을 선택한 것이다. 아시아에는 아직 출시하지 못했는데, 우리가 직접 퍼블리싱하는 탓에 마케팅이 형편없는 것과 비교하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 전세계에 <멜빗 월드>의 모바일판을 출시했다. 유료 게임으로 출시했는데 우리 게임이 재밌고 중독성이 있으니 사람들이 당연히 돈 주고 살 거라 믿었다. 우리는 순진하고 무식했다. 모바일 시장에서 우리 게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 판호는 받지도 못했다. 결국 게임 가격을 2.99달러로 낮췄다. 

 

왜 유료 게임이냐고, 누가 돈을 주고 모바일게임을 하냐고 한 마디씩 한다. 이유야 많다. <멜빗 월드>는 처음부터 콘솔형으로 제작됐다. 그리고 아직 우리 게임이 유료 게임 유저들의 취향과 맞다는 중국 퍼블리셔의 말을 믿고 있다. 얼마 전에는 어떤 곳으로부터 베스트 스마트폰/태블릿 게임 상도 받았다. 마케팅 잘 해서 대박나는 일만 남았다.

 


 

#6

 

게임 말고 장난감도 있다. 멜봇 팟(Melbots Pod)은 버추얼 펫 인큐베이터로 알처럼 생긴 장난감을 애플리케이션과 연동시켜 <멜빗 월드> 속 몬스터 '멜빗'들을 키울 수 있다. 엄청난 투자를 받고 심혈을 기울인 제품이다. 

 

우리 목표는 '멜빗'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가 계속 살아남는다면 디지털 리터러시를 주제로 애니메이션도 만들 계획이고, 마이 멜빗(My Melbits)라는 이름의 무료 어플리케이션도 출시할 계획이다.

 

세상 모든 게임사가 그렇듯, 우리의 개발력과 센스, 기술이면 백만 유저는 껌이라고 믿는다. 나의 비즈니스 노하우까지 합쳐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 생태계가 세상 어디에도 없던 것이 되면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글로벌 스타트업이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7

 

내 회사 자랑이 길었지만, 아직 다른 스페인 게임사들과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스페인 게임 산업과 회사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도, 여러분도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계속)

 

백장미 대표 약력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대 법학 전공

스페인 카탈로냐 대학교 법학 석사

바르셀로나 대학교 외교 석사

폼페우 파브라 대학교 국제 상거래 석사

(현) 카이스트 국제입찰 과정 강사

(현) 법무법인 율촌 국제입찰 자문

 

아르헨티나 대법원 무료 법률 자문 변호사

스페인 'Clifford Chance' 로펌 변호사

스페인 바르셀로나 상공회의소 국제팀 디랙터

한국 카탈루냐 무역투자청 소장

(현) 게임 스타트업 '멜봇 스튜디오' 한국 공동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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