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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넥슨컴퓨터박물관] 게임과 감각, 제 2편 그래픽스(Graphics)

넥컴박 (넥슨컴퓨터박물관 기자) | 2021-08-26 14:42:14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 지난 연재기사

[넥슨컴퓨터박물관] 게임과 감각, 제1편 사운드 카드

 

게임과 감각을 주제로 넥슨컴퓨터박물관 소장품으로 알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게임과 감각, 제2편은 게임 세상으로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는 ‘시각’ 요소, 그래픽스(이하 그래픽)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인간의 눈은 빛의 양, 색의 파장, 움직임 등과 같은 외부의 자극을 통해 사물이나 현상을 인지하고, 눈으로 들어온 자극은 뇌로 이동하여 해석된다. 이처럼 눈을 통해 받아들이는 감각을 시각이라고 부른다. 

시각은 다른 감각과는 다르게 수용자의 관심도에 따라서 기억으로 이동할지, 잊어버릴지를 결정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종종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도 사람마다 다른 장면을 기억하거나, 심리 테스트를 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을 고르게 하는 방식은 이러한 시각의 특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시각은 기록이라는 과정이나 그래픽 기술을 통해 시공간적인 제약을 벗어나기도 한다. 가령,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과거의 순간을 다시 마주하거나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볼 수도 있다. 특히 그래픽 기술은 현실과 비슷하거나 또는 마주해 본 적 없는 상상 속 세계를 눈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로의 몰입을 주도하는 역할도 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우리의 시각을 게임 속 세상으로 안내해왔던 역사적인 그래픽 기술의 변화를 넥슨컴퓨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래픽 카드를 통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 그래픽 in 콘솔 

 

콘솔은 처음부터 게임을 위한 기기였다. 그렇기에 게임 화면을 구성하는 그래픽은 콘솔에서 중요한 기술이었으며, 상대적으로 문서 작성이 우선시되었던 컴퓨터보다 콘솔에서 먼저 그래픽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넥슨컴퓨터박물관

 

1972년, 세계 첫 가정용 콘솔 '마그나복스 오디세이'(Magnavox Odyssey)가 출시되었다. 미국 군수 기업 직원이었던 랄프 베어(Ralph Baer)는 ‘TV 화면을 직접 조작할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1968년 ‘브라운 박스'(Brown Box)라는 프로토타입을 발명했다. 그리고 5년 뒤에 가전회사 ‘마그나복스’와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판매를 시작했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광고 영상 (1972)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그래픽은 화면에 하얀색 점 2~3개만 출력할 수 있었는데, 단순한 그래픽에 재미있는 설정을 추가할 수 있는 셀로판지 배경화면을 TV 모니터 위에 부착해 플레이하기도 했다. 화면에서 출력되는 그래픽의 한계를 배경화면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보완해 몰입도를 높인 것. 아날로그적인 방식이긴 했지만 그만큼 시각 효과가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타리 2600에서 출력되는 마리오의 모습

 

1977년에는 2세대 콘솔 게임기를 대표하는 '아타리 2600'(Atari 2600)이 출시되었다. 아타리에는 TIA(Television Interface Adapter)라는 그래픽 칩이 있었지만, 그래픽 구현에 필요한 메모리를 확보하기 위한 램(RAM)은 약 900달러(당시 아타리 2600의 판매 가격은 200달러)로 너무나 비싼 금액이었다. 

현실적으로 그래픽 램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타리는 한정된 메모리 안에서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하나의 비디오 라인 위에 최대 4색까지만 표현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왼쪽 상단 주황색 사람 같은 형상에 눈코입이 달린 형체가 동키콩이다.

위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1981년 출시된 아타리 2600 버전의 <동키콩>이다. 마리오는 옷과 몸을 구분할 수 없는 빨간 몸과 모자, 그리고 가끔은 짝짝이처럼 보이는 파란색 신발을 신고 있었고, 사람인지 동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동키콩'을 무찔러야 했다.

이처럼 실제 게임 화면에서 보이는 그래픽은 160x192로 매우 낮지만, 5년 전 출시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하얀 점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게임 속 캐릭터와 배경의 이미지는 폴린을 구하는 마리오의 스토리에 빠져들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아타리 2600 이후에 출시된 3세대 8비트 콘솔, 닌텐도 패밀리컴퓨터의 그래픽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색상인 RGB 대신 TV에서 사용하는 NTSC 색상을 사용했다. PPU(Picture Processing Unit)라는 맞춤형으로 설계된, 오늘날의 그래픽 카드에 해당하는 칩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PPU의 사용은 CPU의 부담을 덜어 더 나은 해상도의 이미지를 출력할 수 있게 해 줬다. 패밀리컴퓨터가 최대 16색을 동시 출력했고, 이어 등장한 슈퍼패미콤은 256색까지 동시에 재현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캐릭터의 움직임은 더 세밀해졌고, 하나의 비트 안에 색의 채도와 명암을 다양하게 표현하게 되면서 입체감을 더하기 시작했다.

 

 

# 그래픽 in 컴퓨터

 

반면 컴퓨터의 첫 그래픽 카드는 1980년대 처음 등장했다. 그래픽 카드가 출시되기 전 컴퓨터는 CPU를 통해 그래픽을 처리했다. 콘솔 게임기와 다르게 컴퓨터는 군사용 혹은 계산기의 목적으로 개발되어, 상대적으로 복잡한 그래픽을 출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MDA, CGA 그래픽 카드, 넥슨컴퓨터박물관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컴퓨터는 오락 기기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CPU 안에서 그래픽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고, 별도의 그래픽 카드가 1980년대 처음 출시되었다.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카드는 1981년 IBM에서 출시한 단색을 지원하는 MDA(Monochrome Display Adapter)와 바로 뒤따라 출시된, 저해상도의 컬러를 지원하는 CGA(Color Graphics Adapter)가 있었다. 

 

(좌)RGBI로 출력한 화면 (우)composite port로 출력한 화면. 
상대적으로 해상도가 낮은 composite port로 연결하면 텍스트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CGA는 문자 모드에서 25열x80자 16색을 출력할 수 있었지만 2바이트 문자권(DBCS, Double Byte code Set) 국가의 문자 출력이 어려웠다는 단점이 있었다. 때문에 한글이나 한자를 사용하는 아시아권 국가에서 IBM의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신 1982년, 더 높은 해상도의 흑백 그래픽 카드인 HGC(Hercules Graphic Card)가 한자나 한글을 출력할 수 있게 되면서 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CGA 이후에 등장하는 EGA(Enhanced Graphic Adapter)나 VGA(Video Graphics Array) 그래픽 카드는 모두 90년대 초반까지 CGA와 하위 호환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그래픽 카드는 고해상도와 다양한 컬러를 동시에 지원하는 것이 어려워, 색상과 해상도 중 어떤 것을 집중 구현할지 선택해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다. 

가령, 매킨토시용으로 출시된 심시티는 색상보다는 마을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해상도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해상도를 높이는 대신 색상을 흑백으로 보이도록 했다. 

 

심시티 클래식(1989)

1990년대 중반에는 안티에엘리어싱, 맵 매핑 등 그래픽 효과를 구현하는 3D 전용 그래픽 카드가 출시되었다. 이렇듯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점차 콘솔을 따라잡기 시작했고, 이때부터는 컴퓨터와 콘솔에서 각각 플레이할 수 있도록 출시된 게임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96년 출시된 <툼 레이더>(Tomb Raider)다. <툼 레이더>는 콘솔뿐만 아니라 MS-DOS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3D 그래픽 카드를 통해 캐릭터 관절의 움직임이나, 체형, 표정을 볼 수 있었다. 1990년대 당시에는 3D로 구현한 획기적인 그래픽 기술이었으나, 최근 출시된 라라 크로프트와 비교해 보면 사람보다는 목각 인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인다.

 

Diamond Monster 3D, 넥슨컴퓨터박물관

 

90년대 이후 그래픽 발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라라 크로프트의 변천사

최근 그래픽 기술은 실제 현실의 모습과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2020년 에픽 게임즈에서 소개한 언리얼 엔진 5(Unreal Engine 5)은 8k 텍스처와 실시간으로 빛에 반응하는 물체와 지형, 무한한 지오메트리 등을 통해 시각 정보로서 받아들이는 빛, 색, 움직임을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다.

눈앞에 스크린이라는 경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마다 수십억 개의 픽셀 단위로 만들어진 화면을 통해 유적지를 탐험하거나, 빛을 따라 움직이는 작은 벌레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흙 위를 이동할 때 일어나는 먼지바람까지. 내 캐릭터의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눈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게임의 화면이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실감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오늘날의 기술을 보고 사람들은 흔히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는 표현을 쓴다. 

 

"이제 게임이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출처: 언리얼 엔진 공식 채널)

 

그리고 올해 4월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시작한 미출시 게임 전시 행사 ‘네포지토리(NEpository)’를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은 게임 개발자의 코멘터리가 발견됐다.

“기술력이 좋아지면 앞으로 출시될 게임들에는 통바지가 많이 나올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래픽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통바지라니. 무슨 말인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그래픽 기술이 하나의 점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통바지를 입은 캐릭터 옷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재현하기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짚은 말이다.

게임 속 화면을 보고 있으면 그래픽 기술이 더는 발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픽 기술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시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통바지’를 입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캐릭터가 등장할 것이고, 미래의 언젠가 오늘날을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가 8비트 그래픽을 보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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