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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덕후론_11] DC인사이드도 처음엔 덕후들의 천국이었어요

scarletOhara (스카알렛 오하라 기자) | 2022-08-15 11: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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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과 <우마무스메>가 세계적 인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브컬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덕후와 덕질을 주제로 보다 많은 이야기가 소통되고, 덕후가 능력자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덕후의 역사'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스카알렛 오하라&디스이즈게임

 



 

1997년 인터넷 상에 ‘한메일넷’이라는 무료 웹메일 서비스가 오픈했어요. PC통신과 달리 돈을 내지 않아도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엄청 파격적인 서비스였죠. 물론 1년 전인 1996년 미국에서 ‘핫메일’이라는 기능도 비슷하고 이름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던 걸 생각하면 독창적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이후 우리나라의 인터넷 서비스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서비스예요.


한메일넷이 흥행하자 1999년 서비스 이름을 ‘다음’으로 바꾸며 카페 서비스를 오픈했어요. 이렇게 생긴 다음 카페에 PC통신 때처럼 많은 동호회가 자리를 잡았어요. 이미 PC통신을 통해 온라인 동호회에 익숙해졌던 사람들은 다음 카페를 성장시켰고, 커뮤니티 서비스의 중심이 되었죠.

 

한메일의 온라인 우표제만 아니었어도 지금 네이버가 아닌 다음이 포탈을 주름잡고 있었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다음 카페가 인터넷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자리 잡던 1999년, 인터넷 상에는 또 다른 작은 사이트가 생겨났어요. 하이텔에서 노트북 관련 콘텐츠를 정리하던 어느 사람이 디지털 카메라 콘텐츠에도 손을 대더니, ‘노트북인사이드’와 함께 ‘디시인사이드’라는 사이트를 만든 거예요. 여기서 ‘디시’는 Digital Camera의 DC였죠.


그 ‘어느 사람’은 김유식, 흔히 ‘유식대장’이라 불리는 분이었어요. 처음엔 디카로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던 갤러리는 점차 사진을 떠나 해당 카테고리 자체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변모했어요. 커뮤니티 안에서만 통용되는 독특한 신조어도 많이 만들어졌죠. 이 공간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진 거죠.


디시인사이드에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원동력은 ‘익명성’이었어요. 익명성은 서로 지나친 예의를 차리지 않는 문화를 만들었죠. 서로 존대말을 쓰지 않고 메세지에만 집중하는 문화도 이곳에서 생겨났어요.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내가 동의하는 메세지와 동의하지 않는 메세지로 나뉘었어요.


정보의 진위나 공감에만 집중하고 나이, 성별 등 화자와의 소셜한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문화는 덕후들에게 꽤나 매력적이었어요. 많은 덕후들이 디시인사이드에 몰려들었죠. 덕후들의 취향인 갤러리들이 생겨났어요. 게임, 과학, 군사 등 디시인사이드에서 흥하는 커뮤니티는 다음 카페에서 흥하는 그것과는 결이 많이 달라졌어요.

 

2004년 7월 디시인사이드 게시판. 밀갤, 게임갤 등이 갤러리에 자리잡고 있었고, Q&A 게시판이 따로 있었다. 게시판은 2016년에 게시판갤러리를 거쳐 2018년 9월 갤러리로 통합된다.

디시인사이드에 모여 디시인사이드만의 문화를 즐기며 열광하는 사람들을 ‘디시 폐인’이라고 불렀어요. 디시 폐인도 또 하나의 덕후 분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어요. 디시인사이드에서의 놀이문화 자체가 하나의 덕후 문화가 되었던 거죠. 디시 폐인들은 사진 기반 커뮤니티 유저답게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미지 합성요소들을 생산하는 등 디시갤러라는 집단 내의 문화를 구축해 나갔어요. 디시인사이드는 우리나라의 덕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죠.


세월이 지나 디시인사이드는 꾸준히 규모가 커져 덕후가 아닌 사람도 많이 모여들었고, 일반 갤러리는 점차 일반인들의 공간이 되었어요. 디시인사이드의 덕후들은 승격거부 등 여러가지 ‘어른들의 사정’으로 마이너갤러리에 모이게 되었어요. ‘아카라이브’라는 또 다른 덕후 공간의 등장 등 지속적인 환경 변화를 겪게 되지만, 2000년대나 지금까지도 덕후들이 가장 많이 모여 정보를 유통하고 함께 즐기는 공간은 디시인사이드예요.

 

2022년의 디시인사이드 마이너갤러리 중 일부. 단어의 뜻 그대로 메이저가 되지 못한 마이너한 커뮤니티로 개인이 관리하고, 인기가 많아지면 메이저로 승격되기도 한다.

그런데, 디시인사이드에서 유통되는 정보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어요. 단편적이고, 정보의 연계가 되지 않아요. 그 안에는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었지만, 찾기가 어려웠어요.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정보도 체계적일수록 가치를 더했는데, 그런 면에서 디시인사이드는 불리했어요. 게시판 형식 플랫폼의 한계였죠.


덕후들에게는 좀 더 효과적인 정보 플랫폼이 필요했어요.


한국은 게임들이 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경우가 유독 많아요. <스타크래프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당구장 문화를 지워버리고 대학 놀이문화를 장악하며 X세대와 MZ세대를 구분짓게 했죠. 그리고 e스포츠라는 새로운 스포츠 분야를 탄생시켰어요.


<메이플스토리>와 <거상>, <던전앤파이터>는 기존 게임과 전혀 다른 BM인 부분유료화를 통해 콘텐츠를 일단 해보고 사는 '찍먹' 문화를 만들었어요. 스팀은 디지털콘텐츠인 게임도 ‘수집’ 대상으로 바꾸었고요. 한국판 실리콘밸리라는 판교는 사실 게임산업이 만들어낸 동네죠.


<리그오브레전드>는 취향의 변화를 뜻하는 트렌드와는 또 다른 유형의 유행. 즉, 성능 혹은 효율의 변화 흐름을 뜻하게 되는 ‘메타’라는 개념을 대중화시켰어요. 그리고 e스포츠를 정상의 스포츠 시장으로 만들었죠.


그리고, 한국의 가장 큰 ‘대중 정보의 창고’도 게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면 비약일까요? 다음 편에서 한번 들어보시죠.

 

2004년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결승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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