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방구석게임] '드래곤 에이지: 베일가드' 최선의 마무리는 아닐지라도

깐kkan (김가은) | 2024-11-06 10:49:44

15년의 사랑을 받아 온 만큼 요 며칠 게임판을 달구고 있는 <드래곤 에이지>의 마지막 시리즈를 50시간 가까이 플레이 해 봤습니다.


전작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으로 시리즈에 입문했지만 이전부터 이어진 다크 판타지 세계관을 좋아해 꽤 기대했던 입장이라, 골수팬은 아니어도 적당한 애정을 품고 시작했는데요. 모든 퀘스트를 꼼꼼히 완료하며 만렙에 도달하고 진 엔딩까지 마치면서, 논란이 된 부분을 포함해 게임 전반에 걸쳐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감상을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게임명: 드래곤 에이지: 더 베일가드 (Dragon Age: The Veilguard)

장르: 롤플레잉

플랫폼: PC, PS5, XSX

개발사 / 배급사: 바이오웨어 / 일렉트로닉 아츠

출시일: 2024년 11월 1일

한국어 지원 여부: 자막 지원

플레이 타임: 48시간





# 내 역할이 자그마하게 느껴지는 롤플레잉


우선 정통 롤플레잉 게임으로서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주요 흐름이나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꾸준히 선택지를 고르지만 즉각적인 동료의 반응부터 이후의 결과까지, 내가 영향을 준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거든요.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라 화면 좌측에 찬성 혹은 반대로 호불호만 보여줄 뿐이어서 지나치게 단조롭고 선택지 자체도 모두 긍정이지만 태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수준에 그쳐 고민을 자아내는 부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화 내용도 너무 피상적이고 일차원적이어서 아이들 대화처럼 보일 때도 많았고요. 


메인 퀘스트든 동료 이벤트든 최종 파트에 가서는 내 결정이 절대적인 차이를 만들어서 만족스러웠지만, 그 끝을 보러 가는 동안에는 특별히 재미를 주진 못했습니다.


다행히 동료 캐릭터들은 개성 있는 데다 어조를 훌륭히 전달하는 표정과 목소리 연기가 매력적이어서 유대감을 쌓아가는 과정은 소소하게 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 논란의 중심에 있는 '그 캐릭터'와 게임 속 메시지


다만 이 게임의 뜨거운 감자인 특정 동료가 등장한 이후로는 그 소소한 즐거움이 차갑게 식어버리곤 했습니다. 


본인의 문화적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며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타인과 갈등을 빚는 캐릭터가 7명의 동료 중 하나로 합류하게 되는 건데요. 나머지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게임의 스토리나 세계관과 어울리지 않는 고민을 지닌 데다 자신의 문제를 시도 때도 없이 들추곤 해서 몰입에도 방해가 되고 나올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나머지 캐릭터들과 상반 되게 유일하게 무례한 캐릭터이기도 했고요. 


초반 등장까지만 해도 대화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어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용처럼 불을 뿜는다는 끝내주는 설정을 갖고 있어 흥미롭기도 했고요. 하지만 '논바이너리'나 '그들'과 같은 현대적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심지어 타인에게 해당 표현을 쓰도록 강요하기 시작하면서 동행해야 할 때마다 의욕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해당 캐릭터만 도려내듯 무시하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모든 캐릭터를 동등하게 성장시키려면 게임의 7분의 1을 참아내야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노골적일 필요가 있을까


판타지 게임에 우리가 겪는 현실의 문제를 담아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메시지만 남기고 재미를 거세하지 않는 한 콘텐츠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일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의미까지 있다면 나쁠 게 없죠. 


성 정체성은 여러 문화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일생일대의 문제이니 이걸 다루고 메시지를 전하는 건 결코 의미 없는 일이 아닐 테고요. 하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건 영리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을 흔드는 메시지들은 낯 뜨거운 직언이 아닌 멋진 은유에 깃들곤 한다는 걸 이 게임을 하며 다시금 느꼈습니다.



# 기억을 지우고 명랑해져 돌아온 다크 판타지


아무튼 게임으로 다시 돌아와서 스토리 이야기를 더 해 보자면 전체적으로도 극도로 단순하고 깊이가 없어지긴 했습니다. 전작들처럼 굉장히 심각하고 암담한 상황이지만 캐릭터들은 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러 나가는 것처럼 가볍고 밝은 태도로 일관합니다. 늘 죽상을 쓰고 다닐 필요야 없지만 다크 판타지다운 비참함이나 진중함이 전해지진 않더라고요.


또 전작을 플레이하며 선택한 내용을 연동하는 콘텐츠는 바이오웨어 게임을 즐긴 플레이어라면 기대할 법한 부분이지만 기능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건 그렇다 쳐도 전작의 DLC 마지막 부분을 잇는 것 외엔 세계관의 연결도 미흡했습니다. 새로 유입된 플레이어를 위해서 거리를 뒀다기엔 고유명사의 남발이 많고 직전 사건의 정황을 이해하고 있어야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럴싸한 이유는 아니죠.


호그와트에 온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기존 세계관에 대한 세력 간의 갈등이나 설정도 두드러지게 보이는 건 없어서 알고 있던 인물들이 재등장해서 반가움을 주는 것 외엔 같은 시리즈의 게임으로도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이 아닌 개별 작품으로 보기에도 스포일러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쉽게도 흥미와 기대를 갖고 따라가기엔 진부하고 뻔하며 구시대적이기만 했습니다.



# 짜임새 좋은 콘텐츠와 빼어난 시청각 연출


하지만 판타지 게임으로서의 만듦새는 무척이나 준수합니다. 콘텐츠의 짜임새부터 탄탄한데요. 메인 진행은 과도하게 필드만 넓고 비어 있는 오픈월드 대신 선형적이고 간결하게 풀어나가고 메인 진척도에 따라 사이드 퀘스트와 지역을 해금하는 방식이어서 자연스럽게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콘텐츠의 성격에서도 메인 퀘스트는  길 찾기와 퍼즐 등은 최소화 하고 핵심 전투와 연출로 늘어지지 않는 반면, 동료 퀘스트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전용 지역이나 막혔던 지역 너머를 방문할 수 있게 하고, 부가 퀘스트에서는 약간의 길 찾기와 퍼즐로 탐색 시간을 더 들이되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식으로 플레이 방식에 차이를 줘서 밸런스를 맞췄고요.


이렇게 퀘스트를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판타지 세계에서 볼 법한 여러 풍경들을 섬세하고 다채롭게 구현해 탐험의 만족도가 높았고, 부드러운 최적화는 물론 촘촘하게 놓인 빠른 이동이 편리해 쾌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음악의 거장인 한스 짐머가 참여한 음악으로 게임 전반의 연출과 최종장의 클라이맥스는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견줄 만했고요. 다른 건 몰라도 뛰어다닐 수 있는 배경 그래픽과 웅장한 음악으로 표현된 테다스의 면면은 줄곧 감탄스럽더라고요.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느껴지는 설렘



# 사실상 실시간인, 캐주얼하고 화려해진 전투


전투에 있어서는 의외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위치 조정을 하며 동료의 생존을 관리해 줘야 했던 <인퀴지션>의 전투에서 더 간소화 돼 실시간 액션에 가까워진 건데요. 화면을 멈추고 동료의 스킬을 사용하는 기능은 남아 있지만 튜토리얼 이후로는 정지 상태 없이 바로바로 단축키만 쓰게 되더라고요. 


전투 중 동료들은 무적이기도 하고 쿨마다 스킬을 쓰는 것 외엔 제어할 게 없어서, 아무래도 동료와 함께 전투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캐주얼하고 속도감이 있어 좋았습니다.


시각적으로 몹시 화려해지기도 했는데 저는 세 가지 클래스 중 매지션으로 플레이를 해서 이펙트 범위나 강도가 유난히 더 요란했습니다. 너무 밝고 모바일 게임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긴 한데 직관적이고 시원시원한 데다 타격감도 괜찮아서 장점이 더 크게 느껴졌네요.


정교하다고 보긴 어렵고, 기본 난이도에서는 공략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지만 하나의 클래스 안에서도 전투 방식이 다양하고 빌드를 만들어가는 맛이 특히 좋았습니다. 기존의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를 생각하면 확실히 당혹스럽지만, <디아블로>처럼 파밍하고 빌드를 극대화 해 나가는 쾌감이 있더라고요. 적 타입이 정예며 히든 보스며 할 것 없이 패턴까지 똑같다 보니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었겠지만, 입맛 도는 옵션이 붙은 장비에 따라 빌드를 바꿔가며 플레이 하니 전투는 하면 할수록 더 재밌었습니다.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스킬 트리


# 씁쓸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마무리


오랜 시간 명맥을 잇는 시리즈들이 명성을 유지하는 건 물론 유종의 미까지 거두는 건 어려운 일일 겁니다. 새로운 플레이어를 위한 변화를 택하면서도 그 시리즈가 살아 남게 한 팬들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하니까요. 변화는 팬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하고 남겨둔 아이덴티티는 유입층도 공감할 수 있는 매력으로 어필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죠.


제 생각에 <베일가드>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마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껏 쌓아 온 시리즈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고, 아주 대단한 장르적 경험을 준 것도 아닌 데다, 게임성과는 무관한 장치로 없어도 됐을 잡음을 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잡음은 게임 전체에 비하면 작은 부분에 그치며, 액션과 탐험은 수십 시간을 플레이 할 충분한 동기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드래곤 에이지>이기도 하죠.


검증된 매력과 더 많은 잠재력을 지닌 시리즈의 마무리라는 걸 생각하면 팬이 아니어도 씁쓸해지지만, 경험해 볼 가치조차 없는 건 결코 아닙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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