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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넥슨컴퓨터박물관] 게임과 감각, 제 4편 고유감각

넥컴박 (넥슨컴퓨터박물관 기자) | 2021-12-02 10:06:37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 지난 연재기사

게임과 감각 제1편, 사운드 카드

게임과 감각 제2편, 그래픽스(Graphics)

게임과 감각, 제 3편 컨트롤

 

올해 7월부터 시작한 게임과 감각 시리즈의 연재가 마지막에 이르렀다. 앞선 세 개의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오감 중에서 게임에서 가장 대표적인 감각인 시각, 청각, 촉각을 주제로 다뤘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연재에서는 인간의 여섯 번째 감각으로도 일컬어지는 무의식의 감각, 고유감각(proprioception)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눈을 감고도 손으로 눈, 코, 입의 위치를 집어낼 수 있는 것은 고유감각에 의해 가능하다.

 

고유감각은 뼈와 관절 등에 포함된 수용체를 통해 운동의 정도와 방향에 대한 정보를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자기 인식 감각이다.[i] 쉽게 말해 내 몸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뇌에 전달하여 시각적인 정보 없이도 스스로의 신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롬버그 검사((Romberg test)

롬버그 검사(Romberg test)는 고유감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똑바로 선 상태에서 눈을 감았을 때 우리 몸의 근육과 관절이 그대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는 테스트인데, 고유감각에 문제가 없다면 중심을 잃지 않고 눈을 떴을 때와 동일하게 서 있을 수 있다. 이처럼 고유감각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신체 부위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자각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

고유감각은 외부의 자극을 의식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몸의 무게, 긴장, 힘, 속도를 인지하여 처리한다는 점에서 오감과 차이가 있으며,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각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여섯 번째 감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감각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에도 일어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반응하는 관절과 근육에 대한 자기 인식이다. 게임에서 경험하는 고유감각은 플레이어가 현실과 구분되는 가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각과 청각 등 다른 감각과의 상호작용이 전제되어야 하고, 게임 속 세상의 감각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기 인식의 주체가 플레이의 신체가 아니라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이스워!(Spacewar!), 출처:Computer History Museum


최초의 컴퓨터 게임 중 하나인 스페이스워!(Spacewar!)는 우주라는 게임 컨셉에 충실한 배경과 사운드가 더해지며 게임의 몰입도를 높였다. 비단 시각과 청각만이 아니라 우주의 경험을 더 실감 나게 재현하기 위해서 관성의 법칙과 중력, 태양풍 등의 운동감각이 더해졌고, 이로 인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몸을 통해서 실제 우주에서의 움직임을 경험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컨트롤하는 우주선의 고유감각을 간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엑스리온(Exerion), 1983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 1989

초기 게임 속 캐릭터에 고유감각이 구현된 것은 비단 스페이스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엑스리온(Exerion) 같은 슈팅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관성의 법칙이나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와 같은 어드벤처 게임에서 캐릭터가 점프할 때의 관절의 움직임,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다시 제자리에 서는 모습 등이 모두 게임 캐릭터에 재현된 고유감각의 사례이다.

그리고 반대로 게임 속 캐릭터에 재현된 고유감각을 보며 몰입한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다가 캐릭터의 움직임을 따라 갑자기 일어선다거나,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등의 신체 반응은 자신이 플레이하는 캐릭터를 통해 고유감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월드 카트레이싱, 롯데월드


특히 게임에서 고유감각은 1인칭 시점인 경우 더 적극적으로 발현되는데, 레이싱 게임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어떤 컨트롤러를 사용하든 게임을 플레이할 때 화면 속 캐릭터가 드래프트를 할 때 몸이 같이 움직이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FPS 장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가령 모퉁이 뒤의 적을 찾기 위해 화면을 조작하는데 마치 실제 벽 뒤를 쳐다보듯이 고개를 움직이거나, 적의 기습 공격을 받을 때 몸이 살짝 움츠러들게 되는 경험들이 그러하다.  

 

출처: Kim, J., Kim, W., Ahn, S., Kim, J., & Lee, S. (2018, May). Virtual reality sickness predictor: Analysis of visual-vestibular conflict and vr contents. 2018 ten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quality of multimedia experience (QoMEX). IEEE.


한편, 고유감각의 간접적 경험을 매개하는 시각과 신체의 정보 불일치로 인해 어지러움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VR을 플레이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VR은 모니터 세상 안으로 플레이어가 진입하는 경우인데, 이때 시각은 주변에 펼쳐진 이미지들로 인해 신체가 움직이고 있다고 받아들이지만, 플레이어가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각과 고유감각의 불일치로 인해 뇌로 서로 다른 신호가 전달되어 어지러움이 발생되는 것이다.

 

하반신 장애가 있는 환자가 VR 물리치료사에게 재활치료를 받는 모습 출처: The New York Times


하지만 VR 통한 고유감각은 신체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운동선수들이나 군인들이 훈련 시에 게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운동 기능에 장애가 있는 이들의 고유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한 재활프로그램에서의 VR 게임의 치료효과가 의학, 기술,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11월 초 2021 롤드컵 오프닝 영상이 유투브에 공개되었다.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었지만 실제로 게임의 스토리가 현실에서 억지스러움 없이 전개되는 공연 영상을 보니 게임에서 시작된 감각이 확장되어 다른 매체적 특성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와 캐릭터 사이에 전달되는 감각을 바탕으로 가상과 실재의 연결이 점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게임에서 경험하는 감각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현실과 가상의 상호적인 관계성을 담고 있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신체를 감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다시 말해 게임에서 시작된 재미가 일상의 감각과 긴밀하게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상 속 어디서나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게임과 감각이라는 연재를 통해 어쩌면 너무 익숙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게임 속 감각을 하나씩 떼어놓고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즐거움으로 시작된 게임의 감각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경험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즉, 게임은 현실과 유사한 시각적, 청각적 감각을 재현한 가상의 공간이면서, 손으로 전달되는 촉각을 통해 플레이어의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팎에서 발생하는 고유감각은 게임 속 캐릭터와 플레이어를 긴밀하게 연결함으로써 현실에서의 경험 같은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양한 감각을 기반으로 하는 오늘날의 게임은 현실과 가상의 총체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매체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i] 고유감각 또는 고유수용성감각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하며, 운동 감각(Kinesthesia)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감각은 운동 범위와 방향에 대한 처리 능력으로 한정하는 축소된 범주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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