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방구석게임] 도트로 이런 RPG를? '드로바 - 포세이큰 킨'

깐kkan (김가은) | 2024-12-04 16:19:51

리메이크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 <고딕> 시리즈나 <엘더 스크롤: 스카이림>에서 맛볼 수 있는 자유도 높은 RPG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올 가을에 발매된 작은 게임에서 큰 만족감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독일의 소규모 개발사인 저스트 투디(Just 2D)의 첫 번째 게임 <드로바 - 포세이큰 킨>이 있기 때문이죠.

드로바는 고대 유물과 자연의 힘이 깊게 서린 땅에서 대립한 두 진영의 일원이 되어 플레이 할 수 있는 오픈 월드 RPG로, 인디 게임 중에서는 물론이고 올해 가장 인상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깊이와 재미를 선사합니다. 공식 한국어 자막은 아쉽게도 지원하지 않고 있지만, 플레이어가 공유한 기계 번역으로도 진행에는 무리가 없고요. 과연 어떤 점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게임명: 드로바 - 포세이큰 킨 (Drova - Forsaken Kin)

장르: 어드벤처, 액션, RPG

플랫폼: PC, PS5, XSX, SWITCH

개발사 / 배급사: Just 2D / Deck 13

출시일: 2024년 10월 15일

한국어 지원 여부: 공식 미지원, 유저 한국어화

플레이 타임: 30시간





# 과몰입을 부르는 캐릭터들의 반응


저는 RPG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과몰입이 얼마만큼 가능한지에 달렸다고 봅니다. 


각자가 몰입하게 되는 지점은 조금씩 다를 테고 캐릭터의 외모나 개연성 있는 스토리 등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건 플레이어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세계가 어느 정도로 다채롭게 반응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는데요.


<드로바>에는 뻔하지 않으며 세심한 상호작용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을 때조차 손을 천천히 갖다 대면 경계를 푸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인내심을 가지고 다가가도 언제나 하악질만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꿀렁이며 헤어볼을 토하기도 하고, 친해진 녀석은 다시 만났을 때 반색을 하고 졸졸 따라오죠. 개와 다른 동물들은 또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동물들만 해도 이런데 더 복잡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주요 스토리의 진행 상황과 풀어나간 부가 퀘스트에 따라 캐릭터들은 대부분 저마다의 태도로 알맞은 반응을 하는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모두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지고 대화와 행동이 부른 결과가 매번 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몰입이 될 수밖에 없죠.


초면인 고양이와 친해지는 방법 (주의: 냥바냥)


#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부가 퀘스트들


주요 이야기는 진영을 선택하고 자연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흘러가게 됩니다. 


이야기는 심지어 히든 엔딩을 보더라도 과정부터 결말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선택한 진영에 따라 이야기의 내부 사정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기 때문에 진영을 달리 해 한 번 더 플레이 해 보고 싶게는 하지만, 소재만으로도 얼개가 예측될 정도로 진부한 이야기라는 건 어느 쪽에서든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드로바>의 진가는 중심 흐름보다는 부가 퀘스트들과 세세한 면들에 있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세부 과정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여정이 무척 흥미롭거든요. 주요 목표를 따라 가다보면 여러 개의 퀘스트를 받게 되는데,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가지치기를 하듯 얽히고설킨 인물들과 지역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해결법을 알지 못했던 퀘스트도 의외의 장소에서 단서를 찾아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과 연결이 되기도 하고,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닐 때도 많습니다. 마무리가 됐다고 생각한 퀘스트도 세계의 사정이 달라지며 놀라운 방향으로 심도 있어지기도 하고요. 이렇다 보니 얼굴 표정 하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도트 그래픽의 인물들에게 점점 친밀감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부츠는 왜 한 짝만 신고 있는 걸까?



# 탐색하며 탐험하는 재미가 뛰어난 세계


<드로바>의 세계는 오픈 월드로 구현되어 있지만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탐색과 진행 방식은 다소 고전적이고요. 웨이 포인트가 없기 때문에 대화와 일지에서 목적지와 이동 루트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지도는 상인에게 구매하지 않으면 기억에 의존해야 하죠. 단순 진행은 일지를 보면 특별히 어려울 게 없지만, 비밀 공간과 보물을 찾아야 하는 수수께끼는 공략이 조금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군데에서 해결해야 하는 퀘스트는 기억하지 못한다면 온 세상을 다시 한 번 누벼야 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자세히 봐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조사 모드는 세계의 한 층을 벗겨내는 기분을 주며 그렇게 숨겨진 요소를 찾아낼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보상들은 유용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스카이림> 이후로 도둑질이 가장 재밌는 게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훔쳐보니 협박에 쓰기 딱 좋은 비밀 연애 편지라거나 퀘스트를 쉽게 해결하는 단서라거나 초반부터 쓸모 있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거나 하는 식이거든요.


조사 모드로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 반복이 아쉽지만 답답함은 덜한 동선


<드로바>의 다섯 개의 챕터 중, 첫 번째 챕터는 발견한 땅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구성이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아는 곳을 오가는 동선이라 꽤 반복적이라는 것이 아쉽습니다. 물론 이야기 진척도에 따라 들어가지 못했던 곳에 진입할 수 있게 되거나 비밀을 풀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많지만, 후반부가 되면 귀찮다는 생각이 슬슬 들더라고요.


그래도 최근 1.1버전 업데이트로 주요 지점 사이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이 생겨 아쉬움을 덜긴 했습니다. 성장이 필요하고 새로운 발견이 끊이지 않는 중반까지는 인벤토리의 물품 개수와 무게 제한이 전혀 없어 모든 길목이 성장에 도움이 되니 지루할 새가 없었고요. 


또 길을 돌아가지 않고 강을 건너버리는 마법을 배울 수도 있고, 좋은 방어구로 회피를 더 많이 하며 속도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물약이나 음식의 효과를 활용하는 기본적인 방법도 많고요. 한편으로는 어디로 가라고 하면 '아, 거기?' 하고 이해가 되면서 세계의 이방인에서 지역의 주민이 되어가는 애착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도보 이동에도 무리가 없는 크지 않은 세계


# 성취감이 뚜렷한 전투와 성장 시스템


빠른 이동을 못해도 성장하니 좋다고 생각할 만큼 성장이 필요한 게임인가 하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장비도 약해 빠진 초반은 정말 소울라이크에 가까울 만큼 아프게 맞고 약하게 때리거든요. 하지만 성장의 체감이 몹시 와닿는 게임입니다.


<드로바>에는 좁은 지역치곤 다양한 적들이 포진해 있는데 처음에 숨 죽이며 악착 같이 잡아내거나 차마 이기지 못해 도망쳤던 녀석을 강해진 후 대면하면 성취감이 대단하더라고요. 리젠되지도 않아 진짜로 해치웠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세계처럼 오래 전에 잡았던 몬스터는 뼈만 남기도 하고요.


무기나 방어구의 내구도가 없어 전투에만 집중하면 되는 점도 좋았습니다. 타격감은 조금 아쉽지만 무기에 따른 전투 스타일이 달라 취향에 맞게 싸울 수 있는 것도 호감이었고요. 전투 스킬과 생존 및 탐험에 필요한 기술들은 레벨 업으로 얻은 학습 포인트를 적합한 NPC에게 가서 배우게 되는 시스템인데, 이것 또한 내가 맺어둔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몰입을 더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뭐든 배우려면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


# 지금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작은 부분들까지 정말 공들여 만든 게임 같았습니다. 필요한 상황에 자동으로 도구가 변경되어 사용된다든지 제작과 물물거래 시스템에서 알아서 가격이 맞춰진다든지 하는 자주 쓰이는 기능의 기본 편의성도 잘 갖춰진 상태고요. 아무래도 기계 번역으로는 매끄럽지 못한 면들이 없지 않지만 나머지 부분들이 많이 상쇄해 주더라고요.


게다가 발매 후 플레이어들이 요청했던 빠른 이동과 NPC의 위치 안내, 스킬 포인트 재분배 등은 첫 번째 대규모 업데이트로 패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목표했던 로드맵을 그대로 지키는 신뢰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살아 숨 쉬는 대자연과 드루이드가 있는 세계라는 점을 잊을 수 없게 하는 분위기를 살리는 멋진 음악이 늘 귀를 즐겁게 하며, 가시성 좋으면서 아름다운 도트 그래픽은 드로바가 지닌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하는 드로바. 번역의 아쉬움만 감수한다면, 몰입도 높은 RPG를 찾고 있는 분은 고민 없이 플레이 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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