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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게임개발 120시간" 논란, 정말 기업에 "일할 권리"가 없을까?

우티 (김재석 기자) | 2021-07-22 16: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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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게임개발 120시간" 발언이 뜨겁습니다. 정말로 그의 발언대로 한국의 스타트업에게는 "일할 권리"가 더 필요한 것일까요? 게임 개발을 하다 보면 크런치 모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데, 그것을 위한 장치가 아예 없을까요? 현실을 살펴보면, 오히려 많은 사업장이 주52시간제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Q. 윤석열 전 총장이 뭐라고 한 거야?

 

A. 윤 전 총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 중 이렇게 발언합니다.

 


 

(36분 15초부터) 지난주인가 지지난주에 청년 세대들의 스타트업 애로사항을 들어보기 위해 회의에 간 적이 있는데 제가 한 번 물어봤어요. 그분들한테. 거기는 최저임금 걱정을 안 해. 화이트칼라고 프로페셔널한 데기 때문에.

 

그래서 주52시간은 어떻냐고 물어봤더니 '아 자기들은 예외조항을 둬가지고 이 근로조건에 관한 당사자 합의와 근로자들이 근로 조건을 선택할 수 있게, 100시간이든 200시간이든 연간 전체 또는 6개월 단위로만 해줘도...

 

뭐 하나 게임 같은 거 하나 개발하려고 한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진짜 24 곱하기 7 하면 얼마야? 168이잖아. 120시간 일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고 한 2주 바짝하고 그 다음에 노는 거지. 올려놓고 다른 사람이 점검하면 자기는 휴가 가는 거지.

 

정부가 주52시간을 하게 된 이유는 그렇게 해놓으면 일자리가 생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일자리 증가율이 0.1%인가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일자리 증가라는 정책 목표를 타겟으로 해서 디자인하는 데 실패한 제도란 말입니다.

 

매일경제 신문 보도에서는 이 내용이 이렇게 요약됩니다.

 

현 정부는 주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작년 중소기업 기준)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실패한 정책이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제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7월 8일 강남구 역삼동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서 '청년 창업가'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현장에는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남성준 다자요 대표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게임 개발" 관련 인사의 참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Q. 이 발언이 어떤 문제가 된 거야?

A. 아무리 게임 분야에 '크런치 모드'로 대표되는 근무 집중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윤 전 총장이 직접 발화한 주 120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120시간을 5일로 나누면 일일 24시간, 6일로 나누면 20시간, 7일은 약 17시간이 나옵니다. 인터넷에서는 "아우슈비츠나 산업혁명 때보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120시간 발언 이후 이런 표가 돌기도 했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 업계의 현직 관계자들도 기자에게 "현실성이 없는 발언", "현장에서도 정말 야근하고 싶어서 남는 사람은 10명 중 1명이고, 그 정도로 영향력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스톡옵션이 보장된) 임원일 것", "실제로 120시간 일하면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비판했는데요.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연달아 나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여권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SNS에 "아침 7시부터 일만 하다가, 밤 1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7일 내내 계속한다 해도 119시간"이라며 "윤석열 씨는 말씀을 하기 전에 현실을 제대로 보고 생각을 다듬어 주시길 바랍니다"고 썼죠. 

 

[관련 기사]

윤석열 "게임 개발에 주 120시간"... 업계와 정치권은 비판 일색 (바로가기)


 

Q. 이후 반응은 어땠어?

 

A. 논란이 불거지자 윤 전 총장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남깁니다.

 

매일경제 인터뷰 발언 왜곡에 대하여

 

 ○ 저는 검사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하여는 무관용원칙으로 엄단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려 힘썼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 제가 만난 스타트업 현장의 청년들은 “평균적으로 주52시간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게임개발 등 단기간의 집중 근로가 필요한 경우 주52시간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집중적으로 일하고 그만큼 길게 쉬는 것도 허용해야한다”, “현행 탄력근로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업종의 특수성도 고려하고 노사정 합의에 따라 근로조건의 예외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 달라”는 애로사항을 토로하였고, 저는 현장의 목소리와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그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 주120시간을 근무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로서 제게 그 말을 전달한 분들도 '주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데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지 실제로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 여당 정치인들은 현장의 목소리, 청년들의 고충에 귀 기울여 정책을 보완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말의 취지는 외면한 채 꼬투리만 잡고 있습니다. 

 

 ○ 정부·여당이 말로만 K벤처, 4차 산업혁명, 스타트업 육성을 외치면서 분초를 다투면서 인생을 바치는 수많은 스타트업 창업자 및 종사자의 호소는 무시한 채 아우슈비츠 운운하며 극단적인 정치적 비난만 하는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 규모·업종·지역을 따지지 않고 국가가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사 간 합의하에 근로자가 실질적 선택권, 일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 보완을 논의해야 할 시점입니다.


요약하자면 스타트업 창업자 및 종사자의 호소를 그대로 전했을 뿐이다,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것은 왜곡으로 유감스럽다, 일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 보완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쪼록 대통령이 되신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하여는 무관용원칙으로 엄단", "근로자를 보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도 보완을 논의하기에 앞서 살펴볼 지점들이 있습니다. 

 

 

Q. 어떤 지점들을 살펴봐?


윤 전 총장도 인정했듯 주 120시간 일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적지 않은 스타트업이 이미 주52시간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보면 5인 미만 규모의 사업장에서는 주52시간제, 정확히는 40+12시간제를 적용받지 않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수는 121만 개로 전체 사업장의 65.76%입니다. (2019) 적지 않은 스타트업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인기 웹드라마 <좋좋소>를 봅시다. 극중 가상의 기업 정승네트워크​는 소개팅 어플리케이션 '좋소개팅'의 개발에 나서면서 JPD소프트라는 법인을 새로 만들어 직원들을 쪼개 사업장을 2개 운영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실제로 굉장히 많습니다.

 

웹드라마 <좋좋소> 중 직원 소속을 JPD 소프트로 등록하는 장면. JPD소프트는 5인 미만의 기업으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에서 여러 적용을 받지 않는다. (출처: 이과장 유튜브)

바로 얼마 전인 7월 1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됐습니다. 경총이 "50인 미만 중소·영세기업은 경영 여건상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3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 말까지 1주 8시간 이내로 연장 근로를 할 수 있습니다. 계산하면 주60시간입니다.

특정 직원을 임원으로 분류해서 근로자를 5인 미만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회사 규모가 5인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임원이 되면 주52시간제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스톡옵션을 약속 받고 자신의 성공을 회사의 성공과 강력하게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죠. 뭔가 약속이 된 임원이라면 정말로 주 100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주52시간 이상으로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제 등이 있습니다.


 

Q.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제?


탄력근로제는 노사가 일정 단위기간을 정해 업무량이 많은 주에는 일을 많이 하고, 적은 주에는 근로시간을 줄여 단위기간 내 평균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 맞추는 제도로 기간은 연중 6개월 이내입니다. 선택근로제는 신상품 또는 신기술 개발 업무 분야에서 근로자가 하루 근로시간을 정해 일하고 정산기간 전체 평균을 주 40시간에 맞추는 제도로 기간은 3개월입니다.

특별연장근로는 제도 이름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기업이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가능하도록 고용부가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총 2,282건에 달하는 특별연장근로가 인가되었을 정도로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원래 특별연장근로는 재해나 재난 수습 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윤 전 총장이 "연간 전체 또는 6개월 단위로만 해줘도"라고 발언한 부분은 이미 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지요. 기자가 봤을 때 한국의 기업들에게 일할 권리는 지나치게 많이 주어진 듯합니다. 

 

 

Q. 지나치게 많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9년 기준 1,96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깁니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근무를 2군(Group A)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한국은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또 IT 업계는 포괄임금제 때문에 추가 노동을 하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포괄임금제는 기본임금을 미리 산정하지 않고, 시간 외 수당을 함께 산정해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버스 기사 등 정량적인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위해 마련됐지만, IT 업계에서는 '공짜노동'을 제공하는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죠.

포괄임금제로 받는 월급이 100만 원이라면, 하루 10시간, 12시간을, 주 5일이나 6일을 일해도 월급이 고정되기 때문에 사업자는 연장노동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N 등 큰 기업들은 대체로 포괄임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몇몇 기업들은 아직도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포괄임금제는 탄력근로제와 함께 표준처럼 묶여있습니다.

 


 

Q. 그래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집중해서 일할 때가 필요한 거 아니야?


A. 맞습니다. 라이브게임이 주도적인 한국 게임 업계의 특성상 점검 대응 등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장시간 근무가 불가피합니다. 새벽에 서버가 터지면 회사의 누군가는 대응에 나서야 할 겁니다.

또 론칭 즈음이나 대규모 업데이트 때도 자리를 비울 수는 없죠. 물론 라이브게임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사이버펑크 2077>, <레드 데드 리뎀션 2>, <언챠티드 4> 개발자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크런치 모드의 피해를 호소한 바 있습니다.​

초과 근무가 불가피한 경우, 현행 근로기준법상 여러 제도가 마련되어있고, 적어도 "일할 권리"가 없어서 일 못하는 경우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주52시간제를 적용받고 있지도 않고 말이죠. OECD 지표를 봐도 한국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일에서 벗어날 권리'가 부족한 나라입니다.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문제는 기자의 역량 밖입니다만, 윤 전 총장께서 "게임 개발"을 예로 드셨기에 "일할 권리"에 대해서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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