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기자수첩] 가짜 게임산업협회 재직증명서 논란, '게임계 큰 형님'이 매듭 풀어야

시몬 (임상훈) | 2021-12-15 09: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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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씨의 게임산업협회 기획이사 재직은 사실일까요? 사회적으로 논란을 낳고 있는데 게임 매체로서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 논란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재직증명서 발급 당시 책임자에게 매듭을 풀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재직증명서에 가장 중요한 내용은 '직책'과 '근무기간'입니다.


1. 협회 재직증명서에 적힌 내용은 명백히 허위입니다

 

(1) 근무기간: 2002년 3월 1일~2005년 3월 31일 현재까지 (3년 1개월)


최지현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사단법인으로 결성 초기에 보수 없이 '기획이사' 직함으로 '비상근 자문 활동'을 하였고, 이후 협회 사무국으로부터 직접 그 사실을 확인 받아 '재직증명서'를 정상적으로 발급 받았다."

게임산업협회 출범은 2004년 4월 28일입니다. 재직증명서에 적힌 근무 시작일과 무려 2년 넘게 차이가 납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협회 전신인 인터넷게임협회나 게임산업연합회와 연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말이 안 됩니다. 두 단체 출범일은 2002년 9월 26일입니다. 

따라서 2002년 3월부터 근무했다는 재직증명서 내용은 아무리 들여다 봐도 명백한 허위입니다.

 

(2) 직책: 기획이사

최지현 대변인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당시 김건희 씨는 게임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협회 관계자들과의 인연으로 보수를 받지 않고 2년 넘게 '기획 이사'로 불리며 협회 일을 도왔다."

게임산업협회는 '게임을 제작하는 곳'이 아닙니다. 게임의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게임 업계의 위상을 올리는 일을 하는 데죠. 게임 기획(디자인)은 개발사에게 필요한 일이지 협회와 전혀 관련 없습니다. 협회 역사에서 한 번도 협회 소속사의 기획 업무를 도와주는 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100번 양보해 그런 활동을 했다 치더라도 게임 개발 경력이 한 번도 없는 김건희 씨가 메이저 개발사들의 게임 기획을 3년 간 도와줬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일이죠.

따라서 재직증명서에 적힌 직책 역시 명백한 허위입니다.

 

 

2. '허위 내용의' 재직증명서 발급은 누가 확인해줄 수 있는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된 이미지에 따르면 2006년 6월 29일 재직증명서가 발급됐습니다. 게임산업협회장인 김영만 회장의 직인과, 발행부서장인 임원재 사무국장의 확인 도장이 찍혔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허위 내용을 담은 재직증명서가 나오게 됐는지 아직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절차 상 추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1) 협회 회장이 국장에게 지시해서 발급했다.

2) 협회 사무국장이 임의로 발급했다. 


어떤 절차였건 주먹구구식으로 발급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협회 입장에서 손해나 리스크가 없었을 테니까요. 반면 김건희 씨 입장에서는 매우 쓸모 있는 경력과 증명서였을 겁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온라인게임은 국내 다른 업종은 물론 국제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었으니까요. 넥슨, 엔씨소프트, NHN 등이 포함된 국내 대표적인 게임 협회 '이사'라는 직책은 게임업계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에게는 굉장히 '돋보이는' 경력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수원여대 교수 임용 때 증명서를 발급 받아 제출했겠죠.)

 

재직서 발급 당시에는 없던 리스크가 약 15년 후 크게 불거졌습니다. 게임산업협회는 허위 재직증명서를 발급한 곳으로 전 국민에게 회자되게 됐죠. 협회 초기 매주 모여서 회의하고 스터디그룹도 돌리며 치열하게 협회를 성장시키려 노력했던 당시 실무자들은 처음 들어보는 직책에 황당해 하고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자괴감을 토로한 분도 계셨죠. 현재 직원들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있고요.

 

허위 재직증명서 발급에 대해 여러 추정은 가능하지만, 이 글에서는 삼가겠습니다. 추정보다는 당시 관계자의 증언이 더 필요한 때니까요. 재직증명서에 가장 크게 이름이 적힌 협회 2대 회장(김영만 현 B&M 홀딩스 회장)은 당시 해당 문서의 발급 경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김영만 당시 한빛소프트 회장은 주요 게임회사 CEO들에 비해 연배가 높아 '게임계의 큰 형님'이라고 불렸습니다. 게임산업협회 창립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했고, 협회 초창기 업체들 간 첨예한 샅바 싸움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게임 업체 두 곳 사이 분쟁이 있었을 때 법정에 가기 전 조용히 중재 역할을 맡았다는 일화도 들었습니다.

 

게임산업협회가 '허위 재직증명서' 이슈로 계속 언론 도마에 오르는 건 게임 업계는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당사자였던 '게임계의 큰 형님'이 나서서 매듭을 풀어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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