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칼럼] 우크라이나가 지면 끝나는 게임

우티 (김재석) | 2022-03-29 13:50:18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게임 뉴스가 재미없는 시절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정권이 바뀌었고, 오미크론 유행의 최정점 구간이다. 각종 사회 현안은 언제나 엄중하지만, 요즘 같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기간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이야기들이 더 무겁게 와닿는다. 하물며 누가 누구 뺨을 올려붙였다는 유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러나 이런 나날에도​ 게임 기자의 업은 새로 출시된 게임이나, 요즘 유행업계의 사람들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또 지구 반대편에는 침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겠다고 국경 넘어 군대를 보냈고, 민간인 거주지에 미사일을 쏘고 있다.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서 경고된 것처럼, 매일매일 전쟁 스펙터클이 소파에 누워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2022년, 이 스펙터클에는 게임으로 조작된 영웅상이나 'OOO에는 침묵하더니, 이번에는 쇼하고 있다' 풍의 비아냥도 섞여있다. 한국어로 '구경거리'로 옮겨도 좋을 스펙터클(Spectacle)의 어원은 '쇼'에 있다.


최근 인디게임 공유 플랫폼 잇치 닷 아이오(itch.io)에는 특별한 게임이 올라왔다. 유니티엔진으로 만든 1인칭 3D 게임으로 그 이름은 <키이우의 공동체 텃밭>(A Community Garden In Kyiv)이다. 조그만 텃밭에 우크라이나의 상징인 해바라기를 심으면 끝이다. 한 번에 한 송이의 꽃을 심을 수 있고, 다른 유저가 심어놓은 해바라기가 맵에 동기화되어 물을 줄 수 있다. 3월 29일까지 총 555명이 접속해 꽃을 심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게임의 승·패 조건이 유독 사람 마음을 저리게 한다. 이 게임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패전하면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고 서비스를 중단한다. 게임에서 아무리 많은 해바라기를 심어봐야 현실에서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면 게임이 아예 끝난다. 그간 장르를 불문하고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혹은 모자른 실력으로 리뷰를 남기기 위해서 게임을 해왔지만 이런 승·패 조건​은 처음이다.​

<키이우의 공동체 텃밭>는 매일 접속해서 감상하고 싶게끔 잘 만든 게임이라고 칭하기는 어렵지만, 메시지 측면에서 소중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 게임은 아껴 일궈놓은 터전이 타의에 의해 위협받는 현실을 반영했다. 게임의 itch.io​ 페이지에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법'이 링크로 연결됐다. 소파에 누워서, 혹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전쟁의 참상을 시청하거나 게임을 할 게 아니라 무엇이라도 해야지 텃밭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카카오같이가치가 어디에 어떻게 구호 성금을 보낼 수 있는지 잘 정리해두었다.

itch.io​에 올라온 어느 인디게임이, 하늘이 맑고 땅이 비옥하다는 저 멀리 우크라이나가 계속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자의 주머니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십자에 10만 원을 보냈다. 친구들이랑 소주 몇 번 안 마시면, 게임 몇 개 안 사면 부상자를 위한 소독용 알코올을 보낼 수 있다.

방금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마리우폴이 함락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공습으로 민간인 5천 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누워서 뉴스를 읽다가 벌떡 일어나 몇 자 적었다.

 

 

전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