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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게임예술관] 집에서 보드게임 만들던 괴짜 소년, EA 코리아의 아트 디렉터가 되다

우티 (김재석 기자) | 2020-01-13 10:14:54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예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 <피파 온라인 4> 아트 디렉터 박창준

오늘 만날 EA 코리아 스튜디오의 박창준 디렉터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고, 수 차례의 실패를 거듭한 인물입니다. 자신이 차린 회사가 문을 닫았지만, 게임을 너무 만들고 싶어서 좌절하고 낙담할 겨를도 없이 EA 코리아 스튜디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피파 온라인 2, 3, 4>의 게임아트를 작업했으며, 역할을 AD(아트 디렉터)에서 PD로 옮겨 <니드포 스피드 엣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박창준 디렉터의 이야기와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게임 철학, 함께 만나보시죠.

 

 

#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보드 게임 만들고 놀던 소년 박창준

박창준 디렉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게임에 빠졌습니다.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코에이의 <삼국지>를 처음 접했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흑백 모니터 속 영웅들을 컨트롤하는 것은 어린 그에게 엄청난 희열이었습니다. 7~8명이 한 컴퓨터를 두고 한 턴씩 게임을 하는 방법이었지만 그 감동은 오늘 이 날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당시 박창준 디렉터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그 친구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비, 조조, 손권이 아닌 원술이나 공융같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군주를 플레이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인터랙티브한 요소, 삼국지의 역사를 내 생각대로 바꿔볼 수 있는 것에 흥미를 많이 느꼈다고 하네요. 

 

소년은 집에서도 <삼국지>를 하고 싶었지만 소년의 집에 컴퓨터는 없었습니다. 그의 취미이자 특기는 그림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의 나이로 스케치북과 연필/볼펜으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 출판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판본별로 읽으면서 독서실에서 직접 장수 카드를 만들고, 능력치가 맞는지 친구 집에서 검증했다고 합니다. 

 

그가 친구들과 모여 한 턴씩 즐겼던 <삼국지> (1985)

소설에서 묘사되는 장수들의 면면을 상상하며 오려둔 장수 카드에다 초상화를 그리고, 능력치를 설정했습니다. 능력에 따라, 통솔하는 병력 최대수도 다르게 설정하고, 일기토에 능한 장수는 별도의 필살기와 아이템 슬롯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년 반동안 500여장의 장수카드를 만들고, 게임판이 되는 중국 지도를 2개월동안 그렸습니다. 그는 아직도 어린 날의 자신이 그렸던 장수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박 디렉터는 중학생 시절 내내 농구대잔치와 만화 <슬램덩크>의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농구 보드게임, <드래곤볼> 캐릭터들을 모아 만든 카드게임, <건담>의 모빌슈츠 전투를 턴제로 만든 보드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했다고 합니다. 플레이를 권했던 친구들은 모두 컴퓨터를 장만하는 바람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박 디렉터 자신과 그의 동생뿐이었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에 컴퓨터가 놓일 때까지 그는 이렇게 스스로 보드게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좋아했던 박창준 디렉터는 대학교 전공을 서양화과로 선택했습니다. 순수예술(Fine Art)을 공부하는 곳이엇지만, 그는 학교 수업에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학에 합격한 그는 3월에 학교를 가고, 중간고사 전 날까지 수업을 빼먹었습니다. <디아블로 2>를 플레이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박 디렉터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2>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갓 20대를 맞은 박창준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이성 문제도, 학업 문제도 아닌 "요새 할 게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박 디렉터는 자신의 마음을 굳혔습니다.

 





# 쉽지 않았던 게임 제작

'겜돌이' 생활에 푹 빠졌던 터라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한 박창준 디렉터는 여러 회사에서 컴퓨터 아트 관련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게임과 만나겠다는 마음가짐으로요. 실제로 그에게 아바타 도트 작업을 발주하던 회사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는데, 게임도 만들 거라는 말에 바로 입사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혼자 포커, 바둑 등 웹보드게임의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경영상의 문제로 6개월 만에 문을 닫았죠. 박 디렉터는 이 회사에서 새 회사를 창업할 멤버 2명을 만났고, 에버플랜트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세 사람은 횡스크롤 액션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박 디렉터는 자연스럽게 게임에 들어갈 모든 아트를 총괄하게 됐습니다.

 

그가 작업한 웹 보드 게임

캐릭터&배경 원화로 시작했지만, 곧 3D 캐릭터/배경 작업을 맡게 되었고, 중간에 UI아티스트를 고용했지만 금방 퇴사하는 바람에 혼자서 UI작업까지 전부 병행했다고 합니다. 게임에 들어갈 각종 이펙트도 박 디렉터가 직접 만들었으니, 그 시절 그는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아트의 전 영역을 경험해본 셈입니다. 그는 3D 모델링 학원을 수강하고 밤늦게까지 '도트 노가다'를 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웠습니다.

박 디렉터가 만들던 <하드보일드>는 공모전 2위를 하고 대형 퍼블리셔와 서비스 계약을 한 데다 CBT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게임 아트를 해야겠다"라는 구체적인 동기 대신에 "(어떤 역할이든 좋으니)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모든 아트를 책임졌지만, 다양한 아트 파트의 작업들이 각각의 ‘다름’ 만큼이나 ‘특징’이 있었기에 재밌게 작업했다고 합니다.

다만, 스타트업의 사업적 성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게임은 정식 서비스를 할 만큼 게임의 완성도가 나오지 못했고, 결국 2007년 프로젝트는 드랍됐고 회사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시간은 길어지고 개발 자금은 떨어지면서 그는 2009년 회사는 문을 닫게 됩니다. 이때 그는 게임 하나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 "무조건 업계 최고로 가야겠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로 간 박창준

박창준 디렉터는 스타트업 실패 과정에서 한계를 명확하게 보았습니다. 게임을 정말 좋아해서 업계에 발을 내딛었지만, 여러 차례 고배를 마셨던 그는 "무조건 업계 최고의 선두 그룹에 속하는 조직에서의 게임 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분하게 자신이 세웠던 회사를 정리하던 박 디렉터는 우연히 EA 코리아 스튜디오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됐고, 무조건 입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계에 여러 번 봉착했던 그에게 가장 절실했던 건 뛰어난 수준의 동료들과 안정적인 개발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콘셉트 아트나 캐릭터 모델러를 희망했지만, "입사 하고 다른 분야로 전직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배경 아티스트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입사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특이하게 1시간 동안 자신의 이력과 철학, 강점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갔다고 합니다. 7명의 인터뷰어를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즐겼다'라고 하네요. 

EA 코리아에서 그는 캐쥬얼 리듬 댄스 게임 <데뷰>의 스테이지 관련 모델링, 맵핑, VFX, 애니메이션을 작업했습니다. 실력을 보여줘야겠다고 각오했던 그는 스타트업에서 발휘했던 다양한 분야에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데뷰> 이후엔 미공개 프로젝트 한 건을 진행했고 바로 이어서 엄청난 흥행을 구가 중인 <피파 온라인> 시리즈를 담당하게 되죠.

<데뷰>의 배경 아트

<피파 온라인 2> 시절 박 디렉터는 스타 플레이어의 헤드를 제작했습니다. 주로 아시아 스타 플레이어 위주로 헤드 모델링을 했는데, 당시 기준에도 게임엔진 & 에셋이 모두 오래된 편이었어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시점에 월드 스타들의 헤드 작업도 했다고 합니다. 박지성, 이청용, 치차리토의 헤드를 박 디렉터가 작업했다고 하네요.

그는 월드컵 시즌 직전에 UI 작업도 진행했는데, 인게임 플레이에 들어가는 HUD아트 작업 전체를 단독으로 제작했습니다. 그 당시 라이트 세팅을 잘못 건드려서 잠깐 동안 선수의 얼굴이 어둡게 나오던 때가 있었는데, 빠르게 재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EA 코리아에서 <피파 온라인 2>의 UI와 모델링을 전부 홀로 담당해야만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문제가 생겨도 그의 손으로 해결해야 했죠.

<피파 온라인 3>에선 업무 영역이 확대돼 아트 디렉터를 맡았으며, UI/UX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박지성, 차두리 등 스타 플레이어들의 3D 모델링도 했죠. 마케팅용 에셋인 하이폴리곤 에셋들의 모델링과 그 최종 마감처리, 스타디움 라이팅 보정, 게임 내의 카메라 셋팅도 그의 일이었습니다.  

박창준 디렉터는 <피파 온라인 3> 제작을 위해 영국 출장을 갔을 때, 이청용 선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청용 선수가 볼턴 원더러스에서 뛰던 시절이었는데, 볼턴 홈구장 투어를 하다가 이청용 선수를 만나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박 디렉터가 이청용 선수에게 "우리 팀에서 이청용 선수 모델링을 직접 했다"라고 알려주는데 그가 특유의 미소로 짧게 웃으며 “잘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고 하네요.

<피파 온라인 2>

<피파 온라인 3>

<피파 온라인 3>

앞서 이야기했지만 박창준 디렉터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게임아트가 아니라 게임 그 자체였습니다. <피파 온라인 3> 라이브가 정상 궤도에 오르자 그는 다른 도전이 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마침 EA 코리아 스튜디오에서 <니드포스피드> IP로 한 게임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거기에 PD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2014년부터 4년 동안 <니드포스피드 엣지>의 PD로 일했습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는 가능성이 보이면 상의 후 다른 포지션에서 일할 기회를 준다고 하네요.

그는 PD 역할이 쉽지 않았다며, "죽을 뻔 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축구 게임을 작업하다가 레이싱 게임에 도전했을 때 이 일도 마찬가지로 잘 할 줄 알았는데 장르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었다고 합니다. 아트 쪽 직군만 소화하다가 다시 PD를 맡다 보니 자신이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갔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합니다. <니드포스피드 엣지>의 4년 중 후반부는 다시 AD로 돌아가 일했다고 합니다.

그는 올해 초 다시 <피파 온라인> 시리즈로 돌아와 <피파 온라인 4>의 아트 디렉터 업무를 수행 중입니다. 





# 박창준 디렉터는 게임을 만든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도 게임을 만든다


사실 생각보다 EA가 한국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창준 디렉터도 2009년 입사 전까지는 EA가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는 <피파 온라인> 시리즈, <배틀필드 온라인>, <MVP 베이스볼>, <니드포스피드 엣지> 등을 만든 이력이 있는 곳입니다. 160명이 넘는 개발팀 중에 아티스트는 25명 규모입니다. 

<피파 온라인>도 해외의 <피파>를 그냥 가져와서 게임으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아시아 선수들은 <피파>에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피파>의 손흥민 선수만 해도 최근까지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있었죠. 라이브 게임이니만큼 슈퍼스타의 경우 적어도 1년에 1번 이상 선수들의 페이스 작업을 진행합니다. 같은 선수의 헤어 스타일만 서너 번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박창준 디렉터는 유저들이 선수의 페이스를 빠르게 반영해달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축구 선수는 계속 등장하고, 은퇴하고, 또 모습을 바꾸니까요. 그는 "계속 작업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피파'의 라이선스를 공유하는 게임이니만큼 여러 아트 에셋의 디테일도 이 라이선스를 기준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하네요. 


더 나은 작업을 위해 해외의 다른 EA 스튜디오와도 교류한다고 합니다. EA가 글로벌 기업인 만큼 개발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서 개발 파이프라인이나 게임 엔진 자체를 해외 스튜디오와 함께 공유하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박 디렉터는 EA 코리아가 <피파> HD 버전을 만드는 벤쿠버 스튜디오와 자주 교류하며, 프로스바이트 엔진 컨퍼런스에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양한 국가와 팀의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는 경험은 EA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아트 디렉터로서 그는 실제 아트 작업보다는 아트웍 전반의 제작 프로세스나 파이프라인 설계 업무를 관여하는 일을 많이 맡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것 이상으로 공동 작업의 효율성이 중요한 위치죠. 보다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위해 그는 클라우드 기반의 아트보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가 팀원들과 함께 사용하는 아트보드

그는 다양한 작업 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D 모델들은 마야나 맥스를 두루두루 씁니다. 인게임 에셋으로 쓰진 않지만 내부 개발 컨셉을 보완하는 목적으로 V-ray랜더러를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2D 모델이나 UI 콘셉트를 만들 땐 당연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합니다. 이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유니티 등 모바일 게임엔진을 배우고 있다고 하네요,

업력이 결코 적지 않은 박창준 디렉터이지만 그도 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는 유튜브 강좌를 찾아봅니다. 워낙 활성화된 채널들이 많아 제가 모르는 부분은 여기서 다 찾아 볼 수 있는 것 같다네요. 해외에서 제작한 강좌를 볼 때 영어공부도 함께 되는 것은 덤이라고 합니다.

기술적인 이해 부족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창조적인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입니다. 박창준 디렉터는 이 경우에, 더 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 레퍼런스의 영역을 게임으로 국한하지 않습니다. 이미 게임화 되어 공개된 소스들 중에도 훌륭한 참고자료가 많지만, 좀 더 트렌디한 영상 매체, 영화나 광고 등에서 영감을 찾으려 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는 후배 지망생들에게도 "게임 아티스트, AD가 되고 싶다고 무작정 타블렛을 잡지 말라. 때론 많이 보고, 느끼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게임아트를 통해 게임을 만드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짓궂은 질문을 해봤습니다. "게임 만드는 것에 왜 그렇게 골몰하는가? 게임이 좋으면 게임 밖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돌아온 대답은 오랫동안 기자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영화는 개봉하면 끝이고 책은 출판하면 끝이다. 하지만 게임은 계속해서 인터랙션을 한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고 오래도록 그 일에 직접 뛰어들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주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과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그런 일에서 매력을 느꼈다.

 

게임 아트는 예술적인 영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기술적인 접근과 지식 없이는 실제 제품으로의 적용은 어렵다. 게임 개발의 긴 과정에서 내 작업이 움직이고 반응하는 콘텐츠가 되는 과정을 경험해왔다. 각각의 마감 단계에서 오는 성취감이야말로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 마감의 끝에 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피드백에 신나기도 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피드백에 풀이 죽기도 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반응이라도 더 나은 작업을 위한 양분이라 여기며 다시 모니터를 켠다.



아래부터는 박창준 디렉터의 개인 레퍼런스가 아닌 <피파 온라인 4> 팀 레퍼런스입니다 =)








디스이즈게임은 ‘게임예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 <피파 온라인 4> 아트 디렉터 박창준

오늘 만날 EA 코리아 스튜디오의 박창준 디렉터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고, 수 차례의 실패를 거듭한 인물입니다. 자신이 차린 회사가 문을 닫았지만, 게임을 너무 만들고 싶어서 좌절하고 낙담할 겨를도 없이 EA 코리아 스튜디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피파 온라인 2, 3, 4>의 게임아트를 작업했으며, 역할을 AD(아트 디렉터)에서 PD로 옮겨 <니드포 스피드 엣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박창준 디렉터의 이야기와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게임 철학, 함께 만나보시죠.

 

 

#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보드 게임 만들고 놀던 소년 박창준

박창준 디렉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게임에 빠졌습니다.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코에이의 <삼국지>를 처음 접했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흑백 모니터 속 영웅들을 컨트롤하는 것은 어린 그에게 엄청난 희열이었습니다. 7~8명이 한 컴퓨터를 두고 한 턴씩 게임을 하는 방법이었지만 그 감동은 오늘 이 날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당시 박창준 디렉터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그 친구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비, 조조, 손권이 아닌 원술이나 공융같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군주를 플레이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인터랙티브한 요소, 삼국지의 역사를 내 생각대로 바꿔볼 수 있는 것에 흥미를 많이 느꼈다고 하네요. 

 

소년은 집에서도 <삼국지>를 하고 싶었지만 소년의 집에 컴퓨터는 없었습니다. 그의 취미이자 특기는 그림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의 나이로 스케치북과 연필/볼펜으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 출판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판본별로 읽으면서 독서실에서 직접 장수 카드를 만들고, 능력치가 맞는지 친구 집에서 검증했다고 합니다. 

 

그가 친구들과 모여 한 턴씩 즐겼던 <삼국지> (1985)

소설에서 묘사되는 장수들의 면면을 상상하며 오려둔 장수 카드에다 초상화를 그리고, 능력치를 설정했습니다. 능력에 따라, 통솔하는 병력 최대수도 다르게 설정하고, 일기토에 능한 장수는 별도의 필살기와 아이템 슬롯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년 반동안 500여장의 장수카드를 만들고, 게임판이 되는 중국 지도를 2개월동안 그렸습니다. 그는 아직도 어린 날의 자신이 그렸던 장수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박 디렉터는 중학생 시절 내내 농구대잔치와 만화 <슬램덩크>의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농구 보드게임, <드래곤볼> 캐릭터들을 모아 만든 카드게임, <건담>의 모빌슈츠 전투를 턴제로 만든 보드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했다고 합니다. 플레이를 권했던 친구들은 모두 컴퓨터를 장만하는 바람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박 디렉터 자신과 그의 동생뿐이었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에 컴퓨터가 놓일 때까지 그는 이렇게 스스로 보드게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좋아했던 박창준 디렉터는 대학교 전공을 서양화과로 선택했습니다. 순수예술(Fine Art)을 공부하는 곳이엇지만, 그는 학교 수업에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학에 합격한 그는 3월에 학교를 가고, 중간고사 전 날까지 수업을 빼먹었습니다. <디아블로 2>를 플레이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박 디렉터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2>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갓 20대를 맞은 박창준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이성 문제도, 학업 문제도 아닌 "요새 할 게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박 디렉터는 자신의 마음을 굳혔습니다.

 





# 쉽지 않았던 게임 제작

'겜돌이' 생활에 푹 빠졌던 터라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한 박창준 디렉터는 여러 회사에서 컴퓨터 아트 관련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게임과 만나겠다는 마음가짐으로요. 실제로 그에게 아바타 도트 작업을 발주하던 회사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는데, 게임도 만들 거라는 말에 바로 입사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혼자 포커, 바둑 등 웹보드게임의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경영상의 문제로 6개월 만에 문을 닫았죠. 박 디렉터는 이 회사에서 새 회사를 창업할 멤버 2명을 만났고, 에버플랜트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세 사람은 횡스크롤 액션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박 디렉터는 자연스럽게 게임에 들어갈 모든 아트를 총괄하게 됐습니다.

 

그가 작업한 웹 보드 게임

캐릭터&배경 원화로 시작했지만, 곧 3D 캐릭터/배경 작업을 맡게 되었고, 중간에 UI아티스트를 고용했지만 금방 퇴사하는 바람에 혼자서 UI작업까지 전부 병행했다고 합니다. 게임에 들어갈 각종 이펙트도 박 디렉터가 직접 만들었으니, 그 시절 그는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아트의 전 영역을 경험해본 셈입니다. 그는 3D 모델링 학원을 수강하고 밤늦게까지 '도트 노가다'를 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웠습니다.

박 디렉터가 만들던 <하드보일드>는 공모전 2위를 하고 대형 퍼블리셔와 서비스 계약을 한 데다 CBT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게임 아트를 해야겠다"라는 구체적인 동기 대신에 "(어떤 역할이든 좋으니)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모든 아트를 책임졌지만, 다양한 아트 파트의 작업들이 각각의 ‘다름’ 만큼이나 ‘특징’이 있었기에 재밌게 작업했다고 합니다.

다만, 스타트업의 사업적 성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게임은 정식 서비스를 할 만큼 게임의 완성도가 나오지 못했고, 결국 2007년 프로젝트는 드랍됐고 회사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시간은 길어지고 개발 자금은 떨어지면서 그는 2009년 회사는 문을 닫게 됩니다. 이때 그는 게임 하나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 "무조건 업계 최고로 가야겠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로 간 박창준

박창준 디렉터는 스타트업 실패 과정에서 한계를 명확하게 보았습니다. 게임을 정말 좋아해서 업계에 발을 내딛었지만, 여러 차례 고배를 마셨던 그는 "무조건 업계 최고의 선두 그룹에 속하는 조직에서의 게임 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분하게 자신이 세웠던 회사를 정리하던 박 디렉터는 우연히 EA 코리아 스튜디오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됐고, 무조건 입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계에 여러 번 봉착했던 그에게 가장 절실했던 건 뛰어난 수준의 동료들과 안정적인 개발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콘셉트 아트나 캐릭터 모델러를 희망했지만, "입사 하고 다른 분야로 전직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배경 아티스트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입사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특이하게 1시간 동안 자신의 이력과 철학, 강점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갔다고 합니다. 7명의 인터뷰어를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즐겼다'라고 하네요. 

EA 코리아에서 그는 캐쥬얼 리듬 댄스 게임 <데뷰>의 스테이지 관련 모델링, 맵핑, VFX, 애니메이션을 작업했습니다. 실력을 보여줘야겠다고 각오했던 그는 스타트업에서 발휘했던 다양한 분야에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데뷰> 이후엔 미공개 프로젝트 한 건을 진행했고 바로 이어서 엄청난 흥행을 구가 중인 <피파 온라인> 시리즈를 담당하게 되죠.

<데뷰>의 배경 아트

<피파 온라인 2> 시절 박 디렉터는 스타 플레이어의 헤드를 제작했습니다. 주로 아시아 스타 플레이어 위주로 헤드 모델링을 했는데, 당시 기준에도 게임엔진 & 에셋이 모두 오래된 편이었어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시점에 월드 스타들의 헤드 작업도 했다고 합니다. 박지성, 이청용, 치차리토의 헤드를 박 디렉터가 작업했다고 하네요.

그는 월드컵 시즌 직전에 UI 작업도 진행했는데, 인게임 플레이에 들어가는 HUD아트 작업 전체를 단독으로 제작했습니다. 그 당시 라이트 세팅을 잘못 건드려서 잠깐 동안 선수의 얼굴이 어둡게 나오던 때가 있었는데, 빠르게 재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EA 코리아에서 <피파 온라인 2>의 UI와 모델링을 전부 홀로 담당해야만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문제가 생겨도 그의 손으로 해결해야 했죠.

<피파 온라인 3>에선 업무 영역이 확대돼 아트 디렉터를 맡았으며, UI/UX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박지성, 차두리 등 스타 플레이어들의 3D 모델링도 했죠. 마케팅용 에셋인 하이폴리곤 에셋들의 모델링과 그 최종 마감처리, 스타디움 라이팅 보정, 게임 내의 카메라 셋팅도 그의 일이었습니다.  

박창준 디렉터는 <피파 온라인 3> 제작을 위해 영국 출장을 갔을 때, 이청용 선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청용 선수가 볼턴 원더러스에서 뛰던 시절이었는데, 볼턴 홈구장 투어를 하다가 이청용 선수를 만나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박 디렉터가 이청용 선수에게 "우리 팀에서 이청용 선수 모델링을 직접 했다"라고 알려주는데 그가 특유의 미소로 짧게 웃으며 “잘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고 하네요.

<피파 온라인 2>

<피파 온라인 3>

<피파 온라인 3>

앞서 이야기했지만 박창준 디렉터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게임아트가 아니라 게임 그 자체였습니다. <피파 온라인 3> 라이브가 정상 궤도에 오르자 그는 다른 도전이 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마침 EA 코리아 스튜디오에서 <니드포스피드> IP로 한 게임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거기에 PD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2014년부터 4년 동안 <니드포스피드 엣지>의 PD로 일했습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는 가능성이 보이면 상의 후 다른 포지션에서 일할 기회를 준다고 하네요.

그는 PD 역할이 쉽지 않았다며, "죽을 뻔 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축구 게임을 작업하다가 레이싱 게임에 도전했을 때 이 일도 마찬가지로 잘 할 줄 알았는데 장르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었다고 합니다. 아트 쪽 직군만 소화하다가 다시 PD를 맡다 보니 자신이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갔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합니다. <니드포스피드 엣지>의 4년 중 후반부는 다시 AD로 돌아가 일했다고 합니다.

그는 올해 초 다시 <피파 온라인> 시리즈로 돌아와 <피파 온라인 4>의 아트 디렉터 업무를 수행 중입니다. 





# 박창준 디렉터는 게임을 만든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도 게임을 만든다


사실 생각보다 EA가 한국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창준 디렉터도 2009년 입사 전까지는 EA가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EA 코리아 스튜디오는 <피파 온라인> 시리즈, <배틀필드 온라인>, <MVP 베이스볼>, <니드포스피드 엣지> 등을 만든 이력이 있는 곳입니다. 160명이 넘는 개발팀 중에 아티스트는 25명 규모입니다. 

<피파 온라인>도 해외의 <피파>를 그냥 가져와서 게임으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아시아 선수들은 <피파>에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피파>의 손흥민 선수만 해도 최근까지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있었죠. 라이브 게임이니만큼 슈퍼스타의 경우 적어도 1년에 1번 이상 선수들의 페이스 작업을 진행합니다. 같은 선수의 헤어 스타일만 서너 번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박창준 디렉터는 유저들이 선수의 페이스를 빠르게 반영해달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축구 선수는 계속 등장하고, 은퇴하고, 또 모습을 바꾸니까요. 그는 "계속 작업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피파'의 라이선스를 공유하는 게임이니만큼 여러 아트 에셋의 디테일도 이 라이선스를 기준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하네요. 


더 나은 작업을 위해 해외의 다른 EA 스튜디오와도 교류한다고 합니다. EA가 글로벌 기업인 만큼 개발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서 개발 파이프라인이나 게임 엔진 자체를 해외 스튜디오와 함께 공유하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박 디렉터는 EA 코리아가 <피파> HD 버전을 만드는 벤쿠버 스튜디오와 자주 교류하며, 프로스바이트 엔진 컨퍼런스에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양한 국가와 팀의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는 경험은 EA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아트 디렉터로서 그는 실제 아트 작업보다는 아트웍 전반의 제작 프로세스나 파이프라인 설계 업무를 관여하는 일을 많이 맡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것 이상으로 공동 작업의 효율성이 중요한 위치죠. 보다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위해 그는 클라우드 기반의 아트보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가 팀원들과 함께 사용하는 아트보드

그는 다양한 작업 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D 모델들은 마야나 맥스를 두루두루 씁니다. 인게임 에셋으로 쓰진 않지만 내부 개발 컨셉을 보완하는 목적으로 V-ray랜더러를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2D 모델이나 UI 콘셉트를 만들 땐 당연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합니다. 이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유니티 등 모바일 게임엔진을 배우고 있다고 하네요,

업력이 결코 적지 않은 박창준 디렉터이지만 그도 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는 유튜브 강좌를 찾아봅니다. 워낙 활성화된 채널들이 많아 제가 모르는 부분은 여기서 다 찾아 볼 수 있는 것 같다네요. 해외에서 제작한 강좌를 볼 때 영어공부도 함께 되는 것은 덤이라고 합니다.

기술적인 이해 부족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창조적인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입니다. 박창준 디렉터는 이 경우에, 더 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 레퍼런스의 영역을 게임으로 국한하지 않습니다. 이미 게임화 되어 공개된 소스들 중에도 훌륭한 참고자료가 많지만, 좀 더 트렌디한 영상 매체, 영화나 광고 등에서 영감을 찾으려 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는 후배 지망생들에게도 "게임 아티스트, AD가 되고 싶다고 무작정 타블렛을 잡지 말라. 때론 많이 보고, 느끼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게임아트를 통해 게임을 만드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짓궂은 질문을 해봤습니다. "게임 만드는 것에 왜 그렇게 골몰하는가? 게임이 좋으면 게임 밖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돌아온 대답은 오랫동안 기자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영화는 개봉하면 끝이고 책은 출판하면 끝이다. 하지만 게임은 계속해서 인터랙션을 한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고 오래도록 그 일에 직접 뛰어들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주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과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그런 일에서 매력을 느꼈다.

 

게임 아트는 예술적인 영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기술적인 접근과 지식 없이는 실제 제품으로의 적용은 어렵다. 게임 개발의 긴 과정에서 내 작업이 움직이고 반응하는 콘텐츠가 되는 과정을 경험해왔다. 각각의 마감 단계에서 오는 성취감이야말로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 마감의 끝에 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피드백에 신나기도 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피드백에 풀이 죽기도 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반응이라도 더 나은 작업을 위한 양분이라 여기며 다시 모니터를 켠다.



아래부터는 박창준 디렉터의 개인 레퍼런스가 아닌 <피파 온라인 4> 팀 레퍼런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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