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게임 과몰입, 해결 열쇠는 사회와 부모들에게 있다” 정의준 교수 인터뷰

다미롱 (김승현) | 2016-05-10 15:57:39

게임 과몰입(일명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이 유명해진 지 어언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아시나요? 게임이 문제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환경이 문제라는 소수 의견과도 달리, 정작 게임 과몰입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는 것. 

 

그런데 지난 2일, 게임 과몰입과 게임 간의 인과 관계를 다룬 흔치 않은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건국대, 아주대, 강원대, 서울대 병원, 중앙대 병원이 공동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죠. 연구에 참여한 건국대 정의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

 

정의준 교수는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게임통’ 중 한 명입니다. 정 교수는 게임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흔치 않던 2006년, 미국 미시간 주립대까지 가 게임에 대해 공부할 정도로 평소 게임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그가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그의 귀에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당시 강제적 셧다운제로 한참 달아 올랐던 게임 과몰입 이슈였습니다.

 

입장차는 극명했습니다. 한쪽은 게임은 그 자체로 중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적인 조치 없이는 게임 과몰입을 빠져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셧다운제로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그 일환이었고요. 반대로 다른 쪽은 게임 과몰입을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도피로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심리적인 열병이라고 주장했죠. 

 

문제는 둘 중 어디도 명확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일단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부터 게임 과몰입을 ‘연구해 볼 만 하다’라고 이야기했을 뿐, 질환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게임 과몰입과 유사하다고 말하는 도박 중독도 질환으로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일관된 연구결과가 필요했지만, 과몰입은 일관된 조사결과는커녕 조사의 절대적인 수도 부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적 셧다운제는 시행됐고, 게임을 술•도박•마약 같은 중독물질과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중독법’도 발의됐습니다. 정 교수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게임 과몰입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의준 교수 팀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2천 명의 청소년을 추적•조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장기적인 조사를 선택한 이유는 ‘인과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존 조사 대부분은 ‘과몰입 지수가 높은 사람들은 게임을 많이 한다’ 같은 1차원적인 이야기만 했습니다. 이것만으론 과몰입 지수가 높아 게임 시간이 많아졌는지, 반대로 게임 시간이 많아 과몰입 지수가 높아졌는지를 알 수 없었죠. 또한 반대 주장대로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이 과몰입을 이끈다면, 이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장시간의 추적•조사가 필요했죠.

 


 

 

■ 게임은 학업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도피처’일 뿐

 

조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과몰입 지수는 게임 시간(≒ 게임 자체적인 요인)과 별 상관 없었죠. 오히려 과몰입 지수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것은 ‘자기 통제력 약화’였습니다. (자기통제력: 크고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순간적인 욕구를 참는 능력)

 

2년 간의 추적•연구 결과, 과몰입 지수가 높아진 아이들 대부분은 자기 통제력이 극도로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자기 통제력이 약했던 아이들도 2년 후, 대부분 과몰입 지수가 높아졌고요. 혹시라도 ‘게임 시간이 자기 통제력을 약화시키나’도 확인해 봤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자기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주 원인이었죠.

 


 

스트레스의 원인은 학업 스트레스, 그것도 부모가 주는 학업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그나마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세 연령대 모두 ‘부모의 과잉 간섭’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아이들 연령이 높아질수록 부모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커졌습니다.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과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초등학생들은 부모 정돈 아니어도 친구•교사와의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스트레스 원인이 부모와 친구들로 좁아집니다. 그리고 세상을 알만큼 아는 고등학생이 되면 부모의 과잉 간섭만이 사실상 유일한 스트레스 요인이 되죠.

 

사실상 게임은 부모가 주는 학업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도피처일 따름이었죠. 실제로 DSM-5의 게임 과몰입 사례가 유독 한국과 중국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이것을 암시하고 있죠. 그 도피처가 게임이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게임 말고는 다른 취미를 가지지 못해서였고요. (실제로 연구 결과, 청소년들의 90%는 게임 외의 다른 취미가 없었습니다.)

 


 

 

■ 게임 과몰입, 해결 열쇠는 사회와 부모들에게 있다

 

때문에 게임 과몰입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부모의 변화입니다. 정 교수가 부모들에게 권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부모가 자식들과 1주일에 한 번은 대화하고, 자식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 지 알고 그에 대해 이해만 해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조금만 더 잘 알아도 과잉 기대, 과잉 간섭은 훨씬 줄어들 것이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일관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에게 받는 스트레스의 양은 더욱 커집니다. 정 교수 팀의 연구는 비록 시간과 예산 문제로 고등학생까지밖에 안돼 있지만, 이것이 대학생이나 그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죠.

 

때문에 정의준 교수도, 그의 동료인 아주대 장예빛 교수도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일관된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단, 이 말이 게임 과몰입이 부모의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정의준 교수는 기본적으로 부모도 피해자 중 하나라는 입장입니다. 사회가 팍팍해져 맞벌이가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됐고, 그에 따라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신경 쓸 수 있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또한 지금의 부모 세대도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자란 세대도 아닙니다. 부모들 또한 학벌 위주의 교육 제도 아래서 자라온 이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아이에게 자신이 못 다 이룸 꿈을 무작정 투영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근본은 한 세대, 한 사회가 바뀌어야 될 문제죠.

 

때문에 정의준 교수는 기본적으로 셧다운제 등의 게임 규제 정책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그간의 정부 정책, 그로 인한 사회 변화에 있는데도 단순히 게임만 ‘화살받이’로 내세운 근시안적인 조치로 보이기 때문이죠.

 

다만 그럼에도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정책이, 사회가 바뀌기까진 너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모들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결국 최선은 우리 세대가, 우리 사회와 정책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우리의 자식, 손자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부터 작은 것이라도 바꾸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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