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넥슨컴퓨터박물관] 인터넷 명예의 전당을 아시나요?

넥컴박 (넥슨컴퓨터박물관) | 2022-02-21 13:23:59

<출처: “[이슈분석]한국, 브로드밴드 인프라 세계최고... 디지털정부·AI 역량 강화해야“, 전자신문>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디지털경제전망(Digital Economy Outlook)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브로드밴드 인프라 1위,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 2위를 차지했다. [1] 2017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던 나라에서, 이제는 빠른 속도의 유무선 인프라를 합리적인 비용에 제공한다는 사실이 공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당연하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비영리 국제 기구인 인터넷 소사이어티(Internet Society)에서는 2012년부터 인터넷 기술 개발과 발전에 기여한 이들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인터넷 명예의 전당(Internet Hall of Fame)’으로 불리는 명예공로상을 시상해 오고 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두 명의 한국인 학자의 업적을 통해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나라 인터넷의 역사를 돌아보고자 한다.

 

 

인터넷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다. 전길남 박사

<제 1회 수상자들, 전길남 박사(앞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출처: Internet Archive Blogs – Internet Hall of Fame>


​2012년, 인터넷 명예의 전당 첫 수상자에는 월드와이드웹(WWW)를 발명한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와 TCP/IP 프로토콜 탄생에 기여한 전 구글 부회장 빈트 서프(Vint Cerf)를 포함한 33명이 이름을 올렸다. 


출처: Internet Hall of Fame 홈페이지

그리고 전길남 박사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그를 아시아 지역의 인터넷 기술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선구적인 연구자로 소개하고 있다.
1985년 국내 네트워크 망 지도


1982년 5월, 서울대학교의 PDP 11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의 VAX 11/780 컴퓨터가 전길남 박사가 구축한 원거리 네트워크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으로 연결되었다. 1,200bps 속도였지만, 지금의 인터넷 연결 방식과 동일하게 IP주소를 할당 받고 이를 패킷 방식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그가 주도한 연구로 인해 아시아의 작은 국가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연결한 나라가 되었다.

<출처: 동아일보, 1990년 6월 4일>


1990년에는 SDN을 계승한 하나’(HANA)망’을 기반으로 인터넷 연결의 무대를 국제로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2] 1990년 6월 1일 ‘스팍스테이션 1(SPARCstation 1, Sun 4/60)’ 컴퓨터가 미국 하와이대학 네트워크와 56kbs 인터넷 전용선을 따라 연결되었다. 이때, 전길남 박사의 제자였던 박현제 박사는 “나는 대한민국의 박현제다. 누구라도 이 메일을 보는 사람은 응답하라”라는 아시아 최초의 메시지를 전송하였고, 이어 “나는 미국 하와이대학의 Torben이다. 축하한다. 너는 지금 인터넷에 접속된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로써 미국과의 직통 네트워크가 개통되었고, 우리나라의 교육연구기관들도 미국의 방대한 학술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박현제 박사 인터뷰, 출처: 한국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

 

당시 하와이에 메일을 보낸 박현제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90년의 하나망은 SDN 구축보다 더 인상 깊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하나망 이전의 네트워크는 비용의 문제로 통화료가 가장 싼 저녁 시간에 보내서 상대방이 받아보고 답변을 보내는 것을 고려하면 메시지 송·수신까지 이틀이 걸리는 일이었던 반면, 하나망은 회선 비용만 지불하면 사용량에 제약이 없었으며, 데이터를 보내면 바로 볼 수 있는 빠르고 간편한 방식이었다. 2년 뒤 운영권을 KT가 맡게 되면서, 하나망은 이후 등장하는 코넷(KORNET), 보라넷(BORANET)과 같은 상용 인터넷 서비스의 기반이 되었다.

이처럼 SDN은 국내 인터넷 환경의 모태가 되었고, 전길남 박사는 국내 기술을 일본에 가르쳐주는 등 아시아 지역의 인터넷 보급을 주도한 선구적인 연구자이자 동시에 카이스트에서의 교수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온라인게임 회사를 설립한 주역들을 양성한 스승이기도 하다.

 

 

원하는 곳의 공연을 어디에서나 시간차 없이 실시간으로 보다. 김대영 박사


작년 12월, 전길남 박사의 헌액 이후 9년 만에 인터넷 명예의 전당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두 번째 한국인 수상자로 김대영 박사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03년 김대영 박사의 연구 프레젠테이션 자료 중 일부 발췌>

김대영 박사는 APAN(Asia-Pacific Advanced Network) 활동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네트워크 구축에 기여하는 활동들을 이어오고 있는데, 여러 연구 중에서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서는 ‘DancingQ 프로젝트’를 주목했다. DancingQ 프로젝트는 김대영 박사가 이화여자대학교 김명숙 교수가 이끄는 ‘늘휘 무용단’과 함께 시도한 기술과 예술의 융합 프로젝트로, 인터넷이 갖는 상호작용성, 실시간성, 그리고 개방성에 기반하여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실시간 송출하거나 또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합동 공연을 펼친다.

김대영 박사는 2003년부터 퍼포먼스 예술에 인터넷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1차년도에는 부산에서의 연주를 서울에 위치한 국립국악원에서 보여주는 국내 공연을 시작하였고, 이후 해외 지역과의 동시 공연을 위해 북미, 남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예술가들과 협업하였다.

 

<Kingdome Implosion>

 

한편, 김대영 박사가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시도했던 실시간 송출은 늘휘 무용단과 했던 공연이 아니었다. 2003년 8월, 워싱턴 대학교 연구 채널 팀과 협력하여 시애틀의 경기장 킹돔(KingDome)의 폭파 철거 현장을 부산에서 생중계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영상은 태평양을 횡단한 최초의 비압축 HD(2K) 전송으로 기록되었다.

 

<2006년 DancingQ 프로젝트>

영상 송출의 딜레이를 줄이기 위해 비압축된 HD(2K)화질로 시작한 시도는 이후, UHD(4K) 화질까지 향상되었다. 그리고 2006년,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예술극장과 한국의 LG 아트센터에서 합동 공연이 펼쳐졌다. 상업 공연장에서 1Gbps 이상의 대역폭이 필요한 실시간 공연을 국경을 넘어 진행한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공연 기획 당시 0.5초의 딜레이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 다르게 실제 공연에서는 시간차를 0.1초까지 줄이는데 성공하면서, 결과적으로 당시의 공연은 시공간 장벽을 무너뜨린 역사적 이벤트로 평가 받았다. 이처럼 여러 시도를 통해 기술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갔고, DancingQ 프로젝트는 이제 2년마다 한 번씩 사이버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APAN의 eCulture Working Group(WG)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팬데믹 상황으로, 전 세계의 모든 공연, 전시 등 예술 활동들이 온라인에서 생중계하고,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DancingQ 프로젝트가 당연한 기술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된 2000년대 기술을 떠올려보면 김대영 박사의 연구가 선구적인 시도였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출처: KT>

 

 

당시 KT는 메가 인터넷, 즉 100Mbps 인터넷을 내세우던 시기였다. 가령, 2003년의 인터넷 속도를 기준으로 보면, 오늘날의 UHD 영화 한 편을 다운 받기 위해 45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또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핸드폰 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실시간 영상 통화나 메신저는 물론이고 인터넷 접속 버튼을 누르지 않게 조심해서 사용하던 때였다.


당시의 일반적인 인터넷 환경을 고려하면, 김대영 박사가 참여한 DancingQ는 예술가와 전시, 공연장 사이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문화 기술로서 인터넷을 실험한 장이자, 실시간 공연의 시간차를 최소한으로 줄여 진정한 실시간 관람이 가능한 기반을 마련한 프로젝트이다.

 

<2020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라이브 스트리밍 콘서트로서 75만 6600여명의 동시 접속자 수가 기록되었다.>

전길남, 김대영 박사와 같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1982년부터 반세기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인터넷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지금도 계속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펜데믹 상황에서도 우리는 안정적인 인터넷을 기반으로 방역을 하고, 기본적인 일상을 지속하고 있다. 작년 인터넷 명예의 전당 행사를 보면서 그간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연구자들을 업적을 돌아보며 놓치고 있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1] 브로드밴드 인프라 분야에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00Mbps급 이상 유선 인터넷 가입자 비중, 초고속 인터넷 평균 다운로드 속도,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을 포함하며, 각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1위를 차지했다.

[2] 1992년 8월 하나망과 SDN의 운영이 KT로 이전된 후에 SDN은 국내에, 하나는 국제 인터넷에 연결된 망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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