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인디한잔] '틱톡'과 '유행'의 힘이 굉장한 줄은 알았지만...

음주도치 (김승준) | 2024-08-12 19: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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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에 계신 분들도 기자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취재를 하다 보면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매일매일 이슈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잠시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멋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 뜨거운 현안들로 담소를 나눠보는 코너 '인디 한 잔'입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게임을 즐기고 계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보죠. 하루에 틱톡, 릴스, 쇼츠 등 숏폼 콘텐츠를 보는 시간과 게임을 하는 시간 중 어느 쪽이 더 긴가요? 아무래도 더 쉽게 자주 접할 수 있는 건 숏폼 쪽입니다. 사람들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더 짧아져 가고 있기 때문에, 게임은 숏폼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소비를 논하기 전에, 관심을 끌어오는 것부터 일입니다. 그런데 모바일게임 시장은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어, 큰 광고 집행 비용 없이는 차트 상단에 오르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억되는 게임'까진 바라지 않아도, '눈에 한 번이라도 들어오는 게임'이 되기도 어려운 요즘입니다. 그렇다면 시각을 조금 바꿔봅시다. 숏폼은 정말 경쟁의 대상일까요? 게임에 도움이 될 수는 없는 걸까요?


게임 하나 잘 만들기도 어려운데, 숏폼 시장까지 어떻게 공략하냐-는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유행'이라는 파도를 함께 활용하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후야호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캐주얼 게임 개발사입니다. 


후야호의 <탕후루의 달인>이 글로벌 4,000만 다운로드,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 1,000만 명을 기록한 것도 놀랍지만, 공식 유튜브 구독자 수는 무려 300만 명이나 됩니다. 해당 채널의 커뮤니티 게시글은 13개국어로 제공될 정도로 글로벌 유저가 많죠. 국내외 대형 개발사의 공식 채널들도 쉽사리 해내지 못한 기록입니다. 작은 인디 개발사가 어떻게 게임과 숏폼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 핵심은 "알파 세대"에 대한 이해에 있었습니다.


<말랑이 온라인>, <탕후루의 달인> 등의 게임을 선보인 후야호 전민영 대표.
'숏폼'과 '유행'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알파 세대를 제대로 공략한 인디 개발사입니다.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알파 세대'는 MZ보다 더 어린 그 다음 세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 기기를 사용해서 기술에 친숙하고, 온라인 소통이 오프라인 소통 이상으로 친숙한 친구들"이라고 전민영 대표는 말합니다. 후야호는 "알파 세대의 트렌드를 빠르게 게임으로 재해석"하는 개발사입니다. 


그의 히스토리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시각디자인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졸업 후 네이버 파파고 팀에 입사했습니다. 작은 팀 규모에서 수많은 글로벌 유저에 대응하는 방법을 이때 익혔다고 합니다. 이후 사진 앱 '스노우'로 이직해 K팝 커뮤니티 앱 서비스를 만들었죠. 이 시기에 글로벌 10대 유저들의 감성과 행동 패턴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10대 친구들의 잠재력은 대단해요. 새로운 종족이라 느껴질 정도죠. 창의적이기도 하지만, 크리에이터 성향이 엄청나게 강해요. <말랑이 온라인>도 <탕후루의 달인>도 모두 이 친구들 한 명 한 명이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그는 중학생 때 알만툴(RPG 메이커)를 활용해 취미로 게임을 만들어 본 것을 제외하면, 게임 업계에 대해 잘 알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3년 전 후야호 창업 초기에도 꼭 게임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형태의 무언가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고 하죠. 10대 유저들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아트박스, 다이소 등을 거닐며 고민하던 그의 눈에 띄었던 것은 피젯 토이의 일종인 '말랑이'였습니다.


<말랑이 온라인>

말랑이가 뭐야? 처음 들어보는데-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번 기사에서 꾸준히 나올 이야기지만,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어린 아이들의 취향과 기호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는지도 모릅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유행했던 말랑이는 2021년 독특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딱지나 카드를 교환했던 어른 세대들처럼, 말랑이를 오프라인에서 서로 물물교환하는 '말랑이 거래'가 유행이 된 것이죠. 한국 아이들만 즐긴 유행도 아니었습니다. '틱톡'을 통해 '말랑이 거래' 영상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었죠. 알고리즘 때문에 어른들에겐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의 계정에선 엄청난 '틱톡 트렌드'였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겹치면서 학교나 학원에서 실물 거래를 하는 것보다, 틱톡 영상으로 대리만족하는 아이들이 늘어난 상황이었고, 전민영 대표는 이 '유행'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거래를 수락하는 v, 거절하는 x, 물건을 더 추가해달라는 표현인 +까지 총 3개의 버튼으로 '말랑이 거래'를 축약해 <말랑이 온라인>를 출시했죠. 


<말랑이 온라인>의 개발은 딱 한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스노우' 재직 시절에 들었던 "속도와 타이밍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것도 어떤 타이밍에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급적 빨라야 하고, 빠르게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서비스를 개선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인사이트를 게임 개발에도 적용한 것이죠. 


어떻게 게임을 홍보해야 할지도 막막했던 상황에 틱톡에 영상을 하나 올리게 됩니다.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말랑이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라는 자막 하나가 달린 게임 플레이 영상이었죠. 빠르게 10만 조회수를 달성한 이 간단한 영상을 시작으로, 이후 광고 집행 과정에서도 낮은 설치당단가로 많은 유저들이 유입됐습니다. 


오프라인 '말랑이 거래' 영상이 틱톡 트렌드였듯, <말랑이 온라인> 영상들도 틱톡에서 흐름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말랑이 온라인> 게임 영상만 올리는 틱톡커들도 생겨났고, 자체적인 바이럴 흐름이 형성됐죠. 처음엔 유행을 따라간 게임이었지만, 이후엔 유행을 새롭게 만든 셈입니다.




<말랑이 온라인>은 게임 다운로드 100만, MAU 50만, DAU 10만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지만, 수익 구조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 달 만에 나온 게임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유저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콘텐츠 업데이트부터 힘을 쏟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보상형 광고를 도입하게 됐다고 합니다. 


전민영 대표는 어린 유저들이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말랑이를 만들고 싶어하진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말랑이를 그려서 메일로 보내달라는 영상을 올렸죠. 메일이 하루에 1,000~2,000통까지 왔을 정도로, 아이들은 말랑이 그리기에 진심이었습니다. 유저들이 만든 말랑이에는 "OO 크리에이터가 만든 말랑이"라는 크레딧이 붙기도 했죠.


<말랑이 온라인>에는 채팅이 없는 대신에, 말랑이 거래 중에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전민영 대표는 '말랑이 거래'가 핵심인 게임에서 '말랑이' 자체는 유료로 판매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이모티콘을 인앱 구매 상품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죠. 개성 있는 말랑이를 그려 보낸 유저들이 많았던 것처럼, <말랑이 온라인> 이모티콘 크리에이터도 생겨나 지금까지도 그 수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기자 또한 알파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틱톡에서 이런 트렌드가 있었다는 것조차 잘 몰랐던 게 사실입니다.
말랑이 온라인 또는 말온 태그로 올라온 영상들이 정말 많습니다.

# 또 한 번 유행을 만들어내다

후야호는 알파 세대가 아닌 어른들도 모두 아는 유행인 '탕후루'를 주목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만 '탕후루'가 뒤늦은 유행을 한 건 아닐까, 탕후루 유행이 곧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있었다고 하죠. 이번에도 한 달 만에 게임 <탕후루의 달인>을 만들어 출시한 그는, 처음엔 한국에서만 설치할 수 있게 권역 제한을 뒀다고 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번에도 화력이 시작된 곳은 틱톡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있을 리가 만무한 해외 IP 접속이 늘어나서 확인해보니, 한 틱톡커가 귀여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탕후루의 달인>을 언급한 이후 전 세계에서 바이럴이 됐던 것이죠. 급하게 현지화 번역도 지원하고, 해외 다운로드도 오픈했고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후야호는 12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작은 인디 개발사입니다. 마케팅 비용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죠. 수익이 회수되는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 번에 한 지역씩 마케팅 비용 집행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구글플레이 인기 1위를 기록하고, 그 다음은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에서 순차적으로 1위를 했죠. 의도치 않았지만 일종의 도장깨기를 하게 됐던 셈입니다.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탕후루의 달인>은 이제 글로벌 다운로드 4천만, MAU 천만, DAU 100만을 기록하고 있는 게임이 됐습니다. 그 배경에는 틱톡과 유튜브에서의 선순환이 있었습니다.




# 의도된 게임 구성

우후죽순 생겨난 탕후루 가게들. '루루'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탕후루 가게 또한 그 타격을 입었습니다. 부모님의 가게를 물려받아 가게를 다시 부흥시켜야 하는 '루루'는 가게 홍보를 하기 위해 '탕후루 먹방'에 나섭니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와작와작 먹는 소리가 '탕후루'의 매력이라고 생각한 전민영 대표는 탕후루의 특징을 <탕후루의 달인> 플레이 세션에 녹여내기 위한 방법으로, 'ASMR 먹방'을 선택했습니다. 게임 플레이는 탕후루를 만드는 미니게임과 도네이션에 맞춰 먹방을 하고 채팅을 하는 과정들로 이어지죠. 


게임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뉴비였던 전민영 대표였지만, 숏폼에 대한 이해도는 남달랐습니다. 핵심 플레이 과정은 숏폼의 길이인 1분 내외로 맞췄고, 세로 플레이로만 구성했습니다. 플레이 영상을 틱톡이나 쇼츠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컷 편집이 필요하지 않게, 보상형 광고를 핵심 플레이 과정 사이엔 넣지 않았다고 하죠. 유저들이 '루루'의 먹방을 공유하는 것을 의도하고 만든 것입니다.


게임과 논게임의 경계에 대한 편견이 없었기 때문에, 접근법 자체가 달랐습니다. 다른 게임 개발사들이 "유행따라 게임을 만든다"고 할 때, 흥행한 '게임 개발 트렌드'를 따라가 큰 차별성 없이 키우기류, 뱀서류를 스킨만 바꿔서 내던 것과는 대조적이죠. <탕후루의 달인> 게임 자체는 단순해 보일 수 있어도, 전민영 대표가 '알파 세대'의 수요를 읽어내는 '눈'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인게임에는 두바이 초콜릿도 등장하고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달인'이라는 이름의 메뉴로 '요아정'을 오마주한 메뉴도 등장합니다. '탕후루 먹방'이라는 초기 콘셉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신 유행을 계속 만나볼 수 있게 구성됐죠. 이런 업데이트 내용이나 개발사의 기획 영상, 유저들이 자체 제작한 영상 등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 300만 구독자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루루'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채널을 구독한다는 느낌도 함께 받으면서 말이죠.


13개국어로 전달되는 <탕후루의 달인> 유튜브 커뮤니티 공지.

# 아이들도 엄연한 게이머다

기자는 전민영 대표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GDC 2024에서 들은 강연 내용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게임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다"는 주제였죠. 


예를 들어, 혼합현실(MR) 게임은 현실의 물체와 가상의 객체를 함께 활용합니다.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은 VR 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넘어, 실제 물건을 들고 휘두르거나, 책상 밑에 숨고, 벽을 끼고 움직이는 게임을 오래 플레이하는 걸 선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죠. 뛰고 노는 게 익숙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아이들도 게이머"라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설령 잊지 않았다 해도 아이들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교육용 게임이나 영유아를 위한 게임은 꽤 있어도, 어른의 세계가 궁금한 초등학생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브롤스타즈>가 3대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죠.


<말랑이 온라인>을 통해 아이들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살 수 있던 장난감을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탕후루의 달인>을 통해 '먹방 유튜버'가 되어보기도 하고, 자주 사먹을 수 없는 여러 음식들을 직접 구매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죠. 인게임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기능이 있는 것도,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모방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즐기는지 잘 알고 있던 걸까요? 후야호가 다음에는 또 어떤 '유행'을 자신들의 콘텐츠로 소화할지 기대가 됩니다.


스마일게이트가 스타트업 성장 지원을 하는 플랫폼 '오렌지플래닛' 건물에 입주해 있는 후야호입니다.
좋은 게임은 무엇인지, 유저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기자 또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인터뷰였습니다.
후야호는 또 어떤 '유행'을 선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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