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산업과 게임 문화,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에 관한 도서가 늘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습니다. 놓치기 아까운 지식, 재미를 담은 '게임 책'을 디스이즈게임이 한 권씩 선정해보려 합니다. 출판사가 직접 제공한 자료를 정리·편집해 전달하는 '게임과 책'입니다. 열두 번째 책 <아케이드 게임 타이포그래피>를 소개합니다.
# 간단 책소개
<아케이드 게임 타이포그래피>는 비디오 게임 산업 발달 초기 약 20년 동안 제작된 여러 인게임 비트맵 폰트의 디자인적 의도와 가치를 돌아보는 책이다. 게임 폰트가 대부분 8x8픽셀로 통일되어 있던 1990년대 이전, 기능성과 심미성을 모두 충족하는 폰트를 위해 어떤 디자인 감각이 동원되어 왔는지 훑는다. 동일 계열의 글꼴을 쓴 게임들을 한 챕터로 묶고, 각자의 특징과 평가를 간략한 텍스트로 정리했다. 폰트별 도해, 기획 의도, 장단점을 한눈에 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폰트가 지니는 독립적 미감뿐만 아니라 게임 구성 애셋으로서의 적합성도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종종 게임 촌평도 함께 실려 있어 레트로 게임을 사랑하는 일반 게이머들 역시 즐겁게 읽을 만하다. '읽을거리' 코너에서는 게임 폰트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몇 가지 개념이나 대상을 짚어 고찰한다.
# 본문 중에서
수학 교사는 8 곱하기 8이 64라고 하겠지만 나는 무한대 기호라고 답하겠다. 8 곱하기 8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를 이 책에서 알게 될 것이다. 타이포그래피와 비디오게임이 만나는 이 덕후스러운 교차로에서.
- '머리말', 8p
⋯ 이런 책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여기에 필요한 조사를 할 만큼 미친 사람이 또 없었기 때문일 테다.
- '머리말', 9p
제약은 기술적 순수성과 더불어 창의성을 키우는 강력한 동력이다.
- '놀이를 위한 글자', 11p
<레전드>에서는 한 나라가 위험에 처하는 바람에 게임 주인공이 돈 자루를 투척해 적들이 편을 바꾸도록 매수해야 한다. 글꼴에 들어간 선명한 색상들은 미국 국기를 연상시키려는 의도 같은데, 이 게임에 적합한 팔레트다. 소문자 문자세트는 없다. 이거야말로 자본주의(capitalism), 아니, 대문자주의(capital-ism)다.
- '산스체 레귤러', <레전드>, 31p
(아타리 폰트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은 그 선명함과 실용성, 무던한 외관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 도통 한물가는 법이 없는 이 글꼴은 비디오게임 폰트의 헬베티카다.
- '아타리 폰트', 45p
저해상 디자인의 시각언어는 모호성에 기댄다. ⋯ 이 사연을 풀어내기란 기술적이면서도 미적인 도전이고, 해상도 다운스케일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낮은 해상도에서는 어떤 컴퓨터도 글꼴 본연의 아름다움을 정확히 재건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보다 잘하진 못한다.
- '아타리 폰트 해부하기', 75p
<마계전설>은 수작 글꼴이 들어간 망작 게임이다. 난이도가 불분명했고 시간제한은 가차 없었으며 상점은 쓰레기투성이였던 데다 형편없는 그래픽과 침울한 음악까지 더해져 곡소리가 났다. 그러나 이 로만 글꼴은 그러데이션이 다채롭고 세미슬랜티드 숫자까지 있어 게임의 최고 장점임은 물론이고 시중에 나온 로만 비디오게임 글자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사례다.
- '세리프체', <마계전설> 120p
MICR체를 별도 범주로 두는 글자 분류 체계는 없다. 그러나 비디오게임에서는 MICR체 기반 픽셀 글꼴의 개수만 생각해도 단독 부문이 필요하다. 과학, 미래, 우주, 외계인, 기계 천지인 게임에 MICR체는 완벽하게 어울렸다.
- 'MICR체', 130p
퀴즈 게임으로 보면 <마스터 보이>에는 특기할 점이 없다. 그러나 글꼴은 무척 흥미롭다. 저게 가능한가 싶은 각도로 글자가 기울어져 있고 그 결과 디자인 공간이 8×8픽셀보다 넓게 느껴진다. 왼쪽 위의 획이 글꼴에 속도감을 주는데 단순히 공간을 메우려고 추가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M과 W의 디테일을 타협 없이 전부 욱여넣으면서도 문자를 이만큼 기울였다는 것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 '슬랜티드체', <마스터 보이>, 170p
창작물을 배태한 기술은 오래전에 명을 다했을지 몰라도, 이 글꼴들은 남는 동전을 내놓고 “START”를 누르도록 플레이어를 처음 유혹하던 그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짜릿하고 엉뚱하고 과감하다.
- 맺음말, 267p
# 저자·역자 소개
저자
오마가리 토시 영국 모노타입(Monotype)의 글꼴 디자이너다. 도쿄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와 글꼴 디자인을 공부했고 2008년 졸업했다. <아케이드 게임 타이포그래피>는 그의 첫 책이다.
무로가 기요노리 일본의 유명 디자인 잡지 '아이디어'의 전 편집장이다. 현재는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에디터, 작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역자
박희원 연세대학교 생활디자인학과와 언론홍보영상학부에서 공부하고 제품 개발 MD로 근무했다. 이야기를 만지며 살고 싶어 번역 세계에 뛰어들었다. 글밥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하고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바이닐>, <에이스>, <무법의 바다>, <여자만의 책장>이 있다.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
※ 책소개
<동키콩>, <팩맨>, <스페이스 인베이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아케이드 게임 속 픽셀 폰트 디자인을 탐구하다
<테트리스>, <스트리트 파이터>, <알타입>, <젤다의 전설>, <갤럭시안>, <제비우스>…흔히 ‘오락실 폰트’로 불려온 70, 80, 90년대 초반 아케이드 게임의 픽셀 폰트를 총망라하며 심층 분석했다. 영국 타이포그래피 회사 모노타입에서 글꼴 디자이너로 일하는 오마가리 토시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약 4,500종의 게임을 조사했고, 250여 개의 픽셀 글꼴과 408편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수록해 다방면의 타이포그래피를 모았다. ‘산스체’ ’세리프체’ ‘MICR체’ 등 글꼴별로 장을 분류하고, 픽셀 폰트의 전성기부터 쇠퇴기까지 읽을거리를 더했다. 오마가리 토시는 독자가 어느 부분에 주목해야 할지 쉽고 재치 있게 안내한다. 뛰어난 이야기꾼의 달변과도 같은 그의 해설에서는 아케이드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듯한 소년의 설렘과 장난기까지 느껴진다. <아케이드 게임 타이포그래피> 한국어판에는 타이포그래피와 아케이드 게임에 관한 '용어 해설'을 덧붙여 이 주제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했다.
※ 출판사 서평
8 곱하기 8은 ∞ 정교함과 창의력의 예술, 픽셀 폰트 디자인
70, 80, 90년대는 3D와 포토샵 이전의 시대였다. 비디오게임 폰트는 인쇄와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글꼴처럼 자율적인 요소가 아니었고, 모든 객체와 배경, 글자와 숫자는 같은 체계 속 다른 그래픽 패턴일 뿐이었다. 이러한 타일 기반의 옛 그래픽 시스템에서는 고작 8×8픽셀이라는 작디작은 캔버스 위에 폰트를 만들어야 했다. 비디오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글꼴의 크기는 8×8, 8×16, 32×32 등 각종 8의 배수로 다양하긴 하지만 8×8은 "시각적으로 가장 엄격한 제약을 부과하고, 그래서 연구하기에 가장 흥미로운 대상"이기도 하다. 각 문자가 사실상 8×8이 아닌 7×7픽셀로 디자인되었음을 안다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타일은 가로와 세로 모두 간격 없이 맞닿아 표시된다. 그러니 타일은 자간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대문자 M을 8픽셀 너비에 꽉 채워 그리고 MMM을 입력하면 글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가로로든 세로로든 디자인에 최대 7픽셀만 써야 한다는 제약이 생긴다. 마지막 줄의 픽셀은 간격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디오게임 폰트 디자이너들은 플랫폼의 제한적인 해상도와 색상에 낙담하지 않고, 저마다 기발한 방식을 통해 제약을 창의력으로 승화시켰다. 이 책에 실린 폰트 다수는 8×8 고정너비 포맷으로 제작되었고, 다양한 색상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나온 고유한 글자가족은 자그마치 1,600종에 이른다. 당시 그들에게 "제약은 기술적 순수성과 더불어 창의성을 키우는 강력한 동력"이었던 것이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격언이 있다. 언뜻 비좁아 보이는 8×8픽셀 포맷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본 당시 폰트 디자이너들의 남다른 안목과 섬세한 기술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이 책은, 현재 벡터 기반 폰트 포맷으로 옮겨온 글꼴 디자이너들에게도 정교함과 창의력의 예술에 관해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케이드 픽셀 폰트 디자인은 비디오게임 역사에서도 타이포그래피 역사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아웃사이더'다. 두 분야에서 거의 모든 면이 철저히 탐구되는 동안 픽셀 폰트만 남겨진 이유는 무엇일까? 게이머와 글꼴 디자이너 들이 비디오게임 타이포그래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는 아닐 테다. 그보다도 각 폰트를 만든 디자이너들 대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이 주제를 깊이 연구하는 데 수많은 난관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글꼴 수에 비해 디자이너의 수는 현저히 적다. 게임 크레디트에서도 그들의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본 게임 회사는 자사 직원이 경쟁사에 발탁될 것을 우려해 관행적으로 크레디트에 실명을 기재하지 않았다. 많은 경우 글꼴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확실히 밝히기가 무척 어렵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름 없이 활동한 당시 글꼴 디자이너들은 사실 타이포그래피와 레터링에 문외한인 게임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아티스트였다. 당시 게임 그래픽은 모두 모눈종이 위에 먼저 그려진 후 한 픽셀씩 손으로 코딩되었는데, 이들의 집요함을 실줄 삼아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코딩된 작은 픽셀들은 엄격한 포맷 위에서 과감함과 적절함의 균형을 찾았다. 오마가리 토시가 밝히듯 "아무리 좋은 글꼴이라도 쓰인 게임과 어울리지 않으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휘황찬란한 비디오게임 그래픽에 맞춰 눈길을 끄는 글꼴들이 있는가 하면, 게임 사용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우리 기억 속에 하나의 이미지로서 각인된 글꼴들이 있다. 『아케이드 게임 타이포그래피』는 이러한 글꼴들을 소개하며 픽셀 하나하나에 일심전력해 픽셀 폰트를 아케이드 게임의 주역으로 거듭나게 한 디자이너들의 집념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