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방구석게임] 네바: 벗과 계절과 생명…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울지니

쿠타르크 (쿠타르크) | 2024-10-23 11:32:31

게임이 예술의 영역에 가까워지면서 재미보다는 예술을 추구하는 듯한 게임도 활발히 등장하는 추세를 보인다. 물론 방향성이 예술에 가깝다 할지라도 본질은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노릇이니 좋은 게임으로 평가받기 위해선 마땅히 기본적인 게임성은 충족해야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술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보고 평가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게임을 만든 이가 예술을 의도했더라면 그 의도에 맞춰 게임을 평가할 필요도 있을 테니 말이다. 달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가린 구름을 바라보고 그 풍경을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2018년이 끝나갈 무렵 출시됐던 <그리스>(GRIS)가 딱 그러한 부류의 게임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화려한 비주얼과 몽환적인 연출, 그리고 여린 소녀의 고뇌와 고행을 다룬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바 있다. 그리고 그런 호평이 흥행으로 이어진 건 그만큼 <그리스>가 의도했던 예술에서 큰 감동을 받은 이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리스> 개발사 노마다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예술을 추구하는 인디게임 개발사로 급부상했다.

그렇기에 6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후속작 <네바>(Neva) 역시 출시 전부터 적잖은 관심을 받아왔다.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하는 소녀의 외연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리스>(GRIS)

<네바>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그리스>(GRIS)를 내놓으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스페인의 인디 게임 개발사 노마다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여전사 알바와 거대한 늑대 네바가 함께 숲을 물들이려는 어둠을 정화해나가는 여정을 담은 어드벤처 플랫포머 게임이다. 

부드러운 색상의 수려한 비주얼과 감미로우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의 사운드트랙,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감각적인 연출과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뛰어난 면모를 보이며 전작인 그리스와 비교해보면 살짝 힘을 뺀 듯하면서도 한결 편안해진 듯한 느낌도 있다. 여기에 사이드뷰 시점과 횡스크롤 플랫포머 방식의 게임 플레이 역시 전작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어둠을 직접 퇴치한다는 설정에 맞춰 전투가 추가된 모습이다.

벗과 계절과 생명.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울지니

한편으로는 일본의 거장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모노노케 히메>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게임이기도 하다. 강인한 여인과 거대한 늑대라는 조합과 울창한 삼림이라는 배경, 그리고 자연의 신비로움과 잔혹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스토리 등에서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연하고 부드러운 색감의 수려한 비주얼과 우아하면서도 웅장한 사운드는 단연 플레이어를 홀리게 할 만큼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한다. 계절과 장소의 변화, 어둠의 침식으로 인한 숲의 변화, 그리고 '네바'와 함께 어둠에 맞서는 알바의 심리 변화를 색상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곧 색상의 변화를 굉장히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감각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란 이런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준다.
강인한 여인과 거대한 늑대의 조합.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또한, 멀리 달리는 장면에서는 카메라 줌을 밀어 아름다운 배경을 강조하면서 분위기를 이완시키는가 하면 어둠의 침식이 극심해지는 급박한 순간에는 카메라 줌을 당겨 템포를 휘몰아치는 등 완급 조절도 뛰어나다.

직관적인 구성의 스토리 또한 일품이다. 숲이 어둠으로 물들게 된 계기나 알바와 '네바'가 어둠에 맞서 싸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지만, 숲이 어둠으로 뒤덮이는 과정과 알바와 '네바'가 어둠과 싸워나가는 여정, 그리고 알바와 '네바'가 서로 교감 나누는 모습을 별도의 대사 없이 꼭 필요한 만큼만 담백하게 전달한다. 

여기에 플레이어의 아바타와도 같은 알바와 직접 조종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알바를 따르는 '네바'의 비중 배분도 적절하고, 알바의 심리를 따라가는 듯한 스토리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필요한 내용만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스토리. 그렇기에 더욱 담백하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색상의 변화를 유연하게 활용한다.

특히나 알바와 '네바'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한 교감으로 서로간의 깊은 유대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네바'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나 급격한 성장을 보이면서도 알바와 조금도 떨어지지 않은 채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시종일관 드러낸다. 이를테면 '네바'가 아직 어리고 미숙한 여름에는 알바가 '네바'를 적절히 이끌어주며 부모 노릇을 하는가 하면 '네바'가 훌쩍 커버린 겨울에 다다르면 알바와 함께 어둠에 맞서 싸우는 듬직한 조력자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 알바와 '네바'의 긴밀한 관계가 이후 스토리 전개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기까지 한다. 

반려 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키운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런 알바와 '네바'의 끈끈한 유대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올런지도 모르겠다.

시작부터 끝까지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교감한다. 이것이 스토리에 있어서도 꽤나 중요하게 작용한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반면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는 대체로 무난한 완성도를 보인다. 조작감은 알바의 미끄러지는 듯한 부드러운 움직임에 맞게 유연하고 부드럽고, 특유의 연한 색감으로 인한 시인성이 조금 아쉽긴 해도 스테이지 디자자인 또한 직관적이면서도 크게 어렵지 않은 디자인을 선보인다.

일부 양 갈림길 구간을 제외하면 대개는 일자 진행이라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크게 헤맬 일도 없으며, 적들의 패턴이 과하게 어렵지 않은 데다가 일정 회수 동안 연속으로 공격에 성공하면 체력이 회복되는 시스템 덕분에 전투 또한 쉽게 풀린다. 그 밖에 일부 도전과제와 꽃이라는 수집 요소를 통해 메인 스토리 이외에 자잘한 재미도 나름 잘 챙긴 모습이다.

종합해보면, 특출난 게임성이라기보다는 비주얼과 스토리 감상을 크게 해치지 않는 무난한 게임성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하다. 어차피 게임의 방향성이 게임성보다는 예술성에 좀 더 치우쳐진 게임이란 걸 감안하면 이렇게 게임성이 예술성을 보조하는 형국도 썩 괜찮아보인다. 기왕 게임에 대한 부담을 더 줄이고 싶다면 아예 난이도를 더 낮춘 이야기 모드로 게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일 테고 말이다.

특유의 체력 회복 시스템 덕분에 전투는 제법 쉽게 풀리는 편
특출나진 않아도 예술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 게임 디자인

전작인 <그리스>와는 살짝 궤를 달리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그 잔재는 남아있다. 사이드뷰 시점의 횡스크롤 플랫포머라는 장르와 몽환적인 배경에서부터 붉은 망토를 착용한 여주인공 알바의 펄럭거리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낙화유수(落花流水)라는 사자성어가 절로 떠오를 법한 낙하 장면 등이 그러하다. <그리스>를 플레이해본 이들에게는 반가움 내지는 익숙함으로 다가올 만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다만 예술성이라는 방향성이 워낙이 뚜렷한 데다가 게임의 플레이 타임도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라 취향이 갈릴 여지가 다분하다. 화려한 비주얼이나 감성적인 스토리보다는 직접적인 게임성을 따지는 이들이라면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 밖에 개인적으로는 결말의 내용이 그다지 만족스럽게 다가오진 않는다. 수미상관을 드러나는 데다가 담고자 하는 메세지가 뚜렷이 보여 의도는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전까지의 스토리 전개를 생각해보면 조금은 개연성이 떨어지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그리스> 개발진이 만든 게임이구나 싶은 장면이 이따금씩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MBTI식으로 표현하자면 T보다는 F에 가까운 게임일 것이다.

<네바>는 수려한 비주얼과 미려한 사운드, 감각적인 연출과 더불어 직관적이고 개연성이 충분하면서도 여인과 늑대의 끈끈한 우정을 드러내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인디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성이 특출나진 않아도 예술성을 보조하는 데 있어서는 충분하며, 전작인 <그리스>에 비해 한결 힘을 뺀 듯해도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편안하게 감상하기 좋다. 

따라서 <그리스>를 재밌게 즐겼던 이들이라면 <네바>도 마찬가지로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감성이나 예술을 추구하는 게임 혹은 서정적인 감동을 유발하는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상당히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을 것이며, 누군가 2024년 최고의 인디 게임으로 선정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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