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거래 게시물이 청소년 유해 매체?
대한민국 게이머로서 (게이머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지만 게이머라면 더욱 더) 여성가족부 단어를 안 들어 보셨을리는 없을 겁니다.
제가 게이머로서 여성가족부 다섯글자가 뇌리에 박히게 된 계기는 '셧다운제'지만 저는 그 당시 성인이었습니다. 또, 인터넷 중독 예방을 위한 기금을 게임업계에서 원천징수 하겠다고 밝힐 때도 전 현업인이 아니었구요.
물론, 한 명의 게이머로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_-?) 불길이 치솟았지만, 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내 그 불길은 마나 없는 마법사의 마법 마냥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남일 같이 여기던 여성가족부가 제 쌈싸다구를 댐프시롤로 때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제가 했던, 그리고 저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디스이즈게임 Fairytale
으, 으앙!
줄줄이 도장깨기 하듯 닫혀버린 네이버 게임 카페들
저는 네이버 카페에서 마도카라는 마비노기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최대의 사이트는 아닌 소규모 카페이긴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카페북으로 정리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평범한 네이버 회원입니다.
그런데 9월 초 삭제글을 관리하던 도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카페에 올라온 몇몇 거래 게시물들이 네이버에 의해 [청소년 노출 부적합 게시물]로 줄줄이 삭제가 된 것입니다.
왜 아이템 거래 게시물이 청소년 노출 부적합이지?
삭제당한 게시물들은 아이템을 현금이나 문상에 판다던지 하는 게시물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보는 롱소드 100골드에 팝니다식의 게시물이었죠. 또, 모든 아이템 거래 게시물이 아닌 몇몇 게시물만 삭제가 되었기 때문에, 전 네이버의 스팸방지 필터링에 문제가 있으려니 하고 고객센터에 문의글만 남겼습니다. 해당 회원 분들께 안내 공지를 남기구요. (링크)
그런데 다음 날, 마비노기 카페로는 최대 유저수와 활동량을 자랑하는 모 카페가 돌연 블라인드를 당했습니다. 해당 카페는 홈플러스라고 불릴만큼 마비노기 거래의 메카라 할만한 카페였습니다. 그 당시엔 온갖 추측글이 난무하더군요. 등업을 할 때 개인정보를 요구해서 그렇다, 누가 문상을 이벤트로 뿌렸는데 그게 걸린거다. 카페를 타인에게 판매해서 걸린거다. 등등...
하지만 그때 역시 전 '나와는 관련없는 일'일 것이라고 강건너 불구경 하듯 넘겼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다음날... 마비노기 거래만 하는 거래 전용 모 카페도 블라인드를 당하게 됩니다. 해당 카페 매니저가 타 커뮤니티에 쓴 글을 보니 '거래 게시판의 게시물들이 문제가 되었다' 라고 하더군요. 거 참 이상합니다. 왜 거래 게시판이 문제가 돼서...
'....어? 잠깐? 우리 카페에도 거래 게시판이 있는데?!'
네.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우리집에서 불이 나고 있었습니다.
짤은 당시 제 모습
저는 서둘러 카페 내에 있던 거래 게시판의 글쓰기를 막고, 거래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스탭이 삭제한 게시물은 3개월 이내에는 언제든지 복구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조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블라인드를 당한다던지 등의 피해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시작 되었던 의문은 계속 꼬리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왜 아이템 거래 게시물이 문제가 되는 거지?'
"법이 그렇습니다."
추가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네이버 게임관련 카페에서 거래게시물이 문제가 되어 카페가 블라인드를 당한건, 유독 올해 6월부터 였더군요. 크레이지아케이드, 라테일, 엘소드 관련 카페들이 6월부터 차례차례 네이버에게 철퇴를 맞고 거래게시판을 폐쇄 시켰습니다.
저는 네이버 고객센터에 문의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을 요약하자면 "법이 그렇습니다." 였습니다.
여성가족부 고시 제2013-45호(구 보건복지부 고시 제2009-24호) 청소년 유해매체물 목록표
요약본이 아닙니다. 이게 청소년 유해매체물목록표의 전부 입니다. (특정 사이트를 노린거 같죠?)
즉, 단순한 아이템-게임머니 거래 게시물도 법령에 위반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네이버가 강행한 카페 블라인드 조치들은 자사 이용약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법령이 그렇기 때문에 네이버는 그렇게 조치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거래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니, 카페를 19세미만 유저들이 가입할 수 없게 하던지, 관련 행정처의 결정문을 보내주면 앞으로 조치방향을 바꾸겠다고 하더군요.
해당 법은 보건복지가족부 시절에 만들어졌지만, 보건복지가족부는 현재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현재 청소년 관련 법령은 여성가족부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전 여성가족부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단순한 아이템 거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보는 것은 확대해석 아니냐?'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역시 "법이 그렇습니다" 였습니다.
『질의사항과 관련하여 여성가족부 고시 제2013-45호(구 보건복지부 고시 2009-24호)는 게임아이템거래사이트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 고시하고 있습니다.
(중략)
게임머니와 게임아이템을 거래중개하는 경우도 게임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이며 게임물을 이용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머니, 게임아이템 등)의 거래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면 청소년유해매체물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
- 여성가족부 민원 답변 내용중 -
그러니까 그걸 몰라서 묻는게 아닌데요...
행정소송을 해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법령에 산타클로스 따위의 낭만은 없기 때문에 굴뚝을 폐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산타 부를 돈도 없구요.
아이템 중계거래 사이트를 막기 위한 법령이, 일반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
원래 이 법령은 누구나 다 아시겠지만 아이템매니아나, 아이템베이같은 아이템 중계거래 사이트를 청소년들로부터 막기 위한 법령입니다. 이 법령이 적용된 관련 판례(링크)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게임 이용자는 게임아이템을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현금거래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고, 그에 맞물려 게임아이템은 상당한 정도의 환금성을 갖게 되며, 이용자는 게임 자체를 즐기기보다 게임아이템의 환금성에 집착하여 게임을 하기 때문에 게임 자체가 결국 상당한 사행성을 띨 수밖에 없다.』
『③ 우리 사회의 자율화와 물질만능주의 경향에 따라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청소년에 대한 유통 등을 규제함으로써 성장과정에 있는 청소년을 각종 유해한 사회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하고 나아가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청소년보호법의 입법 취지가 있고, 관계 법령상의 절차에 따른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전문적인 심의·결정 내용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 당시 아이템베이가 보건복지부에게 걸었던 소송중 판결문의 내용. 아이템베이는 이 재판에서 패소했다. -
결국 아이템의 현금화가 사행성을 띄게 되니 청소년으로부터 아이템을 현금화 하는 사이트를 막겠다는 겁니다. 충분히(?) 이해 합니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금전소비감각 습관이 들 수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합니다. (한 2%정도 공감)
하지만 단순한 게임아이템과 게임머니를 거래 하는 것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바람의 나라 머드게임 시절, 파란화면 PC통신시절부터, 아니 전 세계 모든 게임유저들이 게시판에서 해오던 행동인데 말입니다.
단순한 아이템 거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보는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자 기본권 침해 아닐까요?
왜 거래 게시판을 사람들이 이용하나요? 게임에 계속 접속해 있기 힘드니까 시간이 없는 유저들이 거래 게시판에 판매글을 써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인데... 여성부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유저들이 24시간 게임을 붙잡고 게임 내에서 1:1로만 판매하길 원하는 걸까요?
여성가족부의 식으로 따지자면 게임내 거래중계소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막고, 게임 내에서 확성기로 아이템을 파는 것도 막아야 겠군요. 거래전용채널도 폭파시키구요. 아니 잠깐!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거래 게시판도 거래를 중개하는 공간이지 않나요? 청소년들은 이용하면 안되니까 조만간 모든 미성년자등급게임 홈페이지에서 거래 게시판이 막히겠군요!
이런식이라면 게임에서 거래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저처럼 가만히 있다가,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개소리같죠? 이미 2005년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고, 이번 사건으로 반쯤은 현실화 되었습니다.
『학부모정보감시단은 게임 아이템 거래에 대한 법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대한 청소년 유해 매체물 지정 ▲온라인 게임 아이템 거래에 대한 법적 규제 조치 마련 ▲게임 개발사의 아이템 거래 금지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 2005년 9월 게임어바웃 기사 : 아이템거래 사이트 청소년 노출 심각 (링크)
지금은 개소리 같이 들리지만, 마냥 개소리로 들리지 않는 분들은 이 글에 추천을.
저는 글을 쓰면서 불현듯 여성부 게임물 평가안(링크)을 참조해 만들어진 게임들이 생각납니다. (링크)
짧은 단문을 첨부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
(수정1)
ps. 글 퍼가도 되냐고 문의하신분 있는데 퍼가셔도 됩니다. 많이 퍼뜨릴수록 이슈화가 되서 여성부 귀에 들어갈 수도 있겠죠.
다만, 제가 글을 수정할 수도 있으니 아래링크를 퍼가시는걸 추천합니다. :D
- 퍼가실 본문 링크 : /webzine/community/tboard/?n=186651&board=36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 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 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ㅡ20세기 중반 독일 신학자, 마틴 뇌묄러 목사, <전쟁책임 고백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