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험난한 코스프레 준비 과정.
이번도 피해가지 못했다.
누가 좀 도와줘. 비상사태.
우선 첫 번째 문턱부터 좌절의 연속이었달까.
이전 장애물도 그렇지만 이번엔 정말 오래 쉬다 보니,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
나는 코스프레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허투루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보니 준비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고.
이전엔 멤버 간의 스케쥴이나 활용 문제나 그런 것이 문제가 더 되었다면
지금은 정보도 뭐도 없고 이전의 작업 요건과 너무 달라진
지금의 나 자신이 더 문제였다.
1. 미싱이 없어.
안녕 내 미싱.
의상학과 졸업과 함께.
코스프레 휴덕과 함께.
결혼과 함께. 육아와 함께. 입사와 함께.
내 정들었고 사랑했던 미싱과 오바로크 기계, 작업대와 그 외 의상 제작을 위한 모든 것들은
엄마의 처분 대상 1호였고. 실제로 이행되었다 orz
그래서 미싱이 없어.
나는 두 가지 갈등에서 몸부림쳤다.
미싱을 사거나 빌리거나 해서 옷을 만드느냐.
아니면 퀄리티 있는 제작자에게 옷을 맡기느냐.
그야말로 코스프레 처음 시작하던 그때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
하지만 제작하기에는 시간도 없어.
해외 출장과 야근이 많은 직업상 시간을 내기엔 어려웠고.
설상가상 회사 위치는 올림픽 공원 맞은 편.
동대문까지의 원단과 소품 나들이는 내가 따로 시간을 내고 연차를 내지 않는 이상 불가능.
또 연차를 내서 원단을 사온다 하더라도
평일 밤밖에 제작 시간이 없을 텐데. 새벽에 아파트 주민 다 깨울 일 있나.
층간 소음 싫어요.
결국, 제작비를 들여 의상 제작을 맡기는 쪽으로 결정.
2. 소품이 장난 아냐.
욕심도 많지. 난 참 욕심도 많아.
캐릭터를 고를땐 패기 넘치게 화려한 일러스트들을 골랐는데.
고른 일러스트마다 소품 제작이 진심으로
“장난 아니었다.”
아니 뭘 어떻게 만들려고 저걸 고른 거냐
김미리. 제정신이냐.
그리고 옷 제작은 어케어케라도 내가 할 수 있고, 자신 있는데
소품 제작은 진짜
자신 없어;
그래서 결국 이것도 외주 ㄱㄱ
orz
이 역시 여러 군데로 추천을 받고 알아보다가
코스프레 1세대(...)로 내가 활동하고 있을때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쌀소년님이
코스프레 소품 샵을 만드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긴급히 연락.
간신히 부탁할 수 있었다.
3. 난 화장을 못해.
예전 나의 코스프레 사진들을 보면
노메이크업이나 그냥 눈두덩에 라인만 겨우 살려놓은
심플한 화장이 대부분인 내 메이크업.
화장을 안 해서가 아니라.
단언컨대. 못해서이다.
오죽하면 대학교 다닐때 메이크업 관련 수업을 들었겠는가.
(여대라 그래서인지 그런 수업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학문을 쌓듯 배운 화장.
어케어케 한쪽은 내 맘에 쏙 들게 했어도,
오른손잡이인 덕분에 나머지 왼쪽은 그야말로 대략 난감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회사도 그냥 맨얼굴로 항상 출근.
스킬을 쌓을 겨를이 없었.....다.
응... 변명 맞아..
하지만 최근의 트렌드는 코스프레어를 캐릭터에 가깝게 구현하는 것.
그래서 메이크업도 필수고 캐릭터에 어울리는 만화적인 분장용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이고 인공적으로 보이는 모습인데
사진으로 나오면 캐릭터에 딱 잘 어울리는 멋진 메이크업이 중요해졌다.
orz
변신소녀여 나에게 힘을...
어쨌든 최근 유행에도 맞게. 그리고 캐릭터를 잘 구현하는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속눈썹도 몇 개나 사고, 화장품도 구입하면서
집에서 연습을 해봤으나.
처참한 실패.
왼쪽 왜 이리 힘들어!!!!!!!!
얼굴 생김새에 맞게 화장을 해야 하는데
내 얼굴이 좀 선이 굵직하니 뚜렷한 느낌이다 보니, 또 옆으로 길지 않은 둥근 눈이라.
코스프레식 분장용 화장을 하니 정말 너무 무서운 느낌이 들더라.
아 아니야 이건 아니야. 밤에 보면 진짜 무서울 거 같아.
너무 화려한 화장은 내 얼굴과 맞지 않아.
물론 우리 팀 내에 걸출한 메이크업의 대가들이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코스프레하면서 남의 메이크업까지 챙기기는 시간상으로 부족하다.
물론 자신을 챙기면서 남까지 도와줄 수는 있지만,
시간이 금쪽같은 촬영 일정이나 팀 운용, 그리고 시간 내기 힘든 멤버들로서는
각자 메이크업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상황.
결국, 이것도 프로에게 맡기는 쪽으로…
4. 욕심은 하늘을 찌르는데 현실은 시궁창.
그래설라무네. 종합적으로 현실적인 고민에 맞닥뜨렸다.
다 맡기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내 돈.
옷도, 소품도, 메이크업도 다 부탁하고.
부수적으로 렌즈나, 가발이나, 돈 많이 들 텐데
이거 어쩔….
러프하게 예산을 짜 보아도 기함이 나올 법한 액수가 예상되었다.
취미 생활에 돈을 많이 쓰는 덕후인 나지만.
역시 코스프레는 돈이 정말 많이 드는 취미 생활.
욕심을 내고 퀄리티를 내면 낼수록 정말 많이 든다.
우선 견적을 받아보고 조율을 해보자 라는 생각이 앞섰고.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절약해보자란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다른 데 쓰이는 돈을 여기다 쓰는 거니까.
내 생활에서 다른 부분의 비용을 많이 줄여야 했다.
그래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예산 운용을 잘해 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응 기껏 생각해 낸 게 그거야....
현실적으로 많은 코스프레어들이 부딪치는 문제고.
또 비단 코스프레뿐만이 아니라,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민.
생활에서 순간순간 어떻게 어떤 가치를 위에 두느냐로 선택이 갈리는데,
이래서 항상 준비 전에 예산을 잘 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고등학생일 때, 코스프레를 시작할 때도 이 비용 문제가 가장 컸다.
용돈만 받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 코스프레라는 취미를 하기엔 비용이 턱없이 모자랐던 것.
대부분 것을 혼자 제작함으로 비용을 줄이거나 했어도 쉽지 않았다.
뭐. 직접 발로 뛰고 만들면 제일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시간도 비용으로 계산했을 때 무시 못 하니까.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상향 조정된 지금은 더 할 것이다.
그래서 코스프레 의상 렌탈샵도 생기게 된 것이고. 세컨핸드 마켓도 성행하게 된 것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게 마련되었으니,
각자 코스프레 예산을 생각해보고 잘 짜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섭외는 힘들어.
6~7명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섭외나 스케쥴 조정은 참 힘든 일이었다.
가끔은 다수를 위해 선택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고.
동시에 제외된 소수를 위해 방도를 마련해 놓는 것도 필수적이었다.
코스프레어 섭외는 일단 우리 네 명(이이다, 하루, 리루, 빙유카) 외에
세 명 정도 더 영입할 계획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코스프레할까? 싶어 연락했던 친구들은
다들 생업에 바빠(..)보다는
너무 오래 쉬고 거의 탈덕 상황이라
다시 코스프레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주인공 캐릭터로 염두에 두었던 렌에게 섭외.
흔쾌히 수락했으나! 마침 큐라레도 하고 있었고!!!!
그런데 급한 일정이 생겨 제작 기간 중 스케쥴이 맞지 않았다 ㅠ_ㅠ
결국 렌양은 차후에 따로 미우 코스프레 하는 것으로.
우선 이번 팀에는 제외되었다.
하지만 언니들을 위해
화려한 블록버스터 사진 보정을 제공하는 놀라운 도움을 선사;ㅁ;
코스프레 아트웍이라고도 한다는데.
물론 이전에도 종종 쌀소년님을 포함한 몇몇 사진사분들이
기존 사진 배경에 다양한 합성 배경을 사용하여
현실 세계 같지 않은 느낌의 독특한 사진을 만든 적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기술도 좋아지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개발되면서
코스프레 사진에서 점차 많아지는 추세.
스케쥴 상의 문제로 빠지는 대신 이 엄청난 작업을 해주겠다는 것!!!!
너무 고마워 렌 ㅠㅠ
그리고 가능한 팀 코스프레를 꾸릴 때 겹치는 타입보단
각양각색 타입으로 꾸미는 것이 좋은데.
누님계 캐릭터에서는 독보적인 코스프레어가 있었다.
디도언니 ㅎㅎ
언니를 떠올린 순간 바로 연락… 했는데 신혼여행 중이었다
나란 여자 타이밍도 기가 막히네.
언니도 우선 허니문 중 흔쾌히 승낙.
그리고 소품 제작을 부탁드린
쌀소년님에게 아리따운 어린 와이프가 있음을 떠올렸다.
코스프레어 수야민님.
내가 우리나라 코스프레계(?)에서 코스프레어+사진사로 만나 결혼에 골인한 거의 최초 커플이었고.
아무래도 같은 취미와 성격의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다 보니
그 후엔 종종 이런 조합의 부부가 탄생하였는데. (이이다 언니와 J오빠도 그렇고)
수야민님도 그래서 섭외 요청. 바로 수락하셨다.
두 분 모두 고마워용 ㅠㅠ
어쩌다보니 이 팀 멤버.
유카 한명 빼고 전원 결혼한 사람으로 꾸려지게 되었다.
그중 아이 엄마는 세 명. 와우. 소녀시절도 아니고.
팀 이름을 지어야 한다면 <위기의 주부들>이 적당할 판국.
(유카는 무슨 죄야 ㅠㅠ 미안해 유카. 너는 깍두기로 두자.)
그래설라무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 엄마가 셋이야.
촬영 날짜는 가능한 축소 해서 짧게. 사진은 많이 남기도록 효율적으로 로테이트하기로.
참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6. 우유부단함은 시간을 낭비한다.
캐릭터 선정도 쉽지 않았다.
예쁜 캐릭터들이 너무 많아. ㅠㅠ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이벤트가 업데이트되면 될수록 캐릭터는 쌓여갔다.
제작 기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갈대같이 마음이 매번 바뀌는 바람에 시간은 급해졌고.
결국, 다들 서너 개씩 넘게 골랐다가 두 개씩으로 확정.
그러다 제작 기간 시간상 문제로 나를 제외하고 다시 하나로 확정.
극심한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로
다들 엄청 힘들었지 ㅠ_ㅠ
수많은 회의와 제작 여건을 거쳐 결정된 코스프레 캐릭터는 아래와 같다.
이이다 -> Morpheus (모르페우스)
Photo : Fazz / Costumeplay artwork : Ren
빙유카 -> 구미호
Photo : Fazz / Costumeplay artwork : Ren
디도 -> Professor Challenger (챌린저 교수)
Photo : Marc / Costumeplay artwork : Ren
리루 -> Dr. Moreau (닥터 모로)
Photo : Fazz / Costumeplay artwork : Ren
수야민-> Voyager (보이저)
Photo : Studio Vibe / Costumeplay artwork : Ren
하루 -> Haal9000
Photo : Fazz / Costumeplay artwork : Ren
Squeler (스퀼러)
Photo : Studio Vibe/ Costumeplay artwork : Ren
이렇게 모든 캐스팅이 완료된 후, 우리는 대망의 그 날을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