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내외 여러 기업은 싱가포르에 터전을 잡고 블록체인 사업을 전개했다. 홍콩이 쇠퇴하고 싱가포르가 부상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에이펙스 프로토콜이 발표한 블록체인 지수에서 싱가포르는 85.4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지금도 싱가포르에는 해시드와 카이아가 활발히 활동 중이다. 카이아는 클레이튼 이후, 카카오가 네이버와 합작하여 진행 중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인구 약 600만 명, 서울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이 도시국가는 블록체인 사업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싱가포르에는 1,600개의 블록체인 특허, 2,433개의 관련 일자리, 81개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있다고 전해진다. 게임은 디지털 자산으로서의 블록체인 터큰의 실용성을 입증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주목받았고, 기업들은 우후죽순 블록체인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25년, 기자는 싱가포르에서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를 만나기 위해 여러 곳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정작 만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현지 게임업계에서 돌아온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2021년과 2022년, 몇몇 사람들은 동남아시아에서 블록체인 게임의 미래를 보았다. 베트남의 스카이마비스가 개발한 모바일 턴제 RPG <엑시 인피니티>는 코로나19 시기 필리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위메이드가 만든 <미르4 글로벌> 역시 필리핀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개발자들이 블록체인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몇몇 사례는 러그 풀로 밝혀졌지만.)
블록체인과 이를 활용한 게임이 부상하는 가운데, 싱가포르가 일찌감치 문을 열었다. 이런 환경은 전 세계의 블록체인 관련 사업자들이 모여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위메이드와 넥슨도 싱가포르에 블록체인 사업을 위한 법인을 설립했다. 특히 위메이드는 2023년 현지 투자사와 제휴를 맺어 펀드를 조성하고,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 다섯 곳에 투자를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싱가포르에는 가상자산과 그 가상자산을 바탕으로 한 여러 사업을 전개하려는 이들이 운집했다. 싱가포르에서는 '토큰 2049'와 같은 대형 블록체인 컨퍼런스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는 블록체인의 여러 '구루'들이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이 무렵 한국 개발사들도 각종 포럼의 일익을 차지하며 자신들이 꿈꾸는 청운의 꿈을 널리 공유했다.
하지만 파티는 끝났다. 언제 끝났을까? 블록체인 업계의 많은 플레이어들이 2022년을 중요한 변곡점으로 꼽는다. <엑시 인피니티>는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으며 신뢰도가 하락했다. 러그 풀 논란은 곳곳에서 발생했다. <엑시 인피니티>를 잇는 대형 히트작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거품이 빠지자 수많은 백서가 휴지조각이 됐다.
게임 바깥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테라가 무너지고, FTX가 무너졌다. 이 상황을 주시하던 MAS는 싱가포르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전개하는 관련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미 차지한 블록체인 산업의 허브 지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삐를 쥔 것이다. 이때 당국이 감독을 강화하고, 투기적 거래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기자에게 2022년 하반기부터의 하락세를 들려준 취재원(익명)은 "준비되지 않은 블록체인 업자들이 이 무렵 싱가포르에서 떠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아직 싱가포르에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은 많고, 개중에는 영주권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사는 P2E나 게임에서 RWA 토큰(실물자산 토큰.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원자재의 가치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토큰화하는 것)과 AI 에이전트로 넘어갔다고 한다.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게임 엑셀레이팅과 펀드 조성 사업을 하는 대니 우(Danny Woo) GXC 대표는 "최근 싱가포르에 웹3 게임 시장은 침체된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자사 VC '라운드벤처스'의 사례를 전했다. 과거 이들은 투자를 위해 역내 개발사를 만나면서 웹3 기업도 만났는데, 이들에게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우 대표는 "그간 웹3 회사에 투자하는 방법으로는 토큰에 투자하거나, 웹3 회사의 지분에 투자하고 그것을 토큰과 매칭하는 방식이 있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토큰에 직접 투자를 할 수는 없고, 후자에는 투자를 할 수 있었는데 정부는 괜찮다고 했지만, 시중 은행이 블록체인 회사에 투자를 하면 펀드 계정을 정지시키겠다고 이야기했다"라고 전했다.
현지에서 만난 돈 베이(Don Baey) 싱가포르 게임 협회(SGGA) 대표도 관련 유행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블록체인 게임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라고 선을 그었다. 베이 대표는 "이 분야는 SGGA의 핵심 사안도 아니며, 우리 협회가 이 분야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도 않다"라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에서 엔진(Enjin), 오아시스(Oasys), 인피니티 포스(Infinity Force), 아이들 사이버(Idle Cyber) 등 블록체인 게임 사업자들이 계속 활동하고 있었지만, 이들과 SGGA는 직접 교류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세계 블록체인의 허브라고 불리는 국가에서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관심은 예상보다 훨씬 낮은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 꿈을 놓지 못한 몇몇 회사가 공개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차트의 즉각적인 등락과 거래소의 영업정지 처분 소식만이 뜨거운 가운데, 가상자산의 쓸모는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다시 증명될 수 있을까? 블록체인을 통해서 게임의 재미를 다시 정의할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