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게임 이용자 단체행동, 그 앞에 이 사람이 있다

우티 (김재석) | 2024-02-20 16:12:41

이 기사는 아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이용자들은 이제 '드러눕는' 대신 일어나고 있다. 대 트럭 시대 이후, 이들은 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게임사를 상대하고 있다. 집단소송이 그렇다. <우마무스메>, <리니지2M> 소송에 이어 19일에는 넥슨코리아에 소장이 접수됐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따른,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집단의 손해배상 요구 소송이다.


이러한 이용자 소송의 맨 앞에는 이철우 변호사가 있다. 게임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그는 게임물관리위원회 법무담당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자문위원 등을 거쳐 현재는 시민단체 한국게임이용자협회의 첫 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 협회는 지난 1월 창립총회를 열고 게임이용자 정책 제안과 권익 증진 등을 목표로 활동할 것을 결의했다.


이철우 협회장은 왜 한국게임이용자협회를 만들었을까? 협회에는 어떤 과제가 있을까? 이들이 바라는 소비자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19일 법원에서 넥슨코리아를 향한 민사소송을 제기한 직후 이철우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19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넥슨코리아에게 고소장을 접수하며 기자 브리핑에 응하는 이철우 변호사




Q. 디스이즈게임: 오늘 수백 명의 유저를 대신해 넥슨코리아에 대한 고소장을 전달했다. 소감이 어떤가?


A. 이철우 협회장: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단순히 <메이플스토리> 집단소송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용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Q. 한국게임이용자협회(이하 협회)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A.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고, 2022년 1월부터 이야기가 나왔다. 트럭 시위가 한창일 때 게임 이용자의 권익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패널로 게임업계에서 3분, 교수 2분, 게임산업협회에서 2분이 나왔다. 그분들끼리 '잘하자' 하는데 이용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최근 국가적으로 정책 수립 과정에서 게이머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데, 막상 그 목소리를 반영할 곳이 없다는 것이 협회 설립의 취지였다.


Q. 협회 이사진에는 어떤 인물들이 합류했나? 회계사와 세무사도 있다고 들었다.

A. 사실이다.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분들도 계시고 기존에 게임 관련 소비자 운동을 주도해 본 분들이 계시다. 직함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창립총회 때 이사 후보분들이 직업이 아니라 자신의 게임 구력을 소개하는 자리가 열렸다. 물론 그걸 말하면서 나이를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웃음) 게임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인 협회다.

지난 1월 30일 창립총회를 연 협회

Q. 여러 정당에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다고 들었다. 어떤 취지에서 질의서를 보냈나?

A. 각 정당의 게임 정책에 구체성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막연하게 '권익 도움 되겠다', '불공정을 해소하겠다',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구체적인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참고 가이드를 전달하려는 취지가 있었다. 

질의서에는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 ‘게임물 관련 규제 완화’, ‘게임 중독의 질병분류’, ‘K-게임 콘텐츠 경쟁력 확보’, ‘게임 관련 혐오표현 또는 사상검증 논란’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약 25개의 질문이 있다. 또 ‘정당 내 최고 게이머’와 ‘추천 게임’을 묻기도 했다.


Q. 보통 공개 질의서는 정책 제안과 연결된다. 이번 총선에는 어떤 정책을 제안하려 하는가?

A.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받으면, 게임 이용자, 법조계, 학계, 언론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정당별 정책공약을 비교해 랭크를 매길 예정이다.

협회의 출발점이 '이용자 권익 보호'였던 만큼, 지금 가장 많이 논의되는 '이용자 권익 보호 제도'가 완전하게 정착될 수 있길 바란다. 협회에서 그 제도가 잘 추진되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 예컨대 19일 배포된 문체부의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관련 해설서'도 유명무실한 정보공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유상 구매가 가능한 아이템은 모두 정보공개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사 표준약관에도 '먹튀 방지'만 이야기하는데, 저희가 이용자로서 실질적으로 느낀 불편함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최근 <검은사막> 사례처럼 비인가 프로그램 사용의 입증 책임을 이용자에게 지울 수 있는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메이플스토리> 캐시아이템은 청약철회가 가능하지만 아이템이 인벤토리로 옮겨갔다는 것 자체만으로 철회가 불가능한 사례도 지적하고 있다.

게임사에서도 너무한 조치라거나 어려운 상황에 부담이 가중된다는 토로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협회의 대답은, 협회 또한 산업의 발전을 적극 응원하고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런 게임에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나 <P의 거짓> 같은 사례를 응원한다.

협회가 보낸 질의서 중 일부

Q. 간접구매도 확률을 공개하라는 입장인가?

A. 게임사 입장은 큐브를 메소로 구매하게 했고, 그 확률을 공개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선의로 공개하던 확률 또한 추후에 조작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간접구매 행위 역시 확률 공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수치까지 공개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와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본다. '던전 입장권을 구매해서 사냥하는 경우, 드랍되는 아이템의 확률을 모두 공개해야 하느냐?', '인게임 골드로 세공을 하는데 그 성공 확률을 전부 공개해야 하느냐?' 같은 것들 말이다.


Q. <데이브 더 다이버>와 <P의 거짓> 예시를 들었다. 여러 종류의 BM이 도입되고, 고포류(고스톱·포커류)가 잘 벌어주는 덕에 그러한 게임이 나온 것 아닌가?

A. 투 트랙 전략을 할 수 있게끔, 너무 한 쪽에 치중하지 말자는 것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이용자의 바람이다. 확률형 아이템을 만들어 사행심을 자극하는 쪽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바람을 일으켰던 <데이브 더 다이버>와

Q.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제도와 실효성 확보를 시급한 문제로 지적했다. 이미 대리인이 있거나 지사를 세운 곳들의 사례를 보면, 현실적으로 실효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답답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A.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개념적으로 본사가 아닌 대리인에 대한 조치이기 때문에, 본사가 시정명령이나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지금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는 건데, 게임법에 등급분류와 사후관리에 중간지대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등급분류 일시 정지나 부분 취소를 만들어 해외 게임사가 국내에 대리인을 두지 않아도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지만, 룰을 어기면 앱스토어 단에서 게임 서비스가 임시로 막히는 것이다. 앱스토어를 통한 직접 조치를 사후관리 제도와 연계하는 게 오히려 실효성이 있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다.

국내 대리인에게 과태료 부과하거나 시정명령을 내린다 해도 서비스 중인 게임에는 영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영세한 해외 게임 개발사들은 국내에 대리인을 두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서비스 자체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장치로 사후적 일시 정지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개인적 생각이 있다.


Q. 정부에서 게임 등급분류를 민간에 위탁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미 민간에서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A. GCRB(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 게임문화재단 산하의 민간등급분류기관. ⓐ PC, 콘솔게임 ⓑ 전체이용가 및 청소년 이용가에 대해 심의한다)가 민간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실 현재 게임의 99%는 이미 자체적인 등급분류를 받고 있다. 진정으로 게임 등급분류가 민간에 위탁된다면, 그 기관에 투명성과 전문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용자 협회 차원에서 현재 의견이 모인 것이 사행성 외 선정성/폭력성에 대해서는 게임의 '검열 수준'이 영화 등 타 매체와 비교했을 때 높지 않다는 점이다. 게임이 문화예술진흥법에 규정하는 '예술'로 분류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는 물론 창작의 자유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행성은 표현의 자유와는 연관이 적은 편이고, 선정성과 폭력성을 민간에서 볼 수 있다면 제도개선의 효용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그 일을 할 '민간'이 어디 있을까? 예산 문제도 발생할 텐데.

A. 이미 자체 등급분류 제도에 들어온 게임, 그리고 아케이드 게임을 빼면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이슈가 되는 게임 자체의 모수가 적다. 그 정도 부분이라면 민관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기존의 GCRB에 이용자 목소리를 반영해 민간에 가깝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이고, 업계와 전문가의 목소리를 참고하는 한편, 관에서도 행정 전문가가 파견되는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정도의 심의 기구라면 업계나 이용자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민생토론회에서 게임물 등급분류 단계적 민간 이양을 언급했다.

Q. "게임을 질병으로 음해하는 세력"을 상대로 한 여론전을 예고했다. 어떤 활동을 펼칠 계획인가?

A. 당장 소송까지 가고 그런 건 아니다. (웃음) 게임 문화에 대한 인식개선에 대한 캠페인 차원의 이야기다. 게임이 문화예술이지만 아직 산업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서 게임의 순기능을 널리 알리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소위 질병화 세력이 부당한 방향의 활동을 한다면, 법적·제도적 조치까지 고민하고 있다. 그런 발언이 이용자 명예를 훼손하거나, 영업자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게임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산이 최우선이다.


Q. 이런 시민단체 운동은 늘 기성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A. 협회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어떤 정치인이든 게임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기존 질의서도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게임에 대한 전문성과 고민의 깊이를 기준으로 검토하려 한다.


Q. 1년 사이에 게임 소비자운동을 전개하는 시민단체가 두 곳이나 생겼다. 초대 협회장으로서 이 일을 어떻게 보는지?

A.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독점이라는 게 시장에도 안 좋지만,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단체가 여러 목소리를 내야 부패하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이용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단체끼리 모여 토론회를 열거나 정책교류, 협력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소비자라 하더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대변되는 게 (게임 바깥의) 다른 주체들이 보았을 때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Q.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집단소송에 시민단체 운영까지 맡으려면 매우 바쁠 것으로 보인다.

A. 게임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야다. 덕업일치의 차원에서 활동을 하다가 이런 전문성을 얻게 됐다.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계속하려 한다. 

앞으로는 게이머들이 직접 협회를 직접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느낀다. 법인 설립 허가가 완료되고 내부적으로 안정된 시기가 온다면,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이 자율적으로 단체를 이끌 수 있게끔 협회장 자리를 넘겨드리고 싶다.

그리고 다시 게임 전문 변호사로서 여러 활동을 조력하는 위치로 돌아가고 싶다. 게임산업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고, 그 규모도 커지고 있다. 최근 집단소송 이외에도 게임사 간 저작권 분쟁 등이 발생하고 있다. 변호사의 역할이 아직 많다고 생각한다.

전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