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시리즈 팬'이 <스토커 2>를 안 사면 범죄다!
<스토커> 시리즈를 이야기하자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기자는 이 시리즈에 할 말이 굉장히 많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크라이나 게임이고, 완성도는 미흡하지만, 동유럽권 게임 특유의 우중충한
분위기를 '정말로' 잘 살려내서 세계 각지에 마니아층이 많다. 2009년 나온 <콜 오브 프리피야트> 이후 개발사와 나라를 둘러싼 '수많은' 사정으로 인해
약 15년 간 후속작이 못 나왔다.
이 시리즈에 대해서 항상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토커 2> 출시를 앞두고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와 기대를 부추기는 유튜브 동영상이 나오고 있지만, 어린 시절 원작 3부작에 시간을 바친 게이머로써 소문만 듣고 'AAA급 퀄리티'나 '혁신적인 시스템', '최고의 기대작'의 모습을 이 게임에 기대하면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상당히 쌈마이한 게임이고, 항상 버그가 많았고, 퀘스트는 다소 거칠고, 이번에도 똑같다.
하지만, <스토커 2>는 '팬 입장에서' 너무나 좋다. 리뷰 기간이 지스타 2024과 겹쳤기에 아직 20시간 정도밖에 플레이하지 못했지만, 일단 엠바고에 맞춰 글을 쓰고 필요하면 추가 칼럼을 쓰기로 결심할 정도로 좋았다. 원작 팬이면 반드시 구매해야 하고, 시리즈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정보를 알아보고 충분히 구매를 생각해 볼 법하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 언리얼 5로 묘사한 미스테리한 세계, 압도적인 날씨 표현
언리얼 5로 표현해 낸 세계관의 분위기, 이 점이 무엇보다 <스토커 2>에 있어 중요하다.
앞서 <스토커> 시리즈는 '분위기'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아니 게임이 재미있어야지, 워킹 시뮬레이터도 아니고 무슨 분위기 같은 두루뭉실한 단어로 평가를 해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원작 시리즈를 해봤다면 정말로 이것을 말할 수밖에 없다. 방사능과 이상 현상이 가득한 ZONE이라는 위험한 장소 속에서 밤길을 등불 하나 의지해 돌아다니며 벌벌 떠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이다.
ZONE은 <스토커>의 배경을 말한다. 체르노빌 발전소 근교를 게임 내에서는 ZONE이라고 부르는데, 실제 역사와 달리 추가적인 폭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작의 스토리에 따르면 비밀스런 과학자 집단의 소행으로, 덕분에 사람에게 위험한 '이상 현상'과 방사능 괴물인 '뮤턴트'로 가득한 장소가 됐다. 이 이상 현상 속에는 '아티팩트'라는 희귀한 물건이 나오는데 매우 비싸게 거래돼 불법으로 군사경계선을 넘어 수집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런 과정이 수년간 이어지며 아티팩트를 얻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 연구를 위해 온 과학자, 도망쳐 온 범죄자, 돈을 벌러 온 용병, 이들을 제지하고자 하는 우크라이나 내무군이 뒤섞여 ZONE은 하나의 무법 지대처럼 되어 버렸고, 이들을 통칭해 '스토커'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 속에서 한 명의 스토커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스토커 2>
지금까지 출시된 <스토커> 시리즈는 오랜 연식이 있기에 지금 보면 상당히 투박한 면이 있다. 그 대신 <스토커 2>는 1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만큼 정말로 훌륭하게 발전해서 돌아왔다. 날씨 효과가 특히 극강이다. <스토커 2>는 비주얼적으로나 사운드적으로나 최신 AAA급 탑을 달릴 정도로 을씨년스럽고 변덕스러운 세계를 묘사해 냈다.
폭풍이 치면 화면 이곳저곳에 낙엽이 날아다니고, 천둥번개는 마치 사람 죽일 것마냥 떨어진다. 멀리 보이는 풍경은 황량하기만 하고, 주위에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기다리다 보면 '에미션'이라는 방사능 폭풍이 몰려와서 대피소로 허겁지겁 뛰어가야 할 때도 있고, 종종 에미션을 피해 건물로 사람이 모였는데 서로 적대하는 관계라 총을 쏘며 싸워야 할 때도 있다.
폭풍이 치는 날씨의 연출은 정말로 끝내준다. 빨리 게임 깔고 들어가서 보길 바란다.
사운드 시스템도 상당히 진일보했다. 바람 소리, 수풀이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총 소리, 괴물의 소리 등 다채로워진 사운드가 귀를 풍성하게 한다. 더해서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이상 현상'이 근처에 있으면 특유의 경고음이 울리고, 방사능 지대가 근처에 있으면 지지직거리는 가이거 계수기 소리가 난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랜덤 인카운터'가 덧붙여진다. 사람 소리가 나서 갔더니, 목소리를 흉내내고 사람을 유인해 잡아먹는 '바윤'이라는 괴물이 공격해오거나, 무언가 들어가면 무서울 것을 마주칠 것만 같은 동굴이 등장한다.
밴딧이 돈을 노리고 습격해 오기도 하며, 공격받아 살려달라는 스토커의 무전이 전해지기도 한다. 저 멀리서 알 수 없는 총성과 괴성이 들려 오기도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큰일날 것만 같은 거대한 이상 현상이 존재하기도 하기도 하며, 잘 보이지도 않아서 생각 없이 근처로 이동하면 요란한 경고음이 나온다.
개발진이 출시 전 동영상에서 강조한 것처럼, <스토커 2>는 전작과 동일한 맵을 사용하지만 탐험 포인트가 더더욱 늘어나기도 했다.
맵을 지나가다 무언가 있을 것 같은 폐건물에 들어서면, 건물 안에는 큰 구멍이 있고 안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괴성이 울려퍼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안쪽에는 시체와 이상 현상이 가득하며, 가이거 계수기는 기분 나쁜 방사능 경고음을 내뿜는다.
이 모습을 보고 "와우! 당장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시리즈 내내 이야기되는 <스토커>의 분위기와 탐험이다.
그리고 이런 탐험과 위기의 연속을 거쳐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안전한 지대로 돌아가, 모닥불에 걸터앉아 전리품을 정산하고 우크라어로 들리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들으며 기타 연주를 감상하면 당신은 이미 베테랑 스토커라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스토커>는 NPC가 무작위로 연주하는 기타 음악의 퀄리티가 높아 주목받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무려 플레이어가 직접 기타를 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모닥불에 서로가 옹기종기 모여 쉬는 장면은 <스토커> 시리즈를 대표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번작은 직접 기타를 칠 수도 있다!
강화된 연출 덕분에 '아티팩트'를 찾는 과정도 상당히 즐거워졌다. 아티팩트는 보통 이상 현상이 밀집한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데, 아티팩트가 근처에 있으면 소리로 알려 주는 스캐너를 들고, 이상 현상을 피하기 위해 볼트를 던지며 위치를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이상 현상이 볼트를 던지는 것으로 발동시켜 잠시 무력화할 수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런 이상 현상 속에서 안전한 틈새를 찾으며, 미친 듯이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하며 줄타기를 하듯이 들어가 정확한 위치에 다가서면 허공에서 등장한 아티팩트를 재빨리 낚아 채면 된다. 오랜만에 이 과정을 경험하니 상당히 즐거웠다.
위험하면서도 즐거운 아티팩트 탐색. 익숙해지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상 현상을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관건이다.
새로 생긴 이상 현상. 짜증난다.
새로운 이상 현상도 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다가서면 주인공을 할퀴며 곧바로 출혈 효과를 주는 것, 섬광탄처럼 터지면서 큰 피해를 주기에 반사 신경으로 피해야 하는 것, 마치 포탑처럼 위치해 있다가 주인공이 다가서면 주인공을 조준해 용암을 내뿜는 것들이 있다.
거대한 이상 현상이 등장하기도 한다. 거대한 구체가 시간마다 주위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고 있다거나, 겉으로 보면 예쁜 꽃밭이지만 들어서면 환청과 함께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끝없이 들리다가 끝내는 플레이어의 정신을 앗아가는 곳이 있다. 강화된 그래픽 덕분에 묘사와 디자인도 빼어나다.
이처럼 <스토커 2>는 오직 GSC 게임 월드만이 묘사할 수 있는 을씨년스러운 ZONE의 분위기에, 언리얼 5를 통한 최신 그래픽과 사운드로 플레이어의 눈길을 사로잡고 탐험 욕구를 끌어올렸다. 오류를 심심하면 뿜어내는 자체 엔진을 버리고 언리얼 5를 선택한 것은 정말로 현명했다.
다만, 최적화는 아쉽다. 기자의 컴퓨터가 관리를 잘 하지 않아 노후화 문제가 있기에 섣부른 평가는 어렵지만, DLSS나 프레임 보정 시스템을 키지 않으면 프레임이 널뛰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DLSS의 존재 덕분에 저사양에서도 어느 정도 할 만은 하다.
진일보한 그래픽과 연출 덕분에, 걸어다니기만 해도 즐겁다
<스토커 2>가 보여주는 분위기는 마스터피스다.
이 장소도 실제로 나온다. 스크린샷 촬영을 깜빡해 공식으로 대체했다.
풍경을 보자마자 "풀 옵션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GSC)
# 투박하고 낡은 게임플레이
그 대신 게임플레이는 다소 투박한 편이다. UI만 보아도 참으로 쌈마이한데, 다른 게임 시스템은 어떨지 말하지 않하도 알 수 있으리라.
<스토커 2>의 건플레이 감각은 <콜 오브 프리피야트>에서 보여줬던 것과 거의 똑같다.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전작을 해 보면 정말로 같은 느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AI는 상당히 어렵게 나온 편인데, 주인공이 엄폐하고 붕대를 감으며 한 숨을 돌리려 하면 귀신같이 각을 좁혀 온다. 계속해서 측면을 우회해 사격하려고 시도하고, 주인공이 엄폐하면 끝없이 수류탄을 던진다. 정말로 심심할 때마다 수류탄을 던져대기에 <콜 오브 듀티>의 최고 난이도를 플레이하는 느낌이다.
"2024년 게임의 UI"
창고 정리를 할 때는 정말로 토가 나온다...
개조 UI도 솔직히 말해 칭찬하기 어렵다. 불편하다.
<스토커 2>의 초반부는 까다롭다.
노하우가 없다면 정말 신나게 죽을 것이다. 시리즈 내내 그렇긴 했지만.
게다가 원작 <스토커> 처럼 방어 관통 탄을 가져오거나 쏘는 족족 헤드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면 사살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 게임 초반부는 조금 어렵다. 좋은 장비나 아티팩트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면 툭하면 출혈이 발생하는 것도 여전하다. 게임의 특성 상 수풀에 많기도 한데, 적은 수풀 사이에서 주인공을 곧잘 알아보고 엄청난 정확도로 사격해 오기도 한다.
뮤턴트나 이상 현상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초반 약한 방어구를 입은 주인공이 손쉽게 쓰러지기도 한다. '블러드서커'와 강력한 적이 게임 초반에 튀어나오고, 보이지 않는 '폴터가이스트'나 정신 공격 연출로 유명한 '컨트롤러'는 더욱 강력해졌다.
약간 긁힌 방어구 수리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요구하는 악랄하고 이상한 경제도 여전하다. 적을 사살하고 시체를 뒤져 봤자 받는 것은 꼴랑 총알 몇 발이라 만성 부족이다. 적의 총기를 주워도 항상 고장 나 있으며, 고장 난 총기는 상인이 매입을 거부한다. 전리품 몇 가지 바리바리 싸들다 보면 어느 순간 과적이다. 전작 경험이 없다면 온갖 이상 현상과 뮤턴트의 공격에 신나게 사망 화면을 볼 것이다.
그래도 노하우만 있다면 난이도는 빠르게 완화되는 편이다. 스토커들은 마치 새처럼 자신만의 둥지를 트는 버릇(?)이 있는데, 게임 내에서는 '은닉처'라고 불린다. 시체를 뒤지거나 퀘스트를 완수하다 보면 보상으로 여러 은닉처의 위치를 받을 수 있으며, 대부분은 탄약+술로 이루어져 있지만 종종 유니크한 무기나 방어구를 얻을 수 있어 가능한 한 많이 조사하는 것이 권장된다.
탐험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난이도를 빠르게 낮춰 주기 위한 퀘스트도 있다. 여러 은닉처를 알려 주고 하나하나 탐험하게 하는 퀘스트인데,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근처를 지나갈 때 한 번씩 들러 주면 유니크 무기와 방어구를 준다. 사실상 필수 퀘스트나 다름없다.
은닉처를 찾으며 자원을 모으는 것도 게임의 주요 콘텐츠기에 앞서 말한 '탐험의 분위기'가 중요하기도 하다. 두 요소의 시너지가 이번 작품에서도 잘 나왔다.
숲에서 싸우면 정말로 곤혹스럽다. 적이 안 보인다.
이전에 우크라이나 전쟁 캠을 본 적 있었는데, 정말로 그 느낌이다. 문제는 적이 백발백중 명사수란 것
맵 곳곳에 위치한 은닉처들
위치는 퀘스트 보상으로 받을 수도 있다. 그런 곳은 꼭 가야 한다.
그 대신 은닉처를 찾는 과정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은닉처는 보통 가기 어렵거나 숨겨진 장소에 있다. 맵에 표시되는 위치를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 보면, 분명 1m 앞에 위치해 있는데 도저히 보이지 않아서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도는 경우가 흔하다.
벽을 오르는 '파쿠르' 시스템은 없지만, 오브젝트를 타고 평소에는 올라갈 생각조차 들지 않는 곳에 가야 하기도 한다. 눈썰미가 좋거나 전작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지만, <스토커 2>로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괴로울 수 있다.
나아가 게임의 퀘스트도 위에서 말한 은닉처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스토커> 시리즈는 '게임을 위한 레벨 디자인'보다는 분위기와 묘사를 위해 '일단 최대한 장소를 만들고 여기에 퀘스트를 넣는 방식'으로 게임을 만든다. 개인적인 생각이고 글로만 봐서는 와닿지 않겠지만, 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전혀 상점이 아닌데, 들어가 보면 상점이다. 상점 등이 있는 기지로 들어가려면 입구를 한참 찾다가,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는 문을 찾고, 들어가 좁은 길을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거대한 쓰레기 산의 맨 꼭대기로 올라가게 시키더니, 내려오는 길은 거의 숨겨두듯이 배치해 당황스럽기도 했다.
좋은 레벨 디자인을 가진 게임의 "여기로 내려가"같은 친절한 대사나 대놓고 '여기가 길이에요', '이 곳은 이런 장소입니다' 같은 친절한 구성은 이 게임에 없다.
길찾기가 곤혹스러울 때가 많을 것이다.
퀘스트에서 개발진이 의도한 '서순'이 어긋나면 당황스러운 상황과 마주하는 경우도 있다. 요구하는 물건을 찾고 돌아왔더니, 문이 잠겨 있는 식이다. '메인 퀘스트 진행 불가 버그'일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탐험해 보니, 컷신 연출을 위해 특정한 문으로 들어가야 하도록 의도한 것임을 알고 겨우내 안심할 수 있었다.
퀘스트 클리어를 위해 경로를 상세하게 알려 주거나 하는 시스템이 없기도 하다. 비슷하게 생긴 장소를 계속해서 돌며 문을 찾아야 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오브젝트 같은 것은 없다.
퀘스트 동선이 중구난방이라 계획을 짜고 이동 동선을 예쁘게 그리기 어렵고, 많은 시간을 걷거나 뛰는 데 쏟아야 하기도 한다. 참고로 <스토커> 시리즈는 빠른 이동이 없다. 거점에서 '안내 스토커'를 통해 돈을 내고 거점과 거점 사이를 이동하는 정도다.
여기에 아쉬움 하나를 이야기하면, 낙사에 대한 판정이 상당히 강화됐다. 원래도 그랬지만 조금만 높은 곳에서 잘못 점프해도 낙사한다. 기자는 20시간을 하며 10번 정도 죽었는데, 여기서 대부분이 낙사다. 참고로 사망하면 지금까지 몇 번 죽었는지 알려준다. 죽기 전에 세이브 로드를 빠르게 하면 의미 없긴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저 숫자가 사람 놀리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것이다. 음음.
# 팬을 위한 스토리
스토리에 대해서는 기대하지는 않는 편이 좋다. 간단히 시놉시스를 설명하면 주인공인 '스키프'는 군 출신으로 전역해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어느 날 집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알 수 없는 아티팩트를 하나 얻는다. 이 아티팩트를 재활성화시켜서 비싸게 팔고자, ZONE에 신참 스토커로 들어왔다가 온갖 일을 겪는 것이 주된 줄거리다.
문제는 사전에 공부를 하고 오지 않았다면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기 조금 벅찬 편이다. 설정이나 배경 설명을 안 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신 게임처럼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지는 않는다.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듯한 연출과 대사도 많다.
그래도 <스토커> 시리즈가 본디 스토리에 집중한 게임은 아니기에 기본적인 설정과 흐름만 이해하면 몰입이 깨지지는 않는다. ZONE은 일확천금이나 스릴을 꿈꾸는 사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범죄자, 과학자, 군인, 비밀 집단에 세뇌당했던 사람 등 온갖 인간 군상이 모인 무법지대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콘셉트만 알고 있으면 된다.
무법 지대답게 ZONE은 차갑다. 모두가 숨 쉬듯이 사기를 치고 남을 배척하는 곳이다.
여러 서브 퀘스트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원작 팬들에게는 상당한 리스펙을 보여 준다. 마치 "오래 기다렸지?"라고 말하는 느낌인데, 스토리 초반부터 전작의 스토리에 관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언급된다. 첫 게임인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의 주인공 '스트렐록'은 아예 전설로 묘사되고, 두 번째 게임 <클리어 스카이>의 주인공 '스카'는 초반부부터 협력자로 등장한다.
세 번째 게임 <콜 오브 프리피야트>의 주인공 '덱탸레프 소령'도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고 언급되는데, 이 게임의 주 무대였던 '자톤'이 그대로 나온다. <콜 오브 프리피야트>는 선택에 따라 여러 등장인물과 기지가 다른 결말을 맞기도 했는데, 이 점을 의식한 것인지 등장인물이 그대로 등장해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동료 중 하나였던 '스트라이더'는 아예 한 집단의 수장이자 주요 인물이다.
자기 배를 술탄에게 빼았겼다는 비어드
아니 분명 전작에서 다 해줬잖아!!!
스카, 스트라이더, 스트렐록, 덱탸레프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인물이 자주 언급된다.
다채로워진 컷신 연출도 눈에 띈다. 이전 <스토커> 시리즈는 NPC의 AI 문제와 겹쳐서 다소 실소가 나오는 연출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모션 캡처를 통해 타 AAA 게임과 비교할 만한 퀄리티를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트레일러 등지에서 컷신 연출이 너무나 많아 불안했지만, 리뷰 버전 기준으로 훌륭하게 나와 안심했다.
다만, 뜬구름 없는 대사나 애니메이션은 조금 감안해야 한다. 마치 캐릭터들이 "나 멋지지?"하는 느낌으로 대사를 읊으며 뜬금없는 동작을 하는데, "뭐지?" 싶을 때가 있다.
컷신은 상당히 잘 만들었다.
# 원작 팬이라면 반드시 구매! 아니라면...
<스토커 2>는 원작 팬이라면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타이틀이다. 안 사면 범죄다. 최근 리메이크와 리마스터가 이어지며 종종 '원작 능욕'이 발생하는 시대지만, <스토커 2>의 게임플레이는 정말 '그 때, 그 느낌, 그대로'라고 할 만큼 너무나 원작의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좋은 의미, 나쁜 의미에서 모두 그렇다. PDA 사운드도 그대로 사용해서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IP 게임은 역시 만들던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 최적화 문제와 여전한 버그마저 원작 고증처럼 느껴졌다. 게임이 끊기는 것을 보며 그래픽 카드 '7600GT'를 혹사해 가며 <클리어 스카이>를 플레이하던 학생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버그마저도 추억을 되살렸는데, 침대를 공중 부양하면서 자는 NPC, 총으로 쐈더니 멀리 회전하며 날라가는 시체, 갑자기 시체가 고무처럼 늘어나는 모습, 바로 앞의 길을 못 찾고 제자리를 빙빙 도는 NPC를 보며 반가운 마음에 신나게 웃었다. ZONE에서 이런 모습들은 일상이니 익숙해져야 한다.
스토커들의 대기 모션이 다양해지기도 했다. 사진은 기지에서 스쿼트를 하는 녀석
저 모습으로 저러니... 묘하게 웃기다.
원작 팬이 아니라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서의 탐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유할 만하다.
많이 낡은 게임 시스템과 불합리함, 심심하면 터지는 버그를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도 '반드시' 필요하다. 생소한 게임이라는 점과 시스템이 많이 낡았다는 점만 넘어서면 언리얼 5로 구현된 화려한 그래픽과 음울한 세계관이 반겨 줄 것이다.
최근 언리얼 5로 시연되는 게임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는 하는데, <스토커 2>가 2025년 이어질 '차세대 게임' 출시의 서막을 연 것처럼 느껴진다. 끝없이 연기된 이 우크라이나 게임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기자도 리뷰판을 받아 보기 전까지 의심했다.
이 리뷰는 20시간을 플레이하고 급히 작성한 것이기에 나중에 손바닥 뒤집듯이 평가를 바꿀 수도 있지만, 일단 뭐라도 써야 한다고 마음먹었을 만큼 '팬' 입장에서는 좋다. 참고로 <스토커>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영어 더빙이 별로니 우크라이나어로 하시길.
이 조형물을 시작부터 보여줄 줄이야.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의 한 일러스트에 등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