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TIG 20] 민트로켓의 하루 (下)

우티 (김재석) | 2025-04-25 23: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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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모든 소리는 스티븐을 통한다


스티븐 모(Stephen Mo), 캐나다 국적으로 한국 이름은 모세은. 모세은은 민트로켓의 사운드 디자이너다. <데이브>에서 나오는 오디오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간다. <데이브>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서 그는 <고 벨루가 고>(Go Beluga Go), <메모리 오브 마키스 파더>(Memory of Maki's Father)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황재호 대표는 2023년 인터뷰에서 "오디오 쪽에서" 상을 받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넥슨에서 가장 업력이 오래된 사운드 디자이너는 지금 민트로켓에서 일하고 있다. 모세은 디자이너는 <마비노기>, <크레이즈 아케이드>, <버블파이터>, <피파온라인 3>, <카트라이더>의 사운드를 디자인한 베테랑 작곡가다. <메이플스토리 2>의 사운드트랙에는 거의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데이브>에는 육지와 바다를 오가는 넓고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여러 색깔의 음향이 필요했다. 


하이드로폰(수중용 마이크)에서 물 속에서 첨벙거리는 사운드를 녹음하는 등 폴리(Foley) 작업도 모두 모 디자이너가 도맡았다. 수심에 따라 달라지는 음역대를 찾기 위해 모 디자이너는 상용 라이브러리를 뒤적이는 대신 직접 장비를 들고 <데이브>의 소리를 색칠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직원들과 스튜디오에서 '더프의 리듬게임'을 위한 함성소리를 녹음했고, 개발자를 불러모아 '멈블'을 시키며 가상의 목소리를 뽑아냈다.


그는 다른 개발자들과 마찬가지로 정글 DLC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게임플레이 템포를 직접 점검하면서 맞는 음향과 효과음을 찾아내는 것은 그에게 철칙과도 같다. '선배'에 해당하는 <서브노티카>와 <압주>의 사운드트랙을 참고했으나, 직접 게임을 보지 않으면 절대로 곡이 나오지 않는다. 트레일러에 공개된 것과 같이, 정글 DLC의 메인 콘셉트는 아웃로 컨트리다. 황재호 대표가 즐겨 듣던 뮤지션 찰리 보넷 III(Charlie Bonnet III)을 가까스로 섭외했다.


모 디자이너는 "황재호 대표가 사운드에 관심이 워낙 많기 때문에, 혼자 일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넥슨 밴드(넥밴)의 보컬 출신으로 음악에 관심이 많은 황 대표는 <데이브>에 들어갈 사운드의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고 있다. 대학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모 디자이너는 <용과 같이> DLC의 메인 테마를 헤비메탈 풍으로 작업했는데, 이는 그의 커리어에 기록된 첫 메탈이다. <데이브>를 하면서 온갖 음악과 효과음을 다 작업 중인 그는 "매번 다 어렵다"고 계속 강조하면서도,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넥슨에서 가장 오래된 사운드 디자이너는 지금 민트로켓에서 일하고 있다



16:48 분홍 광인이 전하는 <데이브> 사랑


분홍색 옷으로 단장한 신유진 커뮤니티 매니저


게임사 사람들은 대개 회사 후드를 즐겨 입는다. 정확한 통계 같은 건 없지만, 넘치는 애사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편해서 회사 후드를 입는 경우가 많다. 체크 남방은 개발자 사이에서도 유행이 지났다. 본론과 관계 없는 여담인데, 판교 개발자들의 미적 감각을 진보시키는 데 <피식대학>의 <05학번이즈히어>가 적잖은 공헌을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따라한 '신도시 아재룩'을 보고 '아재'들은 급하게 본인의 패션을 점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유진 매니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으로 무장했다. 게임사에서는 보기 드문 옷차림이다. 분홍색 골지 니트, 분홍색 조거 팬츠, 분홍색 후드 집업, 분홍 안감의 운동화까지. 테이블에는 분홍색 티슈곽이 있고, 그 옆에는 또 분홍색 유니콘 봉제 인형이 있었다. 분홍색 마우스패드를 쓰던 그녀가 마우스를 조작해 분홍색 구글 크롬 기본 화면을 보여줬을 때 '<세상에 이런 일이> PD와 같이 올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영미권 <데이브>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데이브>는 영어 사용 국가에서 큰 히트를 쳤기 때문에 디스코드와 트위터에서 영어로 유저들과 소통하는 것이 그녀의 미션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커뮤니티인 레딧에 버그 제보 등이 올라오면 그것 또한 확인해서 전달한다. 비슷한 제보 시스템은 디스코드에도 마련되어 있다.


게임만큼이나 게임에는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많다. 분홍 광인 신유진 매니저는 두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 지난 만우절 공개되어 17만 뷰를 기록한 '데이브 더 다이버 리마스터' 영상은 민트로켓이 <데이브>의 팬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로 파누간티(Ro Panuganti) 씨는 <데이브>의 팬으로 3개월 전 '데이브 더 메탈 다이버'라는 이름의 팬 비디오를 찍어 올렸다. 이 영상을 감명깊게 본 민트로켓은 해당 유튜버에게 메일을 보내 함께 만우절 영상을 만들었다. 공식과 팬의 콜라보레이션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한 미국인 팬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개발팀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이에 그는 무작정 넥슨코리아를 찾아 개발자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프런트에서는 약속 없이 회사를 찾아온 사람과 개발자의 만남을 주선할 수 없었다. 대신 대표 메일을 받은 팬은 만남을 호소하는 메일을 남겼고, 결국 만남이 성사됐다. 황재호 대표, 우찬희 기획팀장, 서보성 프로그램팀장, 정기엽 AD까지 출동해 노트에 빼곡히 적어온 팬의 질문에 답하고, <데이브> 패키지에 싸인을 남겼다. 


자신의 일인 것처럼 신이 나서 두 일화를 이야기한 신 매니저는 <데이브>의 팬들에게 "너무 너무 고맙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유저는 <데이브>로 인생을 살아갈 열정을 얻었다고 한다. 게임이 즐거운 시간이 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유저에게 살아갈 의미를 부여주고 계시다니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커뮤니티와 함께 나아가는 것이 <데이브>의 게임 운영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무작정 넥슨을 찾아 <데이브> 개발자들을 만나려 한 팬(가운데)과 그 소원에 응답한 민트로켓



17:01 행보관의 고민


민트로켓의 인사, 총무, 재무 업무는 단 두 사람이 맡고 있다. 넥슨코리아에서 지원받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확장세의 회사에는 새로운 인이 필요하다. 민트로켓은 지금 경영지원 담당자를 채용고 있다. 그 채용이 완료되기 전까지 더 바쁘게 지내야 할 민경오 경영관리팀장은 원래 넥슨 조직문화실에서 법률검토 업무를 해왔다.


법전 앞에 있던 그는 이제 줄자를 들고 3층과 4층을 오간다. 그는 "스타트업 특징은 내가 다 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사옥을 위한 모든 실무에는 민 팀장이 있었다. 황재호 대표는 크고 화려하며 상징적인 어항이 회사에 있기를 바랐고, 다이버 자격증을 보유한 김태진 사업전략실장은 '상소문'까지 쓰며 관리의 어려움과 비용 절감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민 팀장은 이 가운데에서 적당한 업체를 찾고, 업체에 수조를 팔아달라 간청하고, 관리 업체와 연락했다. 집에 3톤짜리 어항을 들였다가 바닥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보고 바닥 구조를 새로 설계하도록 협의했다.


받은 명함은 '경영관리팀장'인데 어째선지 자꾸 여섯 글자가 '행보관' 세 글자로 읽힌다. 민 행보관은 조직문화실 출신답게 ​민트로켓이 추구하는 조직문화를 법인 차원에 정착시키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넥슨이라는 한국에서 가장 큰 게임사에서 분사하면서 민트로켓만의 문화를 이식하기 위해 룰을 만드는 것이 그의 핵심 과제다.


"민트로켓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고 현실화하기" 위해서 노력 중인 민경오 팀장. 민트로켓에는 포괄임금제가 적용된다. 무수히 많은 게임노동자들이 폐지를 바라는 그 제도를 민트로켓은 되살렸다. "나의 집중 시간에 집중해서 일할 수 있어야 능률이 오른다"라는 것으로 "각자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게" 구성한 것이 민트로켓의 제도다. 일례로 민트로켓에서는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서 하원이나 하교를 돕고, 아이를 돌보다가 다시 늦은 시간 재택근무으로 잔여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허용된다.


민트로켓의 조직 문화를 구성하는 데에는 넷플릭스의 경영 방식을 소개한 도서 <규칙 없음>이 참고됐다. 사무실 이사로 발생한 "간단한 정리거리"를 해치우면서, "회색 지대에 있는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의 다음 과제였다.


민경오 팀장은 거의 종일 기자를 안내하면서도, 회사 사무를 봤다



17:34 물고기 밥 주는 사람, 프로젝트 밥 주는 사람


본인의 또다른 업무, 물고기 DB를 띄워놓은 임소원 PM팀장


임소원 PM 팀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물고기 밥을 줬던 그 사람이다. 민트로켓 안에서 물고기를 가장 사랑하는 이로 정평이 났다. 그녀는 넥슨네트웍스 QA 조직에서 8년 일했고, 이후 PM으로 변신해 2년째 일하고 있다. 황 대표는 그녀의 PM팀에 상어 포스터를 붙였다. 상어처럼 여러 팀을 물어 뜯으며 재촉하라는 의도인가?


그녀는 각 담당자별로 작업 진척도를 체크하고, 빌드를 묶어서 QA팀에 전달한다. 무엇을 업데이트할 건지, 리소스는 어느 정도로 들어가는지, 언제까지 나올 것인지 물어 뜯는다. 지난주 사내 테스트에서의 빌드를 어디까지 할 건지, 테스트 환경은 어떻게 구성할 건지, 테스트 이후 무엇을 물을 건지 정하는 것도 PM팀 몫이다. 물론 테스트 이후에는 테스트 결과 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 


판교 사투리로 '린(lean)'한 업무 방식 덕택에 일하는 속도는 확실히 올라갔다. 외부 콜라보레이션 같은 일은 3명의 PM이 함께 붙어 관리한다. 한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관리하긴 하지만, 경계 없이 각각의 프로젝트를 함께 보고 있다. 임소원 팀장은 용건이 있으면 바로 그 담당의 자리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발표된 대로 2025년 안에 정글 DLC에 나올 수 있을까 물었더니, 웃음이 돌아왔다. 연내 출시를 위해 같은 회사 사람을 압박할 수는 있겠지만, 외부인에게 "그럼요, 올해 안에는 무조건 나오니 기대하시죠"라거나 "에이, 올해는 무슨 2027년에나 나올 거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과연 3인의 민트로켓 PM은 이 미션을 완수할 수 있을까?



18:00 화상 회의


9 to 6의 개발사라면 직원들은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갔겠지만, 자율출근제를 도입한 민트로켓에게 6시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이다. 일찍 업무를 마쳤거나 개인 약속이 있어서 먼저 들어간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다. 오늘은 신규 모 프로젝트에 합류한 해외 개발자들과 상견례가 있는 날이다. 통역과 함께 앞으로의 협업 방향과 업무 능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18:20 속도광 황재호의 끝나지 않는 스파링


황재호 대표는 디렉터룸에서 일하지 않는다. 문이 있으면 문간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절차가 늘어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일상적인 업무 공간의 같은 책상에서 일을 하고, 면담이 있을 때에나 디렉터룸을 쓴다. 종일 민트로켓을 취재하며 궁금한 것을 묻고 답했다. "나보다는 직원분들에 집중해주기 바란다"라는 요청에 의해서 인터뷰 사진은 따로 찍지 않았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



Q. 디스이즈게임: '데브 오브 데이브' 인터뷰 때 3명이 그대로 민트로켓까지 넘어왔더라. 120명까지 T/O 여유가 있는데 대규모 채용을 하지 않고 절반 규모를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A. 황재호 대표: 뽑았는데 우리랑 맞지 않거나 일을 못하면 그것도 문제다. 그래서 보수적이 되는 듯하다. 열정 넘치는 주니어들을 많이 뽑아서 일단 기회를 줘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큰 회사이다 보니 주저하게 되는 점이 있다. AI가 업계의 화두로 올라오면서 어떤 규모가 적합하고 어떤 방식이 최선일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Q. 민트로켓에서는 AI를 어떻게 쓰고 있나?


A. 아직은 최종 결과물에 반영하기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우선은 기획 콘티와 아트 스케치에서 쓰고 있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회의록도 AI로 정리하고 있다. 코딩을 하는 분들은 코파일럿 등을 사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내가 10개 일을 처리하던 시간에 12~13개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느낌? 콘텐츠 생산량이나 대응력은 AI로 빨라지는 게 있다. 근데 그것이 업계 전체의 자리를 줄이는 것인지는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는 작은 규모이기도 하고, 그래픽 엔지니어 같은 특수 직군은 AI로 대체되기도 어렵기 때문에 채용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고 있다.



Q. 아직도 본인을 넥슨맨이라고 생각하나?


A. 넥슨에 대한 마음이 없었다면 민트로켓을 이끌지도 않았을 거다. 넥슨에서 <데이브>로 기회를 받은 거지 않나. <데이브>는 넥슨 월급 받아서 큰 자식이다. 그러니 넥슨에 보답을 해야 한다. 만약에 생판 모르는 데에서 돈 똑같이 줄 테니까 이렇게 일하라고 하면 안 했을 거다. 넥슨에서만 일한지 15년이 되는데, 그간 일하면서 넥슨의 강점도, 약점도 많이 봐왔다. 


지난 10년 내 넥슨코리아에서 나온 게임 중 완전한 신작으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계속 라이브 서비스 게임으로 굴러가던 회사다. 감각있는 개발자들의 센스로 성공하는 것을 체계화하고 표준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제도에 대한 자율이 보장되어야 했다. 그거랑 지분을 맞바꾼 거다. 



Q. 지분 하나 없는 월급쟁이 대표가 된 것인데.


A. 지분이랑 자율권을 같이 요구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자율권이 지분보다 좋다. 자율권이 있어야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그래야 지분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넥슨이 '메던피'(메이플스토리, 던파, FC온라인[옛 피파온라인])로 먹고 사는데, 넥슨 안에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조직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Q. 먼 옛날에는 몰래 게임을 만드는 문화도 있었다지 않나?)


그랬지. '회사에 해가 되는 게 아니라면 해봐'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체계화되었다. 규모도 커졌으니까 모든 일에 보고가 뒤따라야 한다. 예전에는 그냥 게임이 좋아서 넥슨을 보고 지원한 사람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좋은 회사라서 넥슨에 지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인재들이 상향평준화는 됐지만 어느 표준 박스 안에 갇힌 느낌이다. 야성이 많이 떨어졌다. 



Q. 야성을 자주 강조하고 있다. 야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고 있나?


A. 속도를 올려야 한다. 속도가 느리면 시간을 많이 쓰게 되고, 그러면 실수를 무서워하게 된다. 2주 정도 기획했는데 틀렸으면 2주가 날아가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안전하고 검증된 것만 가져올 수밖에 없다. 어차피 잘하는 타자도 4할이고 못하는 타자도 2할이다. 다들 10개 중 6개 이상은 틀린다는 얘기다. 빠르게 초안을 만들어서 검증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만들어서 던지고 '이거 아닌 거 같아요' 하면 다음 것을 만들려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야성의 기본이다. 검토가 길면 방어적이 된다. 지금 그 체계를 만드는 과정 중에 있다.




Q. 그래도 지분 하나 없는 게 아쉽지는 않나?

A. 일단 나는 민트로켓으로 상장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민트로켓이 돈 많이 벌면 연봉을 많이 가져가면 될 일이다.


주식 보상으로 수십 억 대박이 난 분들을 봤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야성'에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주식 보상이 수십 억 꽂히면 관심이 거기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의욕도 떨어지게 되어 있다. 내가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도 못 벌 돈을 한번에 벌은 것 아닌가.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를 해봐야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그러느니 차라리 성공 보수를 잘 챙겨주기로 했다. 성공을 해서 돈이 남았으면 곧바로 줘버리자고. 게임은 개인이 잘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결국 팀 워크 아닌가. 돈 주고 열심히 일하고, 성공하면 과감하게 보상하는 게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Q. 2층짜리 사옥을 하루 종일 둘러봤다. <데이브>는 이만한 독립 사옥을 꾸릴 만큼 돈을 벌었나?


A. 벌었다. 가끔 넥슨 월급 받고 몇 년이나 만들었으니 못 벌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민트로켓은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 없다. 우리는 마케팅에 돈을 거의 안 썼다. 자발적으로 돌아가는 게 더 많다. 또 누구는 '얘네가 성공하니까 콜라보만 한다'고 했는데, 우리도 뭔가 만들고 있다. <데이브> 이름값이 생기니 마케팅비를 쓰지 않아도 성사되는 것들이 있다. 인건비 말고는 거의 안 쓴다.


100만 원 버는 거랑 300만 원 버는 거는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지만, 100만 원 버는 거랑 100만 원 잃는 거는 느낌이 확 다르다. 회사에 적자라는 딱지가 붙으면 제한이 걸리게 되어있다. 민트로켓은 흑자 조직이 목표다. 그래서 기본 목표는 현명한 판단을 통해서 돈을 쓰지 않는 데 있다. 적자 조직이 되면 언제 어떻게든 발목이 잡히게 되어있다.



Q. <데이브>로 얼마 벌었는지 대충 역산이 가능하다. 정가가 있고, 판매량이 나왔으니까. 그걸 감안해도 남았단 이야긴가?


A. 인원 대비로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인센티브로 다 돌려드렸고. 물론 압도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조직이 있지만, 우리는 서버비도 안 나가고 마케팅비도 안 나간다. <용과 같이> DLC가 나오고 스팀 인기 13위를 찍었고, <데이브>가 다시 스팀 차트에 들어갔다. 어떤 분들은 스팀 13위 한 번 들어가보는 게 목표일 텐데 말이다.


이런 부분을 사업팀에서 잘 풀어주고 있다. 플랫폼을 넓히면서 각 플랫폼 회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도 있다. 우리는 무리수를 잘 안 둔다. 오프라인 행사를 하지도 않았고, 브랜드를 확장하기 위해 무리한 마케팅을 하지도 않았다. 사업적으로 확신이 없으면 일을 벌리지 않는다. <용과 같이> DLC 가격을 우리가 오판한 부분이 있는데, 적절한 때에 싸다귀 한 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2만 얼마 내고 20시간, 30시간 즐겼는데 8천 원에에 1시간 분량은 너무 적다'는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DLC니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콘텐츠일 줄 알았는데 스토리가 들어가다 보니까 반응이 달랐다. '정글 DLC도 이렇게 된다면 큰 일이겠다'라고 보고 재정비하는 부분이 있다.


<데이브>는 한국 게임으로는 이례적으로 5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Q. 민트로켓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A. 넥슨이 과거 캐주얼로 성공했는데 지금은 캐주얼게임을 만드는 단위가 없다. 그런 캐주얼게임을 잘 만드는 게 목표다. BMW는 BMW고 미니는 미니다. 그런데 미니에서 8인승 산타페 같은 차가 나온다고 하면 소비자들이 좋아할까? (Q. 컨트리맨 처음 나올 때 반응이 생각난다.미니는 귀여워야 한다. 미니에서 세단이 나오면 브랜드가 깨진다. 민트로켓은 캐주얼게임을 잘 만들 것이다.


스퀘어에닉스 사업 이사였던 제이콥 나보크가 향후 산업을 이렇게 전망했다. AAA급은 더 적어지고, 중간 계층은 30~60달러에서 영역이 생기고, 라이브게임이 플랫폼화될 것이라고.​ 민트로켓이 하려는 게 2번이다. 여기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다. 보신주의로 접근해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1. 상장된 AAA 게임 퍼블리셔는 라이브 게임과 70~150달러의 고정 가격 두 가지 조합으로, '더 적은 가짓수의 게임' 개발에 집중할 것


2. 산업의 중간 계층은 30~60달러로 게임을 판매하는 독립 개발사와 소규모 퍼블리셔의 영역


3. 라이브 게임은 더욱 플랫폼화에 집중하고, UGC(사용자 제작 콘텐츠) 툴을 제공할 것



Q. 바라는 인재상은?


A.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분. 돈이야 우리가 부잣집(넥슨) 막내아들 정도 되니까 업계 기준으로는 적게 주는 건 아니다. 근데 그만큼 치열하게 싸워서 일할 수 있는 분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도 사내 개발 중인 모든 프로젝트와 작업물에 관여한다. 이것이 한 방향으로 가기 위한 방책이고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주간 미팅 등을 통해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Q. 일인 집중 시스템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황 대표 본인이 없으면 모든 것이 중단되지 않나.


A. 원래 중형 바이크로 출근했는데 경영진께서 '이런 구조라면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다. 동의해서 바로 처분했다. 지금 민트로켓에서 나오는 물건에 통일감이 있기 위해서는 내가 봐야 한다. 나는 민트로켓이 자회사가 아니라 레이블이라고 생각한다. 박진영 없는 JYP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 쪽에 레이블 체제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걸 해보고 싶다.


MMORPG를 만드는 레이블은 MMO 만들고, 서브컬처 게임 잘 만드는 레이블은 서브컬처 만들고. 그 레이블에 자율권을 주는 거다. 잘 하는 사람이 잘 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게끔. 우리가 <데이브>로 성공했다고 해서 넥슨게임즈처럼 <퍼스트 디센던트>를 만들 수 있느냐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블루 아카이브>를 만들 수 있나? 그것도 아니다.


잘 하는 걸 잘해야 한다. 아까 인재상 이야기가 나왔지만 '저는 이거 하나는 진짜 잘해요' 싶은 사람들을 데려오고 싶다. 우리 노하우는 캐주얼에 모여있다. 물론 우리 개발자들이야 <오공>도 하고 <니케>도 즐기지만, 그건 취미고 이블팩토리 때부터 우리가 진짜 잘 만드는 건 캐주얼게임이다. '하드코어도 하고, 고포류도 하고, 방치형도 하나 만들어야지…' 이런 모델은 흐트러질 거라고 생각한다.


민트로켓은 싱글A의 최강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YG가 악동뮤지션을 발굴했듯이 인디 원석을 발굴해서 다듬어내는 일도 장기적으로 해보고 싶다. 지금은 내가 다 작곡을 하고 있다면, 나중에는 체제가 갖춰져서 발굴하러 다니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꼭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도 훌륭한 인디 팀이 많이 있다. 나중에는 더 성장한 민트로켓 이름 값을 그분들에게 빌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Q. 민트로켓에 오지 않고 넥슨에 남은 개발자는 얼마나 되는가?


A.​ 몇 분 있다. 그 중에 서너 분은 꼭 모시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항공모함의 승조원으로 있는 게 해적선 갑판장보다 낫겠다는 판단으로 이해했다. 쿨하게 보내드렸다. 포괄임금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도 합류가 어려웠다. 다만 민트로켓은 빨리 많이 일하고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Q. 독특한 개발 방식이 외부에 어떻게 비추어질지 부담이 들지 않나?


A. 남들 시선은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결과물(게임)로 싸우는 거 아닌가.



Q.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A. <데이브>는 굉장히 라이트하고 B급 유머가 있는 게임이다. 이 노선에서는 원탑을 찍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데이브> IP를 놓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아들하고 게임을 자주 하는데, 막상 둘이서 같이 재밌게 할 게임이 많지 않더라. 캐주얼의 궁극은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닌텐도 게임처럼 다 같이 앉아서 하는 유쾌한 게임. 그런 걸 만들어 보고 싶다.



19:02 진순 먹는 픽셀 디자이너


19시 20분, 황재호 대표와 저녁을 약속했다. 회의실에서 나온 쓰레기를 치우러 라운지에 갔더니 임주현 픽셀디자이너가 테이블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인터뷰 당첨이다. 민트로켓에는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다. 임주현 디자이너는 아침 9시에 출근해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다. "저녁 먹고 가려고..." 했던 그녀는 요기를 하려던 차에 기자에게 걸린 것이다.


"일이 많은 날은 많이 하고, 병원 가는 날은 5시에 자유롭게 가시기도 하고..." 그녀는 좀처럼 문장의 끝을 맺지 않았다. 컵라면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갓 끊은 나무젓가락은 한 번도 컵라면 국물 안에 담기지 않은 듯 깨끗했다. 아무래도 라면이 불어버리는 것은 취재 윤리에 어긋난다. 그녀는 한 젓가락도 입에 대지 않았다. 밥 먹는 사람을 붙잡는 것은 매너가 아니다. 서둘러 그녀 시선에서 사라졌다.


컵라면은 진라면 순한맛이었다.


라면이 불을까봐 인터뷰를 서둘러 종료했다



19:38 저녁식사


해가 길어졌다. 7시 30분 넘는 시간에 바깥에 나왔지만, 바깥은 밝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를 요청했지만 손님 생각을 아예 지울 수는 없었는지 광양불고기집까지 왔다. 송구스러운 자리에는 황재호 대표를 포함해 다섯 명이 동석했다. 국물 없이 석쇠 위에서 바싹 구운 불고기를 집어먹었다. 다섯 사람 모두 일을 잠시 끊고 나온 것이라서 본격적인 술자리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골프 이야기가 나왔다. 황재호 대표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게임 업계에는 골프 모임이 꽤 성행 중이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곳에서 좋은 정보가 도는 모양이다. "기자님은 골프 치세요?"라는 질문이 나왔고 웃음으로 무마했다.​ 민트로켓 사람들도 비즈니스 골프는 치지 않는 듯했다. 배드민턴 모임을 이끄는 사람도 있었고, 남편과 때때로 골프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비즈니스 골프는 아니었다. 황 대표는 5월 1일 내한하는 건즈앤로지스를 보러 갈 거라고 그랬다.


불판 위에는 불고기만 올라온 게 아니었다. 시시콜콜한 세상 살이도 같이 올랐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는 여기 싣지 않기로 한다. 업무 이야기, 업계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디스이즈게임은 어때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에는 세상 난감했다. MBTI 이야기도 나왔다. 황재호 대표도, 민경오 팀장도 ENTJ라고 그랬다. 기자는 '김영하 작가가 그러던데, 직접 보는 MBTI보다 남이 보는 MBTI가 진짜라더라' 이야기하려다 참았다. 대화에 찬물을 끼얹기는 싫었다.


"민트로켓에는 괴짜 같은 사람들만 있다"는 말이 나올 쯤, 연변 말씨 종업원이 "아홉시 마감"이라고 알려왔다. 조선족 자치주에서 온 사람이 판교에서 구워주는 광양불고기라니 혼자 웃었다. 일행은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판교에서 기자의 집까지는 2시간이 족히 걸리므로 더 남아서 취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광역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이제 해는 다 졌고 고층빌딩 위로 달이 떴다. 거리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 하나 없었다. 북적했던 판교는 퇴근 시간이 지나면 유령도시가 된다. 밤이 되니 바람도 차가워졌다. 이노밸리 앞 육교를 건널 무렵, 코에 라일락 냄새가 전해졌다. 밤 공기가 시원했다. 같이 저녁을 먹은 다섯 사람은 이노밸리 건물로 돌아갔다. 일할 시간을 뺏은 것만 같아 미안했다. 21:03, 민트로켓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업무를 마무리하러 사옥으로 돌아가는 민트로켓 임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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