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오랫동안 존재는 알고 있으나 막상 직접 접해볼 기회는 없었던 게임이 한두 개쯤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본인에게는 <루나> 시리즈가 딱 그런 게임이었다. 오래 전부터 게임 잡지를 통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터넷의 게임 커뮤니티나 게임 웹진 등을 통해 접해봤고 존재 자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직접 플레이해볼 기회는 전혀 없었다. 당시로써는 고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보유한 게임이라는 말도 있었고 소년과 소녀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게임으로도 꽤나 유명했던 것 같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그런 요소들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JRPG 장르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거의 빠짐 없이 즐겨왔었고, 비록 리뷰 작성까지 다다르진 못했을지라도 최근에 출시됐던 JRPG를 이것저것 꾸준히 플레이했다.
그런 본인에게 있어 루나 시리즈는 미처 딛어보지 못한 징검다리의 돌 한 조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선지 이번 달에 출시된 <루나 리마스터 컬렉션>(Lunar Remastered Collection)은 유달리 더욱 반갑게 다가왔다. 오랜 세월 동안 지나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에 마침내 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작성=쿠타르크(인디게임 블로거), 편집=김승주 기자


※ 본 리뷰는 리마스터 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됐습니다. 클래식 버전은 본 리뷰의 내용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루나 리마스터 컬렉션>은 <루나> 시리즈의 두 작품인 <루나 더 실버 스타 스토리>(Lunar The Silver Star Story)와 <루나 이터널 블루>(Lunar Eternal Blue)의 합본 격에 해당하는 게임이다.
1992년 메가 드라이브 콘솔을 통해 처음으로 출시된 <루나 더 실버 스타 스토리>는 전설의 드래곤 마스터를 꿈꾸는 소년 아레스의 모험을 담고 있으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94년에 메가 드라이브 콘솔을 통해 처음 출시된 <루나 이터널 블루>는 전설로 남은 루나 세계관의 이야기를 믿는 모험가 소년 히이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게임 모두 한 차례 리마스터를 거친 뒤 여러 플랫폼을 통해 출시된 바 있는데, 두 게임이 각자 다른 게임이라고는 해도 메가 드라이브 콘솔의 상징과도 같은 픽셀 그래픽, 주요 상황마다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JRPG라는 장르의 기본에 충실한 게임 시스템과 캐릭터 및 스토리 구성 등 비슷한 구석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두 게임 모두 같은 세계관을 무대로 하는 데다가 일부 설정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니, 두 게임의 첫 출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현 시점에서 보자면 하나의 게임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정도다.


전반적인 게임의 흐름은, 이야기를 쫓으며 여러 구역을 돌아다니고 반복되는 전투를 치르며 성장하고, 새로운 동료를 영입해 파티를 구성하고, 수많은 위기와 고난을 거치며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정석적인 JRPG의 틀을 조금의 어김 없이 그대로 따라간다.
특히 필드 이동과 던전 이동의 분리, 마을에서 이동 시 파티원들이 맨 앞의 주인공을 줄줄이 따라다니는 광경, 특유의 능력치 설정 및 메뉴 인터페이스 구성, 그리고 바로 밑 문단에서 자세히 언급할 턴제 기반의 전투 등은 두 게임이 처음 출시됐을 당시에도 큰 인기를 끌었던 롤플레잉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 시리즈나 <드래곤 퀘스트>(Dragon Quest) 시리즈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렇듯 JRPG의 기본에 충실한 게임이다 보니 게임 디자인의 측면에서 봤을 때 크게 지적할 만한 점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두 게임 모두 필드 화면만큼은 조금 허전하게 느껴졌다. 필드 화면에서 아무리 돌아다녀도 특별한 이벤트는 커녕 전투 한 번 발생하지 않고,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되더라도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이동할 곳이 정해져 있어 잠시 성장을 위한 전투 노가다를 뛰거나 다른 컨텐츠로 한 눈을 팔만한 여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 (<루나 이터널 블루> 쪽은 한 차례 엔딩을 감상한 뒤 진엔딩을 목표로 한 에필로그 파트가 따로 존재하는 덕분에 이 허전함이 조금은 덜하다.)
필드 화면이 스토리 사이의 연결 정도의 역할만 지닌 형국인데, 다른 롤플레잉 게임에서 중후반 이후 세계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추가 컨텐츠를 즐긴 기억이 남아있는 본인으로써는 아쉽게 다가온다.


두 게임 모두 태생이 일본식 롤플레잉이니만큼 일반 몬스터와의 반복되는 전투와 그에 따른 성장이 게임 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JRPG 장르의 게임을 어느 정도 즐겨본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은 결국 전투에 할애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따라서 흥미로운 전투와 더불어 전투에 따른 합리적인 성장이 수반되어야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도 게임을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두 <루나> 시리즈의 전투의 재미는 꽤나 훌륭한 편이다. 전장에 배치된 아군과 적군은 각자 지닌 이동력과 순서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아군 파티원들의 이동력을 최대한 확보하거나, 혹은 이동력이 느린 파티원이 있다면 이를 감안한 행동 선택이 중요해진다.
여기에 전투 시작 전에 아군의 진영을 설정할 수 있고 적과 아군이 서로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파티원들의 위치가 바뀌게 되며, 이것이 서로간의 범위 공격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느 정도 제한이 있긴 하지만 나름의 전략성을 확보한 전투 시스템인 셈이다. 덕분에 보스전 같은 중요도가 높은 전투에서는 적의 공격 패턴과 아군의 위치를 어느 정도 신경을 쓰면서 플레이하게 된다.
여기에 일반 몬스터와의 전투는 철저히 필드를 돌아다니는 몬스터와 부딪힐 때만 발생하는 심볼 인카운터로만 개시돼 불합리한 면이 대폭 줄어들고, 전투 진행 속도를 최대 3단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 빠르게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데다가, 자동 전투의 AI가 제법 합리적으로 굴러가 귀찮다면 어지간한 전투를 AI에만 맡겨도 게임 진행에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각 전투 이후 획득하게 되는 경험치와 골드의 양도 충분한 편이라 성장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루나 더 실버 스타 스토리>에 비해 <루나 이터널 블루> 쪽이 몬스터들이 평균적으로 강한데 반해 획득하는 경험치와 골드의 양이 살짝 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심한 노가다를 강제할 만큼은 아니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한편 두 <루나> 시리즈의 캐릭터와 스토리는 전형적인 JRPG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석적이면서도 왕도적인 구성과 전개를 보인다. 여신과 영웅의 전설, 네 용의 존재 그리고 마법과 기계가 공존하는 특유의 세계관 등의 기본적인 설정들은 판타지물을 어느 정도 섭렵한 이들이라면 상당히 익숙하게 다가올 법하다.
심지어 아군 파티원의 구성도 상당히 익숙하게 다가올 법한데, 모든 아군 파티원이 모인 시점을 기준으로 따지면 <루나 더 실버 스타 스토리> 쪽은 '주인공, 마법사, 마법사, 신관, 검사', <루나 이터널 블루> 쪽은 '주인공, 마법사, 신관, 격투가, 마법사' 의 구성이다. 세부적인 차이야 있겠지만, 양 쪽 모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상당히 균형잡힌 파티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두 게임 모두 캐릭터의 성격과 심리 변화 그리고 스토리의 전개가 다소 뻔하게 흘러가는 감이 없잖아 있다. 캐릭터의 경우 나름 외모도 괜찮고 개성도 확고해 일차원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보다는 성격과 심리 변화의 측면에 있어 예측이 쉽게 된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하다. 스토리에 있어서도 흔히들 말하는 전형적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도 어렵고 마땅히 반전이라고 할만한 장면도 거의 없다.
어찌보면 두 게임의 스토리 모두 온갖 고난과 역경을 거친 끝에 성장하여 악을 응징하는 용자 이야기에 충실하고, 소년과 소녀가 만나 교감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랑 이야기에 충실한 스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정석에 지극히 충실한 스토리니만큼 완성도는 제법 뛰어나고 그만큼 결말의 감동도 확실하지만, 도리어 이런 틀에 박힌 듯한 스토리로 인해 의외로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래도 <루나 이터널 블루>의 루시아의 심경 변화와 이에 따른 전투 시 AI의 변화만큼은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던 초반부에는 스토리상에서도 아무런 표정 없이 냉담한 반응만을 보이며 전투 시에도 본인만 챙기던 것이 본격적으로 감정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전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식으로 행동 패턴이 달라지는데, 이렇듯 스토리상의 캐릭터성의 변화가 전투를 포함한 게임 전반부에 적극 반영된다는 점은 현 시점에서 봐도 충분히 신선한 시도이자 좋은 게임 디자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고전 게임 특유의 고질적인 한계도 있다. 우선 두 게임 모두 자동 저장을 일절 지원하지 않아 플레이어가 수시로 상황을 저장해야 하는데, 게임에 몰입해 저장을 깜빡했다면 혹여나 도중에 게임 오버를 맞이했을 때 한 번 거쳐왔던 긴 진행을 다시 거쳐야만 하는 불안 요소가 존재한다.
<루나 더 실버 스타 스토리>의 경우 몇몇 특별한 장비나 브로마이드는 특정 시점이 지나면 절대 획득할 수 없어 이를 수집하기 위한 2회차 플레이가 반쯤 강요되기도 하고, <루나 이터널 블루>는 던전에 진입할 시 대쉬가 수시로 끊긴다던가 일부 구간에서 적들이 유달리 강해 돌파가 힘들다던가 하는 사소하긴 해도 아쉬움이 느껴질 만한 부분도 분명 있다. 어디까지나 근본은 고전 게임이니만큼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플레이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 시점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마냥 관대하게 넘어가긴 어려운 요소이기도 하다.


<루나 리마스터 컬렉션>은 고전적인 JRPG의 핵심적인 특징을 전부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현 시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약간의 개선을 더한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 풍의 세계관과 용자물의 기본에 충실한 캐릭터 조형, 큰 반전 없이 왕도에 충실한 스토리, 너 한 번 나 한 번 식의 턴제 전투와 차근차근 레벨을 올리며 강해지는 성장 그리고 게임의 흐름을 살짝이나마 환기시키는 자잘한 이벤트와 서브 퀘스트 등, 이전에 JRPG의 장르의 게임을 몇 번 플레이해본 이들이나 JRPG라는 장르를 간접적으로만 접해본 이들에게나 충분히 익숙하게 다가올 만한 요소가 많다. 여기에 랜덤 인카운터의 삭제와 최대 3배속까지 올릴 수 있는 전투, 자동 전투의 인공지능 등 쾌적한 플레이를 위한 편의성 확보도 주목할 만하다.
이제는 JRPG라는 장르 자체가 트렌드에서 살짝 내려오기도 했고 그로 인해 JRPG 장르를 유독 선호하는 매니아들이 있거나 반대로 JRPG 장르 자체를 기피하는 게이머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선뜻 추천하긴 조금 힘든 게임일 지도 모른다. (물론 <루나> 시리즈의 두 게임 모두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라고 하기엔 조금씩 부족하거나 아쉬운 감이 있다)
그래도 JRPG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거의 빠짐없이 전부 드러내는 게임이니만큼 JRPG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보고 싶거나 JRPG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확실히 재밌게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혹은 본인처럼 오래 전 플레이할 기회를 놓친 이들이라면 꼭 한 번 플레이해볼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1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