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TIG 룩백' 코너에서는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가진 개발사들의 발자국을 톺아보며, 그들의 등 뒤에 남겨진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자살 예방을 소재로 한 <30일> 이후 차기작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던 게임은 <냥냥스타>라는 고양이 머지 게임이었다. <30일>과는 소재, 장르, 접근법이 모두 달라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름' 뒤에는 우리가 소셜 임팩트 게임에 대해 가진 일관된 철학과 관점이 담겨 있다.
랜선집사였던 내가 고양이 쉼터에서 유기묘 '삼순이'를 직접 데려와 임시보호를 하게 된 것도, 다름 아닌 <냥냥스타>에 살아 있는 감정을 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짧은 경험만으로 모든 빈틈을 채울 순 없겠지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느 곳을 채워야 할지, '삼순이'와의 시간이 알려준 바는 결코 작지 않았다.
OEDC 회원국 중 자살율 1위인 국가에서 자살 문제가 흔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고양이 유기 문제 역시 그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자살 문제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유기와 이에 뒤따르는 많은 안락사는 결국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 <냥냥스타>를 통해 우리는 고양이의 귀여움 뒤에 숨겨진 책임과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기고=더브릭스게임즈 이혜린 대표,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TIG룩백 더브릭스게임즈 포스트모템 5부작]
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왜 임팩트 게임인가 (바로가기)
② 자살을 막는 게임 '30일'...현실 담기 위해 발로 뛴 이유는 (바로가기)
③ 50만 다운로드 중 자연유입이 무려 99.5%? 인디의 마케팅은 (바로가기)
④ 랜선집사였던 내가 직접 유기묘를 키우며 만든 고양이 게임 (현재 기사)
⑤ (주간 연재 중)


임팩트게임과 대중성은 서로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의외로 임팩트 게임에 있어 대중성은 중요한 가치이고, 추구해야 하는 가치이다.
대중적이라는 것은 파급력이 있다는 뜻이고, 파급력은 임팩트 게임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다. 즉, 사람들이 재미있어서 계속 플레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요한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 목표였다. 그런 의미에서 전작 <30일>보다는 훨씬 캐주얼한 게임을 만들어 게임의 접근성을 더 높이고 싶었다.
이런 생각 끝에 <30일>의 차기작으로 우리는 고양이 머지 게임을 선택했다. 먼저 ‘고양이’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대중적 소재다. 고양이가 들어가기만 해도 인기가 높아진다는 의미에서 ‘냥트키’(고양이 치트키)라는 말이 은근히 유행할 정도다. 우리도 이 ‘냥트키’를 쓰고 싶은 마음이 사실 없지 않았다.
또한 달라진 게임 소비 트렌드에 맞춰 캐주얼한 장르를 만들고자 했다. 숏폼 콘텐츠가 대세가 되었고, 사람들은 짧고 즉각적 재미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다른 목표는 장기간 서비스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30일>은 한 번 설치 후 약 6시간 만에 엔딩을 볼 수 있는, 짧다면 짧은 게임이었다. 이번에는 약 2년 정도의 서비스 기간을 잡고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들고 싶었다.

대중적인 여러 장르 중 머지(Merge)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팀 내부에서 나왔다. 아이디어를 검증해보기 위해 다같이 직접 머지 게임을 플레이해보았고, 짧고 즉각적인 재미의 게임을 만들자는 목표와 잘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시장의 유행을 따르겠다는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생소한 소재와 장르를 선택했던 <30일>과는 정반대로, 이번엔 시장에 흔한 소재와 장르를 과감하게 선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조합해서 시장에 있는 게임들과 분명히 다른 독특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에서 되돌아보면 뭘 몰랐던 패기로운 도전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큰 목표를 일단 세운 뒤, 이를 필사적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 나의 업무 스타일이다. 이런 스타일의 장점은 원래 도전하지 않았을 목표까지 근사치로 이루게 해준다는 점이지만, 그만큼 소모적이고 힘든 과정이라는 단점도 있다. 이번에도 '대중적이지만 남다른 게임'이라는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일단 고양이 머지 게임을 만들기로 한 만큼, 고양이 게임과 머지 게임을 최대한 많이 플레이해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모바일 시장에 존재하는 머지 게임과 고양이 게임들을 가능한 많이 설치해 플레이하며, 장르적 특성과 고양이라는 소재의 활용법을 학습했다.
여기서 대다수 고양의 게임들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됐다. 고양이의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조명하기 보다는, 일반 대중이 좋아하는 고양이의 귀엽고 엉뚱한 모습만을 단편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이었다.
대중적 코드를 찾아내고 활용하는 것에 잘못은 없지만, 시장에 이런 게임들이 절대 다수를 이룬다는 사실 자체는 어느 정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고양이 관련 문제 중 하나인 고양이 유기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OEDC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자살 문제가 흔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고양이 유기 문제 역시, 4가구 중 1가구가 고양이를 키우는 요즘조차 그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30일>로 자살 문제를 환기하고 싶었던 것처럼, <냥냥스타>를 통해서는 이 문제를 드러내고 싶다고 느꼈다. 이것은 내가 임팩트 게임을 만드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자살 문제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유기와 이에 뒤따르는 많은 안락사도 결국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하나의 일탈로 만들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인식 부족에 의해서 발생하는 고통이며, 그 해결 역시도 일부의 선의나 주의에 의해서는 불가능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브릭스게임즈의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간접 경험을 통해 실천적 변화를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언뜻 보면 <30일>과 <냥냥스타>는 방향이 전혀 다른 게임 같지만, 따라서 근본적으로 같다. 생명을 다정하게 대하는 행동을 촉진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담긴 게임들이다.
그리고 고양이 유기 문제의 큰 원인 중 하나는 게임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서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던 다양한 고양이 게임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상품적으로 강조하고, 생명을 보호하고 다루는 책임의 막중함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고양이의 귀여움 뒤에 숨겨진 책임과 현실을 다루고 싶었다.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고 무던해서 키우기 쉽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인간의 언어도 잘 알아듣고, 사냥 놀이도 하루에 1시간씩 해주어야 하며, 모래나 사료 등 필수적인 고정 지출도 월 평균 15만 원으로 적지 않다. 이런 사실들은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서는 알기가 힘들다.
다행히 <Stray>, <길고양이 이야기>와 같이 참고가 되는 좋은 선례들도 있었다. 다만 이들 게임은 길고양이의 현실을 고양이들의 시선에서 담담히 보여준 반면 우리는 반려인의 고충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고군분투하는 집사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고양이를 키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현실을 알리고, 그런데도 키우고 싶다면 반드시 책임감을 갖고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고양이를 잘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양이에 관한 실전 팁을 다양하게 끼워 넣고 있기도 하다.


게임의 개발 초기에는 장기 라이브에 드는 공수를 덜기 위해, 스토리 없는 게임을 구상했다. 하지만 뒤늦게 깨달은 것은 스토리텔링이야말로 더브릭스게임즈의 강점이란 사실이었다. 더브릭스게임즈는 스토리를 통해 유저의 공감을 얻고 임팩트에 반드시 필요한 몰입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30일>에서 검증한 바 있었다.
<냥냥스타>에서도 우리의 개발 의도를 다 전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빠지기 힘들었다. 우리의 목표는 육묘의 현실을 실감나게 전달해 유저들이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고양이들의 다양한 성격과 특성,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여러 고충들을 표현할 수 있어야 했고, 이를 통해 인물들이 유기묘가 처한 현실과 육묘의 현실을 깨닫는 과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스토리를 빼놓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정작 내가 고양이를 잘 모르고(나는 원래 강아지파다), 따라서 당연히 임시보호 경험도 없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직접 고양이를 임시보호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과연 관련 지식과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고양이를 처음 기를 때 생기는 감정과 어려움을 내가 상상만으로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회의적이었다.
고민 끝에 회사 앞에 방을 구한 뒤, 인연이 있던 고양이 쉼터에서 유기묘 '삼순이'를 데려와 임시보호를 시작했다. 실제 양육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책임감, 그리고 교감을 통해 느낀 경이로움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새로 써내려 갔다.
실제로 <냥냥스타>의 주인공 ‘우리’가 겪는 사건과 감정 중 일부에는 내가 ‘삼순이’를 임시보호 하면서 겪었던 것들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 많다.

물론 나의 개인적 경험과 지식만으로 <냥냥스타>의 본래 목적을 다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성향과 사연을 지닌 고양이들이 있고, 집사들이 겪게 되는 상황도 제각각이다.
더 나아가 짧은 체험으로는 알기 힘든 실질적이고 필수적인 지식들이 정말 많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고양이를 오래 키워온 집사들 사이에서도 원활히 공유되지 않고 있는 지식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했던 미디어의 편향성과도 관련이 깊다.
이러한 부족한 지점들을 보충하기 위해, 직접 길러 보는 것 외에도 외부적인 조사와 조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30일>때의 경험을 십분 발휘했다. 직접 발로 뛰어다닌 것이다. 고양이 쉼터 운영자를 인터뷰했고, 쉼터를 찾아가 봉사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유명 수의사들의 자문도 구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 출연한 적 있는 ‘냥신TV’의 나응식 수의사, 그리고 ‘윤샘의 마이펫상담소’로 잘 알려진 윤홍준 수의사’ 인터뷰 등 여러 수단을 활용했다. 물론 전문 지식을 공유하는 수의사 유튜브도 많이 시청했다. <냥냥스타> 스토리 작성뿐만 아니라 실제 삼순이의 육묘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게임명이기도 한 '냥냥스타'는 인스타그램을 오마주한 게임 내 SNS의 이름이다. 그정도로 <냥냥스타>에서는 SNS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며,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그 중요성을 점점 더 드러낼 예정이다.
SNS를 게임의 주요 축으로 담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스낵 컬처로 소비하기 좋은 귀여운 고양이의 일상들이 담겨 있다. 동시에 유기 고양이들이 입양처를 찾도록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도 수행한다. 즉 SNS는 앞서 말했던 고양이의 일부 대중적 단면이 강조되는 공간인 동시에, 그런 피상적 관심만 존재할 때의 문제점을 상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SNS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통해 유기묘 입양의 반복적인 과정을 생생히 표현하고, 임시보호와 입양의 현실적인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이상적인 육묘와 현실 간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리고자 했다. (5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