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14일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게임 웹진 디스이즈게임(이하 TIG)이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20년은 한 사람이 어엿한 성인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고,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로든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 것은 확실합니다.

TIG 초창기의 손가락 로고는 저 하늘 속 별자리로 늘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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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기 게임을 다수 서비스하고 있던 넥슨과 PC방 업계의 분쟁이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특히 PC방 업주들은 넥슨 사옥 앞에서 시위를 하고 게임 불매 운동과 더불어 넥슨 게임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5년 6월, 여름방학을 앞두고 넥슨은 PC방 업체에게 청구하는 요금 체계를 정액제에서 종량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PC방에서 넥슨 게임을 서비스할 때 이에 대한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전에는 이용량과 무관하게 비용을 청구했다면 앞으로는 이용량에 따라 비용을 다르게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넥슨과 PC방 업계의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넥슨 측은 게임 이용량이 많은 대형 PC방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PC방 업체가 혜택을 보는 체계라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PC방 업계는 <카트라이더>를 필두로 넥슨 게임 이용량이 많아지는 상황에 종량제를 도입하면 PC방 업체가 지불하는 비용은 훨씬 커진다고 반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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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이름일 것입니다.
한국 게임 산업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겼고 그 시절 불법 사행성 게임을 대표했던 이름이니까요. 2006년은 이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불법 사행성 게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졌던 해이면서 동시에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출범한 해이기도 합니다.
<바다이야기>는 2004년 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일본의 파칭코 중 하나인 <우미모노가타리>(일본어로 ‘바다이야기’)를 모방한 속칭 릴 게임으로, 2005년 즈음 전국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어디서든 쉽게 이 <바다이야기>를 들인 성인 오락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전국에 있는 1만 3천여 곳의 아케이드 오락실 중 1만 1천여 곳이 성인 오락실이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 시절 10살 꼬마였던 기자도 푸른 파다 속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산호, 그리고 커다란 고래가 있는 간판을 곳곳에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던 2006년 8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성인 오락실이 정치권과 상품권 업계의 비리로 이어지면서 스캔들이 생겼고 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게임 심의를 맡았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졸속한 심의 과정과 비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에 정부는 게임 심의를 전담하는 별도 기관 신설을 추진했고, 그렇게 2006년 10월 30일 오늘날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전신인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출범하게 됩니다.
김기만 당시 게임물관리위원장은 “게임과 게임이 아닌 것의 구분을 명확히 해 사행성 도박게임을 뿌리 뽑고, 건전한 게임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강조하며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막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줬는데요. 게임 속 사행성에 대한 엄격한 잣대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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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TIG에게 정말 특별한 해였습니다. 당시 전 세계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기대작 <스타크래프트 2>의 소식을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했던 해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블리즈컨에선 <스타크래프트 2>의 추가 정보와 함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두번째 확장팩 ‘리치왕의 분노’가 최초로 공개됐는데요. 여기서도 TIG는 관련 소식과 함께 프로게이머 장재호 선수의 <스타크래프트 2> 플레이 영상을 단독으로 선보여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죠.
한편 이후 다룰 언론과 정치권의 게임 때리기도 이 시기부터 그 징조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원인으로 뜬금없이 게임을 지목하면서 게임 중독을 문제 삼기 시작한 건데요. 이러한 움직임은 향후 10년간 한국 게임 산업을 저해하는 희대의 정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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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HN게임스, 웹젠 인수 공식 발표 (바로가기)
2008년은 유독 국내 게임사들의 굵직한 ‘빅딜’이 많았던 해였습니다. 1년 사이에 무려 4개의 대규모 인수합병 소식이 전해졌으니까요.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2008년 5월에는 <오디션>의 개발사 T3엔터테인먼트가 게임 업계 대선배인 한빛소프트를 인수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후 6월에는 <스페셜포스>의 개발사 드래곤플라이가 <킹덤 언더 파이어>를 개발한 판타그램을 인수하여 합작법인 퓨처포트를 설립했고, 7월에는 넥슨이 <던전앤파이터>의 개발사 네오플을 인수했으며, 9월에는 NHN의 자회사 NHN게임스가 웹젠의 경영권을 인수했죠.
이렇듯 활발하게 인수합병이 이뤄진 이유에 대해 TIG는 당시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여파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경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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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붙는 웹게임 시장, 전략과 다양화가 관건 (바로가기)

문제는 외국산 웹게임이 범람하면서 웹게임 시장의 경쟁도 치열해졌다는 것인데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원을 더 투입하자니 적은 개발 비용이라는 장점이 퇴색되고, 반대로 경쟁력 확보를 못 하면 저렴한 해외 웹게임에 밀리는 묻히는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결국 2010년 초까지 들불처럼 일었던 웹게임 열풍은 한풀 꺾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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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받고 GG’ 스타 승부조작 사실로 판명 (바로가기)
▶ ‘승부조작’ 마재윤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바로가기)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에 이어, 한국 게임 역사에 또 다른 흉터를 남긴 사건이 2010년에 발생했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최초이자 최악의 승부조작,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이 바로 그것인데요.
2010년 4월부터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선 석연치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선수들이 불법 베팅 사이트와 접촉해 승부조작에 가담하고 있다는 소문이었죠. 수상함을 감지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결과 이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한국 e스포츠 전반이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당시 전·현직 프로게이머 11명이 승부조작에 가담했습니다. 승부조작의 주동자들은 선수들에게 돈을 주고 경기에서 패배할 것을 사주했고, 베팅 사이트에서 경기 결과를 예측해 막대한 양의 배당금을 챙겼는데요. 이들은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는 선수들을 회유 및 협박하고, 심지어는 동료 선수들의 연습 영상을 유출해 그들의 전략을 사전에 노출시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해당 사건으로 한창 성장 중이던 한국 e스포츠 시장엔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무고한 선수들과 팬들이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펼쳐져야 할 e스포츠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졌죠. 대회 개최와 팀 운영에 필요한 후원사들은 e스포츠에 등을 돌렸고, 결국 당시 e스포츠 시장은 극심한 침체를 맞게 됩니다.
슬프게도 이후 5년 뒤인 2015년에는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이로 인해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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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 셧다운 확정, 업계 “최악은 면했지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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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소속의 한 기자가 한창 영업 중인 PC방의 전원을 내리고는 화가 난 게이머들의 모습을 비추며 이렇게 말합니다.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 버린 겁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 보도가 나온 것이 2011년입니다. 당시 게임을 세간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죠. “게임 때문에 아이들의 뇌가 짐승처럼 된다”, “게임을 하면 정자가 줄고, 죽음에 이른다” 같은 망측한 발언들이 쏟아지던 시기였으니까요.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시간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시행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2004년 최초로 언급된 셧다운제는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게임 중독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됐습니다. 게임 업계의 자정 노력과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수년에 걸쳐 차근차근 입법 절차를 밟아온 셧다운제는 결국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그 해 11월 20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이후 2021년까지 무려 10년간 한국 게임 산업을 옭아맸던 셧다운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지됐는데요. 셧다운제의 등장과 그 효과 등에 대해 본지에서 상세히 다룬 바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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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모님이 자꾸 하트를 보내요…” 애니팡 신드롬 (바로가기)
▶ ‘1위, 1억’ 카카오 입점 게임들 고공행진 (바로가기)
당시 카카오게임의 월 매출은 급격하게 상승해 2012년 10월에는 한 달 만에 400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이후에도 카카오는 신규 게임 유치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인기 게임 순위에 카카오 마크가 없는 게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for Kakao 열풍은 뜨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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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공청회 열린다’ 중독법, 국회에서 심사 보류 (바로가기)
2011년 셧다운제 시행 이후에도 정치권의 게임 때리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 중 하나가 2013년을 뜨겁게 달궜던 ‘4대 중독법’의 등장입니다.
2013년 4월, 새누리당의 신의진 의원을 중심으로 한 14명의 국회의원들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통합해 관리하자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초기에는 큰 화제가 되지 않았던 이 4대 중독법은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게임, 술, 도박, 마약을 4대 중독으로 규정하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0월 31일 진행된 공청회는 당시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습니다. 공청회의 참가 패널 중 절반 이상이 4대 중독법에 찬성하는 인사로 구성되어 있었고, 행사의 사회자는 반대쪽 패널에게 막말을 쏟아내며 편파적으로 토론을 진행했기 때문이죠.
해당 공청회 이후 4대 중독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문화계에서는 게임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했고, 4대 중독법 발의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은 한 달 만에 참가자 30만 명을 돌파했으며,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12월 열린 법안심의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4대 중독법의 심의를 보류했는데요. 사회적 합의와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후 몇 번에 걸쳐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좀처럼 힘을 얻지 못한 4대 중독법은 결국 2016년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 처리되었습니다.

공청회의 사회자였던 기선완 교수가 당시 반대측 패널에게 했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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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모바일게임이 한국 게임 시장의 대세로 떠오른 해입니다. 이전부터 모바일게임 시장은 꾸준히 커지고 있었으나, 기존에 대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온라인게임이 침체기를 맞으면서 대세 자리를 빼앗은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그 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선 전에 볼 수 없던 독특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네시삼십삼분의 <블레이드>가 사상 최초로 모바일게임으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상도 모바일게임이 싹쓸이했죠. 당시 수상작으로 선정된 온라인게임은 <이카루스>와 <코어마스터즈> 단 둘 뿐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국내 게임사들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열심히 날갯짓을 해야 할 판국에, 위협적인 해외 게임들의 공습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바다 건너 핀란드에서 온 슈퍼셀의 <클래시 오브 클랜>은 국산 신작들에 굴하지 않고 매출 순위 상위권을 굳건하게 지켰고, 중국에서 넘어온 <도탑전기>는 맹렬한 속도로 한국 게임들의 매출을 추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2012년 기사에서 등장했던 for Kakao 열풍이 식지 않고 2014년까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카카오가 중소 개발사들의 입점 허들을 낮추면서 for Kakao 열풍은 전보다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당시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누적 매출 순위 30위 내 게임 중 80%가 카카오 게임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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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턴 방식 ‘밀당게임’? 5개월째 이어지는 넥슨-엔씨의 일방통행 (바로가기)
2015년 게임 업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두 개의 ‘N’, 넥슨과 엔씨의 경영권 분쟁이었습니다.
넥슨과 엔씨의 미묘한 관계는 2012년부터 시작됩니다. 2012년 6월 넥슨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엔씨와 협력하기로 하고 엔씨의 지분 14.7%를 인수했습니다. 양사는 <마비노기 2: 아레나>(이하 마비노기 2) 개발을 함께할 계획이었으나, 2014년 1월 <마비노기 2> 개발이 중단되면서 협업은 무산됐죠. 당시 넥슨 측은 “수년간 새로운 시도와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지만 시장 상황을 고려한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2014년 10월 넥슨이 엔씨의 지분을 추가 취득해 15%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됩니다. 같은 해 12월 공정위가 넥슨과 엔씨의 기업결합을 승인하자 넥슨은 단순 투자 목적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는데요. 그러던 2015년 1월 넥슨이 돌연 경영 참여 의사를 발표하면서 둘의 갈등에 불이 붙었습니다.
넥슨에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놀란 엔씨는 빠르게 넷마블과 손을 잡습니다. 엔씨와 넷마블이 전략적 제휴를 맺고 두 회사의 주식을 교환해서 넷마블이 엔씨의 3대 주주로 거듭나게 만든 것이죠. 최대 주주였던 넥슨의 경영권 참여를 막고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엔씨의 전략이었습니다.
전략은 제대로 먹혔고, 결국 넥슨은 가지고 있던 엔씨의 주식 전량을 매각하기로 결정합니다. 넥슨과 엔씨가 완전히 남남으로 갈라서면서 2015년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둘의 분쟁도 끝을 맺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