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TIG룩백] 당신이 몰랐을 렐루게임즈의 뿌리, '스페셜 프로젝트 2'

렐루게임즈 (렐루게임즈) | 2024-10-17 09: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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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TIG 룩백' 코너에서는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가진 개발사들의 발자국을 톺아보며, 그들의 등 뒤에 남겨진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분야를 한정 짓지 않더라도, 챗GPT나 스테이블 디퓨전 등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영상이나 노래를 만드는 AI도 날이 갈수록 접근성이 좋아져, <밤양갱>으로 대표되던 AI 커버 놀이 문화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않았던가. 


게임 업계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AI가 게임의 핵심 플레이 메카닉에 적용된 사례는 드문 편이고, 그런 게임들 중에서도 게임성 및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은 정말 손에 꼽히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렐루게임즈의 두 작품은 정말 신선하고 '엣지'가 있었다고 평할 만하다. 중년의 아저씨 마법소녀가 되어 직접 마이크에 주문을 외쳐야 하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이 아닌 챗GPT로 구현된 캐릭터들과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추리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 글로벌 시장에서도 아직 이 두 게임처럼 AI를 잘 활용한 사례는 극소수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렐루게임즈는 어떻게 이런 게임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지난 1편에서는 작품 단위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렐루게임즈가 어떻게 두 게임을 선보일 수 있었는지 그 뿌리를 살펴본다./기고=렐루게임즈 김민정 대표, 서문 및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참고로, 다음 달에 있을 지스타 2024에서는, 
렐루게임즈가 야외 부스에서 <즈큥도큥> 플레이를 기반으로 '마법소녀 선발 대회'를 진행한다.
낯 부끄러운 주문을 개인 PC 앞에서 외치던 경험이나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과는 달리
현장에서 육성으로 직접 듣는 경험이 어떨지 많은 기대가 모이고 있다. 

# 렐루는 어떻게 주목 받는 다크호스가 됐나

렐루게임즈는 2023년 6월에 설립된 회사다. 정확히 1년 뒤 <즈큥도큥>과 <스모킹 건> 2개의 게임을 거의 동시에 선보이며 업계와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래는 렐루에 대한 시장의 평가 의견 중 요점을 모아본 내용이다.


AI 기술이 곧 게임의 핵심 재미로 활용됐다.
AI를 더한 실험적 게임들을 만드는 '크래프톤 AI 전초기지'

한 방향을 보던 업계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IT 업계를 통틀어봐도 보기 힘든 속도전이었다.
새로운 재미를 발굴해 게임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괴작과 대작의 기로에 선 두 작품으로 개발력을 증명했다.


이런 평가처럼 '속도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렐루의 뿌리, 크래프톤의 '스페셜 프로젝트 2'(Special Project 2)를 잠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 마법소녀가 부족해진 서울이 배경인 <즈큥도큥>.
당신이 마이크에 주문을 외치면 AI가 음성 인식을 해 주문의 공격력을 출력해준다.
AI의 활용도 재치 있지만, 게임플레이와 설정 자체로도 매우 신선하다.

<스모킹 건>은 챗GPT로 구현된 NPC와 직접 대화를 나누며 진행하는 추리게임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일부 대사는 검은색으로 지웠다.
GPT로 구현된 로봇과의 문답은 단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았다.
"로봇은 인간의 그림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림자도 실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등의
굉장히 철학적이면서도, 게임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를 마주할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
AI로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고?

# 렐루의 뿌리 - 스페셜 프로젝트 2

2019년 겨울이었다.


["게임 제작 경험이 있고, 프로그래머가 절반 이상이며, 개발 역량이 뛰어난 6인 이하의 팀들을 모아주세요."]


현재 렐루게임즈 대표이자, 당시 크래프톤 투자 본부에서 국내 게임 소싱을 이끌고 있던 김민정의 메일함에 도착한 장병규 의장의 메시지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20년 2월 '스페셜 프로젝트 2'(이하 SP2)라는 조직이 탄생했다.


SP2는 딥 러닝으로 기존의 경험을 혁신할 새로운 게임성을 찾는 것을 목표로 세팅된 크래프톤 내부의 인큐베이팅 조직이었다. 아무도 AI 기술에 대해 말하지 않던 그 시절, 장병규 의장의 비전에 공감하는 팀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11개의 팀이 같은 비전을 바라보고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지금은 전 세계 2억 명 이상이 사용한다는 OpenAI의 GPT는, 당시 GPT-2 버전으로 고도의 전문가가 아니면 단순한 사실에 대한 질문도 답을 이끌어내기 힘든 성능을 보이던 시절이었고, 그 당시의 글로벌 이용자는 2,000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그런 깜깜한 시기에 우리는 딥 러닝의 다양한 분야를 탐색했고, 딥 러닝이 '될 듯 될 듯 안 되는' 물건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당시로서는 기반 기술들도 지금과 같은 사용성이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게임과의 접목이라는 과제까지 생각을 확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했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 이미지

2023년 초, SP2는 분사의 형태로 '독립 스튜디오'가 되어, 전체가 하나의 비전을 바라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이 비전 안에서 결과를 내고 싶었던 강한 열망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리더십이 결정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분사의 과정은 아래의 이유들로 비교적 순조로웠다.


첫 번째는 각자 개발 목표가 작은 팀으로는 프로덕션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전술했듯 게임을 제작하던 팀들이기에, 고객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반면, 딥 러닝도 온전한 프로덕션도 힘든 구조에서는 시장까지 가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렐루는 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연구와 제작' 사이 어딘가 어중간한 위치에서 콘셉트를 찾는 과정은 고객을 만나고 싶은 개발자들에게 고단한 인내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렐루는 우리에겐 고객을 만나는 길이었다.


두 번째는 딥 러닝의 발전 속도였다. 오늘의 혁신이 내일의 진부함이 되는 딥 러닝 기술 트렌드를 고려했을 때, 우리가 준비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 응집된 힘으로 모이지 않는 이상, 팀으로 작동하는 구조에서는 쉽게 빛이 바래질 위험성이 있었다. 


딥 러닝 기술로 새로운 IP를 이끌어 낼 비전이 실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되려면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렐루는 그런 의미에서 흩어진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길이었다.


최근 대형 게임사의 분사는 여러 측면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렐루 구성원들에게도 크래프톤의 지붕 아래서 그동안 받아온 혜택을 포기하고, 험난한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리스크를 지고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몇 년간 힘써온 노력이 세상의 평가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우리는 각자 독립적으로 선택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팀과 사람들이 섞이고 뭉쳐 미래를 향한 하나의 씨앗이 됐다.



이것이 렐루의 바탕이다. 렐루는 하루아침에 탄생한 팀이 아니다. 게임판에서의 기본적인 경험을 갖춘 제작팀들이, 3~4년간 딥 러닝에 대한 학습과 실패를 통한 레슨을 쌓아온 팀이다.


그리고 크래프톤의 지붕을 벗어나는 분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안정적인 길보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모험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모인 팀이기도 하다.


렐루-호가 항해를 시작할 때, 그 출발선에는 30명(2024년 10월 현재 41명)의 [딥 러닝X게임]에 진심인 정예가 모여 있었던 것이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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