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칼럼] 페이커는 왜 인기가 많을까?

사랑해요4 (김승주) | 2024-11-04 15: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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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이 롤드컵에서 또 이겼다. 돌고 돌아 T1이었고, 중심에는 페이커가 있었다. T1 선수 전원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주인공은 단연코 페이커였다. <LoL> e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롤드컵 결승'이라는 빅 이벤트라는 사실에 재미 삼아 결승을 감상한 사람이라도 모두가 이해하고 인정할 만한 퍼포먼스를 뽐냈다. 


이번 결승에서 페이커가 보여준 모습은 왜 <LoL>에서 '페이커'라는 이름이 가장 드높은지 가장 명쾌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LoL> e스포츠가 출범하고, 우연하게도 항상 T1의 반대편에서 맞서는 LCK 팀의 팬이었던 기자(마음 속 최애의 팀은 아직도 ROX다)가 패배를 반복해 맛보며 마음 속에서 느꼈던 막연한 생각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상대를 녹다운시키는 T1의 주먹

현 T1의 로스터를 이루는 제오페구케(제우스-오너-페이커-구마유시-케리아) 라인업에서 지금껏 페이커의 역할은 게임을 매조짓는 플레이 메이킹이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해당 라인업에서 페이커의 역할이 무엇이느냐는 일부 근거 없는 의심이 종종 있어 왔지만, 이번 결승전에서 페이커는 단 하나의 반박조차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자신의 역할을 입증(Make them believe)했다.

해당 로스터가 만들어진 이후 T1을 대표하는 단어는 '주도권'과 '서커스'라고 할 수 있다. 구마유시-케리아의 강력한 바텀 라인전을 앞세워 상대를 계속해서 뒤흔들고 골드 격차를 벌리며 게임을 빠르게 굴려 나가는 것이 T1의 장기다. 제우스와 오너의 무력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권투 경기로 비유했을 때, 잽(Jap)만으로 상대방을 쓰러트릴 수는 없다. <LoL>은 골드 차이나 지표, KDA로 승패를 정하는 게임이 아니다. 상대방의 넥서스를 파괴해야 끝난다. 결국은 K.O를 만들어 낼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하다.

큰 경기에서는 이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선수들이 자신의 인생 모든 집중력을 모아 단 하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려 애쓰며, 어떻게든 상대방의 빈틈을 찾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롤드컵 무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결승전 마지막 5세트, T1의 압박으로 바텀 카이사의 성장이 심각하게 말린 상황에서도 탑에서 2킬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하며 무너져 가는 게임을 어떻게든 회생시킨 BLG의 플레이가 증명한다. 

그리고 T1의 다전제 승리에는 늘 페이커의 묵직한 한 방이 있었다. 항상은 아니지만, 팀원과 함께 차근차근 만들어낸 유리함 속에서 격렬히 저항하는 상대방의 숨통을 끊는 플레이는 대부분 페이커로부터 나왔다. 이를 잘 나타낸 것이 이번 결승전에서의 사일러스와 갈리오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그것이 우리가 페이커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페이커는 승자 인터뷰에서 결승전에서 보여준 슈퍼 플레이에 대해 "순간적으로 했던 것 같다. 경기에서 결정적인 상황이 자주 저에게 와서 그런 각이 잘 보였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모 게임에 유명한 격언이 하나 있다. "망설임은 곧 패배라고".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인터넷과 더욱 맞닿아 있는 e스포츠의 특성 그리고 롤드컵' 1년의 노력을 결정짓는 <LoL>의 구조 상 아무리 수많은 경기를 헤쳐 온 프로라도 롤드컵 무대에서는 굳는 경우가 많다. 

리그에서는 선수의 스타일 상 시도할 만했던 플레이라도, 큰 무대에서는 "혹시나 실패하고 팀을 패배로 이끌면 어쩌지?"라는 찰나의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무의식 속에 있는 자신이 패배의 원흉이 되었을 때 쏟아질 비난, 자신의 실패에 영향을 받을 팀원에 대한 죄책감이 망설임을 만든다. 

결국 1초, 2초의 고민이 생기고,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시간 낭비가 패배를 만드는 결정적인 실수로 이어진다.


이미 수많은 롤드컵 무대에서 보인 모습이다. 패배하는 팀의 플레이에서는 리그에서 그들을 화려하게 빛냈던 역량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라인전이 강점이었던 선수가 상대와 반반을 가기 바쁘며, 플레이메이킹을 장기로 삼았던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굳는다. 메타가 항상 바뀐다는 점도 중요하다. 롤드컵에서 요구되는 챔피언과 메타 수행 능력은 늘 리그 혹은 MSI와 차이가 있었다.

이 압박을 이겨내고 온전히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것이 바로 '미움받을 용기'가 아닌가 싶다. 수백, 수천, 수만 그리고 수년을 동거동락한 팀원이 자신만을 바라보는 그 때, 스스로를 믿고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의 각을 본능적으로 잡아채는 용기를 가진 선수가 페이커다. 

모두를 감탄하게 만든 결승전 플레이 중 하나. 이런 큰 무대에서 저 각을 볼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 
설사 각을 보더라도, 두 세트를 먼저 준 상황에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선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하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그렇게 수많은 슈퍼 플레이를 큰 무대에서 늘 선보여 왔기에 페이커는 누구보다 많은 팬을 가진 사람이자, 가장 많이 롤드컵에서 우승한 사람으로 우뚝 섰다. 오리아나의 충격파를 위시로 1만 골드 차이를 역전시킨 옛 SKT의 한타, LPL의 악몽으로 남은 5연 갈리오, 작년 롤드컵의 아지르 토스 등등 페이커를 상징하는 명장면은 수많다.

여기서 한 가지 더. 페이커에게는 전 세계 <LoL> e스포츠 선수와 비교해 가장 많은 '경험'이 있다. 데뷔 후 지금껏 수많은 국제전과 결승전을 치르며 큰 무대에서 활약한 기억들이다. 

페이커는 롤드컵에 가장 많이 진출한 선수이자, 가장 많은 킬을 기록한 플레이어다. 한 끗의 차이로 1년 간의 노력이 사라지느냐 아니면 다음 스텝으로 향하느냐가 결정되는 큰 무대에서의 풀 세트 접전을 누구보다 많이 경험하며 결과를 통해 배웠다. 물론 비단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미끄러진 적도 있다.

페이커는 인터뷰에서 늘 '배움'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말을 통해 추측해 보면 그 강심장의 기초에는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철저한 복기가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시청자마저 사고(思考)가 멈출 정도로 긴장하게 만드는 진검 승부에 페이커는 그 누구보다 익숙하다.


#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이번 결승전을 보며 기자는 경외심마저 느꼈다. 결승전의 갈리오는 이전 롤드컵에서 보여준 5연갈(2017년 롤드컵에서 보여준 5연속 갈리오 픽)보다 더욱 강력한 모습이었다.

5연갈 당시에도 모든 <LoL> 커뮤니티가 페이커의 갈리오를 칭찬하기 바빴는데, 이번의 임팩트가 더욱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LPL 팬들에게는 자신들의 희망이 '또' 갈리오에게 무참히 박살났으니 트라우마 그 자체가 된 챔피언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내년에도 페이커의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고의 자리를 사수하며 그가 성취해내고자 하는 것은 담대하면서도 따뜻하다. 페이커는 인터뷰에서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싶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11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LoL> 하나에만 쏟아부은 페이커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리길 기다린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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