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문장이다. 약 10년의 세월을 넘어 주인공 '맥스'가 돌아왔음에도, 마냥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더블 익스포저>는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울 수 있을지언정, 재밌고 즐거운 경험으로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문에 미리 밝힌다. 이번 리뷰에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없다. 일부 서사에 대한 간접적 언급이 있겠지만, 반전의 유무 및 특정 캐릭터와 만나는가- 정도의 언급에 그칠 것이니, 스포에 대한 걱정은 내려두시라. (다만, 전작인 1편의 엔딩에 대한 언급은 불가피하게 등장한다)
1편의 주인공인 '맥스'의 복귀작. 시리즈 최초 공식 한국어 지원. 시간선을 오가는 이야기. 개발사 덱 나인 게임즈(1편의 돈 노드와 다르다), 스퀘어 에닉스가 내세운 소개 멘트는 꽤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기자도 '맥스'와 '클로이'를 너무나도 좋아했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 엔딩을 봤다.
하지만, 최신 기종의 그래픽으로 몰입감 있는 스토리를 즐기길 기대하며 왔다면, 구매에 앞서 자신에게 맞는 게임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적잖은 유저 리뷰에 보이는 "전작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그나마 있는 장점들은 왜 유쾌한 경험이 되는 데 일조하지 못했는지 조목조목 분석한다.
1편의 엔딩 이후 시간이 흘러, 주인공 '맥스 콜필드'는 성인이 됐다. 지역에서 명문대로 손꼽히는 '칼레돈'에 머무르며 사진 작가로 일하는 '맥스'. (전작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맥스의 절친) '클로이'와 '아카디아 만' 마을 전체 중 어느 한쪽을 반드시 희생해야만 했던 선택 이후로, 맥스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던] 초능력을, 아픈 기억과 함께 모두 과거에 묻어둔 상태다.
말 못할 과거와 동시에, 이전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깊은 관계를 맺지 않던 맥스는, '사피'를 포함한 소수의 친구만 곁에 둔다. 평화롭다고 믿었던 어느 날, '사피'는 알 수 없는 총성과 함께 사망하게 되고, '맥스'는 사피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능력에 눈 뜨게 된다. 바로 '사피'가 아직 죽지 않은 [다른 시간선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작품의 초반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꽤 흥미로워 보인다. '맥스'가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도, 소년만화 한 편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낭만적이다. 오른손을 뻗어 [다른 시간선의 소리를 듣고, 형체를 보는 것]이 가능하고, 왼손으로 [시간선을 넘나드는 문을 연다]. 건너편 세계의 물건을 가지고 와야 할 때도 있고, 다른 시간선에 있는 동일한 인물에게 중요한 정보를 들으며 실마리를 찾아나가기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피'를 살릴 수 있는 미래를 찾기 위해, 또 더 복잡하게 엉키는 사건 속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나 도둑질은 기본이고, 다른 인물들의 아픈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쑤시거나, 감정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답게 선택 분기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데, 도의적으로 꽤 잔인하다 싶은 선택을 플레이어에게 강요하는 순간도 적잖게 있다.
그런 동시에, 트라우마의 연장선이자, 이번 작품에서 '맥스'가 심리적 갈등을 겪는 가장 결정적 원인인 '두려움'이 등장한다. 마음대로 시간을 되돌렸던 과거는 나비효과가 되어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맥스는 자신의 힘이 가져올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을 두려워한다. 굉장히 자연스럽고 맥스다운 감정이지만, '사피'를 구하겠다고 맥스가 하는 악행과는 정면으로 부딪힌다. 결국 플레이어에겐 모순된 감정만 남는 꼴이다.
그동안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시리즈가 줄곧 그랬듯, 이번 <더블 익스포저>에도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한국어 번역 상태도 준수한 편이기에, 시니컬하고 시덥잖은 말장난이 많은 대사의 특징도 잘 전달했다고 느껴졌다. '사피'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맥스'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감정적으로 충돌하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한다.
단순히 몇몇 사건을 겪거나(정확히는 맥스가 일으키는 쪽에 가깝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걸 넘어서서, 연인으로서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묘사되는 장면도 적잖게 등장한다. 1편부터 내내 LGBTQ에 열려 있던 작품 아니었나. 누구와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든, 스킨십을 하든 다 큰 성인의 선택을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맥스'의 태도와 '클로이'와의 관계 묘사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답게, 플레이어의 선택은 게임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블 익스포저>의 초반부에선, 1편의 엔딩 분기를 다시 한번 플레이어에게 내민다. ['클로이'를 살리고 '아카디아 만' 전체를 희생했는지], ['아카디아 만' 전체를 구하기 위해 '클로이'를 희생했는지]. 1편의 두 엔딩 중 어느 쪽을 골랐든 모두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클로이와 [자라면서 멀어졌다], 클로이는 [죽었다]. 처음부터 두 선택지 모두 '클로이'와 가깝게 시작할 수 없는 구조다. 1편의 엔딩이 그렇기도 했으니, 이 부분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클로이가 살아있다는 선택지를 골라도, <더블 익스포저>의 전개 내내 '맥스'는 '클로이'라는 기억과 존재에 다시 다가가지 못한다.
맥스가 느끼는 '불안함', '두려움',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클로이와의 관계 또한 '미안함'과 '망설임'의 영역에 남겨둘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클로이의 사망 여부와 관계 없이, 맥스가 마음을 기대는 대상, 과정, 깊이다.
1편의 맥스는 10대 사춘기 소녀였다. 그 시절 누구나 그렇듯 '맥스' 또한 충동적이고, 불안정한 시간을 지나고 있었고, 더 큰 굴곡을 겪고 있던 '클로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둘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자신의 또 다른 페르소나처럼 느껴질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다.
그런데 <더블 익스포저>에서 성인이 된 '맥스'는 어떤가. 이번 작품에서 나름대로(이 또한 이견이 있겠지만) 매력 있게 등장하는 '빈'이나 '아만다'에게 어떤 감정으로, 어떤 관계 설정을 보여주는가. 동정심, 애정, 기대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 충동적인 호기심, 친밀함. 이 모든 감정이 [이상한 삶]의 이유가 되어주기야 하겠지만. 개발진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맡기는 모든 관계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사춘기'처럼 느껴진다.
최소한 '클로이'의 존재 유무를 언급했다면, '맥스'가 인간 관계를 대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볍게 다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개발진의 선택 때문에, 팬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뉘앙스의 표현들이 많은 유저 리뷰에서 계속 등장한 것이다.
세부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지만, <더블 익스포저>에는 굉장히 많은 반전이 등장한다. 선택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메인스토리의 전개만 해도, 꽤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아니, 여기서? 아니, 얘가?-와 같은 반응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한 가지는 선을 긋고 싶다. '흥미'로운 것과 '재미'있는 것은 분명 다르다. 플롯을 잘 비튼다고 좋은 작품이 되느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역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은 안 하겠지만, 이번 작품의 최종 엔딩을 포함한 모든 주요 전개는, 판을 키우기 위한 '운 띄우기'처럼 느껴진다. '맥스'의 다음 이야기가 또 등장할 것-이라는 후속작에 대한 예고 여부와 별개로, 왜 이런 핵심적인 설정을 여기까지만 묘사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구간이 정말 많았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와 같은 글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플레이타임만 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기자의 경우 최종 엔딩까지 넉넉히 잡아도 7시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됐다. 대사를 비롯한 기타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작에 비해 너무 짧은 분량이다.
가격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스팀 기준 일반판 59,800원, 디럭스 에디션 71,800원, 얼티밋 에디션 95,800원.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이 게임을 한 팬들을 고려하면, 사람들의 뿔난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올해 상반기부터 <더블 익스포저>를 손꼽아 기다려왔던 입장에서, 미리 알려져 있던 [시간선을 넘나드는] 맥스의 새로운 능력은,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했다. 1편에서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슈타인즈 게이트>처럼 비극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서사가 등장할까? 게임플레이는 또 얼마나 섬세하게 등장할까?
역시나 세부 전개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피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게임플레이가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소한 버그를 차치하더라도, 걷고 뛰는 속도나, 물건에 포커스를 맞추고 상호작용하는 과정 모두 답답하게 느껴졌다. 기자는 <더블 익스포저>를 PS5로 플레이했고, 대화 구간을 제외한 전반적인 조작 과정이, 다소 쾌적하지 못하다 느꼈다.
찬찬히 모든 곳을 둘러보라는 의도라 좋게 이해하려 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동일한 캐릭터라도, 각기 다른 시간선에서 다른 감정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활용해, [대화를 나누고 추리를 하는] 영역들은 <더블 익스포저>만의 분명한 강점이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상호작용 및 퍼즐 기믹들은, 다른 게임 이상의 참신함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여행 또는 타임루프를 밑바탕에 둔 명작이 세상엔 너무 많다. <더블 익스포저>에서 '맥스'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방식들은, 이 작품 하나만 놓고 보면 꽤 멋지다-고 느껴지지만, 유사한 다른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플레이 자체에 그 멋짐이 잘 녹아들지 못했다-고 느끼기도 쉽다.
적잖은 유저 리뷰에서 [그래픽]과 [표정 연기]가 좋았다는 표현을 볼 수 있었다. 기자는 이에 대해 반만 동의한다.
'그래픽이 좋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가. 전보다 텍스처 및 피부 표현이 세밀해지고, 프레임 수가 높아져 동작이 매끄럽게 보이면, 만사 해결인가? 내러티브 게임에선 '캐릭터'의 매력이 돋보이고, 감정이 잘 전달되는 게, 좋은 그래픽의 조건 아닐까?
이 지점에선 취향이 갈릴 수 있겠지만, 기자는 1편의 '맥스'와 '클로이'가 <더블 익스포저>의 '맥스'와 '사피'보다 훨씬 예쁘고, 매력적이라 느꼈다. 여기서 [표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작과 10년의 격차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이번 작품이 기술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픽 수준은 상당히 올라왔다. 다만, [시선]의 처리는 자연스러웠으나, 격변한 기술력 안에서도 [표정]의 디테일은 여전히 아쉬웠다.
사운드 트랙, 깔끔한 인터페이스, (확장성은 부족했지만) 흥미로운 반전 요소, 적절한 공간 및 배경 활용 등 <더블 익스포저>를 지탱하고 있는 여러 장점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게임의 최대 장점은 결국 '배우들의 연기'였다.
전작 팬들에 대한 존중의 부족함, 미완의 서사, 때늦은 사춘기 등 앞서 설명한 온갖 단점들은, '맥스'를 연기한 '해나 텔' 배우의 연기 하나로 상당 부분 무마된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연기도 모두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맥스'의 연기는, 특유의 '순수함에서 시작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탈에 발을 들이는 듯한' 감성이 돋보여, 플레이어가 '맥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팬들을 자극하는 플롯을 짠 것도 개발진이고, 지금의 '맥스' 연기를 디렉팅하고 오케이 싸인을 준 것도 개발진이다. 이런 맥스도, 이런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도 사랑해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컷씬이 굉장히 많은 게임 특성상, 버그 수정하듯 내러티브를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블 익스포저>. 한 번 찍은 필름 위에, 다른 상을 한 번 더 노출시키는 '이중 노출' 행위를 말한다. <더블 익스포저>로 시작된 성인이 된 맥스의 이야기도, 호평 위에 혹평이 함께 겹쳐진 모양새다. 맥스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라 예고한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맥스'와 '클로이'를 너무 좋아하기에, 불안감을 안고 또 후속작을 구매해 플레이할 미래가 벌써부터 그려진다. 실망의 꼬리가 길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