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키리’와 ‘디테일즈’, 심지어 ‘DBM’까지. 유저들의 생필품이었던 애드온들이 게임의 기본 기능으로 탑재될 전망이다.








블리자드가 서비스하는 MMORPG<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에는 ‘애드온’이라는 독특한 요소가 존재한다. 애드온은 유저들이 제작한 서드 파티 프로그램으로, 캐릭터의 성장부터 시작해 수집 요소 획득, 핵심 콘텐츠의 공략 등 사실상 게임 내 모든 영역에서 유용한 기능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 같은 애드온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 아니라서 필요에 따라 여러 애드온을 찾고 설치한 뒤, 필요에 맞게 설정을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대단히 번거롭고 복잡해서 어려움을 겪는 유저들이 결코 적지 않다. 기자 역시 오랜 시간 <WoW>를 플레이 해왔지만, 신규 확장팩이 추가되거나 새로운 시즌이 업데이트되면 새로운 업데이트에 맞춰 애드온을 설치하는 데 한참 애를 먹곤 한다.
그런데 최근 <WoW>는 이러한 애드온을 게임 내에서 기본 기능으로 도입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이언 해지코스타스 선임 디렉터는 오는 11.1.7 업데이트로 새롭게 추가될 신규 기능을 소개하고, 애드온에 관한 개발팀의 생각과 앞으로의 운영 목표를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왼쪽부터 <WoW> 전문 크리에이터 드라트노스, 리퀴드(Liquid) 길드의 수장 맥시멈, 이안 해지코스타스 게임 디렉터
오는 11.1.7 업데이트에선 ‘로테이션 보조’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옵션이 새롭게 추가된다. 새로운 전문화를 연습하거나 어떤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유저들을 위한 기능으로, 로테이션 중 다음에 사용해야 할 스킬을 추천해주는 기능이다.
아마 <WoW>를 꾸준히 플레이한 유저라면 알 것이다. 그렇다. 유명 애드온인 ‘헤키리(Hekili)’가 게임 내 기본 기능으로 추가되는 것이다.

화면 가운데에서 다음에 시전해야 할 스킬을 보여주는 애드온 헤키리와

11.1.7 업데이트로 신규 기능으로 추가될 로테이션 보조 기능.
스킬바의 노란색 표시가 다음으로 시전해야 할 스킬이라는 뜻이다.
스킬바의 노란색 표시가 다음으로 시전해야 할 스킬이라는 뜻이다.
해당 기능은 유저가 레이드에 참여하고 있는지, 또는 쐐기 던전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인식해 상황에 맞는 스킬을 추천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또한 캐릭터의 스탯 상황이나 특성을 반영해서 최적화된 로테이션을 설정하도록 출시 이후에도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다음 업데이트에선 원 버튼 기능도 추가된다. 말 그대로 버튼 하나로 로테이션이 진행되도록 돕는 기능으로, 설정된 단축키를 연속으로 입력하면 유저가 설정한 스킬이 연속으로 시전된다. 다만 이는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고 스토리를 감상하고자 하는 유저들을 위한 기능으로, 기존 조작보다 전역 재사용 대기시간(글로벌 쿨다운)이 조금 더 길어 기존 유저들이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후에도 <WoW>는 더 많은 애드온을 게임의 기본 기능으로 추가할 계획이다. ‘디테일즈(Details)’ 같은 대미지 미터기나 ‘플레이터(Plater)’ 같은 네임플레이트 애드온, 심지어는 보스의 패턴 정보를 알려주는 ‘DBM’과 설정한 정보를 추적해서 표시해주는 ‘위크오라(WeakAura)’ 등 대부분의 유저들이 활용하는 애드온을 기본 인터페이스로 편입될 가능성이 열렸다.

원하는 스킬 싸이클을 버튼 하나로 스킬을 연속으로 시전해주는 원 버튼 기능.
편리하지만 기존 시전 방식보다 글로벌 쿨타운이 길어 숙련자들에겐 적합하지 않다.
편리하지만 기존 시전 방식보다 글로벌 쿨타운이 길어 숙련자들에겐 적합하지 않다.
최근 <WoW>는 기존에 애드온으로 활용했던 기능들을 꾸준히 인게임 인터페이스에 편입시키고 있다. 용군단 확장팩에 이르러서는 편집 모드 기능이 추가되어 기본 UI들의 배치와 크기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난 11.1.5 업데이트에선 재사용 대기시간 관리자 기능과 현재 활성화된 효과들을 추적하는 추적 막대 기능도 도입됐다.

표시된 디테일즈 애드온을 제외하면 UI 배치부터 스킬 쿨타임 관리까지 모두 기본 기능만으로 설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WoW>는 이 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가? 이안 해지코스타스 디렉터는 “유저들이 게임에 꼭 필요한 도구를 외부에서 다운로드할 필요가 없도록 게임의 접근 장벽을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 같은 행보의 이유를 밝혔다.
2004년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WoW>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애드온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마 많은 유저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애드온 없이도 게임을 어느 정도 플레이할 수 있지만, 레이드나 쐐기 던전, 투기장 같은 핵심 콘텐츠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애드온 활용이 사실상 강제된다.
현재 개발팀이 보기에 이는 게임이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옳은 방향이 아니다. 애드온은 원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일 뿐, 게임 플레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철학이다. 그래서 기본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게끔, 어떤 기능을 어떻게 제공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안 디렉터는 “애드온이 <WoW>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고, 이를 부정하고 없앨 생각은 없다”며 “이상적인 그림은 유저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정보를 취할지를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개발팀의 목표는 게임 플레이를 더욱 쾌적하게 만드는 기능들을 추가하면서, 특정 애드온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저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발팀은 지금처럼 주로 사용되는 애드온의 기능들을 흡수해 애드온을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의 간극을 줄여나가면서,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필요하다면 애드온의 일부 기능들을 제약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WoW> 애드온 절망편으로 유명한 이미지.
화면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애드온 덕분에 건담 조종석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화면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애드온 덕분에 건담 조종석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문제는 좋든 싫든 이미 유저들은 애드온을 활용한 플레이에 너무도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자주 활용되던 던전 메커니즘이 애드온의 등장으로 쉽게 파훼되어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된 경우도 적지 않으며, 현재는 유저들이 애드온을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패턴이나 기믹을 설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개발팀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이렇다. 애드온으로 쉽게 파훼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줄이고, 애드온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어둠땅 '나스리아 성채' 레이드의 8번째 네임드 '진흙주먹'.
애드온을 활용한 정보 추적보다 공대원끼리의 소통과 협력이 특히 중요한 보스였다.
애드온을 활용한 정보 추적보다 공대원끼리의 소통과 협력이 특히 중요한 보스였다.
이안은 “모든 유저가 특정 애드온에 의존하는 것은 분명히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만, 이와 별개로 애드온을 활용하든 활용하지 않든 도전의 수준은 항상 동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MMORPG의 가장 큰 매력은 유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통과 협력이다. 이를 <WoW>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지향점으로 보는 그는 앞으로도 “애드온을 사용해서 체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게임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통과 협력이 만들어지는 게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