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인디한잔] 다작하는 사람의 장인정신은 모든 순간의 축적에서

음주도치 (김승준) | 2024-11-04 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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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에 계신 분들도 기자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취재를 하다 보면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매일매일 이슈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잠시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멋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 뜨거운 현안들로 담소를 나눠보는 코너 '인디 한 잔'입니다.

'장인정신'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늙은 도공이 원하는 '단 하나'의 도자기를 굽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실패작'을 깨트리는 것.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이기에 일종의 선입견마저 생기곤 합니다. 여러 모양의 다작을 해 시장에 내놓으면, 마치 장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죠.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요?


지난 10월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서 <슬레이어>, <헬 슈터>, <무어 레일> 3개 게임의 데모를 동시에 선보인 개발사가 있었습니다. 1인 개발에서 시작해 어느새 7년차 개발사가 된 플레이 메피스토왈츠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죠. 세 게임은 모두 확연히 다른 재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홍미남 대표는 "일단, 타석에 자주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여러 작품을 컨트롤하면 길을 잃을 것도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간들의 '경험'과 '기록' 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핵심'을 잘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튼튼한 뼈대 위에서도 유연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홍미남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계속 들었던 생각입니다.


플레이 메피스토왈츠 홍미남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 도전과 성장은 꾸준하게 변화는 유연하게


2005년 서강대 게임교육원에서 동기로 '터틀 크림'의 박선용 개발자를 만나며, 게임 개발에 발을 들이게 됐다는 홍미남 대표. 사실, 처음부터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기만 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나 만드는 작업이 시간 낭비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그가 다른 길을 걷는 동안에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던 시간을 뒤로 하고, 2014년 다시 복학을 하게 됐던 그는 게임 개발의 재미에 눈을 뜨게 됩니다. 2016년엔 첫 프로젝트를 만들게 됐고, <에고>(EGO)라는 게임으로 도교게임쇼 출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됐죠. 모노톤의 컬러감 안에서 '의미'를 담기 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보며 디자인을 짰고, 적잖은 사람들의 눈에 들면서 첫 단추를 끼우게 됩니다.


TGS 2016에서 그가 만난 개발자들과 게이머들은 기대 이상으로 게임에 진심이었고, 진지했다고 합니다. 이때의 경험을 가슴에 품고, 2019년 도쿄게임쇼에 다시 가기까지 그는 '작곡 여행' 콘셉트의 <NOTE>,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내면에 있다"는 주제의 <도어>와 같은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홍미남 대표는 플레이 메피스토왈츠 창립 이후 7년의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7년의 여정은, 우선, 재밌었던 것 같아요. 단계 단계를 계속 건너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술을 익히는 1인 개발 시절도 좋았고, 습작도 계속 냈고요. 스테이지 하나 정도 만든 게임도 구글플레이에 올려보기도 하고, 큰 의미도 없지만 광고비를 집행해보기도 하고요, 그 모든 배움의 과정이 즐거웠어요."




"게임이라는 문화를 통해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모토를 가진 플레이 메피스토왈츠. 홍미남 대표는 꾸준한 습작 안에서도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각적으로 눈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은, 직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고민에 의한) 경쟁이 가장 적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톤 앤 매너], [룩 앤 필]을 잘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핵심 콘셉트]와 [코어 플레이]의 매력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습니다. 여러 게임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 '의미'라는 단어도 같은 맥락에 있었죠. 때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을 때도 있었고, 직관적인 재미를 더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고민일 때도 있었습니다. 요점은 "코어는 유지하고 다른 부분에선 필요할 때 언제든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죠. 오늘 소개해드릴 3개의 게임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꾸준히 게임을 만드는 플레이 메피스토왈츠입니다. 
'Steadily'라는 단어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곤 하지만, 홍미남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느낍니다. 
도전과 성장은 꾸준했고, 변화해야 할 순간엔 유연했다는 걸 말이죠.

# 귀여운 외모에 그렇지 않은 긴장감 <슬레이어>

"닌텐도가 액션게임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는 <슬레이어>. 매력적인 백발의 주인공 '엘리아'부터 눈길을 끌고, 3D 그래픽을 픽셀화시켜 마치 복셀처럼 보이게 만든 독특한 그래픽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게임은 매우 직관적입니다. 사각 타일 위를 이동하며, 장애물이나 적을 부수거나 피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면 됩니다.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태가 아닐 땐, 공격을 위해 한 칸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붙으면서, 게임의 전략이 깊어지고 난도가 올라갔죠.


레벨 업, 스탯과 스킬, 소모성 아이템, 장비 등의 존재는 성장과 도전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고, 스태미너와 특수 타일, 함정, 강력한 몬스터의 존재는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심지어 '패링'도 있고, 체력 관리도 까다로운 편이기 때문에, 이 어두운 세계 안에서의 생존이 쉽지 않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됩니다.


메인 아트도 예쁘지만

인게임 그래픽이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기본적인 조작을 포함해 첫인상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는 느낌이지만, 
장비나 아이템, 스태미너와 패링 등 있을 건 다 알차게 담겨있습니다.
 

어려운 구간이나 강력한 적 앞에서는 자주 죽기도 하죠. 하지만 재차 도전하고 싶게 만들어진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미남 대표는 "플레이엑스포에서 게임을 선보였을 때, 피지컬적인 난도가 적절히 어려울 때 4일 내내 찾아와준 유저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초기부터 조작은 쉽게 하되, 전략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게 포인트였던 게임이었어요. 아무 곳에서나 공격할 수 있으면 안 되게 만들었고, 제약을 부여하면서, 어떤 위치에서는 적이나 장애물 사이에 갇힐 수도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길이 좁으면 어려워지는 게임이에요. 좁고 넓히는 걸 반복하면서 긴장을 주고 빼는 게, <슬레이어>의 레벨디자인 공식입니다."


<슬레이어>의 가장 큰 매력인 비주얼에 대해서는 "[룩 앤 필]을 10번 이상 바꿨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인 개발 때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던 게임이고, 많은 변화를 거쳐왔어요. 3D를 픽셀화시키면서 기술적 한계는 감추고, 독특한 인상은 주고 싶었죠. 지금의 형태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는 조언도 있었는데, 저는 코어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코어를 바꾸면 아예 다른 게임이 되거든요. 제가 정한 부분은 지키면서,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장비 착용과 같은 디테일도 캐릭터 외형에 모두 반영됩니다.

개인적으로 오늘 소개하는 3개의 게임 중 가장 재밌게 플레이했던 <슬레이어>였습니다. 
<슬레이어>는 11월 얼리 액세스 출시 예정입니다.

# 당구, 핀볼? 오토바이 타고 명계에서 싸우는 <헬 슈터>

이번 게임 또한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콘셉트가 명확한 게임입니다. (기존 이름은 <명명명: Dark Fate Redemption>이었던) <헬 슈터>는 당구나 핀볼 게임을 플레이하듯 주인공을 당겨서 쏘고, 튕겨나가는 궤적을 활용해 적을 무찌르는 플레이가 중심에 있습니다.


여동생의 죽음을 따라 지옥으로 가게 되는 '오르페우스'의 이미지를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샤먼킹>처럼 '혼'으로 싸우는 느낌도 고려해봤으나, 오토바이로 이동한다는 아이디어도 재밌다고 느껴 지금의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고 합니다.


<헬 슈터>는 당구, 핀볼처럼 플레이하는 재미-에서 시작된 게임이기 때문에, 다른 많은 요소들도 이 메카닉을 살리는 방향으로 살을 붙여 나가게 됐습니다. 평상시엔 쿼터뷰로 진행되다가, 전투에 진입하면 탑뷰로 전환되어 궤적을 더 명확히 보여주는 것도 이런 선택의 일환이었죠.


직관적인 전투 위에 성장 요소와 로그라이크 선택지가 같이 제시되면서 플레이에 다양성을 더한 것이 특징입니다.


지금은 <헬 슈터>라는 이름으로 변경됐습니다.

아기자기한 3D 그래픽이 특징입니다.


화면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인 플레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게임 또한 난도 자체는 어려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
Z, X 키로 발동하는 기술을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합니다.

로그라이크 선택지 및 성장 요소로 반복적 플레이에 변주를 줬습니다.

# 기차를 강화하고 동료와 함께 살아남기 <무어 레일>

"<무어 레일>은 3~​5년 전부터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못 만들 게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이런 장르나 게임을 좋아하는 체계적인 멤버가 있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결국 때가 와서 지금의 형태로 만들 수 있게 됐죠. 기차를 계속 강화하면서, 좋은 동료를 모으고, 운송을 하면서 미션을 클리어하는 루프가 핵심인 게임입니다."


<무어 레일>은 앞선 두 게임과는 조금 결이 달랐습니다. 기차를 강화하면서 적재량을 늘리거나,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전투를 보조하거나 직접 공격하는 차량을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기차 위에서 함께 싸워주고, 전투 상황을 돕는 용병들도 여러 명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동하며 적을 쏘는 플레이어의 트윈 스틱 슈팅 플레이의 비중만큼이나, 기차와 용병의 구매 및 강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홍미남 대표의 설명에 의하면, <진격의 거인>이 벽의 안과 밖으로 구분된 세계라면, <무어 레일>은 역과 역 사이의 경로로 구분된 세계로, 플레이어는 상위층의 음모를 비롯한 세계의 비밀을 알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물건을 옮기고, 인명을 구출하는 미션도, 얼마나 물건을 싣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하는지, 아이템을 얼마나 들고 가는지에 따라 기차의 속도도 느려져 난도가 올라가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는 피지컬 플레이로 <무어 레일>을 어렵게 만들 생각은 없지만, 피지컬로 극복 가능한 자유도는 남겨두고 싶다고 말합니다. 엔진을 빠르게 만들고 솔로 플레이로 깨는 방법도 가능하지만, 기획적인 중심은 기차 강화와 동료 영입에 뒀다고 합니다.


선택 가능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트윈 스틱 슈팅 방식으로 전투를 진행합니다.

기차와 용병을 구매 및 강화하는 것이 핵심인 <무어 레일>입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며 미션을 깨거나, 인피니트 모드에서 도전하는 방식 등이 제시됩니다.


레이저를 쏘는 차량, 함께 싸워주는 용병 등 강화하는 과정에서 전투 양상도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 기록과 축적 그리고 성장

[인디한잔]이나 [룩백] 등의 코너를 꾸준히 봐온 분들이라면, 아마 기자의 취향이 한결같다는 걸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본인들이 무엇을 잘 하는지-강점을 명확히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 성장과 실패의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데 적극적인 사람들을 주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홍미남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들의 유튜브 채널에 꾸준히 올라온 브이로그와 인터뷰의 영향의 컸습니다. 특히 플레이 메피스토왈츠 본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개발사의 이야기들에도 귀를 기울이는 인터뷰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제작하는 게 쉽지 않은 편이기에, 대단하다 느꼈죠.


그는 "우리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개발에 입문할 당시 <인디 게임: 더 무비>와 같은 영상을 몇십 번씩 봤는데, 국내엔 게임 개발자들의 영상 콘텐츠가 적어서,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영상을 지켜보는 팬들이 플레이 메피스토왈츠가 걸어온 서사를 알고 정서적으로 더 공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장자'의 '수레바퀴 깎는 노인'의 예시를 들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는 영역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노하우가 다 전해질 수는 없다는 취지였죠. 그렇지만 동시에 '필요한 영역'은 서로 명확히 채워줄 수 있을 때가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인터뷰를 비롯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다작을 하는 전략은 그가 1인 개발을 하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방향성이라고 합니다.


"진짜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아닌 이상, 개발자가 2명 모였다고 해서 꼭 시너지가 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신입이나 주니어 때는 (한 사람이) 하나를 맡는 게 맞아요. 저도 그렇게 해봤고요. 그런 동시에 자주 타석에 서봐야 해요. 게임은 흥행 산업이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가 뜬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게임을 대충 만드는 건 당연히 아니고요.(웃음) 만들고 싶은 걸 만들면서, 사업적으로도 도전하다 보니 지금의 형태가 된 것 같아요."


1인 개발에서 시작한 플레이 메피스토왈츠는 어느 새 12명의 규모로 커졌고, 이번 지스타에서는 앞서 소개한 세 작품과는 또 다른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래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자체 IP의 힘을 키워 2편이나 DLC의 형태로 콘텐츠를 추가로 내는 측면도 좋았지만, AAA게임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성장해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고 봐도 무방했죠.


"조금씩 큰 게임을 만들 거예요. 나중에는 AAA를 만들 수 있는 기술 여건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쪽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기술에 대한 공부보다는,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력이 안 되는 회사는 기술이 나와도 이용할 수 없을 거거든요. 그래서 판매량과 매출을 상승시키면서, 이런 기술의 시대가 왔을 때 이용할 수 있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 첫 도전부터 홍미남 대표에게 도쿄게임쇼가 가진 의미는 남달랐기에, TGS 2024 또한 소중한 기회였다고 합니다. 또 어떤 새로운 게임으로 도전을 이어갈지 기대되는 플레이 메피스토왈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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