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게이머들에게 더 특별한 행사였다. 29년 역사 중 최초로 게임을 다룬 영화 <세이브 더 게임>과 함께, 한 게이머의 일생을 다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됐기 때문이다.
그가 활동했던 RP(Role Playing) 서버는 게임을 대하는 자세(?)가 일반적인 서버와는 확연히 다르다. RP 서버에서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이며, 게임 속 세계는 배우들의 연기하는 세트장이다. 말하자면 RP 서버의 게임은 수많은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하나의 거대한 역할극인 셈이다.
영화의 절정에서 마츠는 이벨린의 모습으로 그동안 지켜왔던 RP 서버의 불문율인 ‘제4의 벽’을 깨고 현실의 삶을 고백한다. 계속 분리되어 있던 두 개의 삶이 하나로 맞닿는 지점으로, 이로써 이벨린은 마츠의 새로운 육체로 거듭나게 된다.
벤자민 리 감독의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게임 속 그래픽을 활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독특한 시도를 선보였다. 그 신선함을 인정받아 영화는 세계적인 독립 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했고, 이후 지난 25일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동시 개봉됐다.
영화는 '이벨린'으로 살아갔던 마츠 스테인(Mats Steen)이라는 인물의 특별한 삶을 조명한다. 게임 속에서 새로운 몸으로 두 번째 삶을 살았던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 위 우리 몸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1989년 태어난 마츠는 선천적으로 ‘뒤셴형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았다. 체내의 근육이 약해지고 서서히 소실되어, 종국에는 심장과 호흡 기관의 활동이 저하되어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서서히 굳어가는 손발 때문에 마츠는 어린 나이부터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또래 아이들의 일상도 그에게는 경험할 수 없는 꿈과 같았다.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활동 중에는 게임이 있었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상당 부분을 게임에 할애했다.
선천적으로 뒤셴형 근이영양증을 앓은 마츠는 어릴 때부터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게임을 위해 그가 직접 제작한 특수 장비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였다. 그는 ‘이벨린 레드무어(Ibelin Redmoore)’라는 이름의 인간 남성 캐릭터로 8년 간 활동했다. 스톰윈드의 사설 탐정이었던 그는 실제로 많은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소문난 해결사였다.
지난 2014년 마츠는 2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이벨린’이라는 두 번째 삶을 몰랐던 그의 부모는 뒤늦게 자신들이 틀렸음을 고백했다. 그들의 우려와 달리 마츠는 게임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며 많은 이들의 삶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긴, 말 그대로 "비범한 인생"을 살아간 것이다.
가운데 앉은 캐릭터가 마츠의 캐릭터인 '이벨린'이다.
마츠는 이 곳에서 ‘이벨린’을 연기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첫사랑인 ‘루머’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루머와의 인연을 상세하게 풀어냈고, 영화는 이를 토대로 현실과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마츠의 짝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냈다.
마츠는 생전 두 사람이 함께 그려진 그림을 소중하게 아꼈다.
이후 영화는 본격적으로 캐릭터의 모습을 통해 모니터 너머의 플레이어의 감정과 행동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던 두 모자(母子)의 모습이다.
자폐증을 앓으며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던 아들은 이벨린의 제안으로 게임 속 감정 표현 기능을 활용해 어머니의 캐릭터를 껴안는다. 이 장면에서 애니메이션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함께 등장하는 관계를 회복한 두 사람의 모습은 이 가상의 접촉이 현실의 포옹처럼 느껴지게끔 만든다.
마츠의 캐릭터 '이벨린'과 그의 연인 '루머'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던 두 모자는 이벨린의 도움으로 관계를 회복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해 영상 사이사이에 실제 인물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냈다. 단 한사람, 마츠만 빼고. 영상 속 마츠의 모습이 담긴 장면은 유년시절에 촬영된 비디오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거동이 불편했던 탓에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자민 리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이벨린의 모습을 통해 마츠의 내면을 그려냈다. 다행히 이는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벨린은 마츠가 평생을 함께한 또 다른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다양한 감정선은 그가 품었던 복잡한 심리를 훨씬 풍부하게 표현한다.
그렇다면 발전된 CG 기술로 훨씬 화려하고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해진 지금, 굳이 인게임 그래픽을 영화 속에 그대로 활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명료하다. 그것이 훨씬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그래픽 리뉴얼을 거치면서 그가 마주했던 게임의 그래픽과 지금의 그래픽은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가 머물렀던 게임 속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큼 사실적인 표현은 없다. 발전된 그래픽으로 그의 삶을 조명하는 것은 사실의 재구성 내지는 변형에 가까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그의 영정사진에서나마 그의 웃음을 찾아볼 수 있다.
마셜 매클루언은 자신의 저서에서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으로 정의한다. 옷은 우리 피부의 역할을 대신하니 피부의 확장이고, 바퀴는 발의 역할을 대신하니 발의 확장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영화는 마츠의 삶을 통해 ‘게임은 전방향적인 몸의 확장’임을 보여준다. 그에게 게임 속 ‘이벨린’은 ”스스로를 옭아맨 사슬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창구”이자, 멋지고 건강한 모습을 가진 그의 “확장판”이었다.
이벨린은 매일 아침 30분 동안 엘윈 숲 근처를 달렸으며, 틈이 나면 아제로스 전역을 자유롭게 모험했다. 병마로 인해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현실과 달리 여관에서 가상의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도 있었다. 이벨린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가상 세계 위에서 현실의 경험을 대신하는 그의 새로운 육체였으며, 그가 꿈꾸던 삶을 보여주는 이상향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짧은 달리기 장면에서 마츠의 간절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마츠, 그리고 이벨린으로서의 삶은 마지막까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했다. 육신의 사슬을 끊고 비로소 자유로워진 그의 관은 길드원들의 손에 옮겨졌다. 당초 '마츠 스테인'이라 새겨졌던 묘비명에는 ‘이벨린’이라는 이름이 추가됐다. 마츠가 자주 머물던 엘윈 숲의 황금골 호수 근처엔 그를 위한 묘비가 세워졌고,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였다.
현실의 추모와 견주어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추모다. 영화는 마츠의 삶과 함께 끝을 맺었다. 하지만 게임이 현실과 병치된 새로운 삶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마츠, 그리고 ‘이벨린’이라는 그의 이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우리 곁에 남을 것이라 기대한다.
현실의 추모와 견주어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추모다. 영화는 마츠의 삶과 함께 끝을 맺었다. 하지만 게임이 현실과 병치된 새로운 삶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마츠, 그리고 ‘이벨린’이라는 그의 이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우리 곁에 남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가 자주 머물던 황금골 호수 근처엔 그를 위한 묘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