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TIG룩백] "이처럼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데도, 내가 벌레란 말인가"

자라나는씨앗 (자라나는씨앗) | 2024-10-18 1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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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TIG 룩백' 코너에서는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가진 개발사들의 발자국을 톺아보며, 그들의 등 뒤에 남겨진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서점이 매일 문전성시다. 과거 인터뷰 영상이나, 그녀가 20대 시절 EBS <문학기행>에서 여행을 하던 모습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한강 작가의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글 쓰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일시적인 관심이어도 좋지 않은가. 책 읽는 스스로의 모습을 멋지다고 느껴 인스타그램 등에 자랑하는 '텍스트 힙' 현상도 마찬가지다. 자발적인 학습은,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과 '지적 허영'을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경위가 어찌 되었든, 문학과 작품에 관심을 가져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을 '게임'으로 풀어내는 자라나는씨앗은, 지난 2편에서 '생각하는 힘'이 '문학'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MazM 시리즈를 통해 어떤 작품과 작가를 소개해야 할까, 게임이라는 형식 안에서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라는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김효택 대표는 오히려 '게임적인 요소'를 덜어내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기고=자라나는씨앗 김효택 대표, 서문 및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TIG룩백 자라나는씨앗 포스트모템 5부작]
① MazM의 탄생-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꿈" (바로가기)

② MazM의 방황-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바로가기)
③ MazM의 자아발견- "이처럼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데도, 내가 벌레란 말인가" (현재 기사)
④ MazM의 실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바로가기)
⑤ MazM의 비전- "진정한 기사도를 찾아서" (바로가기)


MazM 시리즈의 최신작 <카프카의 변신> 이미지들

# 결국 다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으로...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1915, <변신>, 프란츠 카프카]


10월 11일 금요일, MazM(맺음)의 차기작이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1845년 작품 <검은 고양이>가 될 것이라고 공식 계정에 포스팅했다. 게임 <카프카의 변신> 출시 후 겨우 1주일 남짓 지난 시점이고, 계획했던 일정에 따른 공개였다. 출시 시기는 올해 11월 말로 예정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어, 큰 변수가 없다면 바로 다음 달 출시라는 뜻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지난 2일 글로벌로 출시하여 안정적으로 배포 중이며,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보인 부분도 있고, 다소 아쉬운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다. 10월 중 업데이트를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은 보완되겠지만, 기존에 설정했던 목표를 이루면서 진행 중이기에, 큰 변화는 없이 다음 작품에 집중하려고 한다.


올해 초부터 우리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 이야기에서 나는 MazM이 좀 더 빠르게 게임 라인업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게임마다 각기 다른 도전을 통해, 큰 성공을 기대하는 이른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 전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빠른 출시를 통해 폭넓은 라인업을 만들어가는 전략이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우리의 목표가 '고전문학 작품을 더 널리 알리는 것'이라면, 유저에게 작품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평균 1년 반씩 걸리던 게임 개발 과정을 과감하게 줄여야 했고,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했다. 우리는 결국 스토리게임은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제외한 모든 것은, 일단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에 집중하고, 많은 부분을 덜어낸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이를 위해, 차기 작품 선정에 어느 때보다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MazM의 글로벌 팬덤이 좋아할만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계획을 도전해볼 수 있는 작품을 고르려고 했다.


올해 초, 우리는 MazM의 공식 계정을 이용해 유저 설문을 진행했다. 약 300여 개에 이르는 고전문학 작품을 검토한 후, 이 중에서 인지도, 매력, 청소년 권장도서 여부 등을 기준으로 약 14개의 작품을 1차로 선별했고, 팬덤에게 어떤 작품을 더 선호하는지 물었다. 한국 유저 참여 비율은 약 10% 정도로, 글로벌 유저 참여 비중이 90%에 달한 설문이었다. 이 작품들을 기준으로 우리의 차기작을 정하려 했다.


최종 작품 선정을 위한 우리의 내부 기준은 이러했다. 일단, 첫 두 작품은 원작의 사이즈가 작아야 했다. 빠르게 우리의 생각을 실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지도가 있어서 자연 유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작품이기를 원했다. 


그렇게 선정된 첫 작품이 체코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변신>이었다.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작가의 작가'로 불린다. 수많은 유명 작가들이 그로 인해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50페이지 내외의 매우 짧고 임팩트 있는 단편이다. <변신>은 '인간의 실존'을 다룬 작품으로, 초기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특히, 2024년은 프란츠 카프카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에, 이를 기념하는 의미도 담고자 했다.


이후, 작품 5개를 추가해 총 6개의 작품을 선정했고, 우리는 이를 엔믹스(NMX, New MazM siX)라고 내부에서 불렀다. <검은 고양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작은 아씨들>, <햄릿>, <드라큘라>가 선정되었다. 지금은 이 중 하나(<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가 새로운 작품으로 바뀌고, 출시 순서도 조금 바뀌었지만, 이 작품들은 우리가 내년까지 개발할 라인업에 이름이 올라와 있다.


MazM 팬덤을 대상으로 한 차기작 투표 결과

차기작 다섯 편 라인업

# 게임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나니...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첫 작품 <카프카의 변신>은 올해 초 개발을 시작했다.


이 게임의 구조는 모바일에 특화된 세로형 게임으로 설정했다. 이 설정은 앞으로 당분간 모든 게임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게임은 간단한 터치만으로 스토리텔링을 경험할 수 있는 비주얼노벨 형식을 취했다. 캐릭터와 스토리에 몰입을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과 연출만을 담았다. 전체적으로 약 4~5시간의 플레이타임을 가지고 있으며, 엔딩이 있는 싱글 게임으로 총 5막, 9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각 에피소드는 2분 내외로 짧게 구성햇다.


우리는 게임에서 게임적인 요소를 모두 걷어냈다. 오직 스토리만 담았다. 실제 출시 전 외부 피드백에서 "이게 게임인가"라는 의문이 많이 제기되었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발가벗겨진 스토리 콘텐츠가, 게임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또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소구력을 가지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섣불리 이런저런 게임 요소를 넣으며, 정작 정말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방황했던 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 <카프카의 변신>


다음 이야기에서 다루겠지만, 게임 요소는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본래의 강점에 더 집중해서, 경험하고 확인해야 할 것들을 빠르게 시도하는 쪽이 중요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분석하다 보니, 주제 의식을 담기 위해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자는 생각을 했다. <변신>이라는 짧은 작품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해서는, 작품이 가진 주제 의식을 명확히 보여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게임의 구성을 실존 작가의 이야기와 그가 왜 <변신>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로 가져가게 되었다. 이것이 게임 이름이 <카프카의 변신>으로 결정된 이유다.


이번에 출시한 <카프카의 변신>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자전적 이야기와 그의 작품 <변신>, <선고> 등을 교차로 경험하는 스토리게임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변신'에서 다루고 싶었던 가족 안에서의 소외, 인간성의 말살, 이를 문학으로 극복하려 했던 '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쓸모없고 사라져야 하는 '벌레'로 비유되는 인간 존엄과 실존에 대한 이야기를 카프카 본인의 삶과 연결해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1900년대 초를 살았던 한 작가의 이야기이자 소설 속 이야기지만, 도시화와 상업화로 시작된 현대성의 큰 물결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울림이 있다. 사람 그 자체의 가치는 보지 않고, 능력주의와 기능적 인간으로 구별 지으려 하며, 상업적 가치로 사람의 값이 매겨지는 세상을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어버린 나를 발견하게 한다.



 

여전히 우리는 이 게임을 통해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를 대중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소개하고 싶고, 그에 대한 관심이 그의 작품 세계로 이어져, 그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다. 


요즘 주변의 청소년, 청년들을 보면 콘텐츠 창작과 관련된 꿈을 안고,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 비해 콘텐츠 제작이 쉬워졌고, 유저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유튜브 크리에이터, 웹툰 작가, 웹소설 작가, 인디게임 개발자 등이 특별한 전문가의 영역에서 내려와, 중고등학교 때부터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비주류의 삶일 뿐이라는 차가운 시선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아마도 <카프카의 변신>을 플레이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로 창작자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자아실현과 현실이라는 한계, 그리고 극복이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첫 삽을 떴다. <카프카의 변신>은 아직 실험 단계에 있는 작품이지만, MazM의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첫 작품이었다. 다음 작품은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로, MazM의 첫 공포물이 될 예정이다.


다음 이야기부터는 MazM이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4편에서 계속)


<검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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