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는 코스프레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을 소중한 추억들
그리고 인연들. 하나하나 소중하고 참 고마운 사람들.
가끔 되짚어 기억의 그 때로 돌아가면 나도 모르게 행복하고 즐겁다.
그렇게 기억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사람 중
항상 내 기억 한 켠에 인형과 같은 아이 둘이 있었다.
동갑내기인 발랄한 고교생이었던 그녀들.
아담한 체구에 정말 인형 같은 귀여운 외모.
아담하고 귀여운 둘이 하얗고 조그만 두 손을 꼭 쥐고
여의도 행사장 내를 방글거리면서 돌아다녔더랬지.
둘이 따뜻한 햇살 아래서 하하하 하고 웃으면
정말 꽃잎같은 분홍 고운 웃음이
종잇조각처럼 흩어져 허공을 흩날리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보기만 해도 너무 뿌듯하고 예쁜 추억이라
항상 그 모습이 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외모도 외모고 코스프레 퀄리티도 항상 높았던 편이라
팬도 상당히 많았던 그녀들.
게다가 얼마나 똑 부러졌는지. 어리숙하지 않아 자기 관리도 잘했었다.
그러던 그녀들도
대입을 앞두고 현실에 들어가 점차 활동이 뜸해지더니
대학교를 들어가고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땐.
두 사람의 코스프레를 보던 시간은 이미 추억이 돼버렸음을 실감했더랬지.
그 중. 인형과 같던 그 아이 중 하나.
대입 후에도 꾸준히 코스프레를 놓지 않고 하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나타났다.
인형과 같은 그 아이가
인형을 제작하는 인형 디자이너가 된 것.
이번 주인공! 인형 디자이너로 맹활약중인 경진이입니다.
: 경진아~
: 언니!
: 너희 회사가 이렇게 우리 회사랑 가까울 줄이야.
: 그러게요 저도 몰랐어요/ ㅎㅎ
: 종종 같이 점심 이렇게 같이 하자. 미인이랑 같이 밥 먹는 것좀 자랑하게 회사 사람들한테. (웃음)
: 아이고, 미녀 소리도 듣고. 언니 고마워요
여전히 예쁜 경진이.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더라
: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안 변하니. 예전 그대로네
: 언니 저 나름 많이 변했어요. (웃음)
: 아냐 내 눈에는 여전한걸. 보인다 보여, 그 때 고교생 경진이가. 그러고 보니 너 닉네임은 많이 안 썼지? 히비키…는 기억이 나는데.
: 맞아요, 닉네임은 거의 안 썼어요. 보통 그냥 본명으로. 유경진 그대로. (웃음)
: 아우 아직도 풋풋했던 그 때가 생각나네. 언제부터 시작했지
: 저요 2000년.
: 2000년이라. 밀레니엄 (웃음) 첫 코스프레가 춘향이였나?
: 네, 클램프 상당히 좋아해서.. 클램프 작품 참 많이 했었어요. 처음 시작이 춘향이랑 나코루루였고.
: 진짜 많이 했지 경진이도.
: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진짜 오래 하긴 했었다 (웃음) 그 중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건 에드워드, 세이버, 클로스 로드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 자, 코스플레이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지. 어쩌다 이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이냐. (웃음)
: 코…코스프레의 불구덩이!!!
: 그렇지 이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된 동기는?!
: 사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일이라든지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상당히 좋아했어요. 할머니의 영향도 큰데, 할머니께서 한복 만드는 일을 하셨거든요.
: 히익, 한복 디자이너셨구나!!
: 집에 그래서 주단이 늘 쌓여 있었던 터라 원단 쪼가리를 가지고 쏙닥거리며 많이 놀았거든요.
: 이거… 코스프레나 의상 제작에 안 뛰어들래야 안 뛰어들 수 없는 환경이었구나.
: 그래서 아무래도 원단도 많고… 인형 옷을 만들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난리도 많이 쳐봤구요.
: 그때부터 인형의 길이 예비된 거렸다. (눈물)
: 지금 생각하니 그렇네요. 아무튼 그러던 중 중학생 때 만화 행사에 우연히 놀러가게 됬었는데. 그 때 마주하게 된 겁니다.
: 두둥!
: 코스프레를!
: 만나버렸구나!!!
: 신세계를 본 거죠. 정말 재밌어 보였어요. 안그래도 만드는 것 좋아하겠다 만화나 게임이나 좋아하겠다.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더라구요.
: 무지 재밌어 보이지…
: 나도 한번 입어보고 싶고. 옷이라면 나도 예쁘게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중 3 겨울 방학땐가.. 그 때부터 시작해서 근 10년을 코스프레에 열중했죠.
: 그때의 만남이 10년으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길에 들어서 버렸더랬지.
: 경진이 의상 보면 확실히 꼼꼼하고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 퀄리티가 항상 높았어. 그러고 보니 만들었던 의상 중에 가장 만들기 힘들었던 캐릭터는 뭐야?
: 저는 뭐랄까… 복잡한 의상은 오히려 만들기 재밌어서 좋아해요.
: 오 그렇구나. 복잡한 것은 재밌다라. 그럼 힘든 건?
: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건 정말 힘드네요…
: ....그렇지. 완전 공감.
: <클로스 로드>라고 언니 아시죠. 의상 디자인을 모티브로 만든 만화. 거기에 꽃이 잔뜩 들어간 모자를 만든 적이 있었어요.
: 설마. 그 꽃을 다 직접 만들었다고 하지마.
: 마음에 드는 꽃이 없어서
: 설마.
: 직접.
: 으악 설마.
: 직접 다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꽃을.
: 오마이갓. 너무 놀라니까 영어가 나오네. 대체 몇 송이냐 그게.
: 한 40송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계속 꽃 만들면서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자니… 온몸은 근질근질대고 손끝은 덜덜덜 떨려오더라구요.
: 40송이라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지린다.
: 쑤시고 짜증 나고 다 버리고 뛰쳐나가고 싶더군요.
: 진정한 정신 수양의 길이었구나.
: 뭐, 결과물은 만족스러웠어요. 고생한 보람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의상이에요.
보기만 해도 한숨이 터져나오는
엄청난 꽃모자.
저 꽃을 다 손으로 직접 만들었답니다. 보고도 믿기질 않네요.
: 그러고 보면 경진이가 어느샌가 행사장에서 잘 모습을 안 보였었지.
: 아 그랬나요? 언니가 할 동안은 꾸준히 있었는데
: 그게 신기한 거야. 분명 나중에 보면 너 사진은 있는데, 내가 행사장 야외에 사진 찍으며 하루종일 있는데도 너는 못 봤거든.
: 아 그게…
: 맞아, 코스프레 무대 팀에 잠시 들어갔더라구. 나도 그걸 나중에 알았어. 같은 코스프레라 하더라도 무대쪽이랑 사진 쪽은 시간대도 다르고 행동반경도 달랐으니까. 너 왔던 걸 몰랐던 거야.
같은 코스프레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고,
구분이 꽤나 확실하게 되어 있었다.
우선 장르로 나누면 만화나 게임, 영화 등을 주로 코스프레 하는
가장 많이 보는 형태의 코스프레와
아이돌 그룹이나 비주얼 가수를 코스프레 하는 팬 코스프레가 있었다.
이렇게 장르로 나눈 코스프레는 행사장도 따로 주최했고,
서로 코스플레이어들끼리 구분도 확연했기에
당시에는 두 장르 간의 교류가 적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그 경계가 허물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코스프레를 하는 방법에 따라서,
이미지 사진을 주로 찍는 일반적인 코스프레와
한 편의 극이나 쇼로 만드는 무대 코스프레로 나눌 수 있었다.
사실 이 둘은 처음에는 같은 형태로 시작했다가,
어느 이벤트에 더 집중하는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뉘게 된 것이었다.
코스프레 행사장에서는 코스프레 무대 이벤트도 따로 개최했었는데,
초반에는 행사에 참여했던 코스플레이어들이 패션쇼 형식으로 가볍게 참여했었으나
이 행사가 경연의 형식을 갖게 되면서
점점 더 전문적으로 멋진 코스프레 무대를 꾸미고 선보이는 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수준 높은 무대를 위해 음악 등 사운드 믹싱이라든지,
무대 연출 및 기획, 심지어는 격투 연출…까지 요했기 때문에
팀원들 간의 상당한 공부, 연습과 새로운 아이디어, 끈끈한 팀웍이 필요했고.
그래서 행사장에서 사진을 찍기보다는 무대에 집중했기에 자연스럽게 나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프로 코스프레 팀으로 활동하는 몇 팀은
그 무대 코스프레 팀이 전신인 경우가 있더라.
그렇게 다년간의 무대 경험, 연출이나 기획 경험과 재능이
지금의 프로 코스팀의 일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 어떻게 하게 된 거야?
: 친구랑 클램프의 신 춘향전 캐릭터를 만들어서 행사장에 갔었어요. 당시에 무대를 열심히 하던 팀에서 클램프의 원더랜드 무대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다고 질질 끌려간 것이 시작이었어요.
: 와, 난 뭐랄까. 역시 무대 쪽은 많이 해보질 않았어서… 나중에 해보고 진짜 신기했거든. 분명히 코스프레 초반에는 그냥 패션쇼 워킹 정도의 무대만 있었던 것 같은데, 날이 갈수록 점차 무대에 신경 쓰는 팀들이 많아지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각자 무대를 발전시켜 나가더라? 그 무대 하나를 꾸미는데 진짜 엄청 많은 기술, 노력, 준비가 필요한 거야.
게다가 그걸 스스로 해내서 준비해야 하는 거지. 남들보다 더 멋진 무대를 만들려면. 음악이 필요하니까 믹싱 스스로 하고 있고. 안무도 무대 연출도 직접 다 하고. 효과도 넣고. 프로급이더라.
: 그게 진짜 그래요. 그러려면 보통 연습이나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닌데, 그걸 다 자급자족으로…. (웃음) 아무래도 그러니까 모여서 연습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함께 연습하고 사람들 만나고 하는 게 즐거워서 몇 번 했었어요.
: 거기서 사람들과 친해지게 된 거구나. 매번 연습하고 만났다면 정말 재밌었겠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같은 코스프레 행사장 내에서도 무대 연습하는 팀 따로 있고 사진에 열중하는 팀 따로 있고 했었더랬지. 예전 생각난다 진짜.
: 아무래도 그렇게 무대를 하게 되면 연기도 하게 되는거잖아? (웃음) 재밌던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 부끄러운 기억도 정말 많죠 (웃음) 아, 후르츠 바스켓 무대에서 여주인공이 친구를 치한으로 착각하고 때리는 장면이 있거든요?
: 후르바! 내 닉네임의 전신!
: 앗 그런가요? 아! 하츠하루구나! (웃음) 아무튼 그런 장면이 있는데.… 무대에 열중해서 너무 열성적으로 때린 나머지.
: 나머지?
: ....가발이 휙, 저만치 날아가 버린...
: Aㅏ... 그건 핵폭탄 급이네…잠깐. 그 이전에 얼마나 열심히 때린거냐. 날아갈 정도로.
: 뭐... 그 때는 정말 당황했지만…….
: 했지만?
: 우선 마저 때리고.
: .... 그 사람 너한테 평소에 잘못 많이 했었니?
: 뭐.. 어쩌겠어요 이왕 벌어진 거. 어쨌든 마저 신나게 때리고. 가발 쓱 주워서 눌러서 쓰고 마저 무대 하고 내려왔죠.
: ...부끄럽지만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양 꿋꿋하게.
: 집에 돌아가서 이불킥 다섯 번 정도 했습니다.
: 넌 멘탈이 강하니까
: 맞아요. 그래도 저 나름 멘탈이 강한 편인 것 같아요. 그날 신나게 이불킥하고 그냥 소중한 추억으로….
우선 가발이 저만치 날아가도 당황하지 마세요. 마저 때립니다.
무대 때문입니다. 오해 마세요.
그러고 보니. 네. 이 아이도…
여러분 미안해요. 내 나이를 이해해줘요.
이젠 그 시절 코스플레이어들 중 많은 사람도
충분히 시간이 지나 그럴 시기가 됬단 말입니다.
: 작년이었지? 결혼식. 결혼식 때 민이가 너를 보고 공주님이라고 했던 게 계속 기억나네.
: 그랬어요? 아우, 민이 (웃음)
: 디즈니 프린세스 덕후라. 진짜 공주님인 줄 알고 내내 눈이 초롱초롱 하더라구.
: 귀여워라.. 아우 너무 고맙네요! 언니두 바쁜데 와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 예쁜 결혼식이었어! 오래간만에 보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구! 그 귀엽고 자그마하던 고교생이 웨딩드레스를 어느샌가 입고 있는 모습이란!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가. (오열)
: 그러게요. 정말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함께 오열)
: 그러고 보니… 왜 이 특집도 유부녀들이 점령하게 된 것인가. 아 진짜 다들 오해하겠어. 일부러 그렇게 모은 게 아니란말입니다(...) 오해 말아주세요 여러분…그러고보니, 신랑님도 같은 취미를 한때 공유하던?
: 아, 언니도 알죠? 맞아요~! 이전에 우리 한창 활동할 때(웃음)
: 무대를 주로 하시던 분이었던 것 같은데. 인기도 꽤 많으셨던 걸로 기억해. 원래 친했어?
: 고등학교 때였나. 만화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었어요. 같은 팀은 아니었어도, 무대를 하는 팀끼리는 대부분 안면이 있었던 터라 서로 인사는 하고 알고 지냈죠.
: 어라, 아주 친했던 사인 아니었구나.
: 네, 그게… 그 당시 같이 다니는 그룹도 다르고 그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연락이 끊겼었거든요. 그러다 수년 만에 직장인이 되어서 서로 연락이 우연히 닿았어요. 그러다보니 마음도 잘 맞아서 오래 연애를 하고…
: 결혼까지!
: 네. (웃음)
: 보통 코스플레이어와 사진사랑 같이 커플이 잘 이루어지잖아. 근데 완전히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코스플레이어 출신 커플이라니. 재밌겠다.
: 아무래도… 그래서 취미 공유가 가능하고, 일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해주니까 정말 좋아요.
: 확실히 마음이 맞고 취미를 서로 잘 이해해주고 같이 즐기면 좋은 것 같아.
: 게다가 친구들까지 함께 만날 수 있어서 좋거든요. 제일 좋은 친구랑 함께 살고있는 기분이에요.
: 아... 신혼의 달달함이 뼈까지 사무친다. 부러움은 나의 몫인가… 같이 코스프레 한 적은 없었어?
: 그러고 보니 그게 제일 아쉽긴 해요. 함께 코스프레를 해 보지 못했다는 것! 코스프레를 하다가 만난 사람인데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더라구요.
: 그건 확실히 아쉽네. 언젠간 볼 수 있지 않을까?
: 확실히 지금은 어렵겠지만… (웃음) 기회가 된다면?
[다음 주. 인형 디자이너로의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