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인디한잔] 업계 한파에도...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

음주도치 (김승준) | 2025-02-24 18:32:01

"현직에 계신 분들도 기자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취재를 하다 보면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매일매일 이슈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잠시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멋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 뜨거운 현안들로 담소를 나눠보는 코너 '인디 한 잔'입니다.

취업 시장이 어렵다는 말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게임 업계의 한파도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멋진 신작'을 기다리는 건 씬 전체의 입장에서도, 한 명의 게이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신생 개발사나 주니어 개발자가 도전하기 좋은 시기와 환경이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긍정의 답변을 내놓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지난 해 스팀 플랫폼과 여러 오프라인 게임쇼에서 눈도장을 찍었던 <코나와 스노래빗> 개발팀 눈토끼단이 최근 '라스칼랩'이라는 이름으로 법인 설립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멋진 도전을 응원하고 싶기도 했지만, 이 겨울을 어찌 나려 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죠. 


라스칼랩의 오주환 대표와 김현진 PD를 만나, 청강대 졸업 작품으로 만든 데모 플레이에서 어떻게 과감하게 법인 설립까지 실행할 확신을 얻게 되었는지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코나와 스노래빗>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방향성을 잘 잡아가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지만, 이날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도전에도 때가 있다는 취지의 답변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기회가 쉽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놓쳐선 안 된다는 말이었죠. 


"지금이 아니면 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게 가장 컸어요. 학교 졸업 작품을 만들며 모인 실력 좋은 아트, 프로그래머분들이 다 모인 환경이, 데모 버전이 나와서 좋은 반응을 얻는 상황이 또 언제 올까요. 그런 기회가 나중에 오더라도, 더 나이가 들어 지켜야 할 게 늘어나면 과감하게 지금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실패한다고 해도 아직 20대니까요. 할 수 있을 때 도전하고 싶었어요."




<코나와 스노래빗>을 만든 前 눈토끼단 現 라스칼랩의 김현진 PD, 오주환 대표입니다.



# 귀여운 냉동 액션 <코나와 스노래빗>

<코나와 스노래빗>은 '냉동 액션'을 내세운 3D 쿼터뷰 슈팅 액션 게임입니다. 악동인 얼음 예술가 '코나'와 하얀 털이 복실복실한 '스노래빗'이 인어를 조각상으로 만들기 위해 수도원에 난입하며 벌어지는 상황을 그리고 있죠. 


일단 '코나'와 눈토끼의 귀여운 디자인이 가장 먼저 플레이어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재밌는 점은 코나가 사용하는 무기가 스노래빗 그 자체라는 것이죠. 눈토끼의 입에서 발사되는 얼음 탄환으로 적을 얼리고, 눈토끼의 형태를 망치로 일시 변환해 얼어붙은 적을 날려버리거나, 깨부수는 액션을 이어갑니다. 


데모 플레이 분량이 길진 않은 편이지만 <코나와 스노래빗>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바는 확실히 전달되고 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전 명작인 <스노우 브라더스>가 '얼린 적'을 아군의 무기, 오브젝트처럼 사용하던 방식을 재해석해보자는 목표가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코나와 스노래빗>의 전투(특히 보스전)에서는 얼어붙은 적을 활용해 피해를 입히는 방식이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매력 덕분에 BIC, 버닝비버 등의 오프라인 게임쇼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이고, 스팀 데모 버전 또한 109개의 스팀 리뷰 중 97%가 긍정적인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죠.


일단, 코나와 스노래빗 두 캐릭터가 귀엽다는 게 최대 장점 중 하나입니다.

눈토끼의 입에서 쏘는 얼음 탄환으로 적을 얼리고

얼어붙은 적을 날리며 전투를 진행합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게임콘텐츠스쿨(이하 청강대 게임학과)에서 결성된 눈토끼단은,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어진 1년의 시간 중 1학기를 동양 판타지 핵앤슬래시 액션 게임 <아카리>를 만드는 데 쏟았습니다. 그런데 동양 판타지를 명확히 보여주기에 콘셉트가 빈약하고, 기획과 액션이 확실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내부 의견이 나오게 됐다고 합니다.


결국 2학기의 3개월 남짓 남은 시점에 게임의 기획부터 다시 토대를 쌓아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냉동 액션'이라는 목표를 바라보며 만들게 된 게임이 <코나와 스노래빗>이었죠. 


청강대 게임학과는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다른 학교에 비해 팀원의 규모를 크게 잡는 편인데, 눈토끼단 또한 14명의 팀원이 새로운 게임 콘셉트에 확신을 가질 때까지 많은 회의를 거쳤다고 합니다. 김현진 PD와 팀원들이 당시 어떻게 <아카리>에서 <코나와 스노래빗>으로 콘셉트 피벗을 결정할 수 있었는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스노우 브라더스>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는

잠시 시선을 넓혀 봅시다. 고전 명작의 재미는 지금의 시대에도 유효한 것일까요? 2024년 11월에 나온 <스노우 브라더스 원더랜드>라는 게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스노우 브라더스 2> 이후 30년 만에 나온 정규 신작이었지만, 스팀 리뷰는 12개에 그쳤고, 게임 스트리밍을 진행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던,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은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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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눈토끼단 現 라스칼랩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내용 중 하나도 <스노우 브라더스>의 액션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2D <스노우 브라더스> 시절의 눈덩이를 굴리면 화면 전체를 쓸어버리는 쾌감이 3D로 넘어오면서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오주환 대표는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더해 트렌드에 맞는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코나와 스노래빗>의 개발 방향성을 소개할 때 숏폼 세대에 맞는 게임이라고 많이 말하고 있어요. 최근에 긴 콘텐츠를 보는 걸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넷플릭스에 명작이 있다고 해도 정주행을 하려면 쉽지 않은 게 현실이고요. 그래서 퇴근하고, 학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플레이해도 에피소드 하나 클리어하고 자동저장하는 방식으로, 짧은 호흡으로도 재밌게 즐길 수 있게 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데모 버전이 에피소드 한 개 분량에 해당한다면,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에피소드가 모여서 챕터를 이루고, 이런 챕터가 3개 정도 있는 분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현진 PD는 "전투 이외에도 진행에 맞는 잠입 스테이지나 퍼즐 스테이지를 만드는 등 냉동 액션을 기반으로 하되, 더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게 게임 구성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존 데모 버전에선 인어를 얼음 조각상으로 만들기 위해 아퀴스 수도원에 난입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다시 오지 않을 기회 그리고 <코나>에 대한 확신

게임 업계의 한파가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라스칼랩 팀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법인 설립 전까지 청강대 교수, 선배, 업계 사람들의 조언도 많이 들었다고 하죠. 응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어려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조언을 해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인디 씬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사업자 신고 및 법인 설립을 너무 서둘러 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예비 사업자, 초기 사업자만 받을 수 있는 혜택 및 사업이 있고, 개발 기간이 긴 게임의 경우 2~3개의 타이틀만 출시해도 몇 년이 훌쩍 지나 3~7년 차를 넘어서 정부 지원 사업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넘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는 말이 종종 나오곤 합니다. 


오주환 대표 또한 이런 맥락을 알고 있었지만, 도전의 시기가 더 중요하다 강조했습니다. 후일을 도모한다 해도 지금처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구성원이 모일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코나와 스노래빗>처럼 데모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타이틀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죠. 20대인 팀원들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최근 지원 사업의 요건 자체가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진 점 또한 한몫을 했습니다. 


"인디게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굶으면서 게임 만드는 예술가들, 열정만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요. 자본에 휘둘려선 안 되겠지만, 자본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생계 유지는 해야 하는데, 법인이 아니면 지원 규모가 작고 VC 투자 금액도 낮게 책정되어 있어서 1인당 100만 원으로 1년을 버텨야 하거든요. 최저 시급의 개발 환경 정도만 바라는 게 전부지만, 그걸 위해선 법인 설립을 해야 했습니다."


<코나와 스노래빗>을 만든 前 눈토끼단 現 라스칼랩의 김현진 PD, 오주환 대표입니다.

그렇게 설립한 법인 '라스칼랩'은 "미워할 수 없는 악동들의 연구소"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눈토끼단 당시 멤버는 14명이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취업을 선택한 인원들도 있어서 현재 구성원은 10명이라고 하죠. 10명의 멤버 중에는 <코나와 스노래빗>을 플레이해보고 찾아와 이후에 합류한 인원도 있다고 합니다. 사명처럼 실험적이고 재밌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오주환 대표는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장난꾸러기가 나쁜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재밌는 일을 해서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해주려고 하는 것처럼, 저희만의 색이 담긴 게임을 만들고 싶고, 포인트는 미워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 강조했죠.


 

20대를 건 도전을 하는 만큼 이들은 <코나와 스노래빗>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데모 분량에서 뭔가 조금 더 확장된 플레이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랐던 분들이라면, 2025년 12월 얼리 액세스를 목표로 개발 중인 본편을 기대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기자 또한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코나>의 매력에 더 빠져들게 됐으니까요.


데모에서 얼음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코나와 눈토끼가 수도원에 난입한 과정을 단편적으로 그렸다면, 본편에선 얼음 예술가를 꿈꾸는 코나를 시기하는 베테랑 예술가 세력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코나의 자칭 라이벌 또한 등장해 대립 구도를 강조하며 긴장감을 부여할 계획이고, 예술품을 전문적으로 훔치는 괴도 등 캐릭터성이 강조된 인물들이 매력을 더할 예정입니다.


아트 또한 만화적인 표현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차용해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등의 작품에 나오는 카툰 문법을 적용한 서브컬처 스타일을 지향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코나와 스노래빗>이 하나의 IP로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오주환 대표의 소망도, 게임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들어봤을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현진 PD는 "부담 없이 <코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하교 이후, 퇴근 이후에 마음 편히 플레이해볼 수 있는 게임이 되는 게 목표"라며 "'거인의 어깨 위'라는 관용적인 표현처럼, 저희도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게임, 지금 하는 게임들에 꾸준히 영감을 받고 있어요. 포부보단 소망에 가깝지만, 저희 게임도 누군가에겐 그런 작은 발판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오주환 대표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스위치 포팅도 생각하고 있어요. 휴대용 기기니까 침대에서도 할 수 있고, 자기 전에 짧게 즐기기 좋은 게임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데모 버전을 기준으로 생각보다 해외에서도 많은 분들이 즐겨주셨어요. 해외 유저 다운로드가 93% 정도 됐는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유저분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재밌게 다가갈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향후에 후속작을 내도 누가 봐도 라스칼랩 게임이네-하고 알아 봐주셨으면 하는 꿈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짧은 데모에서도 확실한 개성을 잘 보여줬던 <코나와 스노래빗>입니다. 
눈토끼를 마구 흔들어서 장전을 한다거나, "스"라는 대사만 하는 스노래빗의 특징도 재밌었죠.
"스"라는 말에 괄호를 달아 말을 덧붙인 스팀 리뷰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젠레스 존 제로> 방부의 "웅나"처럼 <코나>만의 문법을 잘 잡은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라스칼랩 사무실에서 향후 본편에 등장할 기획에 대한 콘셉트도 일부 엿볼 수 있었습니다.
데모에서 그랬듯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이니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은 <코나와 스노래빗>의 주인공 '코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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