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리뷰] 사이버렉카 체험 게임 '페이크북', 도파민에 절여진 인간의 섬뜩한 민낯

우티 (김재석) | 2024-11-21 17:39:32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서울 마포구 소재의 모 LP바에서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와 술을 마셨다.


기자는 ​이 대표를 만날 적이면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내려놓고 헛소리 늘어놓기를 즐긴다. <페이크북>에 대한 구상은 그날 처음 들었다. 영화 <타인의 삶>, <HER>, <서치>, 게임개발자 소미의 <레플리카>, '김미영 팀장'의 보이스피싱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마침 그 무렵 김미영 팀장 조직의 총책이 검거됐다) 이야기는 <페이크북>의 19금 버전 DLC '페OO북'까지 번졌는데, 이 대표가 <페이크북>을 진짜로 개발할지는 의문이었다.

이유원 대표는 <페이크북>에 대한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겼고, 신촌 사무실에서 줄담배를 태우며 끝내 이 게임을 스팀에 내놓았다. <서울 2033>에서 선보인 텍스트 어드벤처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들어갔으며 생성형 AI가 개발에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텀블벅에서 두달 동안 7,000만 원의 후원을 모은 반지하게임즈는 다른 사람의 내밀한 대화를 염탐하는 재미로 출발해, 현대 인터넷의 추악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진짜 '페이크북'에 로그인하는 것만 같은 게임의 첫 화면



 

<페이크북>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로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녀를 죽게 만든 '사이버 렉카'(구난차를 의미하는 'Wrecker'는 '레커'라고 쓰는 것이 옳으나 이슈 유튜버를 일컫는 표현은 '사이버 렉카'라고 부른다)​에게 '나락'이라는 복수를 안기는 게임이다.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된다'는 클리셰를 차용해서 동생 또한 '사이버 렉카'로 팔로어를 모으고 그 영향력을 통해서 누군가를 ‘나락’으로 보낼 권능을 지닌 '저승사자'가 된다.


언니 '송여정'은 고등학교 시절 '이규용'과 교제 관계였지만, '이규용'이 아이돌 'LEON5'로 데뷔하고 유명해지면서 사이는 멀어진다. 하지만 '사이버 렉카'들은 송여정이 국민아이돌을 모함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이 사실이 '렉카'들에 의해 폭로되면서 신상정보가 탄로나고, 악성댓글 폭탄을 받는다. 그 결과 언니는 세상을 떠났고, 동생 '송성희'가 언니를 그렇게 만든 '사이버렉카'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다.


언니의 죽음으로부터 분노해 사이버렉카 '저승사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송성희

SNS 세태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게임의 진행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저승사자'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운영하며 메시지를 통해 각종 의뢰를 받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전부다. 이 과정에서 가상의 SNS '페이크북'의 염탐 과정이 동반된다. 검색하고, 우연히 피드에 뜨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파도타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관계망과 과거지사를 파헤치는 게 주요 행동이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신용카드를 찾아주거나, 7년 전 찍은 강아지 사진을 발굴하거나, 외로운 남성과 여성을 연결시켜주는 소소한 미션을 통해 조금씩 지명도(팔로어)를 획득한다.


한번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은 돋보기를 통해 다시 검색할 수 있지만,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파도타기를 통해 프로필을 눌러봐야 한다. 수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는 유력 '렉카'가 되면, 의뢰가 쏟아지고 '저승사자' 페이지를 욕하거나 응원하는 메시지가 쌓이면서 난도가 올라간다. 유력 정치인 가족의 흠결을 조사하다가, 어느 초등학생의 친부를 찾다가, 인기 래퍼들의 SNS 디스전을 조사해야 한다.


SNS에서 단서를 모으고, 채팅을 통해서 상대방을 취재하면서


'렉카질'을 통해서 많은 팔로어를 모은다


언니를 죽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페이크북>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꽤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 수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의 신상을 파헤치는 모습은 유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면 섬뜩하다. 산업재해를 은폐하기 위해 죽은 노동자의 시신을 공장 밖에 옮긴 뒤에 사망 원인을 은폐한 사건은 2016년의 'E사 지게차 사망사건'이 떠오른다. 이 사건을 취재하려던 기자는 이 사실을 기업에 협박 카드로 쓰며 용돈벌이를 하려 한다.


정치인의 아들이 래퍼 'LIAM'(공교롭게도 최근 내한 공연 소식을 밝힌 모 인기 밴드의 형제 이름과 같다)으로 활동하고, SNS에서 막말로 화제가 된다. 연예인은 수술로 병역을 면제받고, 초등학교 선생의 개인 계정은 학부모들의 감시 대상이 된다. 스타들의 사생활은 더 많은 '좋댓구'(좋아요, 댓글, 구독)를 위한 재물에 불과하다.


귀여운 강아지 사진이나 보고


잘생긴 인플루언서나 보면서 활동을 끝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승사자'의 주인은 언니를 위한 복수에 미쳐있는 듯하면서도, 점차 더 많은 팔로어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된다. 유력 언론들까지 '저승사자'를 우라까이(받아쓰기)하는 모습에 주인공은 점차 도취되고, 그 끝에는 다른 경우의 수 없는 단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게이머 사이에서 '진 엔딩'이라고 표현되는 멀티 엔딩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반지하게임즈는 타인을 도마 위에 올려 돌팔매질하는 작금의 행태 자체가 옳지 않음을 분연히 선언하는 듯하다.


구태여 유명한 사회학자의 저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인터넷 공간은 타인을 물어뜯고 배척하는 아수라장이 됐다. '우리'는 이제 '도파민'에 절여져 더이상 밈과 유머 자료, 할인정보와 생활 꿀팁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SNS에서 유명인의 나락-해명-자숙-복귀는 아무렇게나 평가되고 있다. <페이크북>은 온라인 공간에서 표리부동하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페이크북>을 완벽한 만듦새를 자랑하는 게임으로 보기는 어렵다. (첫 스팀 진출 게임이라 그런지) 도전과제는 저장되지 않았고,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핵심 인물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가는 길을 일부러 좁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대화를 모두 꼼꼼히 읽지 않으면 깰 수 없는 퀘스트가 많은데, 대화를 눈으로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밑줄을 그어야 읽은 것으로 처리된다.


텍스트를 꽤 집요하게 읽고, 댓글을 단 사람들을 치밀하게 찾아다녀야 게임의 요구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극후반부에는 조력자이자 '성희'의 친구 '장재영' 또한 점점 그녀를 돕지 않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더 어렵다. 자신이 플레이를 통해서 정체를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게임이 제시하는 플로우를 따르지 않으면, 클리어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포인트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글을 읽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해 꽤 피로감을 준다. 끝으로 가면 갈수록 힌트가 없기 때문에 빙글빙글 저승사자의 '수사망' 속 프로필을 돌아야 한다.


그럼에도 <페이크북>은 위의 문제를 상쇄할 정도로 흥미로운 게임이다. 가격도 16,500원으로 나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를 권한다. 참고로 게임 속 가상인물의 프로필 사진에는 생성형 AI 기술이 활용됐다.


카스트로 킴의 로맨스 스캠에 대한 패러디


이거 분명 그건데...

금기어 '폭풍전야'를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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