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추리를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임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궁극적인 재미라면, 단연 상대가 내세우는 논리의 헛점을 파고들어 단번에 전세를 반전시키는 것에 있다. 치밀한 조사와 취조로 추리에 필요한 단서를 확보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알맞은 단서를 내세워 의기양양한 상대를 무너뜨리는 광경은 마치 유능한 탐정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런 '쾌감'이 있기에 수 시간에 달하는 조사와 취조 과정 그리고 다른 인물의 우려와 야유를 꿋꿋히 감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십년 동안 한결같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추리 만화 <명탐정 코난>이나, 캡콤의 장수 추리 게임인 <역전재판>(Phoenix Wright: Ace Attorney) 시리즈처럼 말이다.
때로는 추리에 대립 과정이 섞이기도 한다. 그 대립이란 것은 물리적인 방식으로 격렬하게 다투는 전투가 될 때가 있고 혹은 치열한 두뇌 대결이 될 때도 있다. 어찌 되었건 추리가 섞인다면 추리가 대립에 영향을 끼치던, 반대로 대립이 추리에 영향을 끼치던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포커와 추리가 함께하는 <올인 어비스 : 속임수를 심판하라>(All in Abyss : Judge the Fake)는 정작 포커와 추리가 서로 따로 노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게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작성=쿠타르크(인디게임 블로거), 편집=김승주 기자

트릭을 간파해도 포커 수라의 길은 멀고 멀다. <올인 어비스: 속임수를 간파하라>
올인 어비스 : 속임수를 간파하라 (All in Abyss : Judge the Fake)
출시일: 2025-04-09
개발사: WSS 플레이그라운드, 액콰이어 코퍼레이션
유통사: 얼라이언스 아츠
플랫폼: PC, PS5, Switch
가격: 21,500원
장르명: 어드벤처, 롤플레잉, 비주얼 노벨
리뷰 버전: PC (스팀)
리뷰 빌드: 정식 버전
<올인 어비스 : 속임수를 심판하라>는 이전에 <니디 걸 오버도즈>(Needy Girl Overdose)를 개발한 바 있는 일본의 게임 개발사 WSS Playground 의 신작으로, 천부적인 갬블러 '세나하라 아스하'가 갬블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특구에서 네 마녀와의 포커 배틀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이야기를 담은 어드벤처 게임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속세에 찌들어 있다거나 광기에 물든 것 같은 캐릭터 디자인이 돋보이며, 상대의 속임수를 간파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추리와 텍사스 홀덤 규칙을 기반으로 한 포커 배틀을 겸비한 독특한 감각의 게임 플레이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밖에 캐릭터 일러스트를 제외한 비주얼과 사운드는 무난한 퀄리티를 보인다. 전반적으로 캐릭터들간의 대화의 양이 많고 그만큼 서사의 비중이 높아 비주얼 노벨 계열의 게임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비주얼 노벨 계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캐릭터와 스토리다. 일단 캐릭터 디자인과 스토리의 완성도는 제법 괜찮은 편이다. 나름 반반한 미모에 항상 광기에 찬 표정을 드러내는 주인공 아스하는 얼굴 값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저씨스러운 언행과 언제나 막나가는 듯한 태도,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도박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을 숨김 없이 드러내며 개성을 드러낸다.
그런 아스나를 상대하는 네 마녀와 최후의 존재는 오만한 성격과 비열한 속임수를 거침없이 발휘하는 한편 나름대로 기구한 사연과 처절하고도 처연한 광기를 뿜으며 매력을 어필한다.

생긴건 그래도 반반하지만 하는 짓은 딱 도박과 쾌락에 쩔어 사는 아재 그 자체

올인 어비스, 그것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심연에서 모든 걸 걸고 싸우는 극한의 포커 배틀이다.
네 마녀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위한 관찰 및 추리 과정 그리고 특구로 지정된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이 차츰 드러나는 스토리 전개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긴 해도 그럭저럭 흥미롭게 흘러간다.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지나치리만치 급하게 전개되는 데다가 내용도 다소 황당한 감이 있긴 하지만,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주인공 아스하의 강직한 태도가 그런 황당함을 어느 정도 무마시킨다.
무엇보다 각 챕터마다 마녀와의 포커 배틀에서 승리(혹은 패배)한 뒤 드러나는 도축 장면은 해당 챕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상당한 충격과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몇 마디 잔혹한 문장과 노골적인 섹스 어필로 가득한 일러스트로 묘사되는 이 도축씬은 말초적이면서도 가학적/피학적인 고통과 쾌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맨정신으로 보기에는 진저리가 날만큼 참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도축씬은 본 게임이 <단간론파>(Danganronpa) 시리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호불호가 다소 갈리긴 하겠지만 취향이 맞는 이들이라면 만족스럽게 즐길 만한 여지가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광기스런 신념을 초지일관 유지하는 스토리는 분명 매력적이다.

각 챕터의 대미를 장식하는 도축 장면은 어떤 의미로든 짜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각 챕터마다 네 마녀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위한 단서 확보 및 추리 과정은 다소 느리게 흘러간다. 대체로 장소 이동과 캐릭터간의 대화, 약간의 포커 배틀이 반복되는 일련의 흐름이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이라 이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특히 세번째 챕터와 네번째 챕터의 경우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위해 수 차례에서 수십 차례의 포커 배틀이 강제되다시피 하는데, 얼굴 없는 NPC와의 일반 포커 배틀이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형국이라 더욱 따분함을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행동이나 아이템을 어느 정도 플레이어가 스스로 유추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 진행 과정이 답답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메인 스토리에서 살짝 눈을 돌리면 유흥을 통해 가진 돈을 마구 탕진하는 흥청망청이나, 연승전을 통해 추가 보상을 챙기는 포커 로열 같은 추가 컨텐츠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추가 컨텐츠가 충분히 갖춰졌다고 보기 어렵고, 스토리 진행 상황이나 보유한 자금 사정 같은 이유로 인해 이런 추가 컨텐츠를 즐길 타이밍을 잡는 것마저도 마땅치 않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특히 포커 로열의 경우 등급이 올라갈수록 판돈과 최대 판수만 늘어날 뿐더러, 후술할 포커 배틀 자체의 문제로 인해 재미보다는 피로감이 더 크다.

일단 속임수 논파를 위한 추리 과정은 그럭저럭 흥미롭게 굴러간다.

포커 배틀 몇 번 하고 여기저기 조사하는 과정이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본격적으로 마녀와의 포커 배틀에 돌입하게 되면 아스하의 생각과 아이템 활용을 통해 상대 마녀의 속임수를 논파하여 이를 무효화시킬 수 있다. 다만 속임수를 논파했다고 해서 포커 배틀이 확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니다.
마녀의 속임수로 인해 승률이 0%에 가까웠던 것이 속임수가 사라진 뒤에는 50%의 승률에 수렴하는 정당한 포커 배틀로 돌아오는 셈이다. 물론 아스하의 스킬 활용으로 승부를 좀 더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일반 포커 배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심지어 일부 마녀는 속임수를 전부 논파했다 치더라도 아직 속임수의 잔재가 남아있어 여전히 까다로운 포커 배틀을 감수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속임수 논파가 그렇게까지 포커 배틀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의 속임수를 논파했다! 이제 승률은 절반 정도까지 올라왔다!... 응?
보편적으로 추리의 비중이 높은 게임에서는 상대의 트릭을 전부 파해(破解)한 이후 불안불안했던 전세를 확 뒤집고 기세를 가져오며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기껏 마녀의 속임수를 논파해도 마녀가 잔뜩 당황하는 모습만 보일 뿐 정작 포커 배틀의 기세를 크게 유리하게 가져오지 못한다.
정확히는 포커 특유의 5:5에 가까운 불확실한 승부가 여전히 남아있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불안한 포커 배틀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포커 승부라는 것이 워낙이 승부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니 끝까지 긴장의 끝을 놓을 수 없는 것이고, 개발사 입장에서도 이를 의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임수 논파가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과연 맞는 방식인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배율 시스템 덕분에 일발역전이 나오기가 쉽다. 다시 말해 승부가 '수련회 메타'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br/>
그렇다고 일반 포커 배틀이 흥미롭게 흘러가냐고 묻는다면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텍사스 홀덤 규칙을 채택한 이 게임의 포커 배틀은 서로 다섯 장 카드로 승부를 하기 전까지는 점수 배율이 무한정 올라가는 독특한 시스템을 선보인다.
폴드를 선언해 패를 내리고 다음 승부로 넘어가도 배율이 유지되다 보니 무작정 폴드를 선언하기가 어려워 포커 배틀의 긴장감이 올라가는 효과를 발휘하는 듯 하지만, 반대로 초반 몇 차례의 승부를 포기하는 대신 배율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에서 오로지 마지막 승부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소위 '수련회 메타'로 귀결되는 부작용이 동시에 발생한다. 포커 배틀의 템포와 텐션을 끌어올릴 목적으로 도입한 배율 시스템이 도리어 포커 배틀의 양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배율 시스템을 떼놓고 봐도 상대 CPU의 행동 패턴이 이상할 때가 많아 포커 특유의 심리전의 묘미를 느끼기가 힘들다. 이해하기 힘든 타이밍에 폴드를 '무지성'이다 싶을 만큼 자주 선언한다던가 승리 확률이 매우 높아보이는 패로 승부를 걸었더니 낮은 확률을 뚫고 상대가 더 높은 패를 들고 있다던가 하는 상황이 유독 자주 발생한다.
그나마 주인공 아스하가 활용할 수 있는 스킬 중에 마지막 카드를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거나 상대의 행동을 억제하는 등 뛰어난 성능을 보유한 것들이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포커 승부를 유리하게 풀어나갈 여지가 있긴 하지만, 현실은 상대 CPU의 이상한 행동 패턴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일부 스킬의 채용이 강제되어버린다. 포커 배틀이 가장 중요한 게임에서 정작 포커 배틀이 가장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스킬은 분명 큰 도움이 된다.

심리전의 묘미를 느끼기엔 상대의 이해하기 힘든 판단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나온다. 특히 폴드가.
<올인 어비스 : 속임수를 심판하라>는 분명 많은 매력 포인트를 지니고 있는 게임이다. 포커에 대한 광기와 집념으로 점철된 캐릭터, 무적에 가까운 속임수를 논파하는 스토리, 추리와 포커가 함께하는 독특한 감각의 게임 플레이 등 많은 게이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흥미를 당길 만한 요소로 가득해 잠재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추리의 결과가 흥미로울지라도 그 과정이 다소 지루하다. 추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속임수 논파가 포커 배틀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가장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포커 배틀은 심리전의 부재와 더불어 특유의 배율 시스템으로 인한 수련회 메타로 인해 그 재미와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절대적인 밸류를 자랑하는 강력한 스킬과 확률 및 심리 싸움을 기반으로 한 포커 배틀의 재미를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나마 캐릭터나 스토리, 혹은 가학적/피학적인 고통과 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각 챕터의 대미를 장식하는 도축씬의 재미를 기대한다면 그럭저럭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올인 어비스 : 속임수를 간파하라(All in Abyss : Judge the Fake)
6.5 / 10
한줄평
기만의 논파와 불확실한 도박의 어색한 만남
장점
- 추리와 도박을 조합한 독특한 발상의 게임 플레이
- 도박의 광기에 물든 매력적인 캐릭터
- 불확실성에 대한 신념을 쭉 유지하는 스토리
- 가학적/피학적 쾌감을 유발하는 클라이막스 도축씬
단점
- 느리고 단조로운 게임의 흐름
- 심리전의 묘미를 느낄 수 없는 일반 포커 배틀
- 속임수를 파해해도 기세를 가져오지 못하는 마녀 포커 배틀
- 무작정 최대 판수만 늘려놓은 추가 컨텐츠 포커 로열

-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1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