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올해 첫 대형 RPG ‘킹덤 컴 딜리버런스 2’, 첫인상은?

톤톤 (방승언) | 2025-01-13 10:20:19

체코 워호스 스튜디오가 2018년 출시한 <킹덤 컴: 딜리버런스>는 서양 RPG 마니아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하는 타이틀이다. 출시 초반 엉성한 만듦새로 인해 평가가 좋지 못했지만, 게임을 고친 후 순수 중세 사극으로서의 차별성, 깊이 있는 RPG 시스템 등 장점이 드러나면서 평가 반전에 성공했다.

<킹덤 컴: 딜리버런스>의 흥행으로 덩치를 키운 워호스 스튜디오는 올해 약 8년 만의 후속작 <킹덤 컴: 딜리버런스 2>(이하 ‘킹덤 컴 2’)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개발 규모적 한계로 1편에서 누락시킬 수밖에 없었던 여러 요소를 추가한 ‘진화판’에 다름없다고 개발진은 설명한다.

개발사 워호스 스튜디오로부터 미리 게임을 제공받아 플레이해 볼 수 있었다. 개발사의 요청대로 초반 퀘스트 ‘결혼식 훼방꾼’ 이전까지의 전반적 게임플레이에서 느낀 ‘첫인상’을 공유한다.



# 다시 시작된 모험

시작하기에 앞서, <킹덤 컴 2>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유저라면 정식 출시 이전에 전편을 먼저 끝까지 플레이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킹덤 컴 2>의 줄거리는 전편의 스토리와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때 감상을 최대화할 수 있다.

물론 2편을 통해 시리즈에 새로 진입할 유저들을 위한 장치는 여럿 존재한다. 먼저 주인공 ‘헨리’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의 됨됨이와 서로의 관계, 이전의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게임 초반에 여러 대화들을 통해 복기 된다.

더 나아가 ‘헨리’가 지난 사건들에 품고 있는 강렬한 감정들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여러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전달해 낸다. 여기에는 특히 전편에 비해 크게 발전한 그래픽 및 연출력이 큰 몫을 한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 주인공의 ‘인생 2막’에 난입하는 데 따라 발생하는 심리적 괴리는 어쩔 수가 없다. 본작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 1편 플레이 경험이 필수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감정 이입에는 무시 못 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편의 주요 사건을 대화와 연출을 통해 복기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이번 작품에서 헨리는 또 다른 모험(이라는 이름의 환란)에 휘말린다.  전편의 한스 케이폰을 보좌해 이웃 영주 오토 폰 베르고프에게 서신을 전달하는 간단한 임무를 맡고 여정을 떠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신분을 증명할 모든 수단을 상실한 채 당장의 생존을 도모하게 되는 것으로 게임은 시작한다.

헨리와 한스는 어렵사리 베르고프 영주가 기거하는 트로스키 성에 당도하지만, 흔해 빠진 귀족 사칭범 취급을 받은 채 출입을 거부당한다.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꺼운 낯짝으로 주변 마을에서 일단의 생계를 해결한 뒤, 베르고프 영주가 참석할 것으로 예정된 귀족 결혼식에 어떻게든 얼굴을 들이밀어 그간의 사정을 전달하는 것뿐이다.

믿어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 지치도록 현실감 있는 중세의 삶

이런 초반 전개는 전편의 장황한 모험을 통해 어엿한 입지와 능력을 갖췄던 헨리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상황에 충분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헨리를 모르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그의 남루한 행색은 그대로 그의 신원이 된다. 주로 상대의 외견에 의존해야 했던 당대의 신분 판단 방식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게임 시스템에도 구현되어 있다.

주인공의 특수 대화 선택지(설득, 협박 등)가 상대에게 통할 확률은 주인공의 옷차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값비싼 옷을 입었다면 권위를 내세울 때 보너스를 받고, 단단히 무장했다면 상대를 협박하는데 유리해지는 식이다. 이런 선택지별 보너스의 총계가 곧바로 표시되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면 된다.

그러나 표시된 보너스가 더 크다고 해서, 해당 선택지 성공 확률이 항상 더 높은 것은 아니며, 유저는 대화의 구체적 맥락과 주변 상황을 추가로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험악하게 무장한 상태라 하더라도 적보다 수적 열세라면 겁박이 통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뛰어난 언변을 갖췄더라도 상대를 속여넘기기 힘들다.

수치보다 중요한 건 상황이다

이러한 개연성 중시의 기조는 <킹덤 컴 2> 게임 시스템 전반을 관통하는 디자인 철학이기도 하다. 가령 플레이어가 NPC에서 열쇠를 훔치면, 상대는 이를 알아채고 며칠 내로 자물쇠를 바꿔버린다. 절도 현장을 들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심증이 확연하다면 여전히 추궁당할 수 있다.

‘절대 강자’ 혹은 ‘주인공’으로서의 환상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상당수 RPG와 비교해, <킹덤 컴 2>는 게임적 허용을 자제하고 현실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이는 제작진이 본지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던 사실이기도 하다. 개발진은 본작에서 헨리가 ‘전사’로 성장하지만, 절대로 ‘영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바로 그렇기에 <킹덤 컴 2>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특별한 양념을 가미하지 않아도 진한 풍미를 낸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는 게임의 전투다.

다른 게임이었다면 이런 강도 장면은 분명 주인공이 나설 시점이지만...

많은 현대 게임에서 ‘일대다’ 전투는 주인공들의 필수 교양처럼 취급된다. 십수 명의 적도 쉽게 혼쭐내주는 주인공에게 유의미한 고양감, 보상감을 안겨주려면 그래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엘리트나 보스급의 적이 필요해진다.

<킹덤 컴 2>의 전투는 그러나 정반대의 양상이다. ‘일대다’는 커녕 일대일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여타 게임에서는 악당을 찾아내면 그를 응징해 줄 생각에 신이 나곤 하지만, <킹덤 컴 2>에서는 박살 나는 것이 나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은 채 접근해야 한다.

이 게임에서 소위 ‘칼밥’을 먹는 직군(병사, 도적)의 NPC들은, 커리어를 선택한 이유를 실전에서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시대 고증에 신경 쓴 게임답게, 제대로 된 방어구를 갖춘 상대에게는 공격을 적중시켜도 상처 하나 내지 못하기도 한다. ‘세이비어 슈냅스’ 포션 없이는 저장이 제한되는 고전적 시스템 탓에 ‘이길 때까지 들이박는’ 방식의 공략도 쉽지 않다.

초반에 이런 상황을 마주쳤다면 게임 오버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얘기하면, 이러한 고단함은 이 게임이 마법이나 드래곤 같은 대중적 판타지 요소 없이도 유저를 깊이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어렵게 쓰러뜨린 도적 한 명에게 빼앗은 식량과 갑옷,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 고품질 무기 등, 다른 게임에서라면 무수한 자극 사이에 묻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을 요소들이 기쁨이 되어 다가온다.

더 나아가 RPG의 본질인 ‘역할극’의 재미도 극대화해 준다. 게임에는 전투나 화술은 물론, 연금술, 개 조련, 절도, 음주 등 강화해 나갈 수 있는 특화 영역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각 영역별로 흥미로운 능력을 더하는 ‘퍽’도 여러 가지 마련되어 있다.

전투만이 능사가 아닌 게임 설계 덕분에, 이런 전투 외 능력의 달인이 되는 선택지가 더 유의미하고 소중해진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벌거나 조용히 잠입하는 방법으로 전투를 피할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할 동기가 더 크다. (물론, 역설적으로 전투로 상황을 해결할  때의 만족감 역시 극대화될 수 있다)

잠입 등 전투 외 선택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 몰입감 업그레이드

그런데 위에 설명된 전반적인 게임 디자인 기조는 사실 1편에서 이미 확립된 것이다. 2편에 접어들어 특히 도드라지는 차별성을 꼽자면, 전반적 프로덕션 퀄리티 상향을 언급할 만하다.

상대적 저예산, 소규모로 만들어졌던 <킹덤 컴: 딜리버런스>는 시스템적 리얼리티에 비해 미학적 몰입감은 다소 부족했던 편이다. 특히 인물들의 얼굴 및 표정 묘사 등에서 어색함이 드러나 기껏 빌드업 해둔 감정선을 해치는 경우도 있었다.

<킹덤 컴 2>에서는 다양하고 섬세한 디테일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캐릭터들은 생동감 있는 표정과 몸짓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퀘스트 내용에 맞춰 별도로 제작된 여러 애니메이션, 아트, 컷씬, 대사가 몰입감을 크게 키운다. 10시간이 넘는 플레이 시간 동안 얼굴이 똑같은 NPC를 아직 만나 보지 못하기도 했다.

더 생생해진 NPC의 외모와 표정 애니메이션이 몰입을 도와준다

전편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적절한 사료 연구를 통해 게임에 리얼리티가 부여된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극 중 인물들은 당대의 도덕관념이나 지식수준, 사회적 인식에 맞춰 행동하고 발언한다. 게임 내 주요 사건, 갈등, 유머 역시 대부분 시대적 특수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종합하자면, <킹덤 컴 2>는 개발팀의 말대로 1편의 강점을 계승하면서 부족했던 여러 디테일을 더한 작품으로 보인다. 다만 중세 배경에 어울리는 매우 느릿하고 세밀한 게임플레이-무기 제작, 칼날 갈기, 연금술 등 메카닉을 모두 손수 진행해야 하는 등의-가 자주 펼쳐진다는 사실은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이템을 제작하려면 매질과 담금질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야 한다. 실제 대장간 일에 비하면 극도로 축소되어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프리뷰 분량의 플레이에서도 ‘정통 중세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풍부하게 선보였고, 이에 상응하는 RPG적 육성 요소의 짜임새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의 플레이 분량에도 기대를 걸게 된다. 게임은 2월 5일 정식 출시한다.

시대상에 맞게 뺀질거리는 한스 케이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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