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이 밝아 옵니다. 12지신 중 하나로 올해를 대표하는 동물은 뱀입니다. 뱀은 다리도 없는 기다란 몸체에 꿈틀거리며 이동하는 고유한 움직임과 종에 따라 독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때때로 공포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뱀은 허물을 벗으며 다시 태어나고, 오래 산 뱀인 이무기가 도를 얻으면 용이 되는 전설이 존재하는 등 불사와 영생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깔끔하고 조용해서 애완동물로도 각광받고 있죠. 또한 정글을 헤매는 누군가에는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합니다.
저도 고향이 도시는 아닌지라 힘들게 잡은 개구리를 밖에 묶어 놨더니 한밤중에 뱀이 잡아먹거나, 물장구를 치고 있으면 상류에서 뱀이 떠내려오는 등 뱀과 관련된 추억이 제법 많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게임에서도 뱀을 만날 수 있는데요, 계사년을 맞아 게임 속 뱀에 대한 기자들의 추억을 모아 봤습니다. /(실제로 뱀은 많이 봤으면서 게임 속에서는 딱히 인연이 없는)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추억의 뱀 주사위 놀이 (음마교주) |
‘게임인생’ 36년 동안 게임에서 뱀을 만난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장 먼저 즐겼던 게임 중에서 뱀이 나오는 ‘그것’이 떠올랐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즐겼던 추억의 보드게임. <뱀 주사위 놀이>라는 보드게임은 당시 문방구에서 50 원을 주면 살 수 있었던 저렴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수만큼 자신의 말판을 움직여서 100번째 칸에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간단한 규칙을 갖고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바로 ‘뱀’과 ‘사다리’. 뱀은 나쁜 일을, 사다리는 착한 일을 뜻하고 있는데 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이 착한 일을 하도록 개념을 잡아주는 교육적인 내용도 담겨 있었다. 앞서 가던 친구가 뱀에 걸려 내려오고, 뒤처졌던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역전했을 때의 짜릿함도 생각난다.
예를 들어 시작할 때 주사위를 굴려 6이 나오면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28번으로 직행할 수 있다. 반면, 잘나가다가 74번 칸에 들어가면 뱀을 타고 20번으로 쭈욱~~ 미끄러져 내려가는 경우가 생긴다. 74번 칸은 경찰이 잡으려는 간첩을 숨겨주는 행위로 나쁜 행동이기 때문이다.
<뱀 주사위 놀이>는 나름 기승전결로 꾸며져 있다. 공부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94번) 거지가 된다(64번)거나, 다친 사람을 도와주면(34번) 커서 의사가 되는 식이다. 당시에는 철저한 반공 교육이 이뤄지던 시기라서 공산당을 잡는 것이 가장 착한 일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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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비얌’ (한낮) |
과거 에덴동산에서 자행된 이브 발뒤꿈치 습격사건 이후 뱀은 언제나 ‘악’의 상징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 히드라, 일본 신화의 오로치, 국내에서는 이무기 전설까지. 그냥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 지혜까지 갖고 있다. 그래서 뱀을 표현하는 단어도 교활함이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악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고. 강력한 힘과 우수한 ‘종족빨’로 당장이라도 지구를 멸망시킬 듯했던 베지터가 어느새 초 단위로 깨지며 악당들의 강력함을 알려주는 전투력 측정기가 되듯,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뱀도 이 게임에서만은 불쌍하고 가녀린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름하여 <맨 VS 와일드 with 베어그릴스>.
생태 피라미드의 지배자,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포식자. 생물의 좋고 나쁨을 단백질 그램 수 정도로 따지는 ‘그분’ 앞에서는 아무리 뱀이라도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무려 베어그릴스가 직접 감수한 이 게임에서 뱀은 유용한 존재다. 가벼운 미니게임을 통해 포인트를 제공하고 사로 잡힌 후에는 훌륭한 단백질원으로 스태미너를 채워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남은 가죽은… 아래 영상의 4분 50초 이후를 통해 확인하자. 힌트를 주자면 ‘수분’이다.
이 게임에서는 수분과 단백질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고, 하나만 부족하더라도 사실상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뱀은 사막 속 오아시스만큼이나 귀한 존재다. 게임을 조금만 즐기고 나면 산에서도, 들에서도, 사막에서도, 뱀만 보면 한달음에 달려가 싸움을 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심~봤다! 아니 뱀~봤다! 경험치와 단백질, 수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뱀이야 말로 이 게임에서는 ‘성자’와 다름없다. 평소 뱀의 교활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유저라면 이 게임을 즐겨 보자. 교활함은커녕 달랑 세 가지 패턴으로 전투를 벌이고 지자마자 각종 도구로 내내 활용되는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게 될 테니까.
여담이지만 이 게임을 모두 클리어한 후에는 뱀을 만지는 게 더 싫어지는 부작용도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소x 냄새가 날 것 같아서(…)다. 아래는 불쌍한 뱀에게 바치는 한 편의 동화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느 산속에 이름 모를 뱀이 살았어요. 몸 속에 무서운 독을 품고, 가까이 오는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독을 뿜어대는 뱀은 숲 속에서 아무도 놀아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존재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뱀에게 저 멀리 바다 건너 축구 좀 하는 나라에서 온 베어그릴스라는 친구가 찾아왔어요. 뱀의 외모만 봐도 공포에 떨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베어그릴스는 친근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죠. 뱀: 안녕, 나는 뱀이라고 해.
베어그릴스: 여기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있네요. 뱀: 어? 내 얘기 좀…. 베어그릴스: 음… 맛은 별로지만 이런 산속에서는 이것도 별미죠. 뱀: 저기…. 베어그릴스: 남은 가죽은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뱀: 잠깐! 베어그릴스: 네, 훌륭한 수분 공급원이 되죠. 뱀: …. 이렇게 해서 이름 모를 뱀은 베어그릴스의 가방 속에서 그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훌륭한 수분공급원으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
징그러운 뱀과의 ‘징글징글한’ 추억 (아퀼리페르) |
게임 속 뱀이라고 하면 몸서리가 난다. <마비노기 영웅전>(이하 영웅전)에 등장하는 뱀 몬스터 ‘라키오라’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처음 도전할 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뱀이 커 봤자 얼마만큼 하겠냐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손발이 없는 몬스터이니 패턴이 그리 다양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던전에 도착하니 여러모로 상식을 뒤엎는 뱀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통은 드래곤 꼬리보다 굵어 보일 정도로 우람한데, 엄청난 속도로 맵을 종횡무진하며 사람(유저)들을 쓸어버리고, 땅 속에서 튀어나와 캐릭터를 하늘 위로 높이 날려버리는 괴력까지 자랑했다. 끔찍한 점은 공격 패턴만이 아니었다. 죽을 만큼 때렸다고 생각할 무렵 허물을 벗어 던지고 다시 덤벼든다든지, 캐릭터를 집어삼켜 자신의 뱃속을 탐험(?)하게 만드는 징그러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꿈틀거리는 내장 속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던 첫 도전을 떠올리면 밥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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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꾼’ 달식이의 이야기 (달식) |
때는 1998년 즈음, PC방이 전국에 보급되며 <바람의나라>와 <리니지>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전용망이 전국에 설치되지 않았던 때라 온라인게임을 하면 종량제 요금을 추가로 물어야 했다. PC방에서 <바람의나라>를 플레이하면 무려 한 시간에 2,300 원이라는 요금을 내야 했으니,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일주일에 용돈을 3,000 원 받았는데, 일주일치 용돈을 탈탈 털어야 <바람의나라>를 한 시간 플레이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 남짓 플레이했으니 당연히 레벨이 낮을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냥터가 ‘뱀굴’이었다. 지금 돌아봐도 유령굴을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사냥터가 뱀굴이다. 일주일에 한 시간을 플레이했으니, 20레벨까지 머물게 되는 뱀굴을 몇 달째 벗어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정말 내 캐릭터가 주술사인지 땅꾼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뱀을 잡았다. 뱀굴의 마지막 존까지 들어가면 ‘구렁이’라는 보스 몬스터를 볼 수 있는데, 요 구렁이를 잡는게 왜 그리도 재밌던지. 특히 구렁이를 잡으면 나오는 ‘좋은 뱀고기’가 당시 어린 마음에는 정말 뭔가 좋은데 말하기 그런 아이템인 줄 알고 참 열심히 모았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뱀굴을 탈출한 건 가정용 PC 열풍이 불면서 집에 개인용 PC가 생기고 나서였다. 역시나 전용선이 없었기에 ‘0141X’ 같은 모뎀 연결을 사용해서 플레이했고, 뿌듯하게 오르는 레벨 만큼이나 전화 요금이 올라갔었다. 결국 30만 원이 넘는 전화요금이 나와 집에서 쫓겨날 뻔 했고, 결국 부모님이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ADSL을 설치해 주셨다는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
거의 10년 만에 접속해 보니 구렁이의 모습도 많이 변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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