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체험기] 인조이: 게임은 테크 데모가 아닙니다

우티 (김재석) | 2025-03-20 10:33:31

3월 28일 얼리 액세스를 앞둔 <인조이>는 맥시스와 EA의 <심즈> 시리즈가 정립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의 신작이다.

<심즈>가 수십 년간 쌓은 장르의 아성은 견고하다. 때문에 <라이프 바이 유>처럼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하고 사라진 프로젝트도 적잖이 있었다. 그간 <심즈>의 경쟁자는 오직 <심즈> 자신이었고, 11년 전 <심즈 4>는 (EA에게) 빛과 (주로 소비자에게) 어둠이 공존하는 DLC 정책으로 절찬 서비스 중이다. 지난 3월 7일에도 새 확장팩 '취미와 사업'이 나왔다.

이런 구도 속에서 챔피언은 <심즈>, 컨텐더는 <인조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게이머는 희박할 것이다. 티징 과정에서 <인조이>는 제법 강력한 도전자로 보였다. 언리얼 엔진 5로 뽑아낸 최신식 그래픽과 찬란한 광원효과, 3D 프린터로 원하는 아이템을 생성 등 각종 신기능,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은 서울 같은 도시 환경 등등… <인조이>는 확실히 세간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기자 또한 지난해 게임쇼 등지에서 몇 차례 <인조이>를 체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꽤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언리얼 엔진 5로 생성한 도시 경관은 누가 봐도 매력이 넘치는 수준이었고, 도로를 차로 누비며 여러 상호작용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짧은 플레이였지만, 이 정도 룩앤필에 기자가 알던 <심즈>의 모습만 합쳐진다면 분명 챔피언의 아성에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다소 무색할 정도로 앞서 해보기(얼리 액세스) 버전의 <인조이>는 아쉽다. 스팀에서의 얼리 액세스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다시 소환될 것처럼 보인다. 준비되지 않은 채 출시된 게임은 소비자를 "유료 테스터"로 만든다는 것이다. 김형준 PD가 19일 쇼케이스에서 인정한 것처럼, 먼저 만난 <인조이>는 개발 중인 게임이었다.

짓고 있는 건물이나 만들고 있는 요리를 평가할 수 없듯 개발 중인 게임을 평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돈을 받고 들어와서 살아보라, 만들었으니 사서 드셔보라 한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인조이
출시일: 2025-03-28 (얼리 액세스)
개발사: 인조이스튜디오
유통사: 크래프톤
플랫폼: PC (Steam)
가격: 44,800원 (얼리 액세스 기준)
장르명: 라이프 시뮬레이션
리뷰 버전: 발매 전 리뷰 코드
리뷰 빌드: 20250317.842.W




# 게임은 테크 데모가 아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할 것은 <인조이>의 최적화에 대한 대목이다. 게임이 소프트웨어인 이상, 원활한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 사용자의 ‘똥컴’을 탓하기에 <인조이>의 최적화에는 물음표 핑이 붙는다.

먼저 기자가 사무실에서 사용 중인 PC 스펙은 인텔 12세대 메인보드, RTX 3060, 16GB RAM 수준이다. 초고사양의 하이엔드 PC는 아니지만, 웬만한 PC게임의 권장사양은 넘기는 수준이다. 같은 회사의 걸작인 <배틀그라운드>를 무난히 돌릴 수 있다.

크래프톤은 <인조이>의 출시 전 최소 사양을 RTX 2060/12GB RAM으로, 권장 사양으로 RTX 3070/16GB RAM을 제시했다. 최소 사양이 2060이라니 놀랐다. 그럼에도 공개된 정보와 기자가 보유한 PC의 사양을 모아서 보았을 때 게임쇼에서 본 듯한 엄청난 환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리 없이 플레이가 가능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했다. 

커스터마이징까지는 잘 돌아갔는데
도시에 들어가서는 렉이 걸렸다

게임 시작 전 옵션 메뉴에서 사양 점검 '자동측정'을 눌렀을 때 '울트라'가 나오길래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 수준이 아님을 당연히 알고 중간 레벨의 프리셋을 설정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블 캐릭터 '조이'의 커스터마이징을 끝내고 플레이 공간 '도원', 또는 '블리스베이'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버벅거렸다. 

집을 이주시킬 때부터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렉이 걸렸다. 쉽게 말해서 계속 끊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월드에 대한 로딩이 끝나고 렉이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 옛날 <심즈>도 맵을 불러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으니 그럴 만 했지만, <인조이>는 그 이상이었다. 줌인, 줌아웃 때 렉이 여전했고, 층을 오갈 때도 계속 정보를 불러와야 했다. DLSS 이슈인지 잔상도 줄곧 나타났다.

게임을 오래 하면 튕기기도 했고, 멈추기 일쑤였다. 2명 이상의 조이를 조작할 때는 기나긴 로딩이 걸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 조이가 집 안에 있고 다른 조이가 월드에 나와 있을 때 상당한 로딩이 소요됐다. 건축 모드에서는 각도를 수시로 바꿔야 하는데, 주변 환경을 같이 불러오느라 줄곧 시간이 소요되어 제대로 체험하지도 못했다. 데모에 공개된 전용 편집 공간은 렉이 덜했지만, 같은 기능을 도시 환경에서 불러왔을 때에는 힘들었다.

계속 끊겨서 자유롭게 WASD를 누를 수가 없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보는 게임’이 아니고서야, 제품 또는 작품으로서의 게임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디바이스에서 구동되어야 한다. 기자의 경우 권장사양에 준하는 컴퓨터 스펙으로도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라이프 시뮬레이션의 팬이며, 크래프톤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이 게임의 핵심 소구 계층이 이만한 PC를 가정에 가지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2025년의 라이프 시뮬레이션이면 응당 이 정도 그래픽을 보여주기 위해 컴퓨팅 파워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간의 티저 영상 등을 보고 <인조이>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 얼리 액세스 버전의 게임을 위해서 하드웨어에 투자를 감행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게임은 테크 데모가 아니다. 게임은 언리얼 엔진의 지오메트리 기술과 광원 효과가 얼마나 ‘언리얼’한지 보여주기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범용성을 갖춰야만 한다. 스튜디오와 서로의 작품을 공유할 수 있는 캔버스는 (지금은 잠잠한 메타버스 하이프와 잘 맞는) 창작 커뮤니티가 될 수 있겠으나, 그마저도 범용성을 갖춘 뒤의 일이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플레이는 카사노바 콘셉트로


옆에 어머님이 계신데 아랑곳 않고... 크흠...

그간 사귀고 있던 모든 조이를 불러서
가장 빨리 온 조이와 결혼했는데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 심즈의 길, 인조이의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조이>에서 가상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그 나름 재미가 있었다. 조이들은 저마다의 관심사와 꿈, 욕망을 지니고 살아가며 플레이어는 조이들의 세계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나의 가족을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족을 오가면서 월드에 개입할 수 있다. <심즈> 같기도 하고 <블랙 앤 화이트>의 ‘갓’ 같기도 하다. 참고로 게임 설정상 세계의 신은 고양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등의 기본 욕구 해소 로직은 납득이 가는 수준이었다. 운동을 연습하거나 요리 실력을 키우는 ‘능력’ 기능 등등은 선행 모델(심즈)을 잘 참조한 인상이었다. 스마트폰을 통한 여러 인터랙션 기능은 변화한 사회상을 잘 반영했다. 대화의 옵션은 수백 개가 넘었다. 몰래 방귀를 뀌거나, 친구와 암호화폐 시장 전망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다.

카르마는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변하는 일종의 평판 시스템이다. 이렇듯 <인조이>는 ‘착한 행동’과 ‘나쁜 행동‘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기부는 전자, 폭행은 후자에 해당한다. 선한 카르마를 쌓으면 ‘덕’을 얻을 수 있고, 악한 카르마를 쌓으면 주변 조이에게 돈을 갈취하거나, 범죄로 감옥에 갈 수 있다. 플레이어가 '갓'의 역할로 돌아와서는 카르마에 따른 주의를 내릴 수도 있다.

경찰을 때리면
감옥에 갑니다. 모르고 계실까 봐...

나쁜 조이가 되면 경찰서 앞에서 시민을 상대로 돈을 뺏을 수도 있다

희로애락의 감정 굴곡 속에서 선과 악을 추가한 것인데, 신선했지만 애매한 지점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열심히 돈을 뺏고 다니다가 기부 몇 푼 해서 카르마를 되찾는다거나, 연애 때부터 바람을 피워대다가 결혼 뒤에도 침대 위 상대를 옮겨도 악행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서 카르마가 '좋음'으로 유지되거나. 한 번은 ’천생연분‘으로 분류된 모든 조이를 부른 뒤에 그중 한 조이를 골라 청혼했지만, 여자친구들에게 한 대도 얻어맞지 않았다.

원래 라이프 시뮬레이션이 인생을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는 점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생은 그 자체로 복잡한 것으로 게임으로 그것을 100% 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전세사기로 살던 집이 날아가거나, 키우던 아들이 가출하거나, 성묘 중에 뱀에게 물리거나, 거리에서 깃발을 든 군중이 모여 도로가 마비되는 일은 게임에서도 곤란하다.

편집된 특정 선 안에서 감당 가능한 역치를 제공하는 것이 이 장르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심즈>는 단 한 번도 아동 심이 굶어 죽거나, 심이 다른 심을 직접적으로 저승에 보내는 기능을 넣지 않았다. (유저 창작 모드는 많다.) 그렇게 많은 공식 확장팩을 넣었지만, 일요일에 교회 가는 공식은 없었다. <심즈>야말로 미국적 삶의 전형을 게임화한 것인데 말이다. (특정 종교에 대한 부정 묘사를 애초부터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추측한다.)

<인조이>를 구매하기로 했다면, 육아 기능은 꼭 체험해 보길 바란다.

이게 뭐라고 감동이지...
가끔 아기가 허공을 답보하기도 한다

<인조이>는 '스마트 조이' 기능을 통해서 차별화를 꾀했다. 조이에게 성격과 가치관 등을 프롬프트 형태로 입력하면, 이후 그런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싶다고 하면 카르마가 올라가는 게 보였고, 속마음 기능을 통해서 어떻게 착한 이웃이 될 것인지 고민하는 조이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꽤 흥미로운 기능이었지만, 대부분의 LLM이 선의지를 가진 것처럼 대답하듯이 스마트 조이도 선량하고 무해한 쪽으로만 기능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 도시 최고의 악마가 될 거야' 같은 프롬프트에는 밋밋한 반응이었다. 아울러 스마트 조이는 CPU를 대단히 많이 잡아먹어서 오래 즐기기 힘들었다.

특정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조이가 그 프롬프트에 맞춘 행동을 보여준다.

이상하다... 잘 안 되네...

# 얼리 액세스와 두 가지 시나리오

인조이스튜디오의 김형준 PD는 정식 론칭 시점에 대해서 “여러분이 정말 이 정도면 출시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을 때”라고 말했다.

몇 가지 시나리오가 보인다. <발더스 게이트 3>처럼 3년의 스파링 끝에 챔피언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프로젝트 좀보이드>처럼 10년 넘는 얼액으로 ‘그냥 거기 남는 것’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크래프톤이 정식 서비스 전까지 모든 DLC를 무료 배포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약속을 뒤집지 않는 한 너무 긴 얼리 액세스 기간을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인조이>에 가능성은 충분하다. <심즈> 천하라 부를 만큼 경쟁작이 적고, 언리얼 엔진 5로 이만큼 인생게임 월드를 구현한 게임사도 사실상 없다. 인공지능으로 구역마다 방을 알아서 꾸미는 기능은, 기자처럼 꼼꼼하지 못하고 귀찮음이 많은 타입에게는 감동적이었다. 카르마나 스마트 조이 등 새로운 시도도 돋보인다. 도시를 관장하는 느낌도 과거의 <심즈>보다 강하다.


최적화, 최적화가 문제다. 큰 문제다.


아저씨 여기서 뭐하세요


사실 심즈도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짜잔, 3D 프린터로 예쁜 전기톱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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