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심의하자 vs 미적지근? 스팀 미심의게임을 둘러싼 게임위와 밸브의 10년 史

우티 (김재석) | 2020-06-06 16: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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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Steam)은 많은 PC게임 유저들이 이용하고 있는 다운로드형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ESD)입니다. 많은 경쟁자가 있었지만, 스팀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죠.

 

그 스팀이 뜨겁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스팀에 입점한 미심의게임을 규제한다는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그럴 의사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근본적인 물음표는 남아있습니다. 현행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다수의 스팀 인디게임이 '불법게임물'로 분류되는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안에 대한 오해보다 이해가 훨씬 중요하고, 또 이롭다는 생각으로 스팀에서 한국어 UI를 제공하던 시점부터 오늘날까지, 10년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 2010년, 스팀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 게임위의 첫 등장

 

한국에서 스팀에 한국어 UI가 적용된 건 2010년 경입니다. 이 무렵 많은 한국 게이머들이 패키지가 없어도 게임을 구매하고, 받아서,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익혔죠. 2020년 오늘날 PC 게임을 즐기는 분들에게 이 방식은 완벽한 표준이 되었습니다. (전까지 스팀은 밸브의 <하프라이프>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실행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

 

같은 해 9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전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나섭니다. (이하 '위원회'로 통일하겠습니다.) 위원회(당시 위원장 이수근)는 스팀이 달러로 결제되지만, 국내 유통을 위한 한국어 서비스가 존재하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에 위원회는 밸브 측에 '한국 법은 미심의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보다 앞서 위원회는 <부족전쟁>이 한국어로 서비스됐고, 실제 한국인 유저도 많았지만, 심의는 받지 않았기에 심의 대상으로 지목한 적 있죠.

 

스팀도 문제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스팀은 지금처럼 널리 사용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더 큰 문제는 위원회가 아마추어 게임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밀었다는 것이었죠. 당시 위원회는 <RPG만들기> 커뮤니티 '니오티'에게 등급 심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유저들은 분노했습니다. 당시 위원회는 "아마추어 게임물을 심의에서 제외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라며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게임을 유통할 때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받지 않으면 불법으로 처벌받는다라는 대원칙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2006년 개정된 이후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며 당시 기준으로 유일한 게임 등급분류 기관이었던 위원회로서는 원칙을 적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게이머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당시 "최악의 경우 스팀의 국내 서비스 차단도 고려 대상"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만, 현실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10년 동안 스팀이 국내 서비스에서 차단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원화 결제 지원, 한국 신용카드 결제 지원 등 날이 갈수록 한국 이용자가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바뀌었고, 사용자 수도 많아졌죠.

 

스팀에 자기 게임을 올리는 업체는 날로 늘어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AAA급 타이틀부터 독창적인 인디게임까지 스팀에서 만나는 게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2011년,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권력화된 게임위, 이제는 페이드아웃 되어야"라고 입장을 밝히고 게임위의 해체를 주장했습니다. 2007년과 2009년 민간에 자율심의 이양을 약속받았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게임 심의를 민간에 이양하는 작업은 오랜 진통을 겪었고, 2013년 게임문화재단이 민간 심의기관으로 지정됐습니다.

 

그 결과 2014년, 게임문화재단은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GCRB)를 발족시켜 오늘날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오늘날까지 민간 등급분류 기관으로 PC, 콘솔 게임 중에서 전체 이용가, 청소년 이용가 게임을 심의하고 있습니다.

 



# 2014년, 밸브의 한국어 지원 게임 심의 요구...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된 스팀

2013년,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이름을 게임물관리위원회로 바꿉니다. (당시 위원장 설기환) 

 

2014년 8월 26일,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게임의 한국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위원회의 등급 심의를 받지 않아서 페이스북을 통해 게임을 연결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었죠. 당시 디스이즈게임 취재 기사에 따르면, 위원회는 페이스북 측에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라는 공문을 발송했고, 페이스북이 그에 따라서 페이스북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을 이용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2014년 9월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은 "해외 오픈마켓 게임 등급분류가 통제 불능"이라는 보도자료를 냅니다. 박 의원은 당시 스팀에 올라간 한국어 지원 게임 둘 중 하나가 심의를 받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주선 의원은 같은 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스팀에 법 적용할 자신이 없으면 국내 법이라도 고치라"며 해외 게임 미심의 문제를 다시 지적했습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설기환 위원장은 "조치를 취하겠다" 이야기합니다. 당시 문체부 장관 김종덕은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했죠. 김종덕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계자로 현재 구속 상태인 그 인물 맞습니다.

 

이에 따라 위원회가 밸브에게 나름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10월 23일, 밸브가 스팀에서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들은 한국의 등급심의를 받으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2014년 당시 스팀에서 <디펜더스 퀘스트>를 만든 인디 개발자 라스 도우셋(Lars Doucet)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스팀에서 공식 한국어 서비스를 하길 원한다면 한국의 등급심사를 받을 것을 권유한다는 메일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그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영문 페이지를 찾았지만, 심의를 진행할 방법을 찾을 수 없어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을 찾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죠. (나중에 이 게임은 12세이용가를 받았습니다.)

 


메이저 게임사들도 반응했습니다. <문명 5>, <킹오브파이터즈 13>, <파이널판타지 13>는 게임 안에서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음에도, 스팀 스토어에서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바꿨습니다. 위원회 '조치'의 영향에 더 가깝다는 게 당시 중론이었습니다.​ 꼭 그 시점에 스팀 스토어에서 한국어만 오류가 생겼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죠.

 

2014년 12월 9일 디스이즈게임 취재 결과, <디펜더즈 퀘스트>와 더불어 인디게임 <미니 메트로>는 한국어 지원이 중단됐으며 <커맨드 앤 컨커 4>, <디펜스 테크니카>, <배틀 네이션즈> 등 10여 개 게임이 한국 지역의 신규 구매를 차단했습니다. 바로 이 해 GCRB가 탄생했고, 성인게임을 제외한 모든 PC 플랫폼 게임 등급분류를 담당하게 된 거죠. 

 

대다수의 외국 인디 개발사에게 GRAC(게임물관리위원회)나 GCRB나 똑같이 어색한 존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원회는 2010년부터 밸브에 수차례 '한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심의를 받아야 한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내내 미적지근한 대응을 하던 밸브가 2014년 처음으로 움직인 배경에는 스팀의 원화 결제 지원 결정이 있었다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서비스하려면 전자결제대행 사업자 자격을 취득해야 하고, 그에 따라서 국내법을 준수해야 하니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2015년 11월, 스팀은 달러 표기를 원화 표기로 바꾸었습니다. 2018년 12월에는 결제 수단으로 한국 신용카드와 토스(Toss), 해피머니 상품권을 추가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스팀에서 게임을 구매하기 쉬워진 셈이죠.

 

박주선 의원은 남은 19대 국회 임기 동안 '게임물 자율등급분류 확대법안'을 자신의 아젠다로 가져갑니다. 2016년, 박 의원은 민간 등급분류 기관에서 게임을 자율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킵니다. (이보다 앞선 2015년 문체부가 모든 플랫폼에서 자체 등급분류를 할 수 있도록 게임산업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 밝혔죠.)

 

관련기사

[게임과 법] 게임물 자율등급분류 확대법안 통과, 뭐가 달라질까? (바로가기)


 

# 2017년, 게임위 IARC 가입

 

<배틀그라운드>가 스팀에서 대박을 터뜨린 2017년 12월, 위원회(당시 위원장 여명숙)는 국제등급분류연합(IARC)에 정식으로 가입했습니다. IARC는 미국(ESRB), 유럽(PEGI), 독일(USK) 등 등급분류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구성된 연합체인 설문형태의 등급분류시스템을 운영 중입니다. 이 등급은 구글, MS, 오큘러스, 그리고 닌텐도가 사용 중이죠.

 

위원회는 IARC와의 제휴 관계를 명확하게 했습니다. 글로벌 오픈마켓 사업자가 IARC 등급을 받으면 한국에서 OK. 그렇지만 사행성 게임과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은 위원회가 직접 심의.

 

당시 위원회는 이 방식을 '한국형 등급분류모델'이라고 홍보했는데, '바다이야기'의 뼈아픈 기억과 청소년 보호 논리의 앙상블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러한 결정으로 일각에서는 국내 게임사에는 게임 빌드, 스크립트 등등이 요구되는 복잡다단한 현행 심의는 유지하는데 외국 게임은 설문조사만 받으면 쉽게 들어올 수 있지 않느냐며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위원회가 IARC에 가입했다고 하지만, 스팀은 논외였습니다. 가입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팀은 지금까지 줄곧 "우리는 플랫폼이지 유통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IARC에 가입하지 않았고, 애플처럼 자체 분류 시스템을 마련하지도 않고 있죠. 스팀 게임이 한국에 합법적으로 서비스되기 위해서는 한국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자체 등급분류 권한을 가진 다른 PC 플랫폼에서 받은 심의를 스팀에도 적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취재하면서 "MS 윈도우 스토어에서 받은 심의 결과를 스팀에도 적용해서 심의를 받은 것으로 처리됐다"라는 사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있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 2020년, 10년의 파고... 게임위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기자는 이번 주 위원회와 밸브와 관련해 취재했습니다. 3편의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 하지 않은 스팀 게임 제재 나서 (6월 3일)

2. [FAQ] 게임위와 스팀 미심의게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자 (6월 4일)

3. 게임물관리위원회 "밸브에 안내한 것뿐, 스팀 규제 아냐" (6월 4일)


3일, 기자는 '제재'라고 썼습니다. 2014년의 전례, 몇몇 해외 게임사가 밸브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 위원회가 제시한 '국내 시장 유통을 목적으로 한 게임'의 선정 기준​, 해외 게임사의 심의 에이전시를 맡고 있는 임바다 대표의 증언을 종합해서 그렇게 풀이한 것입니다. 일부 업체가 밸브의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2014년의 케이스가 반복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4일, 위원회는 '안내'라고 밝혔습니다. 현행 게임산업법에 따르면 국내 유통되는 게임은 의무적으로 등급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외국 업체들이 잘 모르니 이것을 알려줬다는 것입니다. 외국 업체가 위원회에 직접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죠. 

 

위원회는 밸브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뿐, 스팀에 입점한 업체가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 리전 락, 판매 중지 등 구체적인 조치는 협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원회 관계자는 밸브와 공문이 오가지 않았으며, 메일을 보내고 화상회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5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이재홍 위원장 명의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스팀’ 관련 민원 및 언론보도에 대한 위원회 입장

  

최근 ‘스팀(Steam)’에서 유통되는 게임물이 국내에서 이용이 불가능하도록 제한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시되고 또한 유사한 내용으로 언론보도 되는 등 논란이 있습니다. 게임물 등급분류 및 사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일부 사실과 다른 점을 바로잡고 위원회의 입장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밸브와의 협의내용

 

위원회는 스팀을 통해 유통되는 국내 유통목적 게임물이 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하여 밸브(Valve, 스팀플랫폼 운영사업자)와 지속 논의해 왔습니다. 주요 논의내용은 자체등급분류 제도 및 해외게임물 등급분류 신청 절차 관련 사항입니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최근 위원회는 해외 게임사업자가 직접 위원회로 등급분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한 바 있고, 국내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게임물에 대하여 해당 사업자에게 이 제도를 안내하도록 밸브와 협의하였으며, 밸브에서 관련 안내를 실시하였습니다.

 

다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물의 지역제한 및 차단과 관련해서는 논의된 사항이 없습니다.

 

밸브의 의견

 

현재 밸브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다양한 게임물들을 이용자가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내법을 준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며, 해외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안내 등에 대해 적극 협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체등급분류 제도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또 위원회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위원회의 입장

 

현재의 이러한 제도 개선은 등급미필 게임물에 대한 규제 강화의 의미보다는, 해외 게임물 유통사업자가 게임산업법을 준수토록 하는 독려 조치로서 게임 이용자들에게 정확한 이용등급 및 내용정보를 제공하여 보다 안전하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위원회는 합리적인 제도 개선 및 의견수렴을 통해 게임 이용자들의 올바른 게임 이용 권리를 보호하고 건전한 게임문화 정립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020. 6. 5.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

 

첫 기사에서 제재와 단속을 언급한 기자가 경솔했습니다. 그 권한이 게임물관리위원회에게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상황이 2014년처럼 굴러간다면 게이머와 인디게임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제재로 다가올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을 보도할 의무가 있는 기자로서 혼선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온라인 지면을 빌어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 더 유의하겠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밸브의 안내가 들어갔지만, 게임사(혹은 유통사)가 한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할 의지가 없을 때, 즉 심의를 받을 생각이 없을 때는 어떤 식으로 디메리트가 부과되는지 뚜렷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리전 락과 판매 중지는 아니라고 했죠.

 

위원회는 '2014년의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밸브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인데요. 위원회는 국내법을 준수하면서 등급분류 제도를 적극 안내하겠다고 합니다. 간접적이긴 합니다만, 이번 입장을 통해서 밸브가 스팀의 자체등급분류 제도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체등급분류 제도는 스팀 PC방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작년 GDC에서 공개된 스팀 PC방의 골자는 PC방을 찾은 손님이 게임을 구매하지 않아도 스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PC방에서 AAA급 게임을 자유롭게 즐기다가 클라우드 저장 방식으로 이어서 할 수 있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당시 밸브는 한국에 진출하겠다고 콕 집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팀 PC방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어떤 형식으로든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밸브가 자체등급분류 자격을 획득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 10년의 역사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1. 이게 다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때문...이 아니다

 

스팀 미심의게임 이슈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꾸준히 문제였습니다. 정치 논리, 진영 논리의 문제로 이 사안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고 해서 스팀의 미심의게임이 특별히 문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문체부 장관은 역대 어느 장관보다 게임 관련 정책에 적극적입니다. 올해 초 문체부는 주도적으로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주전자닷컴 사태가 터진 것 역시 문재인 정부 때의 일이지만, 문제를 발견한 뒤 비영리게임 심의를 면제하기로 결정한 것도 문재인 정부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0년 전 니오티는 게임공유 게시판을 닫아야했고, 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2. 게임 관련 법과 규정은 고여있는가?

 

스팀이 처음 한국어를 서비스한 2010년과 2020년을 함께 놓고 보면 더디지만 진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임위는 IARC​에 가입했으며, 스팀 바깥에서는 자체등급분류 제도가 굴러가고 있습니다. 문제가 많았습니다만, 비영리게임에 대한 심의는 원칙적으로 폐지됐고요. 지난 10년을 살펴보면 '개악'이라고 볼 변화는 없는 듯합니다. 10년 사이에 게임 심의기관이 두 개가 되었는데, 이 사안에 대한 평가는 독자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자체등급분류 자격을 가진 구글플레이, 원스토어, 오큘러스

 

3. 게임물관리위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지난 10년 간 수도 없이 밸브에게 한국의 현행법에 대해서 안내했습니다. 이번 안내는 특별히 개선된 제도에 대한 것이었죠. 법을 고치는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집행기관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원회에게 그간 심의 거부, 회의록 공개 거부 등의 여러 문제가 있어왔지만 스팀 미심의게임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밸브에게 접촉해온 것이 확인됩니다. 그 결과, 밸브가 자체등급분류 제도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4. 밸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스팀을 서비스하는 밸브는 2014년과 2020년 필요에 따라서 자기 선의 리액션을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 점에 대해서 밸브가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밸브가 스팀으로 한국에서 챙겨가는 것에 비해 자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회색 지대에서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죠.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기업의 당연한 생리이고, 게이머들에게 지지를 받는 스팀이지만, ​오직 밸브만 회색 지대에서 오늘날의 스팀을 가꾼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5.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a) 복잡한 심의제도, 실타리를 풀어야 한다.

 

* 게임을 심의하는 국내 기관은 2개이고, IARC​를 통해서 심의를 받기도 하고, 자체등급 분류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들의 기준은 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역차별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국가 법으로 게임에 대한 사전심의를 의무화한 곳은 한국 외에는 드뭅니다. 한국의 인디 개발자 역시 사전심의제도 자체에 대한 피로감과 불만을 여러 경로로 드러냈습니다.

* 게임에 대한 사전심의는 바다이야기 사태의 결과물입니다. 2006년의 법이죠. 이 법은 작년에 치명적인 버그 수정(비영리게임 심의 면제)​ 한 번 하고, 여러 우회책만 적용했을 뿐15년 가까이 패치 한 번 안 됐습니다. 패치를 하기는 해야 합니다. 

 * 이렇게 된 김에 '게임에 대한 사전심의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바다이야기 

 

 (b) 밸브가 등장해야 한다.

 

* 밸브의 의견을 위원회를 통해서 알아야 하는 실정입니다. 밸브가 등장하면 많은 오해가 풀릴 수 있습니다.

* '스팀 PC방'을 진지하게 검토한다면, 자체 등급분류 사업자를 취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길입니다. 그렇다면, 밸브가 직접 이 사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 전달 과정도 조금 더 명확해질 테고요.

 

 

 (c) 전선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 이번 사건을 통해서 게이머들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게이머의 입장에서, 과거의 여러 사건이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 하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정해진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지 고치는 곳이 아닙니다. (a)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에 입장을 내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또 스팀에 올라온 대부분의 미심의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아니라 민간기관인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의 역할(청소년이용불가 미만)이 될 공산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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